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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산 안창호

꿈꾸는 세상살이 2009. 7. 12. 18:45

도산 안창호

대동강변에서 출생한 도산은 청일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하자 여러 상념에 싸인다. 이는 모화사상으로부터 독립은 하였으나 근본적이지 못한 형식적인 독립이었으며, 일본의 극성이 염려되었기 때문이었다. 안으로는 우리 국민이 무지하고 경제력이 약한 원인이요, 밖으로는 러시아와 일본이 청국을 대신하여 우리를 지배하려는 야욕을 보았던 이유에서다. 이런 와중에 어떤 이는 러시아에 손을 대고, 어떤 이는 일본에 손을 대면서 자신의 권력 찾기에 힘을 썼다.

광무제는 어려운 때에 구라파의 강호들을 불러들여 맞불작전을 쓰는 한편, 혼란한 시점에서 뜻이 맞는 동지들이 만민공동회를 결성하여 국가의 독립을 찾는데 힘을 길러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22세에 미국으로 건너간 도산은 우리국민이 타국에서 제 목소리를 내려면 남의 이목을 알아야 하고, 특별히 신용을 쌓아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리하여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 모범을 보이면서, 나중에 이민 오는 동포들을 위하여는 먼저 온 교포로서 표본이 되어주었다. 드디어 도산은 교포사회는 물론 현지 사람들에게도 훌륭한 지도라로 불리게 되었다. 이것은 한일합병으로 암울한 시대를 맞은 위기의 조선을 당당하고 떳떳한 국가로 인정해주는 계기가 되었다.

기존에 있었던 독립운동 단체와는 달리, 상황에 따라 닥치는 대로 대응하던 것에서 벗어났으며 보다 근본적이고 구체적인 계획하에 힘을 길러야 한다고 역설하였던 것이다. 예를 들면 마관조약으로 우리가 청으로부터 독립을 하였지만, 그것은 허울일뿐 다시 일본에 당한 것은 국력이 부족한 탓이니 국민 모두의 책임으로 해석하였다. 그래서 국민 각자는 자신의 의무를 다하고, 나라의 독립을 위하여 무엇을 할 것인가 심사숙고하여야 한다고도 하였다. 

한편 도산은 이러한 요구의 실천으로 자신이 먼저 모범을 보였다. 부부는 생계수단으로 번 돈을 독립 운동하는 동지들의 치료비로 내놓기도 하였다. 이렇게 하는 일이 국민된 도리하고 생각하였던 것이다. 그가 미국에 있으나 중국에 있으나 국민된 도리가 다를 수 없었다. 국민을 일깨우고 애국자들을 규합하는데도 앞장섰다. 그때도 항상 자신보다 남을 칭찬하고 체면을 세워주며 용기를 북돋워주곤 하였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 일은 다른 사람에게 맡기고, 자신은 또 다른 일에 매달릴 수 있다는 지론이었다.

도산 안창호는 상해에서 54세에 투옥되었다가 58세에 출옥하였다. 이처럼 연로한 상황에서도 그에게는 감시가 뒤따랐다. 민족을 가르치고 혼을 불러일으키는 데는 항상 안창호가 앞장섰기 때문이었다. 그러기에 모여서 회의하고 식사하는 것까지도 제재되기 일쑤였다.

그가 61세에 세상을 떠났다. 많은 사람들이 슬퍼하고 애통해하였으나, 묘소에 참배하고 슬퍼하는 것조차 조사를 당하는 정도였다. 도산의 존재는 그만큼 국민의 지주였던 것이다.    

지난날을 회상하면 도산의 삶은 허무한 삶이었다고 할 수 있다. 자신을 위하여, 가족을 위하여 해 놓은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도산이 없었다면 방황하던 국민들은 어디로 갔을까. 도산의 일깨움이 없었다면 우리가 분연히 일어설 수 있었을까. 그가 떠난 자리는 너무나 큰 공백이었다.

자신보다 남을 먼저 위하고, 가족보다 국가를 우선하는 도산의 본심을 국민들이 알았던 것이다.

미국에 있던 도산이 고향에 돌아와 송태산에 산장을 지으니, 그곳이 바로 개인의 휴식처이자 교육장이 된 것이다. 흥사단을 조직한 후에도 몸과 마음을 바르고 깨끗하게 하여야 한다며 정리정돈으로 질서를 찾았다. 흥사단이 요구하는 이상향은 자신을 낮추고 상대를 존중하며 남과 더불어 사는 사회를 갈망하고 있었다. 거기에는 치산치수를 통하여 자연재해를 방지하고, 사회공동시설을 확충하여 사회의 안정을 꾀하는 것도 포함되었다. 탁아시설이나 공동육아시설, 학교 등에 역점을 두었던 것은 향후에 필요하게 될 사항을 미리 알고 있었다는 듯한 계획이었다.

그러나 도산 안창호가 세상을 떠나자 이런 사상을 이어나갈 사람이 없었다. 경제적인 지원, 인격적인 수양, 확고한 국가관 등 여러 어려운 조건들을 헤쳐 나가기에는 너무나 많은 상황들이 가로막았던 것이다.

민족이 바로 서는 일, 국가가 일어서는 일, 먼 미래에 닥칠 일을 분별하여 미리 대비하는 일 등 도산 안창호는 선각자였다. 자신을 희생하면서까지 국가를 위하던 안창호는 애국자였다. 그는 비탄에 빠져있던 국민을 일깨웠던 위대한 교육자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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