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김수영 시비
1960년대의 대표적인 참여시인 김수영金洙暎(1921.11.27~1968.06.16)의 시비가 있는 곳이다. 서울시 도봉구 도봉동 131
서울 관철동에서 아버지 김태욱과 어머니 안형순 사이의 8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효제보통학교 6학년 때 뇌막염을 앓아 학교를 그만 둔 뒤 1941년 선린상고를 졸업하고 일본의 도쿄상대에 입학하여 연극을 배웠다. 1943년 학병 징집을 피해 귀국하였다가 1944년 만주 지린성(吉林省)으로 이주 후 해방을 맞았다. 광복 후 귀국하여 연희전문 영문과 4학년에 편입하였으나 곧 그만둔다. 시 창작에 힘쓰던 중 1947년 예술부락에 ‘묘정의 노래’를 발표하고 등단한다. 이후에 김경린, 박인환과 함께 시집 ‘새로운 도시와 아이들의 합창’을 발표하여 주목을 끌었다. 한국전쟁시 피난하지 못해서 북한군에 징집되었다가 거제도 포로수용소에서 석방되었다. 1959년 첫 단독시집 ‘달나라의 장난’을 간행하여 제1회 시인협회상을 수상하였다. 미8군 통역, 선린상고에서 영어교사, 평화신문사 문화부차장 등을 거쳤으나 1956년부터는 직장을 버리고 번역과 시 창작에 전념하였다. 1968년 48세의 젊은 나이에 집 앞에서 버스에 치어 죽었다.
시집 ‘거대한 뿌리’, ‘달의 행로를 밟을지라도’와 산문집 ‘시여, 침을 뱉어라’, ‘퓨리턴의 초상’은 김수영 사후에 출판되었다.
한국의 대표적 참여시인으로 평가받는 김수영은 초기에 현대문명과 도시생활을 비판하는 시를 쓰다가 4.19혁명을 계기로 정권의 탄압과 맞서서 부정과 타협하지 않는 정신을 강조하였다.
평론가 김현은 김수영을 1930년대 이후 서정주, 박목월 등에서 볼 수 있었던 재래적 서정의 틀과 김춘수 등에서 보이던 내면의식 추구의 경향에서 벗어나 시의 난삽성을 깊이 있게 극복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던 공로자라고 평가하였다.
문우와 친지들이 1주기를 맞아 그의 마지막 시 ‘풀’을 새긴 시비를 세웠고, 민음사에서는 1981년 그를 기념하는 김수영문학상을 제정하여 수여하고 있다.
1947년 ‘예술부락’에 ‘묘정의 노래’를 발표한 후 마지막 시 ‘풀’에 이르기까지 약 200여 편의 시와 시론을 발표하였다. 5인합동시집 ‘새로운 도시와 시민들의 합창’을 펴내면서 모더니스트로 각광을 받게 되었다. 여기에 실린 작품들은 사물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꾀하려는 시인의 진지한 태도가 잘 나타나있다.
1950년 후반부터는 모더니스트들이 지닌 관념적 생경성을 벗어나 격변하는 시대에 겪어야 했던 방황을 풍자적이며 지적인 언어로 표현했다. 이런 그의 정신은 1959년의 첫 개인시집 ‘달나라의 장난’에 잘 나타나있다. 1960년대에 들어서면서 자신의 시적 경향 즉 모더니즘을 청산하고 현실과 역사, 시대와 사회에 대하여 큰 관심을 가졌다. 그의 모더니즘으로 인한 초월적 태도와 조화의 논리가 참여적 태도와 분열의 세계관으로 바뀌고 세련된 간접표현 대신 독설과 요설이 뒤섞인 직설법을 쓰게 되었다. 그 이유는 4.19혁명의 주된 사상과 그러한 정신의 세계가 퇴색된 현실에 있다고 할 것이다. ‘사령死靈’, ‘그 방법을 생각하며’,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 등은 이러한 현실에서 분노하고 절망하는 마음을 표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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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
풀이 눕는다.
비를 몰아오는 동풍에 나부껴
풀은 눕고
드디어 울었다.
날이 흐려져 더 울다가
다시 누웠다.
풀이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
바람보다도 먼저 일어난다.
날이 흐리고 풀이 눕는다.
발목까지
발밑까지 눕는다.
바람보다 늦게 누워도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고
바람보다 늦게 울어도
바람보다 먼저 웃는다.
날이 흐리고 풀뿌리가 눕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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