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류
채만식은 전북 군산시 태생으로 시골의 보통학교를 마치고 1922년에 일본으로 가서 와세다대학 영문과에 입학한다. 그러나 1923년에 중퇴하고 귀국하고, 이듬해인 1924년 단편 ‘세길로’가 조선문단에 추천되면서 활동을 시작한다. 학교교원, 신문기자, 잡지사 편집위원 등을 거쳐, 1936년 전업 작가로 나서면서 1937년 탁류, 1938년 천하태평춘, 1944년 ‘여인전기’, ‘레디메이드인생’, '잘난 사람들‘ 등을 저술하였다. 염상섭과 함께 우리나라의 풍자소설 작가로 인정받았다.
내용은 가난한 강점기에 목숨만은 영위해보자고 노력하는 어촌계의 삶을 그리고 있다. 초봉이 군산약방에서 일을 하고 있을 때 승재를 좋아하였지만, 정주사는 초봉을 고태수에게 시집보낸다. 이것은 순전히 입을 덜기 위한 방편이었다. 그러나 태수는 결혼 후 10일만에 한참봉의 처와 정을 통하다 발각되어 둘다 맞아죽고 만다. 그러면서 은행돈을 횡령한 사실도 드러났다. 그날 밤 형보는 초봉이를 겁탈한다. 이일은 처음부터 태수와 한통속이던 형보의 계략에서 나온 것이었다. 낙담한 초봉이 군산을 떠나 서울로 가던 중 제호를 만났으나, 후일 형보가 찾아와 초봉이 낳은 송희를 자신의 딸이라고 우긴다. 이에 제호가 떠나자 형보는 초봉이를 데리고 살지만, 형보가 극약을 사오자 초봉이 격분하여 발길질을 한 것이 그만 장형보를 죽이고 만다.
소설에서 초봉은 여학교를 졸업한 수준이었지만, 자신을 방어할 힘이 없었다. 물론 완력이거나 현실을 바로 보는 눈도 없었다. 거기에는 그냥 현실에 순응하는 체념이 있었다. 이것은 당시 우리 사회 어머니들의 모습이요, 나라를 빼앗긴 우리 국민들의 심정이었을 것이다.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도 없이 그냥 의미없는 생활의 연속은 바로 현실의 표현이었다. 형보는 자신이 송희의 아비인 것을 증명할 방법이 없었지만, 그냥 어딘지 찾아보면 나를 닮은 곳이 있을 것이라는 어거지가 나라 잃은 설움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일제는 우리에게 한일합병을 강요할 때도 그랬고, 우리에게 신사참배를 강요할 때에도 그랬다. 그냥 일제가 조선에게 무한한 은덕을 베풀었으니 시키는 대로 믿고 따르라고 하였었다.
초봉이 송희를 낳던 날, 초봉의 마음은 어떠하였을까. 애매한 생명을 죽일 수도 없으나 그렇다고 무작정 낳자고 할 수도 없었으니 그의 마음은 살아도 죽은 목숨이요, 죽어서도 필요없는 식민지의 민초들이었다. 초봉은 죽도록 싫어하고 죽이고 싶었던 형보를 정말 죽이고 말았다. 그리하여 어쩔 수 없는 단 한 번의 저항이 그를 영어의 몸이 되게 하였다.
현실에서도 우리는 참다참다 못 참고 저항하여 일제를 죽이거나 악덕지주를 죽이면 그것으로 인생은 끝이 났었다. 순진한 사람들이, 항상 잘하다가 한번 실수한 사람들이 잘못되어 일을 그르치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다.
고태수는 성실하게 일하려는 사람들의 반대였다. 항상 자신만 편하고 자신이 하고 싶은 일만 하면서 살고 싶어 하는 사람의 표상이었다. 장형보는 어떤가. 야바위 협잡꾼에 꼴도 보기 싫은 침략군 앞잽이였다. 당시 어수선한 사회는 그 어떤 자들도 공존하면서 서로의 이익만을 위하여 기만하는 사회상을 말한다. 초봉의 아비또한 마찬가지다. 자식에게 떳떳한 삶을 영위하도록 해주지 못하는 그의 심정은 오죽하였으랴. 마치 후손에게 제대로 된 나라를 물려주지 못하고 남의 손에 휘둘리는 나라를 물려주었으니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었을 것이다.
면면을 살펴보면 슬픈 내용이다. 아비가 있으나 아비가 누구라고 밝히지 못하는 심정의 초봉을 이해하는가. 다행이도 초봉을 닮은 송희는 혼자서 안고 가는 업보로 자신의 희생하나로 해결할 수 있다면 좋겠다는 심정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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