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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거스너의 IBM 살리기

꿈꾸는 세상살이 2009. 9. 25. 14:04

 

 

루거스너의 IBM 살리기

 

저자 : 버트 슬레이트

타임지, 뉴스위크지, UPI에서 25년간 경제관련 글을 게재하였다. 저서로는 세계적 베스트 셀러 “잭웰치와 GE방식”, 뉴욕타임즈에 “오비츠:할리우드에서 가장 논란을 일으키고 있는 막후인물 내부 이야기”, “잭 웰치의 31가지 리더십비밀”, “소로스 :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투자가의 삶, 시대, 그리고 거래비밀” 등 경영관련 서적들이 있다.

 

IBM창업자: 토마스J. 왓슨

직장 생활하던 시절부터 판매에 관한 소질이 있었다. 첫 직장에서 풍금, 재봉틀의 판매시에도 최고 판매사원이 되었고 ‘컴퓨터 태뷰레이팅’을 인수한 후에도 6년 만에 매출액 신장율 100%를 기록했다. IBM으로 개명하고 나서는 사원들을 독특한 문화로 결속하고, 주변 환경을 이용하여 세계 최대의 복합 컴퓨터 메이커가 되었다.

 

IBM회생자: 루거스너

1942년 3월 1일 뉴욕주 롱아일랜드 미니올러에서 4남중 둘째로 태어났다. 1963년 다트머쓰대 공학부 장학생졸업, 1965년 하버드 경영대학원 졸업. 멕킨지의 최연소 MBA, 최단기 파트너, 33세의 최연소 이사 기록. 1978. 1. 1 아메리칸 익스프레스 입사, 목표를 여러 개 설정해 놓고 그것을 달성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 할 수밖에 없다고 하면서, 일단 방침을 세우면 예외조항을 두지 말라고 했다.

1985년 아메리칸 익스프레스 사장취임. 1989년 1월 RJR 회장 취임. 3년 만에 11억$ 적자를 4억$ 흑자로 전환시킴. 1993년 4월 1일 IBM 회장 취임. 언론의 압력에도 흔들리지 않고 자신의 계획대로 경영을 실행하여, 49억 7000만$ 적자에서 2년 만에 30억$ 흑자의 예전과 같은 IBM의 위상을 회복시킴.

 

옮긴이: 유한수

1979년 8월 서울대 행정대학원 졸업. 11월 행정고시 23회 합격. 재무부 2년간 근무. 조선일보 미주지역 1년 근무. 984년 1월 미국 콜롬비아대 경영대학원(MBA)졸업. 1988년 3월 미국 퍼듀대학원 졸업(경제학 박사). 고려종합경제연구소 2년, 투자금융 경제연구소장 4년, 포스코 경영연구소장 4년 역임. 1998. 9 ~ 현재 전국 경제인 연합회 전무. 기업의 재무전략, 북한 진출기업 전략, 경제논리 정치논리 등 저술. 위기의 아시아 한국의 선택, 본서 번역함.

 

전체줄거리

왓슨은 1914년 컴퓨터 태뷰레이팅 리코딩을 인수하여, 1924년에 IBM(INTERNATIONAL BUSINESS MACHINE)으로 사명을 변경하였다. IBM은 일찍부터 사원복지에 관심을 가진 몇 안 되는 회사로 출발하였다. 때마침 사회복지 바람이 불어 1935년에 사회복지법, 1937년에는 시간제 급료법의 제정에 따라 회사의 주력 제품이 호기를 맞아 급성장하게 되었다. 사원복지를 확충하고 대신 엄격한 규율과 통제 속에서 성장한 IBM은 경영의 표상이 되었고, 근로자들에게는 동경의 대상이 되었다.

그러나 1980년대 중반 사회구조가 변화하기 시작했다. IBM은 대형컴퓨터 생산위주 사고에서 PC의 등장을 인식하지 못했다. 중역들은 핵심 담당자들을 대동하지 않고는 언론과 인터뷰를 할수 없을 정도로 경직, 단절되어 있었다. 자신들이 발명한 한정 명령세트 컴퓨터(RISE MICRO PROCESSOR)를 실제 PC양산에 적용하지 않아 소형 컴퓨터에서 최적의 기업효과를 낼 수 있는 기회를 상실했다. 또 빌게이츠의 회사를 인수하는 대신, IBM의 개인용 컴퓨터 운영시스템에 대한 라이센스를 허용했다. 이렇게 중요한 사업들의 조건이 오고 가면서도 실제로 사업에는 활용되지 못함으로써 계속적인 성장이 늦어졌다.

어쩌면 그런 것들을 인지하지 못한 경영자들의 자세와 오만 방자한 타성에 젖은 사원들의 근무태도로 인하여 IBM이 업계에서 도태되는 순간을 맞았다. 결국은 창업주의 가계와 회사내 기존 인력으로는 불가능하여 외부인력을 빌어 IBM을 소생시키려는 계획으로 루거스너가 1993년 4월에 CEO에 영입된다.

루거스너는 강압적이고 권위적이며 획일적인 회사의 문화를 청산하되, 사업방향의 기조는 흔들지 않고 목표에의 접근 방식을 개선하여, 다시 세계최대의 컴퓨터 제조회사 부활을 이루어 냈다. 파산직전에서 소생까지는 자산매각, 인원감축, 자사 주식소각 등 아픈 상처도 많이 있었지만 이제는 전과 같이 성장일변도의 IBM이 되느냐, 다시 멈춰서는 기업이 될 것이냐는 전적으로 경영자와 사원들의 노력에 달려 있다.

 

IBM의 성장

왓슨이 IBM을 설립하고 사원들의 복지에 힘쓰며 요구에 앞서 처리해주는 적극 경영을 폈 다. 사원들이 가정으로부터는 자유롭고, 회사 일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배려해주며 그 대신 충성 심, 한 가족이라는 생각으로 의식을 통일 시켜왔다. 복장을 통일하고, 엄격한 규율과 사생활까지도 억압하는 획일성을 강조했다. 따라서 강제적 지시에 의한 성과가 빠르게 나타나고, 처 음부터 끝까지 관리하는 통합메이커로 성장했다. 그러나 이러한 문화가 50년이 넘게 되면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던 의식이 자만에 빠지고, 최고의 자긍심은 나태해졌다. 밖에서 IBM을 보는 시각을 인지하지 못하고, 내부에서만 보는 IBM은 사회변화에 부응하지 못하여 경쟁에서 도태되었다. 그 원인으로는 무사안일주의, 만장일치제도, 욕구 완전해소제도 등이 결국 쓴소리 안하기로 되어 개혁의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IBM의 잘못된 제도

창업자의 건전한 복지제도가 해를 거듭할수록 걷잡을 수 없는 결과를 초래했다. 의식면에서 는 종신고용제가 복지부동의 자세를 유발했고, 아이디어로 신상품을 개발해도 여러 사람이 만 장일치로 찬성해야 하는 등 처리절차에서 항상 늦을 수밖에 없고, 결국 그사이에 경쟁에서 질 수밖에 없었다. 모든 사람의 의견을 존중하고 수렴하다 보니, 회의의 수가 많아지고 시간도 길어지며 결론이 안 나는 경우도 예사로 생각하게 되었다. 신상품개발1위, 판매1위, 지명도1위, 복지1위의 기업에서 경영자와 사원들이 타성에 젖어, 몇 차례 경쟁사의 도전을 받은 때에도 자극을 받지 못하고 빨리 변화하지 못해 결국 좌초하게 되었다.

IBM도 1982년에 PC를 생산판매하게 되었는데, 마이크로소프트사는 소프트웨어를, 인텔은 칩을, 엡손은 프린터를, 그리고 SCI시스템즈는 회로기판을 IBM에 공급하였다. 이때까지도 IBM은 대형컴퓨터가 기계적인 작동원리로 일처리를 해주므로 최고 핵심분야는 역시 IBM뿐이라고 생각했다.

 

IBM의 개혁상황

1. 루거스너는 직원들의 사기를 잃지 않고 새로운 긴축정책으로 IBM을 지키기 위하여 생각한 끝에 각 개인에게 e-mail을 발송하였는데 기존의 언론 먼저 직원 나중의 관습에 비하면 훨씬 솔직한 태도였다.

우선 단기목표는 회사의 적자상태를 끝내고 직원들의 사기를 회복시켜 옛 IBM의 명성을 되살리는 것이다. 그 방법으로는 회사자체를 효율적인 규모로 축소하고, 주력사업을 선정하여 집중 육성하고, 정책과 권한의 분산으로 빠른 결정을 유도하고, 고객에 대하여 서비스를 만족 시킨다는 전략이다. 경쟁력이 없는 제품군 및 경비지출 구조조정, 불요불급한 고정자산의 처리 등이 요구되었다. 따라서 창업자가 수집한 미술품들과 자가 빌딩, 불필요한 공장 등을 매각하는 조치를 취했다.

2. 신제품을 타사보다 먼저 출시하여 소비자에게 각인시키고 초기 판매전략을 효율적으로 이끌어 갔다. 이는 성장심리를 전파하고 결과에 대하여 조직의 말단까지 보상하며, 그에 따른 약간의 위험성도 감수 해야만 하는 독특한 아이디어까지를 존중하게 되었다.

3. 전에는 결재 기간도 길고 회의시간도 길었으며, 외관을 중시하는 보고 문화를 형성했었지만, 원인 판단과 대응책 강구를 빨리하며 내용과 결과를 중시하는 실용성으로 변하였다. 최고 경영자인 루는 40%의 시간을 소비자와 직접 대화하고 영업을 한 결과 가끔 대형컴퓨터 판매를 계약하기도 했다. 이는 판박이 복장의 규제철폐로부터 보고형식, 회의 참석자등 모든 부분을 대폭 수정한 결과이다.

4. 지금의 사업군들을 각각 분리하여 개별로 운영하여야 할 것인지 아니면, 현재처럼 IBM의 테두리안에 넣고 통합관리 하여야 할 것인가에서는, 기존에 형성된 IBM의 위상에 따른 시너지 효과를 고려하여 통합관리 하기로 결정 하였다. 이것은 그 당시 모든 여타 CEO들의 분리할 것이라는 기대에 정면으로 반대되는 결론이었다. 필요하면 주변의 눈치보다는 기업의 실익을 따졌다.

5. 소비자에게 최우선의 관심을 두고 경영하였다.

소비자의 욕구에 의하여 필요한 제품을 빠르게 출시하고, 품질면에서나 가격면에서 경쟁력있게 대응하며, 국내외에 시장을 확대한다면 모든 소비자들이 만족하게 될 것이고 그러면 다시 IBM을 찾게 될 것이다.

6. 합리적인 언론플레이로 모든 언론매체를 자사의 홍보직원화 하였다.

말을 아끼는 루에게 성질 급한 언론기자는 좋은 글을 써주지 않았으나 결국은 자발적으로 호의적인 기사를 써주도록 유도했다. 그리하여 오히려 변명하는 듯한 인터뷰 기사보다는 언론이 바라보는 사회적 이슈의 기사로써 좋은 이미지 연출로 소비자들이 갖는 만족도를 향상시켰다.

7. 자사에 필요한 새로운 아이템을 적대적 흡수 합병하였다.

비록 타사라 하더라도 향후 예상되는 필요한 사업군은 신속한 판단아래 흡수하였다. 이는 시간이 경과하면서 더욱 가치가 상승하기 전에 그만한 대가를 지불한다는 계산이었다. 로터스 디벨롭먼트사의 소프트웨어를 자사가 개발하는데 필요한 시간과 비용을 인정하고 지금 당장 IBM이 가지게 될 시너지 효과를 고려한 방법이었다.

8. 가장 믿음직한 규정인 종신고용을 철폐하는 대신 행동의 폭을 넓혀주고 스톡옵션 등의 보상제도를 도입 하였다. 비협조적인 파벌이나 사조직은 IBM살리기에 역행하는 것으로서 과감히 제거하였다. 거북이가 안전한 등딱지 속에만 있지 않고, 위험하더라도 고개를 내밀고 주위를 살펴야 자신의 위치를 알 수 있듯이 부단한 자기 변화를 요구하였다.

 

IBM의 문제점

1. 정형화된 틀이 아닌 외부시각을 회사에 반영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았다. 따라서 신제품의 개발과 마케팅의 신사고적용, 생산성 향상을 위한 새로운 시도는 하급 담당자의 자체생각으로만 진행될 뿐 전체적인 규정으로 채택되지 않았다. 또한 과거의 대형컴퓨터 판매실적이 너무 좋아 무엇이든 부족함이 없다보니, 회사의 문제점을 도출하는 사람이 없었다. 간혹 소비자와 직접 접촉하는 하위직원들은 환경의 변화를 감지하였으나 이것 역시 회사의 정책으로 채택되지 않았고 소비자의 불만은 점차 커져갔다. 이렇듯 이것역시 상하간에 분리선이 그어져있는 상황에서 같은 목표를 가지고 매진 할 수는 없었다. 매출이 줄어들어도 주변 환경이 우리에게 불리한 방향으로 흘러간다고는 생각을 하지만, 그에 따른 개선 대응책은 강구하지 않았다.

2. 환경변화를 인지하지 못하고 누적된 적자경영으로 어떤 대책을 세워야 할 싯점에서 빠른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예를 들면 최대의 과제였던 종신고용제를 유지하기 위하여 자연감소 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고, 잉여인력 배치대기라는 제도를 신설했다. 또한 저수익 구조를 타파하기위하여 제품군의 사활을 결정하지 못하고 많은 시간을 보냈다. 결국 고비용 구조를 구조조정하지 못함으로써 계속 몰락의 길을 알면서도 가고 있었다.

3. 제품에 대한 전략이 없었다.

자사가 발명한 제품을 소비자에게 출시하지 못하고 시제품 생산으로 끝낸 후 후발업체에게 시장을 빼앗기고 나서 재추격하는 양상을 보였다. 이는 경영진과 연구진의 의견이 일치하지 못한 결과이고 필요한 부분부분의 능력은 있으나 엮어서 활용하는 제도 즉, 관리능력이 없었다고 해석해야 맞을 것이다.

 

IBM의 개혁 성과

1. 억압적이고 강제적인 규제들이 철폐되므로서 사고의 발상이 자유스러워졌다. 따라서 자연히 외부 환경변화를 쉽게 인지하게 되고, 내부적으로 가해지는 긴박감과 경쟁심리로 인하여 소비자의 욕구에 더욱 적극적으로 대처하게 되었다. 루가 직원들에게 보여준 하나의 가족같은 분위기는 믿음을 창출했다.

2. 비용을 줄이고 필요한 제품군은 IBM의 테두리 우산아래 둠으로써 서비스 같은 고객의 요구를 쉽게 파악하고 모든 면에서 적극적으로 대처할 수 있게 되었다. 따라서 IBM의 옛 명성을 계속 이어갈 수 있게 되었다.

3. 계속되던 재정손실도 멈추고 효율적으로 관리되는 기업 즉, 소비자가 요구하는 사회변화에 편승한 수익성을 확보할 수 있는 기업으로 변화 하였다. 또 대형 하드웨어 부문에서도 이익을 실현하도록 경영시스템이 개선되었다.

4. 세계 132개국에 진출한 다국적 기업으로 세계 컴퓨터 시장의 50%를 지배하고, 총수입의 10%이상을 연구개발비로 사용한다. 탁월한 영업정책과 강력한 노무관리로 위상을 지키고 있다.당분간 그의 IBM 명성 덕분에 시너지 효과는 계속 될 것이다.

 

IBM의 숙제

분할 파산 정리대상의 기업이 회생하여 옛 명성을 되찾고 활기를 찾았다. 그러나 이 변화많 은 세상에서 전처럼 성장우위의 기업으로 계속 남을지는 아직 분명치 않다.

새로운 리더십으로 기업문화를 구축하고 직원들이 동참하여 원하는 효과를 내기까지는 기득권적인 요소들을 버리고 같은 목표를 향해 정진하여야 할 것이다.

짧은 제품 주기에도 제품의 수익률을 높이는 관리기법이 필요하고, 지금의 서비스 부문 채택과 같이 주변 변화의 흐름을 빨리 인지하는 능력이 필요하겠다.

 

IBM이 주는 교훈

1. 반 세기를 풍미했던 기업 일지라도 환경의 변화를 인지하지 못하면 도태 될 수밖에 없다. 소비자들이 요구하는 제품의 성능을 맞춰 주어야 하며, 현재 자사의 상품이 우월하다고 해도 고객의 입장에서 개선되기를 바란다면 더 이상 완전한 제품이 아니다.

기능을 추가하고 성능을 개선하여 사용하는 사람이 편리하도록 하여야 한다. 원칙적으로 획기적 발명품이 필요하지만 부분적인 개선품 만으로 충분할 때도 있다. 최소한 타사와 동시에 신상품을 출시하는 정도는 되어야 한다.

2. 기업문화 역시 주변의 변화에 맞게 개선되어 가야 한다.

IBM은 50년 전부터 지배해 온 사원 만족의 기업문화가 너무 긴 시간 동안 다듬어지지 않았다. 결국 내적인 문화가 안정되고 외적인 매출 규모에 만족해지면서 타사를 비교하지 못하고, 자기만족에 도취되어 흐름을 보는 능력이 없어지게 되고 말았다. 우리도 훌륭한 기업문화와 건전한 가치관으로 경영을 해왔다고 자부하고 있지만 오히려, 그 자만 때문에 IMF때 고비를 맞기도 했었다. 가끔씩 뒤돌아보고 타사의 기업문화를 살피되 대세의 흐름을 파악할 줄 알아야겠다.

3. 적당한 시기에 적절한 행동을 취하는 판단력이 필요하다.

IBM이 누적적자를 맞으면서도 과감한 조치를 행하지 못한 것은 옛 문화를 쉽게 떨쳐버리지 못한 결과였다고 생각된다. 결국은 외부영입 CEO에 의해서 집행되고 말 일들을 자사 CEO가 조금 빨리 진행 시켰더라면 회복 역시 더 빠르지 않았을까 추측해본다. 우리는 IMF때에 적절한 조치를 비교적 빨리 행한 것 같다. 그러나 반면에 중요한 직원들의 사기진작면을 고려하지 못함으로써, 갈등과 보이지 않는 내부의 벽이 생기게 되어 그것의 치유가 필요하다고 본다.

추진력과 열성, 사명감을 가지고 하면 된다는 분위기 조성이 필요하다.

 

감상

사회는 더불어 살아가야 한다. 기업도 자기만의 생각대로 살아갈 수는 없다. 고객의 요구사항, 타사의 대응, 주변환경 속성의 변화를 바로 보고 자사의 문화와 기업규모를 고려하여 개선 해 나가야 한다. 그 방법으로는 우선 각 개인이 변화를 수용 하여야 전 직원들이 경쟁사보다 발 빠르게 대응 할 수 있다.

상황이 어려워지면 먼저 원인을 철저히 분석하여 적절한 대책을 수립하여야 한다. 그것은 대체로, 먼저 손실재정을 보전하는 전략이어야 하고, 회사의 비용을 감축하는 방법이 될 것이다. 이것은 어느 한 가지 일처리로만 해결되지는 않으므로 회사의 전 부문에 걸쳐 판단하여야 할 것이다. 그 후는 공격적 전략으로 경쟁자보다 앞서가야 한다.

이때 비젼이 주어지면 어느 방향으로 어떻게 해야 되는지, 더욱 효과적인 결과가 나타날 것 이다. 그리고 신기업 문화를 구축하여 전 사원들이 통일된 행동으로 나아갈 때 비교우위의 기업이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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