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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은세배 새세배

꿈꾸는 세상살이 2010. 1. 19. 08:23

묵은세배 새세배

설날이 되면 조상에게 차례를 지내고 부모님이나 가까운 친지에게 세배를 드린다. 예전에는 마을의 어르신들에게도 세배하는 풍습이 있었다. 당시에는 좁은 마을에서 누가 누구인지를 잘 알기에 당연히 드려야 하는 예절인 것으로 여기기도 하였다. 그러나 지금은 생활반경이 넓어졌고 일상 만나는 사람만 만나는 것이 아니라, 모르는 사람과 부딪치며 새로운 인연을 개척해나가고 있다. 따라서 그 많은 사람들에게 문안인사를 드리고 세배를 올리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해졌기에 세배의 의미가 약해진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의 조상들은 새해를 맞는 데에도 예의를 갖추었으니, 가는 해를 정중히 보내고 다가오는 새해를 환영하는 풍습이 있었다. 섣달 그믐날은 그해의 마지막 저녁이 없어진다는 의미로 제석(除夕)이라 하였고, 마지막 밤이 없어진다는 뜻으로 제야(除夜)라도 불렀다. 요즘 유행하는 ‘제야의 종소리’도 이런 뜻에서 유래되었다.

그리고 제석에는 사당에 제를 올리고 부모님과 가까운 혈연친지에게 세배를 하면서 조상의 음덕에 감사하고 부모님의 무병장수를 기원하였다. 이것이 바로 묵은세배다. 이런 행사는 궁궐에서도 있었으니 한해를 마무리하면서 묵은 잡귀를 쫒아내고 새해를 환영한다는 의미로 연종제(年終祭)라 하였다.

제석에는 잠을 자지 않는 것이 보통이었는데, 방이나 마루, 곳간, 변소 등 모든 칸에 불을 밝혔다. 식구들 모두 뜬 눈으로 날을 세며 가는 해가 마지막 앙탈은 부리지는 않는지, 새로운 해가 잘 찾아오는지 마중하였는데, 이것을 일러 한 해를 잘 지킨다 하여 수세(守歲)라 하였다. 하지만 이러한 정성 외에도 날이 세면 설날에 사용할 음식을 만들어야 하는 입장에서는 섣달 그믐날이 보통과 같을 수는 없었다. 떡메를 쳐서 떡도 해야 하며 각종 전을 부치는가 하면, 가으내 말려두었던 나물들을 묻혀야 하는 일은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하였다. 이렇게 새해를 맞은 음식들은 특별한 이름을 붙여 세찬(歲饌)이라 하였다. 섣달 그믐날 밤에 잠을 자면 눈썹이 희어진다는 말은 일손을 빌어야하니 잠을 자지말고 밤을 세워서 일을 해야 한다는 뜻이 담겨있었다. 그래서 잠을 자는 아이들에게 떡살가루 등을 붙여 놓고 놀려대는 풍습도 생겨나게 되었다.

이때에는 친지나 이웃을 방문하여 안부도 묻고 서로를 위해 도움을 주는 예의를 갖추었는데, 당시는 한정된 직업에 서로의 입장이 비슷하여 유대감이 컷을 것도 분명하다. 하지만 그러한 환경을 이해한다 하더라도, 새해를 맞는 선조들의 마음이 희망에 차고, 새로운 결의를 다지려는 요소들이 충분히 녹아있다고 생각된다.

오늘날 우리가 맞는 제석의 세배는 그렇다치더라도 새로운 세배는 살펴볼 필요가 있다. 평소 은혜를 입었거나 도움을 받은 사람들에게 감사의 뜻을 전하고 건강과 행복을 기원하는 일은 참으로 좋은 일일 것이다. 그런가 하면 어려운 환경에 처한 사람에게는 힘과 용기를 주는 덕담이야말로 아주 잘 어울리는 세배의 참뜻일 것이다.

멀리 있는 분들을 모두 찾아뵙고 인사 올리는 것은 어려울 것이기에 그 형편에 맞는 방법으로 예의를 다하면 되겠다는 생각도 해본다. 요즘 활성화된 전화문자메세지가 자칫 예의없는 행동으로 치부되기도 하지만, 실제로는 아주 편리한 방편이 되기도 한다. 한편 제격이라는 전화도 상대방의 상황을 알지 못하는 늦은 시간이나 이른 시간에 전화를 드리는 것도 어려우며, 낮에는 바쁜 일과에 행여 방해가 되지 않을까 염려되는 부분도 감안하면 꼭 최적이라고 말할 수도 없다. 더구나 직접 방문은 불가능한 일이니 묵은세배든 새세배든 각자의 형편에 맞는 방법이면 좋겠다는 생각도 든다. 그러고보니 한동안 성행했던 연하장도 마음에 든다. 나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상대방에게도 부담을 주지 않으니 아주 좋은 방법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 해가 가기 전에 돌아보고 새해가 오기 전에 살펴보던 조상들의 좋은 풍습을 살려, 추운 날씨에 우리 주변을 둘러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