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숭림사보광전 목조석가여래좌상(崇林寺寶光殿 木造釋迦如來坐像)
웅포면 송천리 5번지 숭림사가 있고 그 안에 보광전이 있다. 보광전(寶光殿)의 내부에는 목조로 된 석가여래좌상이 있는데, 이는 2001년 4월 27일 시도유형문화재 제188호로 지정되었다.
숭림사 보광전의 목조석가여래좌상은 본존으로 비로자나불을 말한다. 이 불상은 좌측에 관음보살상을, 우측에는 대세지보살상을 협시불로 하고 있다. 복장기문에 의하면 ‘大明萬’이라고 기록되어 있어 조선 광해군5년 1613년부터 다음해까지 조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석가여래좌상은 결가부좌를 하고 있으며 머리에는 나발 위에 육계가 있고 이마에 백호가 있다. 법의는 통견으로 가슴 밑에 군의대(裙衣帶)가 있으며 수인은 항마촉진인을 하고 있다.
불상의 후면에는 1912년 정연(定淵)과 만덕(萬德) 등이 그린 후불탱화가 걸려있다. 이전의 신중탱화는 도난 당한 후 새로 그린 탱화를 걸어놓은 상태다. 또한 법당 안에는 목사자상 2구가 있었는데, 이중 1구는 법고 받침으로 사용하고 있으며 1구는 도난당했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불당의 문화재와 관련하여 많은 도난사건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기에 사찰에서는 작은 크기의 문화재급 유물에 대하여 일반인 공개를 꺼려하는 것으로 짐작되기도 한다.
다른 것도 아닌 불상이나 십자가, 성모상 등을 훔쳐가면 어떤 벌을 받을 것인가 궁금해진다. 혹시나 벌을 받는 대신 돈을 받아서 편하게 먹고 산다면 그것도 아니 될 말이다. 여러 사람에게 믿음을 주고 정신적인 도움을 주며 다같이 공유해야할 것을 혼자서 욕심을 내는 것도 사리에 맞지 않을 터인데, 하물며 훔쳐간다는 것은 정말 해서는 안 될 일이다.
그런데 외국의 유명 박물관이나 개인의 정원에서 우리 문화재를 종종 발견한다고 하니 이상할 뿐이다. 어떻게 하여 우리나라의 문화재가 다른 나라에 가 있다는 말인가. 세상에는 강자와 약자가 있어서 강자가 보아 욕심나면 아무 물건이나 그냥 빼앗으면 되는 그런 세상인가보다. 과거에 어떤 연유로 그런 일이 일어났다고 하더라도 이제는 제자리에 보내는 것이 자연의 순리이거늘 나몰라라 하는 심뽀가 얄밉다. 게다가 오히려 ‘내것이네’하고 자랑하는 것이 가증스럽다.
2009년 8월 현재, 문화재청의 공식적인 문화재도난 건수는 493건이다. 이중에는 등록된 문화재도 있고 등록되지 않은 문화재도 있다. 이 도난 문화재라는 것은 어느 시기에 관리를 하고 있었다는 문화재에 국한한다. 그러기에 우리가 관리하기도 전인 강점기나 전쟁 중에 발생한 문화재도난 숫자는 여기에 포함되지 않는 것이다.
도난당한 문화재의 크기로 보아도 사람보다 더 큰 3층 석탑이 있는가 하면, 고택의 출입문짝부터 고문서까지 다양하다. 이중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석조물인데, 크기에 비해 무거운 반면 인적이 드문 야외에 전시된 것이 주요 원인일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귀중한 문화재를 공동의 자산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개인 재물로 취급하는 심리다. 그것은 남의 것을 훔쳐서라도 자기 것으로 만들겠다는 잘못된 인식의 표현이라고 본다.
▣숭림사 영원전지장보살좌상및권속(崇林寺靈源殿地藏菩薩坐像및眷屬)
웅포면 송천리 5번지 숭림사(崇林寺)의 영원전(靈源殿)에 모셔져 있는 지장보살상(地藏菩薩像)과 시왕 및 그 권속들로 모두 25구의 불상을 말한다. 이는 숭림사의 소유로 2001년 4월 27일 시도유형문화재 제188호로 지정되었다.
지장보살좌상을 비롯한 25구의 불상들은 조선 인조 12년 1634년에 만들어졌다. 처음에는 옛 옥구군 보천사에 있던 것을 숭림사의 영원전으로 옮겨 모신 것으로 전한다.
숭림사 영원전 지장보살좌상은 목조로 결가부좌(結跏趺坐)를 하고 있는데, 전체높이 104㎝, 머리 32㎝, 어깨 폭 53㎝, 무릎 폭 71㎝ 정도의 규모로서 얼굴은 원만하고, 머리는 별다른 장식이 없는 민둥머리 형태이다. 법의(法衣)는 양쪽 어깨에 모두 걸친 형태의 통견(通絹)으로, 앞가슴에 가로로 된 군의대(裙衣帶)가 있다. 수인(手印)은 왼손을 내려서 손바닥을 앞으로 하여 중생의 모든 소원을 들어준다는 여원인(與願印)을 하고 있다.
지장보살의 양옆에 일렬로 배치된 무독귀왕과 도명존자. 시왕 및 권속들은 지장보살좌상과 같은 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는데, 지장보살좌상(地藏菩薩坐像)과는 달리 흙으로 만들고 헝겊을 붙여 완성한 소조불이다. 지장보살좌상외 권속은 영원전의 서, 남, 북측면에 배치되었는데, 도명존자, 무독귀왕, 시왕상 10구, 시자 6구, 동자상 4구, 금강력사 2구 등 모두 24구이다. 그러나 이 25구의 불상들은 그 조성연대가 확실하여 조선시대의 불상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된다.
권속(眷屬)이란 시자(侍者), 종자(從者), 수반자, 측근자를 가리키는 말로 산스크리트어의 파리바라(parivara)를 한역한 말이다.
부처나 보살의 권속은 약사불(藥師佛)의 12신장(十二神將), 부동명왕(不動明王)의 8대동자(八大童子), 보현보살(普賢菩薩)의 10나찰녀(十羅刹女), 천수관음(千手觀音)의 28부중(二十八部衆) 등의 협시(脇侍)를 말한다. 그 외에도 넓은 의미에서는 제자나 종자, 불법(佛法)을 이어받는 사람들 모두를 가리키며, 좁은 의미로는 친척이나 가족을 뜻하기도 한다.
숭림사로 가는 길은 훨씬 가까워졌다. 예전의 굽은 2차선 도로는 곧은 4차선으로 변했으며, 높은 고개를 넘어야했던 아찔한 길이 바짝 몸을 낮춘 때문이다. 언제든지 자리를 펴지 않고도 잠깐 더위를 식힐 휴게실과 실내체육관이 생겨났으니 이제는 마음까지도 가까워진 곳이다. 체육공원에서 시작하여 숭림사의 뒷산을 오르는 간단한 등산로는 부담없이 오를 수 있는 코스다. 경사도 심하지 않고, 등산 경로도 길지 않아 가족끼리 나서기에도 좋다. 숭림사에는 보물 제825호 보광전, 시도유형문화재 제188호 목조석가여래좌상, 시도유형문화재 제67호 청동은입인동문향로, 시도유형문화재 제189호 영원전지장보살좌상 및 권속 등 여러 문화재가 있다.
숭림사는 지금도 공사 중이다. 경내의 주차장이 좁아 많은 손님을 맞기에 조금은 불편하지만, 오는 손님을 위하여 꾸준히 단장 중에 있었다. 새로운 해우소도 짓고, 건물의 기와도 바꾸며, 입구의 길도 다듬는 중이다. 세심천의 상류는 절로 들어서는 대문역할을 하고 있었다. 한 발짝을 내디디면 극락으로 가는 길이요, 한발을 거둬들이면 연옥으로 가는 길인 것처럼 생사의 갈림길을 표현하는 듯하다.
그러기에 더 많은 더 많은 중생을 살리기 위하여 오는 이들을 막지 않으며, 누구든지 오고 싶은 마음이 생기도록 치장을 하고 있나보다. 좋은 곳으로 보내준다는데 어느 누구라서 유혹당하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마는, 행여 반대하는 사람이 있을까봐 지장보살과 권속들은 눈을 부릅뜨고 쳐다본다.
2010.10.20 익산투데이 게재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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