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 여산동헌의 느티나무
여산면 여산리 445-2번지에 동헌이 있고, 그 울안에 커다란 느티나무가 한 그루 있다. 이 나무는 향교관리재단의 소유로 2002년 8월 2일에 시도기념물 제116호로 지정되었다. 여산동헌에 있는 느티나무의 유래에 대한 기록이 없어 정확한 내용은 알 수 없다. 그러나 여산동헌의 뜰과 주변에 7주의 대형 느티나무가 집중 분포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동헌의 설치와 어느 정도 연관이 있을 것으로 추정할 수는 있다. 기록에 의하면 여산현은 ‘고려 현종 9년 1018년 전주부(全州府)에 속해 있었으나, 공양왕 3년 1391년 감무(監務)를 두어 격하하였다. 낭산과 공촌, 파제 두 부곡(部曲)의 권농사까지 겸임 하였고, 조선 태종2년 1402년에 두 현(縣)의 이름을 따서 여산현이라 하였으며, 세종18년 1436년에 원경왕후의 외향(外鄕)이라 하여 군(郡)으로 승격하였다.’고 한다. 위 기록에 따라 여산동헌은 고려 공양왕대(代)부터, 여산에 현이 설치되는 조선 태종 2년 1402년 사이에 설치되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따라서 느티나무의 수령도 이와 유사한 것으로 보아 수령은 약600년 정도는 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여산동헌에는 동헌 앞쪽 담장 밖의 경사지를 따라 느티나무와 팽나무, 가죽나무가 분포하고 있는데, 그 중 동헌울안 서쪽의 나무가 가장 크고 수관생육상태도 가장 좋다. 느티나무의 수령은 600년, 흉고 둘레는 4.2m, 수고는 26.8m, 수세(樹勢)는 원줄기에 4가지가 남동에서 북서방향으로 26.8m, 남서에서 북동방향으로 22.2m 뻗어 있어 양호한 수관을 형성하고 있다. 동헌 안의 느티나무는 문화재인 기념물로, 동헌 밖의 느티나무는 보호수로 지정되어 있다. 시골마을의 어귀에 있는 정자나무는 대체로 느티나무가 많다. 이는 나무의 생육이 빠르고, 잎도 우거져서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너무 빨리 크기 때문에 자칫 소홀하면 그만 정자의 지붕을 덮어버려 이끼가 끼거나 항상 습하게 만들기도 한다. 그러기에 오래된 은행나무와 팽나무, 느티나무는 마을의 성황당이 되기도 한다. 부정한 것이 범접하지 못하도록 금줄을 치고, 서낭신(城隍神)을 모셔다가 제사를 지내기도 한다. 여산동헌에 있는 느티나무는 성황당이라기보다는 정원에 그늘을 만들고 운치를 더하기위하여 심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울밖에 여러 그루의 나무가 더 있는 것을 보면 그리 알 수 있다. 단점은 낙엽수라는 것이다. 이 느티나무는 바로 아래의 백지사지에서 목숨을 놓아버린 순교자들의 얼굴에도 실날같은 그림자를 만들어주지 않았을까 추측해본다. 그 옆에는 방망이를 들고 호령하던 수령이 걸터앉아 쉬던 의자도 있었을 것이다. 혹시 그 의자도 느티나무로 만들었을지 궁금하다. 이렇게 좋은 일이나 궂은일이나 가리지 않고 모두 겪었을 느티나무는, 오늘도 아무런 말이 없이 그저 팔을 뻗어 모든 이를 안아주고 있다. 우리나라의 천연기념물 중에 느티나무는 모두 16수가 지정되어있다. 내용을 보면 천연기념물 제95호 삼척 도계읍의 긴잎느티나무, 제161호 성읍리 느티나무 및 팽나무, 제192호 청송 신기동의 느티나무, 제273호 영풍 안정면의 느티나무, 제274호 영풍 순흥면의 느티나무, 제275호 안동 녹전면의 느티나무, 제276호 남해 고현면의 느티나무, 제278호 양주 남면의 느티나무, 제279호 원성 흥업면의 느티나무, 제280호 김제 봉남면의 느티나무, 제281호 남원 보절면의 느티나무, 제283호 영암 군서면의 느티나무, 제284호 담양 대전면의 느티나무, 제382호 장연 오가리의 느티나무, 제396호 장수 봉덕리의 느티나무, 제407호 함양 학사루의 느티나무 등이다. 마을의 노거수는 나보다 나이가 많아 오래전부터 마을의 대소사를 모두 경험한 것임이 틀림없다. 그래서 노거수를 보는 사람들은 조상을 보는 듯 포근하고 정겨운 느낌을 받기도 한다. 때로는 마을의 수호신역할을 하여 성황당으로 여기기도 한다. 그래서 마음이 불안한 사람에게 평안함을 주고 가족의 영달이나 가정의 화평을 기원하는 장소가 되기도 하였다. 어떤 때는 마을 전체의 화합과 경사를 함께 즐기는 문화의 장(場)도 되었다. 타향에 있는 동안에는 고향의 대명사가 되며 만남의 장소가 되고 상징물이 되던 곳이기도 하다. 그러기에 궂은일이나 기쁜 일이나 모두 함께 하는 공동의 장소로서 대동단결의 역할도 하였다. 온갖 풍상과 동고동락(同苦同樂)하여 바로 우리네 삶의 일부이기도 하다. 이러한 삶은 고스란히 나무의 나이테에 저장되어 곱게 모셔져 있는 것이다. 그래서 노거수를 자르는 것은 물론이여 상처라도 나게 하면 안되는 금기의 대상이 되곤 하였으며, 나무에 정령이 살고 있다는 생각을 하기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이것이 마을 수호신의 의미인 것이다. 이렇게 신성시되는 나무들이 때로는 사람처럼 벼슬을 한 경우도 있으니 천연기념물 제30호 용문사은행나무는 당상관, 천연기념물 제103호 속리산은행나무는 정이품에 올랐다. 그런가하면 재산목록에 올라 세금을 내는 경우도 있으니 천연기념물 제400호 경북예천군 용궁면 금남리의 팽나무 황목근이 그런 예이다. 황목근은 12,200㎡의 토지와 약간의 은행예금을 가지고 있다. 또 인근 예천군 감천면 천향리의 석송령도 천연기념물 제294호로 지정되었으며 토지 2천 평을 가지고 있어 세금을 내고 있다. 이렇듯 나무들은 각기 다른 재질적 특성을 가지고 있다. 어떤 나무는 단단하고 어떤 나무는 여리다든가, 어떤 나무는 가볍고 어떤 나무는 무겁다는 등의 특징이다. 따라서 이런 특성을 살려 용도에 맞게 심는 현명함도 있어야 한다. 예를 들면 풍토병이 심한 곳에서는 이에 효과가 좋은 나무를 심는다든지, 집을 많이 지어야 하는 곳에서는 목재용 나무를 많이 심는 등 지혜가 필요한 것이다. 예전에 배를 만드는 나무는 가볍고 수분에 강한 재질이어야 했는데 주로 소나무가 사용되었고, 이이를 낳으면 가구를 만들기 위하여 오동나무를 심었다는 것 등이 그런 예이다. 가구 중에서도 단단하고 힘을 받아야 하는 궤 등에서는 먹감나무를, 아름다운 무늬가 요구되었던 소품은 느티나무가 사용되었다. 습기에 자주 접하는 찬장이나 소반 등은 소나무, 목판 활자용으로는 산벚나무, 관재로는 비자나무나 굴피나무 그리고 느티나무가 주로 사용되었다. 나무는 이렇게 각기 다른 특성과 용도가 있으니 동헌 마당에 느티나무가 있는 것은 그 어울림에 따라 선택한 결과다. 느티나무는 전국 어디서나 잘 자라며 빨리 크는 속성이 있다. 재질이 강하고 질겨서 뒤틀리지 않고 무거우며 무늬와 광택이 아름답다. 또한 잘 썩지 않으며 물에 잘 견디는 성질이 있어 농기구나 가구에 많이 쓰인다. 가지는 역삼각형의 모양을 하며 약 30m까지 자란다. 딱딱하고 억센 줄기는 강인한 의지를 나타내며, 고루 퍼진 나뭇가지는 조화된 질서의 상징이다. 또 단정하게 난 잎은 예의범절을 나타내어 많은 사랑을 받아왔다. 우리나라에는 1,000년 이상 된 노거수는 약 60여 그루인데 그중에서 25그루가 느티나무다. 그러나 횡근성으로 가뭄을 잘 타며 바닷바람에도 약하다. 또 보기는 좋으나 공해에 약해 가로수로는 적합하지 않는 등 단점도 있다. 가을에 황금색 또는 연한 구리색으로 물들어 단풍의 맛을 풍겨준다. 꽃은 새로 나온 가지의 잎겨드랑이에서 5월에 암꽃과 수꽃이 따로 피며, 수형이 아름다운 나무에 속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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