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것들/익산! 3000년 세월의 흔적

83. 수덕정(修悳亭)

꿈꾸는 세상살이 2011. 6. 30. 18:57

수덕정(修悳亭)

3000년 세월의 흔적 익산의 문화재를 찾아서(83)

한호철 칼럼니스트, h2cheol@yahoo.co.kr

 

 
▲ 수덕정의 겨울 

여산면 태성리 산185-2번지에 있는 수덕정은 수려한 정자 1동으로 2002년 5월 30일 익산시향토유적 제5호로 지정되었다. 수덕정은 태성리 화산(華山) 중턱에 터를 고르고, 현천저수지를 바라보며 남서향으로 세워져 있다.

농은(農隱) 송기인(宋基仁)은 여산 송씨로 조선 고종(高宗)때 동몽교관(童蒙敎官)으로 제수되었으나 관직에 나가지 않았고, 그 후에 관찰사 이용직(李容稙)이 포상을 상신하여 좌장례(左掌禮)에 봉해진바 있다. 이렇게 자신을 낮추고 겸손했던 송기인의 뜻을 받들어 후손들이 1938년 경치가 아름다운 언덕에 정자를 세웠으니 바로 수덕정이다. 수덕정의 바로 옆에는 ‘농은선생유허비’가 돌비각안에 세워져있다.

초석은 흘림기법으로 정교하게 다듬은 대리석으로 높이 67cm의 원기둥형이며, 기둥은 두리기둥이다. 공포의 구조는 기둥머리에서 창방과 익공쇠서가 직교한다. 쇠서(牛舌)는 초익공구조인데, 공포부재를 받아줄 수 있도록 네모지게 만든 주두(柱頭)를 물고 있는 형상이다. 쇠서의 전면은 직각으로 자르고 안쪽은 경사지게 잘라 대들보를 받치는 보편적인 구조이다. 주간은 소로수장집과 같이 4개의 소로를 놓음으로써 도리의 바로 밑에 평행으로 받쳐 거는 인방과 같은 역할을 하는 장혀(長舌)를 받게 했다.

집의 형태는 가운데 기둥에서 긴 보를 앞뒤로 가로지르고, 그 위에 측면 평주에서 두 개의 부재를 충량처럼 걸었다. 그 상부에 井자형 외기를 짜고 중도리를 걸었으며 그 위에 대공을 세워 종도리를 받음으로써 팔작지붕을 이루고 있다. 종도리 하부의 장여와 뜬창방 사이에는 소로를 배설하였고 뜬창방 전면에 상량문을 기록하였다.

누각의 크기는 그리 크지 않으나 외로운 산속에서 홀로 물가를 바라보고 있는 모습은 고고한 학의 모습이다. 먹이를 쫒아 움직이는 부지런한 학이 아니라, 이리저리 돌며 그냥 운동삼아 노니는 학이 한발을 물에 담그고 한발은 뭍에 댄 형국이다. 높은 언덕에서 내려다보이는 들판은 옹기종기 모인 시골집과도 같다. 처마가 짧아 비를 맞은 기둥이나 마루가 안쓰럽게 여겨진다. 주인도 없이 알아주는 이도 없이 혼자 버텨낸 세월을 그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그나마 다행인 것은 지붕에 기와를 얹었는데 한식기와라서 위안이 된다. 그렇지 않았으면 벌써 지붕에 풀이 돋고 천정이 내려앉았을 법한 상황이다. 사람이 살지 않는 집은 쉬 망가진다고 하던데, 수덕정이 이토록 오래동안 보존 된 것은 혹시 누군가가 살았던 것은 아닌지 몰라 그 증거를 찾으려 둘러보았다. 산입에는 거미줄을 치지 않는다던데, 여기저기 엉킨 거미줄을 보니 사람의 흔적은 이미 오래전에 끊긴 것이 틀림없었다. 그 대신 직경이 한 자도 넘는 대형 벌통 두 개나 매달려있는 것을 보니 이들의 덕이 아닌가 생각되었다.

외부에 ‘수덕정(修悳亭)’이라는 현판이 있고, 주련(柱聯)으로는 ‘현곡청풍(玄谷淸風)’, ‘화산명월(華山明月)’이 있다. 내부에는 ‘수덕정중수기(修悳亭重修記)’, ‘수덕정 원운(修悳亭原韻)’ 등의 편액이 있다.

수덕정은 한적한 시골길에 연해있다. 요즘 농촌의 인구가 줄어드는데 반해 수덕정은 예나 지금이나 같은 자리에 서있다. 누구한테 무엇을 바래서가 아니라, 하모 찾아올 누군가를 기다려서가 아니라, 그냥 주어진 자신의 임무를 다하기 위하여 그렇게 서 있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를 잊은지 오래다. 누정에 올라가는 길은 새로 난 진입로가 아니면 올라갈 엄두로 낼 수가 없다. 주변에 엉켜있는 풀들이 바지를 움켜쥐며 길을 가로막는다.

외로운 정자를 벗삼아 지켜주던 나무마저 아무런 기척이 없다. 목소리 높여 불러보아도 손을 저어 얼러보아도 묵묵부답이다. 한동안은 가쁘게 몰아쉬었을 숨인데 더 이상 내뱉지도 않는다. 오랜만에 왔으니 얼굴이나 보자 하여도 그나마 외면한 채 꼼짝하지 않는다. 임종도 지켜주지 못한 내가 그토록 미웠었나 보다. 그새 다리가 여덟이나 달린 주인을 새로 모셨다며 나에게 손조차 내밀지 않으니 내가 발디딜 틈이 없다. 게다가 실낱같은 그물마저 방해를 한다.

흐르는 물도 찾아온 손님을 응대하고 싶은지 조용히 그리고 천천히 돌아간다. 누가 부르든 말든 못들은 체하며 나만 바라보고 한눈을 판다. 이제 가면 언제 다시 만날지 모르는 아쉬움에 수덕정을 부둥켜안은 채로 흐른다. 그바람에 수덕정이 통째로 흔들거린다. 모진 비바람과 폭풍한설도 견뎌냈건만 작은 너울에 어쩌지 못하는 수덕정이 위태로워 보인다. 부러진 가지에 살점마저 패인 나무라도 붙잡고 버둥거려보지만 그 누구도 어쩔 수가 없다. 그래도 수덕정에서 바라보는 현천제는 여전히 아름답기만 하다.

더운 날 수덕정은 그렇다쳐도 차가운 칼바람이 부는 날에는 어떠할까 걱정이 되어 눈 내리던 섣달 그믐날에 다시 찾아보았다. 눈이 오는 날에도 비가 오는 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기다리는 수덕정이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자주 찾지 못하더라도, 언제나 나를 잊지 않고 맞아주는 것이 고마웠다. 주인없는 수덕정 마루에 객이 홀로 올라보니 아는 체를 하는 사람이 없다. 오수를 즐기던 거미도 이리저리 붕붕대던 벌들도 잠시 자리를 비웠나보다.

발아래 흐르는 현천제도 미처 얼음을 다 채우지 못했다. 지금이 언제인지 때도 모르는 오리들이 양발도 신지 않은 채 물속에서 먹이를 찾는 모습이 안쓰러웠나보다. 이 해가 가기 전에 모두 얼리고야 말겠다고 별렀지만, 굶주림에 허덕여 먹이 찾는 오리를 어름 속에 가둘 수는 없는 때문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