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을 아는 고장
예술을 알고 행하는 고장이라는 말로 예향이 있다. 말하자면 예술인이 많이 배출되었거나 전통 예능품이 많이 보전된 곳을 일컫기도 한다. 이런 예향은 강원도의 강릉부터 영월, 봉화, 충청도의 대전, 천안, 문경, 충주, 공주가 있고, 경기도에 의정부, 오산, 용인, 안성, 인천이 있으며, 경상도에는 영천, 통영, 밀양, 구미, 진주, 안동, 울산, 예천, 삼천포, 김천, 마산 그리고, 전라도에는 전주, 익산, 남원, 정읍, 나주, 광주, 목포, 순천, 진도, 장성, 화순, 담양 등이 있다. 물론 이외에도 자타가 자부하는 고장이 더 있다.
그러나 이들 예향을 살펴보면 창(唱)이 있거나 그림 또는 민요가 전하는 고장이 상당부분임을 느낄 수 있다. 말하자면 구전이나 실물로 현재까지 전하는 예술이 남아있는 경우 붙여진 이름일 것이라는 공통점도 있다. 이들은 근세 혹은 비교적 가까운 시기에 형성된 고을이면서, 현재의 문화예술에 영향을 끼친 곳이라는 점도 알 수 있다. 이들은 조선시대에 각 지역을 대표하던 곳 중의 하나다.
그렇다면 역으로 중세 이전의 생활 속에서는 예술이 존재하지 않았다는 말인가, 전혀 그렇지는 않다. 다만 당시의 예술이 현재에 전하지 않아 잘 알지 못한다는 것일 뿐이다. 어느 나라 어느 고장에서 언제라도 예술이 발달되지 않았던 시기는 없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정형화되어 잘 전하는 예술이나, 구전되어 잘 전하지는 않지만 간혹 나타나는 예술을 통틀어 문화라는 이름으로 부르고 있을 뿐이다.
이러한 문화는 한 시대를 대표하는 것으로 당시의 삶과 애환이 서려있는 것이다. 반면에 다음 시대에는 방향을 제시해주는 길잡이가 되기도 한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선조의 문화를 받아들이며 우리의 생활 속에서 재현하려고 하는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문화의 단절은 곧 생활의 끝이거나 삶의 포기라고 말해도 좋을 듯하다. 우리 지역 문학부문의 주제는 정읍의 정읍사에서 시작하여 익산의 서동요, 남원의 춘향전, 부안의 이매창, 익산의 이병기, 전주의 최명희로 이어진다.
또 판소리부문에서는 고창의 신재효, 익산의 권삼득과 정정렬, 신만엽, 남원의 안숙선, 운봉의 송흥국, 순창의 박유전명창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우리나라의 8대 명창 중에 속하거나 5대 명창에 속하는 정도로 뛰어난 인물이다. 그림으로는 익산의 어진화가 채용신, 서예로는 전주의 창암 이삼만과 고창의 석전 황욱, 김제의 강암 송성용이 있다 .종합예술로는 이리농악과 임실필봉농악 그리고 최근에 드러난 김제농악을 비롯하여 이리향제줄풍류를 꼽을 수 있다. 그런가 하면 조선시대에 형성된 출판과 종이문화, 죽제품문화와 부채문화 등을 들 수 있다. 이 정도라면 전라도가 예향임은 확실하며 그 중에서도 익산과 전주는 예향의 본류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정작 이런 예향에서 예술활동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을까. 우선 전주는 도청소재지인 만큼 여러모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나, 익산의 경우는 조금 미진하다고 할 것이다. 전주에 소리문화의 전당을 세우고 그에 걸맞는 행사를 하면서 문화의식을 고취시키고 생활 속에 끌어들이는가 하면, 영화축제 등을 개최하여 새로운 문화의 형성에도 노력하고 있다. 물론 이들은 삶의 질이 향상되어야 가능한 일이며 재정적 지원이 있어야만 한다. 그렇다고 익산이나 정읍에서는 이런 일을 할 수 없는 것일까. 정읍은 몰라도 현재 익산의 생활수준으로는 문화의 흡수와 보전, 그리고 새로운 문화의 창출이 가능하지만, 이것을 기획하고 집행하는 사람들의 관심과 지원이 부족한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렇다고 꼭 많은 돈을 들여야 한다는 것은 아니니 적은 금액으로 많은 효과를 내는 것이 유능한 관리자일 것이며, 그런 고장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행복한 사람일 것이다. 행복지수는 자신의 형편에 맞춰 형성되는 것이라는 말은 누구나 다 알고 있다.
요즘은 공업화시대를 거쳐 서비스산업도 지나간 시대가 되었다. 이른바 글로벌시대에 IT시대가 된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복잡한 시대를 거친다 해도 그의 주체는 사람이며, 항상 최종 결론은 그 사람들의 생활인 문화로 집약된다. 같은 문화를 놓고도 찾지 않던 예전에 비해, 가까이 있는 문화를 찾아 즐기는 시대에 든 것이다. 그러므로 아무리 선진사회가 되었어도 옛 문화를 버리지 못하고 계승 발전시키는 것 아니겠는가.
선조들이 만들어놓은 예향의 주인자리를 가만히 손 놓고 내주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경지에 이르기까지 얼마나 어려운 것이 예술인데 그냥 쉽게 내준다면 너무 아깝지 아니한가 말이다. 지금은 공업화가 조금 뒤졌다 해도 너무 기죽을 필요는 없다. 공장에서 만들어낸 제품으로 얻는 수익이 조금 적다 해도 너무 기죽을 필요는 없다. 우리는 그들보다 앞 선 문화가 있으니까. 문화브랜드를 높여 우리의 행복지수를 높이면 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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