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정부와 강화를 오가는
동창 중에 인천 강화에 살면서 의정부로 출퇴근을 하는 친구가 있다. 그러기를 벌써 몇 년째다. 그러나 정확히 말하면 강화의 어디에서 의정부의 어디까지 다니는지는 알지 못한다. 그 둘의 이격거리가 얼마인지가 중요한 것보다는 그렇다는 사실에 중점을 두어야 하기 때문에 별도로 알아보려고 노력하지도 않았다.
멀리 떨어진 시골에 살고 있는 나는 강화가 얼마나 좋고 의정부가 얼마나 좋아서 그러는지는 알지 못한다. 그러나 그 친구가 어느 쪽에도 소홀하지 않고 있다는 것에는 박수를 보낸다. 사람이면 누구나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싶고 자기가 좋아하는 곳에서 살고 싶은 욕심이 있는 것이다. 아니 어떻게 생각해보면 이런 것은 욕심이 아니라 자신의 희망이라 할 수도 있다. 그리고 모든 사람들은 자신의 희망을 현실화시키기 위하여 노력하며 살고 있다.
이런 세상사의 원칙을 이해는 하면서도 먼 거리를 오가는 이유가 궁금하여 왜 가까운 곳으로 이사를 하지 않고 멀리에 살면서 힘든 출퇴근을 하는지 그 이유를 물어 본 적이 있다. 그 때 석원이의 대답을 빌면 인생의 원칙에 입각하여 두 곳 모두가 좋아서 그런다고 하였다. 따라서 특별한 변화가 생기지 않는 한 앞으로도 계속하여 그럴 것이라고 하였다.
다지고 보면 석원이가 아주 오래 전부터 이렇게 멀리까지 힘든 출퇴근을 하였던 것은 아니다. 이런 일이 비록 근래의 일이긴 해도 살아보고 싶은 곳 앞으로 살아가고 싶은 곳으로 강화를 선택하였는데, 현재의 직장이 의정부라서 그렇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럼 직장을 그만 둔 후에 강화를 선택해도 좋지 않으냐고 물었을 때 석원이의 대답은 명쾌하였다. 그렇게 살고 싶은 곳이라면 여건이 허락하면 지금이라도 살고 싶은 곳이 아니겠느냐는 것이었다. 정말 그렇게 좋은 곳이라면 지금의 고통을 감수하고라도 선택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 아니냐는 대답이었다.
얼핏 들으면 지극히 이기적이고 개인적인 생각이라고 치부할 수 있겠으나, 자세히 곱씹어보면 모든 세상의 이치가 그렇다는 생각도 든다. 세상에는 음과 양이 있으니, 한 쪽이 빛을 보면 한 쪽은 어두워지는 것이 당연하겠다. 어떤 일에 있어 얻는 것이 있으면 잃는 것이 있게 마련이라는 논리다. 그런데 문제는 어느 쪽에 더 치중하고 어느 것을 포기 할 것인지를 선택하는 것이다. 물론 이것 역시 개인의 성격에 따라 다른 결론으로 나타날 것이다.
이때의 선택은 즐거운 마음이어야 한다는 조건이 따른다. 그런데 이 친구는 이 둘을 적절히 조합하여 무난히 소화해 낸 경우라 하겠다. 그리고 해결되지 않고 남아있는 문제는 자신의 강점으로 승화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장거리의 출퇴근에 따른 시간의 낭비와 교통체증, 교통비의 낭비, 육체적 피로 등 불편한 점을 감당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석원이는 이런 사항들을 모두 극복하면서 생활하고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근무하는 시간의 절대적 비교만 들여다보면 여느 사람들보다 시간적으로 여유가 있었던 공무원이기는 하였지만, 때로는 비상근무나 대기근무가 많았을 소방공무원으로서 발이 묶이는 경우도 많았을 것이다. 그러니 당사자가 아닌 경우는 어느 한 가지 측면으로만 해석할 수도 없는 것이다.
내가 이런 말을 듣고 생각해본 석원이는 복잡하게 주어진 상황들의 여러 조건을 취합하여 가장 적합한 우선 과제를 채택하면서, 한편으로는 그것으로 인하여 다른 일과의 조화를 유지하는 탁월한 기술을 가졌다고 보인다. 사실 모든 것을 만족시키는 것은 불가능하여 최대 다수가 추구하는 점을 실행하는 것이 현실이지만, 그로인해 규율을 망가뜨리지 않도록 중용의 자세를 취하였을 거라는 추측이 든다. 나는 석원이와 연관이 있는 직업도 아니며 살고 있는 지역이 가까운 것도 아니어서 실제로는 부딪칠 기회가 거의 없다. 그러나 어쩌다 한 번씩 만나는 동창 모임에서도 위와 같은 유추를 입증해주는 사건들이 발생하곤 한다. 작년 여름에 모인 영월 청령포에서의 일이 그런 예이다. 고향이라는 이름으로 특정 지방에서만 모인다거나 많이 살고 있다는 핑계로 서울에서만 만나는 것이 아니라, 지역적으로 그리고 휴양적으로 적절한 장소인 영월을 택하다보니 많은 사람들이 동시에 불편을 감수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어떤 친구들은 휴가를 내기도 하고, 어떤 친구들은 격주휴무제를 시행하는 직장에서 근무하여 오전부터 모여 들기도 하였었다. 이때 소방서에거 근무하는 석원이는 직업이 직업인만큼 오전근무를 마쳐야 한다고 하였으며, 바로 다음날인 일요일에는 당직이라서 모임에 참석할 수 없다는 연락이 왔었다. 하긴 강화와 의정부를 오가는 사람인데 잠깐 쉬는 시간이 있다하더라도 집에 가기 바쁠 것이니 그의 대답을 두고 뭐라고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직장에서 집으로 가는 방향과 정 반대인 강원도의 영월까지 어떻게 오겠느냐고 모두들 이해해 주었다. 그리고 모인 사람들끼리 어떻게 하면 재미있는 휴가와 일상을 추스르는 재충전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것인지 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드디어 저녁이 되자 본격적인 행사를 시작할 즈음 전혀 생각지도 않았던 석원이가 도착하였다. 한 사람이 더 많다거나 적다고 하여 대세에 영향을 주는 행사도 아니고, 휴양림의 숙소를 단체로 예약하였으니 한 사람의 음식비나 숙박비용이 추가로 지불되는 것도 아니었다. 우리는 이 친구가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들 얼굴이라도 보자고 당직을 바꾸고 참석한 것이라는 추측도 해보았다. 또 일부는 이런 핑계로 저런 핑계로 빠진다고 할까봐 당직을 바꾸고 참석한 것이라고 추측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어떤 이유로 참석을 하였든 자신의 의지대로 참석을 하였으니 좋은 의미로 해석해야 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어떤 모임에서든 한 사람의 참여로 전체의 분위기를 더욱 고조시킬 수 있다는 것은 익히 아는 사실이다. 이날도 그랬었다. 석원이가 비록 이 번 모임을 주선했던 절대 유일한 존재는 아니었더라도, 피대를 돌려주는 원동기의 중심인 회전축은 아니었더라도, 그냥 맞물려 돌아가는 톱니바퀴처럼 어느 부분 하나 하나가 중요하지 않은 것처럼 우리의 구성인자였던 것은 확실하다.
영월 청령포에서 참석한 역사교사 동창을 통하여 단종과 당시의 정세를 읽는가 하면, 의사를 통하여 중년의 아버지들이 가져야할 건강수칙 등도 이야기하였다. 그런가하면 떨어져 지낸 시간만큼이나 쌓인 회포를 달래고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새기며 즐거운 마음으로 밤을 지새웠다. 그리고 다음 날의 하이라이트인 동강의 래프팅코스를 점검하는 도중에 그 친구는 다시 일터로 돌아갔다. 군인들이 그러하듯이, 경찰들이 그러하듯이, 우리들이 즐거운 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은 자신 본연의 임무인 당직에 충실 하는 것이라며 출발한 것이었다. 우리 집행부는 다른 사람들 모르게 조용히 배웅을 하며 고마움을 전했다. 뿐만 아니라 어려운 여건에서도 각종 행사에 빠지지 않고 참석하면서 서로를 격려하고 위로하는 모습을 보면서 좋은 친구를 둔 우리가 행복하다는 말을 덧붙였다.
그런 친구가 이번에 소방정으로 승진을 하였다. 조금은 색다른 명칭의 소방공무원 직급은 일반인들이 생소하게 다가온다. 하지만 일반 소방서에서 소방정이 높은 직책이라고 하니 이 또한 축하할일이다. 물론 직급이 높아지고 급여도 많아져야만 축하할 일인 것은 아니지만, 열심히 노력하고 인정을 받아 소방공무원의 꽃이라 불리는 직급에 오른 것은 내세워도 좋을 일이라 생각한다. 지금까지 석원이의 행동을 보면 다소 어려운 직책이 주어지더라도 훌륭히 소화해나갈 것이라 믿는다. 자신이 가진 능력을 충분히 발휘하고, 부족한 부분이 있으면 백방으로 노력하여 좋은 결과를 낼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의정부에서 집이 있는 강화로 가지 않고 여러 친구들을 위하여 강원도 영월로 향하는 배려가 부하직원들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많을 것이라 생각한다. 특히나 소방공무원이 자신을 담보로 하여 생명과 재산을 지켜내는 직업이라면, 개인의 욕구와 필요를 포함하여 타인의 욕구와 필요도 충족시키는 사명감이 있어야 할 것이다. 이때 최대공약수를 선택하는 지혜, 순간순간에 가장 탁월한 선택을 취하는 지혜가 있어야 할 것이다. 조금은 내가 손해를 보더라도 해야 할 일이라면 해야 한다는 신념의 필요성이 대두된다. 내 생각으로는 석원이가 이런 선택을 하지 않았는지 추측해본다. 지금은 벌써 오래 전인 2007년도의 일이지만 친구야 앞으로도 계속하여 사회의 훌륭한 기둥으로 남아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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