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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쁜 마음을 가진 예쁜 애

꿈꾸는 세상살이 2013. 8. 9. 13:10

예쁜 마음을 가진 예쁜 애


내가 아는 사람 중에 예쁜 사람이 있다. 그는 초등학교 동창인데 이제 나이도 50을 넘어 환갑의 코앞에 와있다. 올 봄에는 딸을 시집보낸다고 날짜도 잡았다. 그 사람이 예쁜 애로 변한지는 약 15년 전의 일이다.

당시 우리는 초등학교 6학년 때의 담임선생님을 모시고 반창회를 할 때였었다. 그날 은사님이 직접 지어주신 별명이 바로 이쁜 애였다. 선생님의 말씀은 그 애가 항상 이쁜 짓만 골라서 한다는 것이었다. 정말 그렇다면 어찌 예쁘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하는 일마다 보아서 좋은 일, 보아서 예쁜 짓이라면 더 이상 말해 무엇하랴.

그런데 그 선생님이 사시는 곳은 제주도이다. 그러니 1 년에 한 번, 아니 따지고 보면 5년에 한 번 만날까 말까한 상황인데도 그냥 이쁜 애라고 별명을 지어 주신 것이다. 어떻게 보면 초등학교 6학년 당시의 담임선생님이 별명을 지어 붙여주는 그런 것과 같은 상황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그 말에 동의하지 않았다. 이제 불혹의 나이 40도 넘겼고 졸업한 지도 벌써 40년도 넘었는데 누가 뭐라고 한다고 그렇게 쉽게 정하고 바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우리들은 이구동성으로 어쩌다 한 번 만나는 사람은 지금 만난 사람의 본심을 알지 못하며, 40년 전의 행동을 보고 현재를 판단하는 것은 형평에 어울리지 않는 다는 이유를 달았다. 그런데도 선생님은 그냥 우기셨으니, 한 번 스승은 영원한 스승이라서 우리가 시시콜콜 따져 물을 수가 없어 승복하고 말았다. 그래서 졸지에 이쁜 애가 된 사람은 바로 김영숙이다.


사실 김영숙은 예나 지금이나 후덕하게 생긴 것에 변함이 없다. 얼굴은 달덩이 같이 둥글고 마음도 보름달처럼 둥글었다. 머릿속에서 상상하는 것으로는 소설에 나오는 대갓집 안방마님의 전형이다. 게다가 의상마저 화려하여 주위의 이목을 끈다거나 최신 패션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그저 안방마님의 전형처럼 수수하면서 단정한 그런 모습이다.

그러니 평소 접하던 영숙이의 성격을 바탕으로 하여 조용히 생각해보면 영숙이가 이쁜 애가 될 수 있는 조건은 갖추고 있었던 같다. 김영숙의 가장 큰 장점은 남에게 듣기 싫은 소리를 안 하면서도 항상 원칙에 입각한다는 것이다. 마치 우리가 알아야 할 상식은 유치원 때 이미 배운 것이라는 말마따나 옳은 말만 하는 사람이다. 어디에 가서는 어떤 말을 해야 하고 어떤 사람을 만나면 어떤 말을 해야 하는지 이미 준비해 놓는 그런 사람이었다.

따지고 들자면 이런 부류의 사람들은 자신의 이익을 위하여 남을 의식하지 않고 이기적으로 행동하는 경우가 많이 있다. 그러나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영숙이는 우리가 할 일은 이미 유치원에서 배운 것을 잊어버리지 않고 잘 실천하는 사람이었다. 자동차가 올 때 손을 들고 건너는 것이 기본인 것을 아는 사람들이 손을 들었다는 것 한 가지만 내세우지 말고, 무단횡단을 하면 안 되고 상대방을 위하여 반드시 횡당보도로 건너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라고 이른다. 먼 길을 가는 나그네가 다시는 먹을 일 없을 것 같은 우물이라 생각하더라도 뒤에 오는 나그네를 위하여 우물에 침을 뱉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이런 일쯤이야 누구나 생각하는 것이지만 김영숙은 실제로 그렇게 행동하는 사람이었다. 그러니 그의 행동은 남에게 흠 잡힐 데가 없는 그런 처신으로 일관하였던 것이 사실이다. 이렇게 써 놓고 생각해보니 나도 모르게 영숙이를 이쁜 애라고 얘기하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하지만 세상에 어느 누구도 항상 옳고 예쁜 짓만 골라서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일을 하다보면 실수도 있고 누군가에게 서운하게 할 수도 있을 터이다. 자신의 생각과 다른 방향으로 행동하는 사람을 보면 이쁘지 않고 미운 그런 사람도 있다. 그런데 이런 경우에도 영숙이는 이쁜 애로 통한다. 그것은 그의 이름이 이쁜 애이기 때문에 아무리 누가 뭐라고 해도 변함이 없다.

나는 이 단어를 곰곰 생각해 보았다. 이쁜 애의 기준이 무엇일까. 어디까지를 이쁜 애라고 불러야 할까. 사실 성인이라면 이쁜 애의 기준이 얼굴이 예뻐서가 아니며 몸매가 예뻐서가 아니라는 것쯤은 누구나 다 아는 바와 같다. 그러고 보니 나는 이쁜 애와는 거리가 한참 멀리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나는 항상 칭찬을 받을 일만 골라서 행동하는 것도 아니고, 남에게 옳은 일을 잘 가르치는 것도 하지 못하며, 겉으로라도 위로하거나 칭찬하는 말도 잘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열 번을 잘하다가 한 번을 잘못해도 욕을 먹는 다는 것이 세상사인데, 나는 처음부터 끝까지 욕먹을 일투성이이니 누가 나를 이쁜 애라고 할 것인가. 나 스스로나마 나는 이쁜 애의 자격이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인가. 내가 나를 뒤돌아본다.


처음에는 억지로라도 이런 나이에 무슨 이쁜 애라는 별명이냐고 따졌지만, 나를 비교하여 생각해보니 그는 대체로 이쁜 애라는 단어가 들어맞는 것 같았다. 우선 그 사람은 여태 한 직장을 계속하여 다니고 있다. 남들은 나의 목표를 위하여, 나의 경력을 쌓고 몸값을 올리기 위하여 다른 직장으로 옮기는 것이 상식이었다. 그러나 영숙이는 좀 더 많은 이익을 위하여 다른 직장으로 찾아다니는 것들은 하지 않았다. 그의 말을 빌리면 그렇게 철새처럼 옮겨 다니는 사람들은 물론 뭔가 다른 인생의 전환점을 위하여, 혹은 개인의 발전을 위하여 옮긴다는 조건을 내세울 수도 있겠지만 그래봤자 뭐가 달라지겠느냐는 반응이다. 인생은 돈만 가지고 사는 것도 아니고 직급만 가지고 사는 것도 아니니 그까짓 돈 몇 푼 더 받아서, 직급 하나 더 올라가서 뭐가 달라지느냐는 이론이다. 내가 인정을 받으면 그만큼 해주면 되는 것이고, 나에게 그만큼 대접해주면 인정받을 일을 하면 될 것 아니냐고 반문하는 그였다.

그의 말대로라면 세상살이가 아주 간단한 이론에 불과하다. 그렇다고 그가 실패한 인생의 대명사인양 해석해서는 안 된다. 영숙이도 나름대로는 자신의 삶에 자부심을 가지고 사는 사람이다. 어릴 적부터 남에게 뒤지지 않는 생활을 해왔었다. 공부도 잘하며 운동도 잘하는데 거기에 다른 아이들 마음까지도 잘 휘어잡아 주도권을 가지는, 주어진 환경에서 못하는 것이 없이 무엇이든지 척척 해내는 능력의 소유자였다. 그런 그가 사회에서도 잘 적응할 것이라는 것은 의심할 필요가 없다.

정말 그는 무슨 일을 하든지 어려우면 어려운 대로, 쉬우면 쉬운 대로 부딪쳐서 실행하였다. 이러하고 저러해서 못하겠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이쁜 애는 이 세상에서 못할 일은 하나도 없고 안 되는 일은 하나도 없다고 하였다. 다만 자신의 능력이 부족하여 그 일의 원하는 수준에 미치지 못하는 경우가 있을 뿐이라는 것이 영숙이의 생각이다. 이런 말을 하는 그를 두고 누군들 이쁜 애라 하지 않을 수 있는가.


남을 배려하는 행동은 나의 이익과 너의 이익을 따지지 않으며, 남이 손해 보는 일은 바로 내가 손해 보는 것처럼 안타까워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오늘은 그와 만나 다른 친구의 사업장을 방문하기로 약속한 날이었다. 시간에 늦지 않으려고 조금은 여유 있게 약속장소로 나갔다. 미리 도착한 사람들은 다 그러하듯이 기다리는 사람이 빨리 오기를 희망한다. 그런데 정해진 시간이 다 되어 가는데 영숙이는 아직 나타나지 않았다. 여유가 있으면 기다려도 되겠지만 다음 약속이 있는 나는 시간을 절약해야 한다는 조급한 마음에 전화를 걸었지만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혹시 번호를 잘못 눌렀는지 걱정이 되어 확인하고 확인하여 다시 걸었지만 계속하여 전화를 받지 않았다.

무슨 일이 있어도 약속은 지켜야 하며, 혹시 다른 일이 생겼으면 이러저러하니 어떻게 하라는 말쯤은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생각도 들었다. 지금은 급한 일이 있으니 잠시 후에 전화를 해 주겠다는 한 마디만 해주어도 좋으련만 하는 생각에 은근히 화도 치밀었다.

기다리는 시간은 아무리 짧아도 그 사람에게는 길게 느껴지는 법이다. 단 1분이라 하더라도 전화를 하고 다시 전화를 하는 사람은 조급한 마음에 지루하게 느껴지는 것이 사실이다.

그런 순간 건물 모퉁이에서 영숙이의 모습이 보였다. 보자마자 왜 전화를 받지 않았느냐고 화풀이를 하고 싶었으나 애써 참으며 태연한 척 물어보았다. 그러나 그의 대답은 차분하였다. 처음 약속할 당시의 말은 사무실 문 앞에 도착하여 전화하면 즉시 나오겠다고 이미 약속하였으니 전화를 받으면 뭐하겠느냐는 대답이다. 그 말이 맞기는 한 대 그래도 전화는 받아야하지 않느냐고 물었지만, 오히려 약속을 못 지키는 상황도 아닌데 그래봐야 괜히 전화요금만 나오지 뭐가 달라지느냐고 따졌다. 이런 때에 나는 그에게 잘못 했다고도 할 수 없으며 잘 했다고도 할 수가 없어 진퇴양난이 이런 것인가 생각하였다.

영숙이는 소비와 낭비를 구분할 줄 아는 사람이다. 그러니 정말 이쁜 애라는 단어가 어울린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 친구 중에 이런 이쁜 애가 있다는 것이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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