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나무가 있어야 숲이 된다는
초등학교에 다닐 때부터 비교적 가까이서 지낸 친구가 있었다. 사는 동네는 달라도 다시 생각해보면 그저 편하게 지냈던 기억이 나는 친구 중의 하나가 고광만이다. 학교에 오고가며 만나기도 하며, 어떤 때는 학교수업을 마친 후 일부러 그 친구네 동네를 거쳐 멀리 돌아가는 경우도 있었던 기억이 난다. 광만이는 당시 담임선생님이었던 고금산선생님의 친척이라는 얘기를 들은 후 알게 모르게 작용하는 친근감으로 더 그랬을지도 모른다. 지금 생각하면 선생님의 친척은 정말 많고 많은 세상 사람들 중의 아무런 존재감 없는 작은 인연일 뿐인데 그때는 무슨 대단한 것이라도 되는 줄 알았었나보다.
그런 친구가 졸업 후 40년이 지난 이제는 예전의 이웃 동네에 비하여 아주 가까이서 살고 있다. 같은 마을 중에서도 같은 지역에 살고 있어서 누구 말을 빌어 엎어지면 코 닿을 데에 사는 것이다. 그간의 공백기 동안 고향을 떠나 있었던 나는 그 친구가 어떻게 지냈는지 잘 알지 못한다. 그러나 이제 시내의 같은 동에 살면서, 내가 사는 아파트 창 너머로 내다보면 한 눈에 들어오는 아담한 주택들 사이의 어느 한 집에 살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보기 싫어도 보아지며 만나기 싫어도 우연찮게 만나지는 경우가 발생한다. 그리고 그 생활사 역시 이런 저런 경로를 통하여 하나둘 접하기도 한다. 다시 말하면 예전에 느끼던 친근감보다 서로 무관심한 듯하면서도 더 가까이서 느끼고 있다고 해야 맞는 표현일지 모르겠다.
그가 사는 마을은 아주 오래 전에 택지개발을 하면서 만들어진 단지다. 그래서 차들이 드나들기에는 약간 비좁아 보이는 골목으로, 누군가가 주차라도 시켜 놓으면 그 사이로 다른 차들이 지나갈 수 없는 그런 어정쩡한 주택가가 되고 말았다. 그렇다고 이제 와서 다시 다 뜯어내고 새로 지을 수도 없는 노릇이 아니겠는가. 그것은 바로 기득권자들이 지금까지 누리고 있던 모든 소유를 다 내려놓고 다시 시작할 수는 없는 것과 같은 이치가 아닐까 생각한다. 그에 비하면 나는 고층아파트에 살고 있으니 조금은 형편이 낫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사는 아파트 역시 시내에서 최초로 지어진 고층아파트이니 그 불편함은 늘어나고 수명이 쇠하여 가치는 줄어들고 있는 형국이다.
어쩌다 베란다에 나가 창밖을 볼 때에 광만이가 사는 집 쪽을 바라보는 경우가 있다. 그때 나는 생각해본다. 광만이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 설마 나처럼 글 쓴다고 책상머리에 앉아있지는 않을 것이니, 혹시 지인들과 어울려 술이라도 한 잔 하고 있을까 생각할 때도 있다. 그런 광만이는 내가 하는 일은 거의 다 할 줄 아는 능력의 소유자다. 우선 큰 키는 아니지만 그래도 작지 않은 덩치에 맷집도 있어 한 눈에 보기에도 튼튼해 보이는 점이 장점이다. 게다가 몸도 유연하여 운동도 빠지지 않는다. 목소리가 성우 못지않게 좋은데 추가하여 노래까지 잘하니 이것도 시샘 나는 부분이다. 그런가 하면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하며 사업을 벌이는 수완도 탁월하다. 물론 그런 사업체로 얼마나 많은 돈을 벌었는지는 알지 못하며, 많은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쌓은 인맥이 어느 정도인지도 알지 못한다.
한 술 더 떠서 광만이는 내게 없는 것을 골라 갖추고 있는 재주꾼이다. 우선 쉬운 말로 나보다 술을 잘 마신다. 그리고도 많이 마신다. 술을 많이 마시는 것이 좋은 것이냐고 물으면 대답은 궁색해지지만 기왕에 술을 마시려고 혹은 술을 마셔야 한다면 잘 마시고 많이 마시는 것이 좋은 것은 맞지 않겠는가. 그래서 그런지 말은 많다.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기를 좋아하고 이것저것 참견을 하지만 그래도 적당한 선에서 물러설 줄 아는 재주를 가졌다. 나는 이런 광만이를 한 마디로 일러 사교적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따지고 보면 많은 생각을 하면서 모임의 중심에 서 있는 유쾌한 성격의 소유자라는 생각이 들게 한다. 이 부분은 내가 광만이를 보면서 가장 부러워하는 대목이기도 한다.
그래서 그런지 고광만은 항상 바쁘다. 어느 누가 찾아와서 불러내는지 아니면 먼저 찾아가는지는 모르겠지만, 정해 놓은 시간에 만나야 하는 약속이 있는 지는 모르겠지만 항상 분주한 모습을 보여주는 친구다. 그런데 나도 그렇게 바쁘게 사는 사람들을 좋아하는 사람 중의 하나다.
항상 나대다 보니 무슨 일이 있어 친구들로부터 야단을 맞기도 하지만, 그래도 큰일에는 약방의 감초처럼 섞여있는 사람이다. 동창회를 하여도 나서서 소집을 하고, 친구들의 애사에는 거의 빠지지 않고 참석하는 성의도 가지고 있다. 나는 그런 그가 좋다. 물론 항상 마음에 들었으며 항상 다 잘했다고는 못하겠지만, 어차피 세상 모든 사람들이 완벽하지 못한 것이 사실이라면 그 정도로만 해주어도 훌륭하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그런데 얼마 전에 나는 그에게 혼이 난 적이 있다. 어떤 문제를 해결하려고 이리저리 궁리하다가 결국은 혼자의 힘으로 처리할 수가 없어 광만이와 상의를 하였는데 왜 이제 와서야 이런 얘기를 하느냐고 야단을 맞은 것이다. 좀 더 빨리 애로사항을 얘기하고 어떻게 해결하지 상의를 하였더라면 생각하는 만큼 이상의 좋은 결과를 얻을 수도 있었다는 것이었다. 지금은 너무 늦어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도 막을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약간은 서운한 마음을 숨기고 돌아와 생각해보니 그런 그의 말이 맞는 것처럼 생각되었다.
나는 광만이에게 애로사항을 토로하면서 상의를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물론 다른 사람에게도 이야기하면서 도움을 청하는 것 자체를 싫어하는 것도 사실이다. 아무리 노력하여도 내가 원하는 만큼의 성과를 얻지 못하는 것을 안다고 하여도 나 혼자의 힘으로 처리하려는 나의 성격이 그렇게 만들었을 가능성이 크다.
나는 이번 일을 두고 생각해볼 때 남의 일인데도 자기 일처럼 성의를 가지고 처리한다는 것에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쉽게 말하여 내가 만약 그런 정도의 부탁을 받았을 때, 어쩌면 말로는 알았다고 하면서도 속으로는 그냥 대충 처리하려고 하는 마음이 앞서지 않았을까하는 점에서 비교가 되었었다.
오늘도 그런 광만이에게서 연락이 왔다. 평상시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하던 친구가 오늘은 갑자기 시골 고향에 있다며 전화가 온 것이다. 초등학교의 개교80주년 총동창회를 준비하면서, 내년에 우리가 맞는 졸업 40주년 기념행사도 같이 준비해야 하지 않느냐는 내용이었다. 아울러 그에 앞서 반창회를 열자는 제안이었다. 사실 같은 해에 졸업한 동창들의 모임에 비하면 어떨지 몰라도, 우리 반의 반창회 역시 제법 좋은 반응을 얻고 있는 모임이기도 하다. 지금까지 가끔 모여 서로를 이야기하면 세상사는 이야기를 나누었던 적이 제법 있었던 것이다. 어떤 때는 은사님을 모시고 야외에 나간 적도 있었으며, 고향에서 친구들을 만나 추억을 떠 올리던 적도 있었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고마운 친구라는 정을 느꼈다. 어쩌면 내가 나서서 해야 할 일인데도 자기가 먼저 판을 벌이고 부채질을 하고 있으니 말이다. 자기가 먹을 밥을 챙겨놓고 나보고는 어서 와서 숟가락만 놓으라는 얘기니 말이다. 세상의 사람들은 사회적 동물이라서 모든 일을 자기 혼자서 다 처리하지는 못한다. 어느 누군가는 어떤 일을 맡아줘야 하고 어느 누군가는 그 일의 마무리를 해야 하는 것이 순리다.
다르게 생각하면 먼 길이 무서워 여행을 떠나지 못하는 길손에게 신발 끈을 묶어주는 격이다. 무슨 일이든 처음 시작이 중요한데, 시간은 다가오고 진도는 나가지 않자 고광만이 먼저 삽을 들면서 일의 시작을 알리고 있으니 고마운 일이었다.
우리 사회에서는 이런 사람들이 많이 필요하다고 본다. 각자가 다른 분야에 종사하며 맡은 일이 따로 있기는 하지만, 반드시 누구 해야 한다고 지정하여 정해지지 않은 부가의 일이 있을 때 그것을 챙기는 것은 정말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서 어떤 일이 잘 이루어지지 않는 원인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따라서 그런 일들을 마다하지 않고 앞장서서 나가는 사람들은 사회의 윤활유와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사회가 잘 돌아가기 위하여 윤활유가 있어야 하듯이, 나 혼자의 생각으로 조금 지나칠지 몰라도 우리 동창회에서는 고광만이 필요한 존재라고 말하고 싶다.
이 거친 세상에서 자신의 일만 열심히 그리고 충실히 해 간다면 우리 사회는 메마른 장작과 같아 모두가 불쏘시게 밖에는 될 수가 없을 것이다. 게 중에는 젖은 나무도 있고 어린 나무가 있는가 하면, 이제 막 새싹이 나서 잎이 온통 푸른색인 나무도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런 조화로운 숲이 있어야 산불도 예방하고 자연이 건강하게 유지될 수 있는 것이다.
오늘도 생각해본다. 숲은 아름드리 큰 나무가 죽어서 화력이 강한 장작만 있다고 해서 좋은 숲이 아니다. 오히려 조금은 연약하고 아직은 풋내가 나더라도, 작은 바람에도 심하게 흔들리는 여린 잎이 있어야 맑은 공기를 마실 수 있는 것이다. 화전 밭에서 얻는 것보다 푸른 숲에서 얻는 것이 훨씬 더 많다는 것 정도는 모든 사람들이 잘 알고 있는 바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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