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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 기부할 데가 있느냐는

꿈꾸는 세상살이 2013. 8. 9. 13:19

어디 기부할 데가 있느냐는


세상을 살아가는 대는 커다란 기업체를 운영하는 사람도 있고, 그 안에서 노동력을 제공하는 사람도 있다. 또는 규모가 작은 중소업체를 운영하는 사람도 있고, 개인이 어떤 사업장을 내는 개인사업체도 있다. 이러한 구조 속에서 임인채는 작은 사업체를 운영하는 중소기업의 대표 중 한 명이다. 그런 인채가 부친상을 당하였다는 부고가 왔다. 빈소는 익산병원장례식장으로 먼 곳도 아니었기에 부담 없이 찾아갈 수 있었다. 고인은 연세가 이제 80도 안 된 좀 서운하다는 나이에 돌아가셨다. 들어보니 주무시다가 조용히 생을 달리하셨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흔히 말하는 심장마비에 속하는데, 물놀이를 한다거나 급격한 차이가 있는 냉온탕의 충격 등 외부 여건에 의하지 않은 조용한 상태에서의 심장마비는 대부분 심근경색에 의한 심정지라 할 수 있다.  

심장마비! 심장이 일을 하지 않고 멈추게 되면 혈액순환이 되지 않아 더 이상 영양분이나 산소의 공급을 할 수가 없게 되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병 중에서 가장 무서운 병이 심장마비다. 이런 심장마비의 원인을 찾자면 심장천공이나 파열 등도 있겠지만 그런 것은 극단적인 경우에 속하고 일반적으로는 바로 심근경색과 직결된다. 이런 증상은 혈관을 지나는 혈액 속에 이물질이 있어서 제대로 흐르지 못하다가 마침내 혈관을 막아버리는 것으로, 뇌혈관에 생기면 뇌졸중이며 심혈관에 생기면 심근경색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나도 심근경색이라는 진단을 받은 적이 있기에 남의 일 같지가 않았으며, 항상 조심한다고 하면서도 마음대로 쉽게 되지는 못하는 것이 자신과의 싸움이었다. 그렇다면 나도 시한폭탄을 안고 사는 셈이니 말 못할 고민 중의 고민이다.


임인채는 사업을 시작한 지가 아직 5년여에 지나지 않는 풋내기 사장이다. 그의 업종은 사회적 복지를 추구하는 특장차를 제조하는 기업이다. 말하자면 이동목욕차 혹은 방문목욕차라 불리는 특수목적의 완성차를 생산한다. 이 업종이 최근들어 새로 부상하기 시작하는 관계로 그간 독과점 비슷한 성격을 띠고 있었다. 하지만 임인채가 사업에 뛰어 든 후로는 그래도 제법 기술적인 보완을 토대로 좀 더 편리하고 튼튼한 설비를 제작하는 방향으로 변하고 있다. 말하자면 인채가 업계의 기술력을 선도하고 있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내가 처음 인채의 공장을 방문하였을 때에도 그런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원래 이동목욕차라는 것은 이동을 하는 차량을 기본으로 하여 목욕을 할 수 있는 난방과 온수공급 시스템을 갖추고 있는 것이 기본이다. 그런데 이런 장비를 구매하는 사람들은 일반 개인이 아니라 특정업무를 업으로 하는 보호요양시설이나 지방자치단체의 요양소 등이 대부분이다. 그리고 그 비용은 세금에서 충당하는 사회복지기금이 대부분이라 어떻게 보면 부르는 게 값이고, 주인이 없다하여 먼저 보고 사용하는 게 임자인 면도 없지 않았다.

그러나 내가 아는 인채는 기존 시장의 무질서를 직시하고 이의 개선을 목표로 하고 있어 그 접근 자체부터 달랐었다. 도로를 운행하는 차량이야 어쩔 수 없다고 하여도 자기가 만드는 설비만큼은 잘 만들고 저렴하게 만들어야 겠다는 것을 사명감으로 정하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어쩌다 한 번씩 만나면 인채는 침이 마르도록 자랑을 하였었다. 이번에는 온수순환시스템을 개선하였고, 지난번에는 목욕시설의 차량탈장착 방법을 개선하였다는 것, 고급 자재를 사용하는 대신 수명을 늘려 소비자의 지출을 줄이는 것 등이 그런 것이다. 사실 처음 일을 접하다보면 기존까지의 방식에서 불편했던 점이 한꺼번에 드러나 이것도 개선하고 저것도 개선하고 싶은 것이 정상이다. 그런데 그런 것을 가지고 새삼스럽게 대단한 일이라도 되는 양 이야기하느냐는 생각을 하였었다. 그러나 알고 보니 그것은 시스템의 개선이 아니라 사용자를 위한 편리성을 보장하는 것들이었다. 말하자면 자신의 생산성이나 원가절감의 목표보다는 소비자를 위한 연구노력의 결과였던 것이다. 이런 말을 들은 나는 겉으로는 아무 것도 아닌 척하였지만 속으로는 대단하다는 생각을 하였다. 나의 욕구도 중요하지만 상대방의 욕구도 중요하다는 것을 가르쳐주는 순간이었기 때문이다. 

 

며칠 전 그런 인채가 신문에 보도되었다. 자신이 생산하는 제품 몇 점을 골라 시에 기증한 것이다. 이를 두고 작은 중소업체가 남을 위하여 기증하는 착한 기업이라거나, 자신도 아직 적자를 면치 못하면서 기증은 무슨 기증이냐고 하는 말들이 많았다. 자세한 사정을 몰랐던 나는, 아마도 생산을 많이 하였는데 어쩌다가 판매가 되지 않아 재고가 많이 쌓인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렇다면 재고관리비용과 신모델의 출시 등을 고려하여 일부 무상기증을 통한 재고순환을 노리는 것은 아닌가 하는 것이다. 그리고 겉으로 나타나기는 사회의 약자를 위한 배려라는 명분도 얻으면서 더불어 기업의 홍보효과를 염두에 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어느 누가 생각해도 그럴 수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원인이야 어떻든 기증을 한다는 것은 좋은 일이기에, 그런 소식을 접한 나는 곧바로 연락을 취해 임인채의 행동에 박수를 보냈었다.

사실 임인채는 나와 같은 직장에서 근무하던 후배 사원이었다. 부서는 달랐지만 업무의 성격상 항상 논의하여 의기투합되거나 토라지면 반대의 입장으로 부딪치는 사이가 우리 사이였다. 자세히 말하면 관리부장과 근로자대표와의 관계에 있어 서로 밀고 당기는 역할 및 조율과 협상을 통한 조정이 공존하던 관계였다. 그러는 동안 멀지도 않으면서 그렇다고 가깝지도 않은 사이에 머물게 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가 생각하는 것이나 내가 생각하는 것들 모두는 명백한 근거에 의한 것으로 합리적인 방향을 찾아가다보니 서로를 이해하고 지원해주는 사이로까지 발전하였었다.


나는 임인채의 부친을 알지 못한다. 그래서 부친상을 당한 인채에게 의례적인 조문을 한 후 자리에 앉아 담소를 나누었다. 분위기를 맞추는 첫 말은 지난번 실시한 기증에 대한 칭찬으로부터 시작되었다. 그랬더니 인채는 나에게 대뜸 어디 사회에 기증할 데가 있으면 나도 기증을 하라고 하였다. 이 말을 들은 나는 속으로 서운한 감정을 느꼈다. 사실 어느 누구든 특정인에게 기증하거나 기부할 수는 있지만 지금 내 형편으로 보아 자기와 같은 기증은 곤란하였기 때문이었다. 따지고 보아도 내가 할 수 있는 기증은 내가 펴낸 도서의 기증이 전부로 크게 드러내놓고 할 수 있는 사항도 아니었던 것이다. 그런 나에게 그래도 돈을 따지면 한 대에 몇 백만 원은 주어야 하는 정도의 기증을 하는 것은 어려운 상황이었다. 아무리 따져도 내가 할 수 있는 기증은 재능기부 정도에 그칠 것이니 내가 나를 홍보하면서 나설 수도 없는 상황이다. 하긴 요즘의 재능기부에도 피가 되고 살이 되는 기부들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의사 혹은 약사의 기능기부, 파마나 머리 손질과 같은 기능기부, 말벗이 되어주거나 청소 등 집안일을 돕는 것들도 포함되기는 한다. 그런데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위의 내용들은 물론 노래나 춤으로도 표시 나게 해줄 수 있는 형편이 아니었다. 이런 사정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 인채가 그런 말을 하였을 때에는 순간 야속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내가 그런 말을 듣고 손사래를 저으며 거부를 하였을 때 인채는 뭐가 그리 어렵냐고 물었다. 혹시 목욕관련 시설이나 단체에 기부할 곳이 있으면 자신의 제품을 사용하는 조건으로, 그 대신 나의 이름으로 기부하는데 그것도 못하느냐는 반문이었다. 다시 말하면 내가 기부할 곳이 있으니 도와달라고 하면 자신의 제품을 무상으로 제공하겠다는 뜻이었다.

한참 후에 이런 자초지종을 파악한 나는 순간 미안함 마음이 들었다. 자신은 기껏 생각해서 해준 말인데 제대로 파악도 못한 채 거부하는 대답부터 한 것이 미안했다. 내가 원하면 자신의 제품을 아무 조건 없이 내놓겠다는 데 오해를 하였던 것이 미안했다. 그리고 그런 마음을 가진 사람이 내가 아는 사람이라는 것이 고마웠다.

아무리 이런 말을 들었다고 하더라도 내가 하루에 한 대씩 장비를 기증해달라고 할 것도 아니니 일견 그럴 수 있다는 생각을 할 수는 있다. 그러나 하루에 한 대가 아니라 한 달에 한 대 혹은 일 년에 한 대라고 하여도, 자신의 물품을 가지고 다른 사람의 명의로 기증을 한다는 것은 결코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닌 것이다.

나는 이런 점에서 인채를 좋아하지 않을 수 없다. 아직은 비록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지만 그래도 자신이 사회적 기업에 부응하는 제품을 생산하는 마당에 자신도 그 정도의 사회 환원은 하고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였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처음은 아니었다는 말도 들었다. 그가 나를 위하여 지나가는 인사말로 해본 소리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이런 말을 함부로 툭툭 던질 수는 없는 것이 사람이기에 분명히 진정이 담긴 인채의 마음이라는 것을 안다. 나는 인채의 사업장에 직접적인 도움을 주지는 못하지만 계속하여 번창하기를 빈다. 그래야 내가 원하는 시기에 내가 원하는 만큼의 기부를 요청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임인채의 사업장은 아직까지 크게 기대할 만한 수준이 못된다. 처음 창업 당시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던 시절에 비하면 비약적인 번창이 있었지만 아직도 정상운영을 하지 못하는 어려움을 겪고 있는 실정이다. 그런 그가 자신보다 어려운 이웃을 찾아 나서는 것은 정말 고마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지금은 잘 나가다가도 언제 어떻게 변하여 어려움을 당할지 모르는 것이 현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바꾸어 말하면 오늘의 강자가 언제 사회적 약자로 변하여 남의 도움을 기다리는 신세가 될지 모르게 급변하는 사회이기 때문이다. 나는 인채의 부친상 장례가 끝나면 다시 찾기로 하고 자리를 떴다. 이렇게 내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오라고 하는 지인이 있는 것도 감사할 일이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는 단어가 여기서도 입증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