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지에서 고향처럼 봉사하는
내가 아는 보험설계사 중에 전라남북도와 제주도를 관할하는 지점장에까지 올랐던 사람이 있다. 다시 생각하면 이 명칭이 맞는지는 모르겠으나 굳이 그 직급을 물어 따져서 사용하고 싶지는 않다. 그것은 형식적인 일일뿐, 내용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이야 각 도시 구역별로 나누어져 있지만, 예전에 보험 종사자가 많지 않을 때에는 관할구역을 광역권역별로 나누었었다고 한다.
그는 지금도 보험 일을 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전직 보험설계사였다 부르는 것은 중간에 다른 일을 하느라고 잠시 쉬었기 때문이다. 내가 강모를 알게 된 때도 다른 일을 한다고 여기저기 일을 벌이고 다닐 때였다. 그는 동서남북을 바쁘게 돌아다니며 새로운 직업의 정착을 위해 뛰고 또 뛰었다. 그러나 새로운 직업에 쉽게 적응하지 못하였으며, 나이도 나이인지라 기존의 전문 프로에게 밀리는 형상이 전개되었다. 그럴 즈음 객지생활을 접고 다시 오랫동안 일하던 곳에 와서 찾은 일이 바로 예전의 보험업무였던 것이다.
강모는 대체로 사귐성이 좋은 편에 속한다. 자기 말로는 사람을 가려가면서 사귀는 것이지 아무나 좋다고 하지는 않는 다고 한다. 그러나 내가 볼 때 그것은 하나의 과정일 뿐 사람을 사귀는 것과 그 사람을 사람답게 인정하는 것하고는 다른 차원이 아닐까 생각한다. 분명 그것은 강모의 장점에 속할 것이다. 어쩌면 예전에 보험 일을 하면서부터 몸에 밴 생활의 터득은 아닐지 생각해보기도 한다. 그러나 그런 일은 자기가 마음먹었다고 혹은 직업이 그렇다고 쉽게 변하는 것은 아니어서 타고난 기질이 없으면 매우 힘든 일 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이강모는 이곳 익산을 고향으로 하는 사람은 아니다. 그럼에도 나고 자란 고향사람들보다 더 많은 인맥을 쌓고 있다. 어떤 때는 내가 강모를 통하여 사람을 소개받는 그런 현상이 벌어지기도 하는 것이다. 나는 학교를 졸업한 후 한창 활기차게 일할 나이에 고향을 떠나 객지로 나간 반면 강모는 그 시기를 맞춰 객지에 들어왔으며, 그는 이곳 익산에서 그런 호시절을 보냈으니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한다.
그런 강모는 가끔 나에게 조언을 해준다. 그것은 주로 사람에 관한 것이다. 직접 사람과 사람을 부딪치는 직업인 가진 강모가, 특정한 고정 인원만 만나는 직업을 가진 나에게 그런 조언을 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고향이라는 프리미엄을 가졌으니 속으로는 쑥스럽기도 하고 내심 얄미운 마음이 없는 것도 아니다.
이강모는 사람을 사귀는 데에 있어 상대방을 잘 챙기는 것부터 시작한다. 그러나 그의 말대로 사리판단이 흐리거나 사람으로서의 도리를 지키지 않는 경우는 말을 섞으려고도 하지 않는다. 그것도 어찌 보면 강모의 강점 중의 하나라면 하나라 할 수 있다. 어디 단합대회를 나가더라도 사람을 챙겨 소외되는 사람이 없도록 하며, 오고가는 데에 불편하지 않도록 배려하는 마음씨도 가지고 있다. 게다가 키도 작고 오동통하여 강모를 바라보는 상대방으로 하여금 경쟁 심리를 자극한다거나 경계감을 주는 타입이 아닌 것도 한 몫 작용한다.
그런 강모가 부지런하기는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사람이다. 아침에 일어나서 집안 청소를 하고 부인이 운영하는 사업장을 점검하고 난 뒤에 자신의 일터로 나서는 정도다. 부인도 밖으로 나도는 일을 하고 있으니 집안일에 너나가 따로 없다는 이론이다. 그러다보니 항상 시간에 쫒기고 언제 어떤 일을 하여야 할지 장시간의 계획을 세우는 데 다소 어려운 점이 있기는 하지만, 그것은 지극히 이례적인 경우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대부분은 정해진 패턴에 따라 행동하고 일정한 시간대가 되면 자기만의 시간적 여유를 부리는 부러운 직업을 가진 사람이기도 하다.
그런데 여기에 더하여 교회 일도 열심히 하는 사람이다. 세상에는 많고 많은 교회가 있고, 많고 많은 사람들이 교회에서 봉사를 하고 있다. 그중에 강모도 남에게 빠지지 않을 만큼 봉사활동을 하고 있는 사람이다. 우선 교회 찬양대에서 활동한다. 여러 찬양대 중에서도 1부 예배 찬양대에 속해 있는데, 여기의 1부는 아침 7시에 시작하는 예배로 보통은 아침 6시에 나와서 찬양연습을 하여야 한다. 따라서 여간 부지런해서는 할 수 없는 상황이다. 해가 긴 여름에는 그나마 다행이지만 추운 겨울에는 아직 동도 트기 전 한밤중에 나서야 하는 어려움이 따른다. 그래서 나는 1부에 봉사하는 사람들은 누가 뭐래도 나름대로의 진정성이 있다고 말하곤 한다. 2부 혹은 3부 예배의 찬양대를 맡은 다른 사람들도 애로사항이야 있겠지만 최소한 2시간의 터울을 두고 있어서 그래도 시간적으로는 여유를 찾을 수도 있다.
그래서 나는 1부 봉사자들을 그래도 성의가 있는 사람들이라는 평가로 추켜세우기는 한다. 그런데 1부는 고사하고 2부와 3부를 통틀어서도 나는 아무런 봉사를 못하고 있으니 그저 유구무언일 뿐이다.
그런가하면 이강모는 점심때에 교회 성도들이 밥을 먹는 식당에서 봉사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많은 교회의 식당은 대체로 자율배식을 한다. 그것은 배식담당자를 줄이기 위한 하나의 방편이기도 하다. 그러나 음식을 만드는 일이며 설거지를 자율로 맡길 수는 없는 노릇이며, 또한 먹고 나간 뒤의 식탁정리도 자율적으로 시킬 수는 없는 것이 현실이다. 따라서 언제 어디서든지 항상 자원봉사자의 손길이 필요한 부분이 남아있게 마련이다.
짧은 시간에 많은 인원이 한꺼번에 먹고 나가는 교회 식당에서, 식판수거를 비롯하여 잔반처리 그리고 조리를 하기 위한 재료의 운반 등은 그 무게로 인하여 남자들이 도와줄 수밖에 없다. 이런 일들이 바로 남자의 식당봉사에 속한다. 이런 일에 소요되는 시간은 대체로 오전 11시부터 오후 2시까지 계속된다. 따라서 아침 1부 봉사를 하는 사람이 점심 식당 봉사를 같이하면 오전 일과가 끝나는 것과 동시에 몸이 피곤하여 쉬어야만 한다. 본인도 이런 사항을 인정하는 정도다. 나는 이런 일들을 보아 이강모는 열심에 열심을 더하는 사람이라고 평가를 하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신앙적으로는 내가 강모에게 항상 주눅이 들어 사는 게 현실이다. 사실 신앙적으로 그런 사람들은 신앙 외적으로도 그런 경우가 상당히 많이 있다. 강모와 나와의 관계도 아마 그러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런 현실에서는 갑과 을의 형태는 아니더라도 끌고 가는 사람과 끌려가는 사람이 구분되어지기 마련이다. 물론 타협이야 한다지만 그래도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 상황에서는 굳이 의견을 관철시켜야 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얼핏 생각하면 내가 손해를 보는 것 같지만 곰곰 따져보면 손해라고 할 수 없는 일은 거의 맡기고 가는 편이다. 마음이 내키든 안 내키든 이런 것이 서로의 입장을 조금이라도 이해해주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세상을 살면서 조금은 어수룩하게 사는 것도 현자의 행동이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무슨 일이든 나와 관계된 일이라면 앞뒤를 따지고, 조그마한 이익이라도 없을까 눈에 불을 밝히고 다니는 사람들을 만나면 안쓰러운 생각이 들기도 한다. 물론 사람이 사는 세상에서는 돈이 아주 중요한 수단이 되는 것은 나도 안다. 그러나 모든 것이 꼭 돈만으로 해결될 일은 아닐 것이다.
행여 돈으로 모든 것이 해결되었다고 하더라도 인간이 가진 본연의 가치는 돈으로 환산할 수가 없는 것이다. 이런 일쯤은 이미 유치원에서 다 배워온 진리이다. 입만 열면 인간의 존엄성이 어떻고 직업의 귀천이 어떻고 하면서 배부른 돼지보다는 배고픈 현자가 낫다고 하는 사람들도, 돈을 쫒아 그렇게 지대한 존엄성을 짓밟는 경우가 종종 있기는 하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여 돈이 인생의 전부라고는 할 수 없지 않은가.
돈을 가진 사람들이 돈으로 정치를 하고 돈으로 생활을 한다고 하지만,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권력으로 사람을 부리고 허세를 떠는 일이 많다고 하지만, 그래도 그것이 전부가 아님은 다 아는 바와 같다. 한평생 살아가면서 사람들이 추구해야 할 덕목들이 있다. 남을 배려하는 마음, 공평한 사회를 만드는 마음, 진리를 탐구하는 마음 등이 그것이다. 사람들에게 내가 가진 것을 나누어 주는 것, 아무리 찾아도 내가 줄 것이 없다고 생각되었을 때는 상대방이 할 일을 내가 해 준다는 것 등이 그것이다.
부자도 죽고 권력자도 죽는다. 그러나 사람이 사는 동안 본인은 아주 잘 살고 있다고 떵떵 거릴 수는 있어도, 결국 죽었을 때에 냉정한 평가를 하는 다른 사람들이 그를 잘 살았다고 하지만은 않는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불교의 인과응보를 믿는다면, 윤회사상을 믿는다면, 지옥과 천국을 믿는다면 그런 일을 잘 살았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반드시 종교적 판단에 의한 일을 해야 한다고 하는 말이 아니다. 인간으로서 해야 할 일을 잘 하고 있는가 하는 말이다.
남을 위해 희생까지는 아니더라도 조그마한 봉사를 베푸는 것,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용기를 주고 기회를 제공하는 것도 아주 중요한 일이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이강모는 내가 생각하는 범위 안에서는 그래도 아주 중요한 일을 하는 사람이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이처럼 남에게 인정받으면 산다는 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가. 돈 많은 사람도 권력이 높은 사람도 따지고 보면 다른 사람들로부터 인정을 받고 싶기 때문에 그렇게 하고 있지 않는가 말이다. 처음부터 자신을 낮추고 남을 높일 사람 같았으면 그렇게 자신이 움켜쥐어야 한다고 바들바들 떨지는 않을 것이다. 내 주위에서 나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은 없는지 살피다보면 내 자신이 항상 부족하고 모자라는 것이 현실이다. 가진 사람들이 모자란 사람들에게 베풀다 보면 어느새 자신의 주머니도 바닥을 드러내는 게 현실이다. 세상에는 이런 사람 저런 사람이 있고, 조금은 여유로운 사람이 있는가 하면 모자라서 아쉬운 마음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섞여 있기 때문이다. 강모는 이런 차원에서 생각하면 돈이나 권력으로 베푸는 사람은 아니지만 자기가 가지고 있는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는 그런 사람인 것만은 인정할 일이다.
'내 것들 > 산문, 수필, 칼럼' 카테고리의 다른 글
상술과 상도의 차이를 언급하는 (0) | 2013.08.09 |
---|---|
돈이나 명예도 다시 생각해보는 (0) | 2013.08.09 |
후배의 그림을 팔아주는 (0) | 2013.08.09 |
편지를 받긴 받았는데 답장을 못 드린 (0) | 2013.08.09 |
종종 조언을 구하겠다는 (0) | 2013.08.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