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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술과 상도의 차이를 언급하는

꿈꾸는 세상살이 2013. 8. 9. 13:27

상술과 상도의 차이를 언급하는


엊그제 지인으로부터 전화가 왔었다. 내용이야 잘 있느냐는 안부에 불과하지만 그래도 소식을 묻고 관심을 가져 주는 것에는 고마운 생각이 들었다. 한편으로는 내가 먼저 전화를 걸고 안부도 물으며 새해맞이 준비를 잘 하라고 격려를 해도 좋을 듯한 생각이 들었으나, 그렇지 못한 것에 대한 미안한 마음도 없지 않았다. 그 친구는 부동산 중개업을 하므로 시간이 자유로운 것은 물론 여러 사람들을 만나면서 챙기는 것이 직업인 관계로, 특별히 할 일이 없으면 전화를 하는 것이 다반사였다. 하지만 업무와 연관이 없는 나에게도 전화를 걸어 챙기는 것은 고객관리차원보다 인지상정에 의한 관심이라고 할 것이다.


1년을 마감하는 12월도 이제 며칠이 남지 않은 상태에서 박승규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간의 미진한 점이 있었다면 툴툴 털어버리고, 새해 새로운 마음으로 정진하자는 말을 전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던 때문이다. 마침 점심 식사시간도 다가오니 적당하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박승규의 사무실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다. 익산 시내라고 해 보아야 직경 10km의 거리 안에 있는 정도지만, 그 중에서도 나의 사무실이 있는 쪽으로 치우쳐 있으니 십리 내외밖에 되지 않는 곳이다.

그러나 아무리 사무실이 가깝고 대기 시간이 많은 업종이라고 하더라도, 마음대로 드나들며 시간을 뺏을 수는 없는 것이 남의 사업장일 것이다. 요즈음 부동산 경기가 안 좋아 손님이 없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언제 찾아올지 모르는 손님을 위하여 항상 기다리는 것이 직업인으로서의 자세에 속한다는 것쯤은 나도 알고 있다.

박승규도 이런 기본 상식을 아는 사람이다. 따라서 일이 있든 없든 사무실을 정리정돈하고 항상 대기 상태로 있는 것이다. 군대로 말하자면 5분대기조가 가지는 마음 바로 그것이었다. 이런 승규가 언제 어떤 약속이 있는지, 어떤 손님과 만날 준비를 해야 하는지 알지 못하는 나로서는 방문하는 것도 조심스럽게 해야 하는 것이 예의라는 생각도 들었다.


우리는 점심을 먹는다고 해보아야 시내를 벗어나는 일은 거의 없다. 항상 가까운 곳에서, 시간을 절약하는 방법으로 해결하는 것이 보통이다. 제 아무리 음식을 고르고 골라도 건강에 좋다는 자연식이나 전통 음식이 대부분으로써 서로의 체면을 내세우며 허세부릴 일도 없는 처지다. 이처럼 서로가 서로의 사정을 알다보니 구태여 누가 무슨 말을 하지 않아도 이해를 하고 감싸주는 그런 정도로 지낸다.

아무리 그런다고 하여도 한 점이라도 잘못하여 상대방에게 실수를 하지 않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런 경우에도 뒤에 가서 이러쿵저러쿵 하는 것 보다는, 그렇게 하면 상대방이 오해를 하고 마음의 상처를 받을 수 있으니 조심하라고 즉석에서 말하는 정도였다. 그래서 조금은 실수가 있어도 크게 부담을 갖지 않고, 자주 만나도 편한 사이가 되었다.

그런데 오늘도 점심값은 승규가 계산하였다. 승규는 자영업을 하는데도 부가세를 계산할 필요가 없는 사정이 있어, 항상 현금으로 계산을 하였다. 그러다 보니 식당 주인으로서는 카드결재 수수료를 지불하지 않아도 되며, 또한 부가세를 지출하지 않아도 되는 장점이 있어 반가운 손님으로 통한다. 그에 비해 나는 항상 카드결재를 기본으로 하다 보니 수중에 현금이 적은 것은 보통이지만, 계산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많아 여러 모로 반갑지 않은 손님으로 통했다. 그런데 나의 입장에서는 부가세가 붙어있는 금액에 대하여 현금결재를 자주하는 것은, 개인적으로 손해를 보는 일이라 썩 내키지 않는 일에 속했다.

이 해가 가기 전에 연말 정산이라도 하려고 불렀건만 그것도 맘대로 하지 못했다. 내가 미안하여 핑계라도 대려면 승규는 서로가 따질 일이 아니니 행여 그런 걱정일랑 하지 말라고 막무가내였다. 나는 그런 친구에게 고마움을 느끼기도 하지만, 자주 그러니 이제는 미안한 마음도 들게 되었다.


점심식사를 마친 후 사무실로 돌아가기 전에 내가 알아 둔 땅을 둘러보았다. 어디에 있는 어느 용도에 적합한 땅인지 몰라 들뜬 기분으로 둘러보았지만, 승규는 전문가의 입장에서 일언지하에 거절을 하였다. 돌아오는 길에 차 안에서 승규가 말을 이었다. 방금 본 땅은 이것은 이래서 안 좋으며 저런 측면으로 보아도 안 좋으니 자기가 소개시키는 곳을 생각해 보라고 하였다.

이런 때 보통 사람들은 어차피 부동산업을 하는 사람이니, 자기 물건을 거래시키려고 그런 다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러나 자기가 소개하는 곳이 싫으면 매입을 안 해도 좋으니 방금 본 땅과 비교나 한 번 해 보라고 말하였다. 그러다가 여러 모로 생각하여 마음에 들지 않으면, 차라리 가만히 있는 것이 옳은 판단이라고 하였다. 내가 보았던 땅은 딱히 좋은 땅이라고 말할 수 없다는 결론이었다. 나 역시 이 땅을 지금 바로 사서 주택을 짓자고 하는 것도 아니었다. 그냥 보아오던 땅 중에서는 관심이 가는 축에 들으니 한 번 들러보자는 입장에서 말했던 것이다. 그렇기에 승규의 판단에 쉽게 동의를 하였다.

앞에서 보았던 땅과 나중에 소개한 곳은 어떤 비교점이 있고 어떤 문제점이 있는지를 설명하면 좋았을 것이다. 또한 앞서서 내가 소개한 땅은 어떤 긍정적인 면이 있는지 전혀 얘기를 하지 않고 부정적인 얘기만 꺼내 놓으니 기껏 고르고 골라서 물어 본 내가 더 이상스러운 꼴이 되었다는 생각도 들었다. ,

겉으로야 말은 안 했지만 혹시나 요즘 같은 부동산 경기에서, 자기가 매물로 가지고 있는 물건을 성사시키고 싶은 욕심에 그럴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물론 판단이야 매매 당사자가 하는 것이지만, 무슨 일이든지 소개자가 부추겨야 진행되는 것이 이치 아닌가. 그래서 윤활유가 생겨났고 촉매제가 생겨나지 않았던가 말이다.


요즘 부동산업계에서 특히나 인구가 적은 지방에서 문을 닫지 않고 있다는 것만 해도 다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 친구는 이 업종에서만 해도 벌써 몇 십 년을 해 온 일이지만 갈수록 어렵다고 했다.

사무실에 돌아온 승규는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내가 힘을 합쳐 부동산업을 할 것도 아닌데도 주택은 이래서 여기가 좋고, 상가는 저래서 저기가 좋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부동산에 관한 한 혼자 결정하지 말고 반드시 자기와 상의를 하라는 말도 잊지 않았다. 하고 많은 부동산업자가 널려 있는 판에 자기는 그간의 풍부한 경험으로 그나마 물건을 제대로 보는 눈이 있다고 하였다. 그런 승규를 보면 자화자찬이 아니냐는 생각도 들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면서 이어지는 말이 부동산 업자에게도 상도라는 것이 있으니, 좋지 않은 물건을 좋다고 부추길 수는 없다고 하였다. 파는 사람이나 사는 사람이나 한 번 보고 말 사람들이 아닌데 그냥 나 몰라라 할 수 없다는 이론이었다. 집을 팔고 이사 가는 뜨내기만 아니라면 언제 어디서든지 만날 수 있는 처지에 어떻게 나쁜 물건을 좋다고 속여서 팔 것이냐는 말이다. 한 가지 물건을 놓고 파는 사람과 사는 사람 상호간에 바라보는 시각이 같을 때에야 비로소 하자 없는 거래가 된다는 말이다.

그 말을 듣고 보니 내가 본 땅을 말리던 이유를 알 것 같았다. 한 번의 거래쯤이야 자기가 성사시켜도 그만 시키지 않아도 상관없다. 그러나 물건을 산 사람은 평생을 두고 후회할 수도 있는 일으며, 그것으로 인하여 중대한 다른 일을 못하게 되는 경우도 발생한다는 말을 들으니 그의 말이 옳은 것 같았다. 더구나 항상 가까이에서 싫어도 자주 만나야 되는 사이라면 더욱 그러했을 것이다. 그러고 보니 한 차례의 성사보다는 서로 신뢰를 쌓아가는 상호관계를 잇는 것이 중요함을 깨달았다. 


나는 승규와 같은 친구가 있어서 좋다. 일이야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으며, 돈이야 없으면 벌 수도 있지만 사람을 잃고 신용을 잃어서는 안 된다는 말도 가슴에 와 닿았다. 어느 일을 하다가 어떤 어려움에 부딪치더라도 자기가 생각하는 정도를 잃지 않고 그것을 지키려 노력하는 자세가 이런 것인가 싶었다.

승규가 말한 지금까지의 장황한 설명이 얄팍한 상술이 아니라, 듬직한 상도로 전해주었다는데 미치자 고맙게 여겨졌다.

내가 조금은 손해를 보더라도, 나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사람에게도 모두가 옳았다고 판단하는 거래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것은 잠깐 생각에는 자기가 손해를 보는 것 같을 수도 있지만, 멀리 보면 나도 좋고 당사자도 좋은 상호 이익의 궤도에 들어선 것이라 말할 수 있다.

언제 어느 때나 눈을 감고 있어도 상대방이 나의 일을 내 일처럼 생각해서 처리해주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직접 물건을 파는 가게에서, 혹은 물건을 소개하는 거간꾼이 믿음을 준다면 내가 직접 가서 확인하지 않아도 사무실에 앉은 채로 편리하게 처리할 수 있을 거라는 상상을 해본다.

상술이 아닌 상도가 지켜지는 날, 깨어진 믿음이 회복되는 날, 내 일을 자기 일처럼 생각해주는 사람들이 많이 있는 날에 행복한 사회 평안한 사회가 이루어질 것이라 생각해본다. 특히 한탕주의가 만연하여 선량한 실수요자가 골탕을 먹는 부동산 업계에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