앉고 설 자리를 아는
내가 아는 정성식은 교회에서 동년배라는 이유로 만난 친구 중의 한 명이다. 그런데 성식이가 자신의 이름처럼 매사에 정성을 심는 사람인 것은 나중에 알았다. 하는 일마다 성의를 가지고 성심껏 하는 것이 보기에 좋은 그런 사람이었던 것이다.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그의 이름이 정성을 다하라는 뜻이어서 그랬을 것이라는 생각 외에 다른 이견이 없다. 그렇다고 해서 관상학이 어떻고 성명학이 어떻고 하는 말을 곧이곧대로 믿자는 말이 아니라 해석을 하자면 그렇다는 얘기다.
정성식은 키도 큰 편에 속하고 덩치도 그런대로 있어서 속사정이야 알 수 없지만 우선 건강하게 보인다. 게다가 체력도 좋아서 달리기도 잘하며 등산을 해도 지칠 줄 모르는 건강미의 대명사라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다. 그러나 이런 것들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으니 언제 만나도 웃는 얼굴이라는 점이다. 생긴 것만 보면 잘 생겨서 남의 이목을 끄는 매끈한 형상이 아니더라도, 항상 웃는 모습은 그를 가까이 하기에 거부감이 없다. 글자 그대로 편안한 사람인 것이다. 편안하기로 말하면 외형만 그런 것도 아니다. 속마음이 넓어서 남을 잘 이해해주고 배려하는 것은 포용하는 성격이라 할 것이다.
성식이가 남들보다 돈을 더 많이 번다거나 시간이 많은 경영자적인 입장은 아니다. 그러나 그는 앉을 자리와 일어설 자리를 구분하는 상식이 통하는 사람으로, 남들이 대하기에 그를 가까이해도 부담이 없는 조건을 만들어 준다. 다시 말하면 남이 어려운 일을 당하면 찾아가서 위로하고 격려해주는 사람이며, 그러다가도 상대방이 불편해할 정도가 되면 그만 일어나서 자리를 정리할 줄 아는 그런 사람이다. 다른 말로는 경우가 밝은 사람이다.
나는 성식이로부터 많은 것을 배운다. 우선 그 부지런함이 첫 째다. 그의 고향은 익산에서 백리나 떨어진 시골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제 오가며 언제 돌보는지 시골집도 잘 챙기는 효자 축에 들어간다. 그리고 토요일에는 등산도 자주 가며 심신을 연마하고 친구들과의 우정도 쌓는다. 또한 빠지지 않는 것은 내가 아는 사람들에게 처한 애경사 중에 예의를 차려야 한다는 곳에 가면 성식이도 어김없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이런 애경사만 해도 정작 나는 다 챙기지 못하여 나중에 인사치레를 하는가 하면, 건너뛰는 경우도 발생하는 것이 현실이다. 또 세상을 살다보면 다 그런 것이며, 바쁜 세월에 어떻게 다 챙기느냐고 핑계를 대기도 한다. 하지만 정성식은 자신의 핑계보다 타인의 애경사에 우선권을 두는 사람이니, 그를 아는 사람들 사이에서 매사에 정성이 대단한 사람으로 통하는 것이다.
애경사에 대해서는 자기마다 한두 마디 할 말이 없는 것은 아닐 것이다. 나 또한 애경사는 간단하면서 조용히 보내기를 원하는 사람 중의 하나다. 굳이 그 이유를 들자면 나를 위한 일로써 남의 시간을 빼앗고 경제적 부담을 주는 것을 줄여보자는 취지다. 그렇다고 가장 기초적인 형식에서 그 의미가 부여되며, 서로 위로하고 격려하며 즐거워하는 것이 사람 사는 세상인 것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그런 형식마저 없애자는 것은 아니다.
어떤 사람들은 말한다. 그런 애경사를 쫒아 다니기에는 나의 여건이 적합하지 않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내가 경제적으로 어려워서 말하자면 돈을 벌어야 하는 형편인데, 내 돈을 들이는 것도 부족하여 그 시간에 일해서 벌 수 있는 돈과 시간마저 빼앗긴 다는 것은 실행하기가 어렵다는 생각을 한다. 나도 이런 말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그러나 내가 앉아야 될 자리와 서야할 자리를 안다면, 나의 생각이 비록 그렇다고 하더라도 항상 그렇게만 행동할 수는 없는 것이다.
가야할 곳은 가고, 올 때는 와야 하는 것이 인생사다. 돈은 쓸 데에 써야 하는 것이며 쓸 때에 써야 하는 것이다. 다만 자신의 처지에 따라 돈이 많은 사람은 많이 쓰면 될 것이고, 적은 사람은 적게 쓰면 될 것이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그 사람이 보내 온 돈의 액수를 따지기도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그 사람의 진심을 파악하고 어떤 행동을 하였는지 기억해 두기도 한다.
가까운 친지 중의 어떤 사람은 애경사에 거의 참석하지 않았었다. 그러다가 최근에 이제 밥숟가락이도 들고 살만하니까 친지의 애경사를 찾는 정도가 되었다. 그 사람의 말을 빌자면, 그 당시는 자신의 경제적 형편이 어려워서 돈을 벌어야 했기에 애경사에 참석하지 못했다고 하였다. 나는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이 참으로 대견해보였다. 어떻게 그 많은 날들을 참고 참으며 지내왔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그 사람은 그렇게 해서 지금은 푼돈이라도 만지니 이제는 친인척의 애경사도 찾아다녀야겠다고 하였다. 그런 말을 들으니 예전의 감정은 어디로 사라지고 다시 친인척의 관계를 회복하려는 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그 뒷말은 나를 다시 얼음나라로 안내하고 있었다. 그 당시 그렇게 하지 않았으면 누가 나에게 이 정도의 돈이라도 주는 사람이 있었겠느냐고 하였다. 힘들고 험한 세상을 자기가 살아갈 수 있도록 스스로 지켜야 한다는 이론이다.
백 번을 뒤집어 생각해도 그 말이 맞는 말이다. 그러나 친인척이라는 단어가 서로를 묶어 놓은 상태에서는 모든 것이 돈으로 해결되는 것이지 않는가. 내가 힘들 때 위로하고 격려하는 사람이 필요하며, 내가 기쁠 때 자랑하고 싶은 사람이 있어야 세상 살아갈 맛이 나지 않겠는가.
그 친인척은 그간의 노력으로 돈은 벌었지만, 대신 언제나 튼튼할 것만 같았던 몸에는 병이 생겼다. 그리고 씻기 어려운 마음의 병도 얻었다. 그리고 그 친인척은 먼 데 있는 단장이다. 먹을 때는 맛이 좋으나 내가 먹고 싶을 때에 아무 때나 먹을 수는 없는 장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정성식과 같은 사람은 가까운 데 있는 쓴 장에 속한다. 내 배가 부르면 입맛이 쓰다는 핑계를 대며 한쪽에 내팽개쳐 놓는 고추장이거나 된장 혹은 간장인 것이다. 그러나 막상 음식의 간을 내려면 다시 가져다 쓰는, 가까이 있는 장이다. 성식이는 이처럼 평상시에는 아무 상관이 없는 것 같다가도 무슨 일이 있으면 도움을 주는 사람인 것이다. 내 맘에 흡족하지는 않더라도 어떤 일에 있어 누군가가 해야 될 을 해주는 사람, 당연히 친인척이 해야 되지만 먼 데 있는 그 사람들이 오기 전에 나서서 급한 대로 일을 해주는 사람인 것이다. 물론 그가 주는 도움은 물질적 도움만을 이야기하지는 않는다. 상황에 따라서는 말로 위로하거나 시간을 내어 도와주는 사람이다. 어떤 사람들이 많은 돈으로 생색을 낼 때에도, 그렇지 못한 서민들은 그를 대신하기 위하여 온갖 정성을 쏟아 붓는 것이 현실이다. 그래서 무슨 일을 함에 있어 돈도 중요하지만 그 사람의 성의가 중요하다는 말을 하는 것이다.
정성식은 말이 빠르지는 않지만 유머감각은 특출한 사람이다. 그래서 어떤 자리에 가서도 항상 분위기메이커 역할을 한다. 이런 사람이라서 그런지 남으로부터 어려운 일을 당해도 비교적 쉽게 해결해나가는 편이다. 속으로야 어떤 손해를 보는 지 알 수는 없지만, 겉으로는 쉽게 쉽게 받아들이는 것처럼 보인다. 이것이 바로 성식이가 가진 장점 중의 하나일 것이다.
나에게 닥친 일이 비록 어렵고 힘들지라도, 어렵다고 하면서 자꾸만 망설이다보면 일이 해결될 수 있었던 기회마저 잃어버리게 된다. 그런데 이런 문제에 대하여 성식이에게 조언을 구하면 언제나 쉽게 일이 풀린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만큼 판단이 정확하며 나아가 그 시기를 놓치지 않는 탁월한 능력의 소유자인 것이다.
나는 세상을 살아가면서 내 주위의 사람들이 탁월한 능력을 가졌거나, 아니면 그냥 보통의 능력이거나를 따지지 않는 편이다. 사람은 누구나 각자가 가진 장점이 있고 남보다 나은 특기가 한두 개쯤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특기가 많고 장점이 많은 사람보다는 각자가 자신이 할 일을 알아서 하는 사람을 더 좋아하는 성향이 있다. 그렇게 자신이 하여야 할 일을 직접 처리하는 것은 다른 측면에서 보면 남을 돕는 것이라는 생각에서다. 흔한 말로 민폐를 끼치지 않으면 그것이 바로 남을 도와주는 일에 해당한다는 뜻이다.
나의 이런 취향에 정성식이 딱 맞아 떨어진 것이다. 비록 집이 다르고 직업이 다르며 취미가 달라서 얼굴은 자주 만나지 못하더라도, 무슨 일이 있으면 생각하는 바대로 마음이 통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먼 데 있는 단 장보다 가까운 데 있는 쓴 장이 더 낫다는 말이 나왔을 것이다.
내가 소홀하여 전화를 못 해도, 오히려 나한테 전화를 자주 하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말하는 사람이 바로 정성식이다. 내가 마음이 없어서 챙겨주지 못해도, 나에게 찾아와서 필요한 게 없느냐고 물어보는 사람이 정성식이다. 그런 성식이에게서 정작 많은 도움은 받지 못하더라도 내 마음이 푸근해지며 고맙다는 느낌을 갖게 된다. 이것이 정성식이 가진 매력이다. 얼굴 잘 생긴 사람보다, 돈이 많은 사람보다, 옷을 잘 입은 사람보다 더 끌리는 사람이 바로 정성식이다.
정말 그러고 보니 나에게 주는 것이 없어도 예쁜 사람이 있고, 내가 주는 것이 없어도 미운 사람이 있다는 말이 생각난다. 내가 다른 사람이 볼 때에 어떤 사람의 부류에 들어갈 지는 잘 모르겠다. 그러나 내가 성식이를 생각하는 만큼 다른 사람들이 나를 생각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은 굴뚝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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