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것들/1년 24절기와 세시풍속

9. 어촌의 세시풍속

꿈꾸는 세상살이 2013. 12. 2. 11:55

9. 어촌의 세시풍속

 

어촌에서 이루어지는 세시풍속도 농촌의 세시풍속과 크게 다르지 않으나, 일부 지방에서는 어로(漁撈)에 한정하여 특정한 풍속이 전하기도 한다. 이 역시 계절이나 시기를 두고 반복적으로 일어나는 행사로 오랜 관습에 따라 굳어진 하나의 생활 형태라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바다는 거친 풍랑과 깊은 물결로 인하여 위험하기 짝이 없는 환경이므로, 자연신앙이나 조상숭배 그리고 종교적 주술행위에 대하여 일부 다른 면을 보이기도 한다. 따라서 이들 어촌의 세시풍속은 풍어(豊漁)나 기복신앙을 포함하여 뱃일 중에 당할 수 있는 위험을 타파하는 지혜를 전수하는 것까지도 보여주고 있다. 

 

정초 뱃고사 정초가 되면 선주(船主)들은 뱃고사를 지낸다. 정초란 정월의 처음이라는 뜻이니, 어로에 있어서도 새해의 새로운 출발이라고 보아야 한다. 이는 안택고사(安宅告祀) 때처럼 배 안에 있는 성주신에게 술과 과일 그리고 음식을 차려놓고 한 해의 풍어와 안전을 기원한다. 바다에서 고기가 많이 잡히고 안 잡히고는 인력(人力)으로 할 수 없고, 오로지 바다의 조화에 의해 좌지우지되었다. 따라서 뱃사람들은 안전을 위협하는 변덕스러운 바람신을 달래기 위해 서낭당을 찾아 치성을 드렸다.

 

뱃고사의 순서는 먼저 마을의 성황당에 가서 제사를 올리는 것이 상례이며, 이때 제주(祭主)는 무녀를 대동하여 고사를 치르는 경우도 많았다. 서산시 부석면 창리의 영신제 역시 그런 일종이다. 바다는 거칠고 드넓어 남성에 비유되는데, 바다를 다스리는 신 역시 용왕으로 남성(男性)에 해당한다. 소설 심청전에 나오는 심청이 바다에 장사 지내진 이유도 배의 안전항해를 위한 일종의 제사로 남신(男神)에게 고하는 예에 속했다.

고기를 잡는 일은 ‘잘되면 북 치고, 안 되면 가슴 친다.’고 할 정도로 기복(起伏)이 심한 일에 속했다. 따라서 반드시 풍어를 이루어야 하는 심정으로 정초에는 배의 성주신에게 고사를 지내며, 가을에는 배의 성주신에게 안택고사를 올린다. 뱃고사를 지낼 무렵 상가(喪家)에 다녀왔다거나 어린아이라 할지라도 부정(不淨)이 있다면 부정쓸기를 하였다. 이 부정쓸기는 마른 짚에 불을 붙인 후 이물에서부터 휘둘러가다가 고물에 닿으면 내다 버렸다. 이로써 배(船) 안의 부정을 태워 없애는 것이었다. 이물은 뱃머리 즉 선수(船首)를 의미하며, 고물은 배의 후미 즉 선미(船尾)를 의미한다. 이는 고사 후 소지(燒紙)하는 것과 같은 이치였다.

풍선고사(豊船告祀)

뱃사람들은 정초뿐 아니라 매번 어로잡이를 나설 때에도 만선(滿船)의 기쁨을 누릴 수 있도록 기원하는 풍어제를 지낸다. 이것은 지내는 방식이나 그 규모가 지역별로 다르며 부르는 이름도 각기 다르지만, 대체로 고기가 많이 잡히기를 바라는 풍어제로 통칭할 수 있다. 이때는 오방색 기를 세우고 굿을 하는 데, 황청백적흑의 오방색(五方色)이 사계절을 나타내며 목화토금수의 우주만상(宇宙萬象)을 표현하기도 한다. 따라서 어디에 가든지 신의 가호를 받기 원하는 의미와 함께, 그 속에서 하나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겨 있다.

그리고 만선이 되면 돌아오는 어부들은 신이 나서 오방색 기를 휘날리지만, 만약 풍어가 되지 못한 경우는 어로에 나설 때의 고사에 부응하지 못한 죄스런 마음에 기를 내리고 조용히 귀항(歸港)한다. 그러나 이런 내용들은 명확하게 해석된 공식자료는 존재하지 않으며, 다만 여러 내용을 통하여 종합해 볼 때 그런 연유에 따른 것으로 보는 견해가 많다.

 

전라북도 부안의 위도에서는 정초가 되면 ‘띠뱃놀이’를 하는 데, 이 띠뱃놀이는 글자 그대로 띠배를 만들어 하는 놀이다. 그런데 실제로는 놀이라는 이름에 걸맞지 않게 풍어고사 및 정초뱃고사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우선 띠라는 풀을 엮어 작은 모형 배를 만들고, 색색의 깃발을 단다. 이때 진행되는 과정별로 육지에서 굿을 한 후, 끝무렵에는 어로용 배에 띠배를 매달고 나가서 불을 붙여 태우는 것으로 끝이 난다. 이로써 액운을 물리치고 마을의 안녕과 풍어를 기원하는 형식이다. 띠뱃놀이는 1985년 2월 1일 국가지정 중요무형문화재 제82-3호로 지정되었다. 제82호는 일반 ‘풍어제’를 말하며 82-1호에 ‘동해안별신굿’, 82-2호에 ‘서해안배연신굿 및 대동굿’이 있다.

 

상사일(上巳日)

뱀날〔巳日〕이 새해 들어 첫 번째 맞으면 상사일(上巳日)이 되는데, 이날은 동물의 몸에 털이 없는 무모일(無毛日)이라 하여 출어(出漁)를 하지 않았다. 이는 뱀이 물에서 헤엄치는 것이 마치 미끄러져 나가는 것과 같고, 뱀의 몸에 털이 없어 물 위에서 미끄러진다고 믿었기에 혹시 배가 물에서 미끄러져 파선(破船)될까 봐 걱정하는 마음에서 비롯되었다. 연날리기 우리의 연날리기는 추운 겨울이 오면 시작되는 계절적 민속놀이다. 특히 설날과 정월대보름을 전후하여 많은 연을 날렸다. 보통은 낮은 야산이나 넓은 들판에서 날렸지만, 바닷가에 사는 사람들은 바다를 바라보면서 연을 날렸다.

 

이런 연날리기는 풍어를 빌고 집안의 무탈을 기원하는 송액(送厄)과, 복을 맞는 영복(迎福)을 겸하고 있었다. 그런데 정월대보름이 지나고 나서까지 연을 날리면 혼자서 많은 복을 차지하려고 한다는 뜻에서 ‘고리백정(高利白丁)’이라고 놀리기도 하였다. 이때의 고리는 사채의 높은 이자를 말하며, 백정은 가축을 잡는 일을 업으로 하는 사람으로 천하게 여겼었다. 따라서 사람의 신분으로 좋지 않은 것을 모두 갖추었다는 말에 빗댄 것이다.

연을 띄워 보내는 방법으로는 연꼬리에 쑥뜸으로 불을 붙이는 방법도 있고, 연의 균형을 잡아주는 부분과 연실의 연결부에 쑥뜸 등으로 불을 붙여 날리는 방법도 있다. 이렇게 하면 연이 어느 정도 높이 올라갈 때까지 걸리는 시간과, 뜸이 타들어가는 시간의 상호 계산이 적당하여 흔히 이용하는 방법이다.

또 연을 귀양(歸養)보내는 방법으로는, 연과 얼레를 조금 작게 만든 모형 배 안에 놓고 위와 같은 방법을 통하여 연줄이 끊어지게 하였다. 이 역시 영복송액(迎福送厄)의 일종이다. 액매기 액매기는 액막이와 같은 말이며, 다른 말로는 ‘어부시(魚鳧施)’ 또는 ‘어부식(魚付食)’이라고 한다. 먼저 생년월일을 적은 한지(韓紙)로 밥을 싸는데, 새로 한 밥에서 자기 나이만큼 움켜쥐어 내거나 이미 퍼 놓은 자기 밥그릇에서 쥐어내기도 한다. 그다음 이런 밥뭉치를 앞바다나 개천 폭이 넓은 쌍천(雙川)에 버리면 자신의 액(厄)이 모두 떠내려간다고 믿었다. 주로 보름날 저녁에 실시하였던 액막이에서 밥 싸는 것을 ‘봉숭이 밥싼다’고 하며, 밥 뭉치를 버리는 일을 ‘살풀이 한다’고 하였다. 우리가 산에 가서 음식을 먹을 때 내가 먹기 전에 먼저 산에 흩뿌리며 ‘고수래’하는 것과 유사하다.

 

영등날 음력으로 2월 초하루에는 바람이 불어오는 날이라 하여 바람을 다스리는 영등신(靈登神)에게 고사를 지냈다. 농촌에서의 영등일 행사와 별반 다르지 않으나, 바람이 풍어는 물론 생사를 결정짓는 어촌에서는 좀 더 정성을 드리게 되었다. 이날을 영등날, 풍신일(風神日), 바람님날, 영동날 등으로 부른다.

 

조선 후기 이옥(李鈺)이 쓴『봉성문여(鳳城文餘)』에 영등신에 대한 기록이 있다. 어느 지역에서는 고을 원님이 영등신 모시기에 아주 지극정성을 다하였다. 원님이 복을 비는 동안 방안에 있던 귀신이 나가면서 부인에게 스치는 느낌을 받았는데 몸에 땀이 나서 옷이 젖었다고 한다. 이런 일은 도깨비를 통칭하는 두두리(豆豆里)에 연관된 음사(淫祀)의 귀신 이야기다. 용갈이 용갈이는 한자로 용경(龍耕)이라고 하는 데, 호수의 얼음이 어는 중에 솟아오르거나 깨져서 마치 밭을 갈아 놓은 것처럼 보이는 것을 말한다. 실제로 추운 지방에서는 물의 표면에 얼음이 얼면서 부피가 팽창되어 얼음이 깨지는 경우가 생긴다. 이때 ‘땅땅’하면서 갈라지는 소리가 들리는데, 얼음이 클수록 소리가 요란하여 온 동네에 울리고도 남는다. 이를 두고 얼음이 운다고도 한다.

 

동짓달에 바다와 맞닿은 호수에 나타나는 용경을 보고 내년 농사를 점쳤다. 용(龍)은 무한한 재주를 가진 동물로 얼음을 호수의 남쪽이나 중앙부를 갈아놓으면 고기 풍년이 들고, 북쪽 부분을 갈거나 호수 옆면을 갈면 흉년이 든다고 하였다. 또 호수의 동서 좌우로 갈아놓으면 평년작은 된다고 믿었다.

이와 관련된 이야기는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 전하는 것으로 다음 해의 농사일을 예단(豫斷)하는 것이었다.

짬고사

경북 울진에서는 10월 보름이 되면 미역에게 고사를 지내는 짬고사가 행해진다. 예전의 울진 미역은 춘궁기와 추궁기에 생명을 이어주는 아주 긴요한 식량이 되었었다. 그래서 6월이 되면 자연산 미역인 돌미역의 관리와 채취를 위한 대동추(大同秋)를 열었다. 대동추는 마을 공동자치조직으로 미역짬을 공동으로 수확하고 공동으로 분배하는 공동작업 형식이다. 그리고 10월이 되면 바닷속 1.5m에서 20m에 이르는 바위를 닦아 미역이 잘 달라붙도록 정성을 다하고, 보름달이 뜨면 짬고사를 지냈다.

이때의 제주(祭主)는 자식을 잘 낳은 시어머니와 며느리 중에서 선정(選定)하였으며, 제주는 몸을 정결케 한 후 할당받은 미역짬을 놓고 제를 올렸다. 제물(祭物)로는 정성껏 빚은 막걸리에 좁쌀을 섞어 미역바위에 뿌리는 것이 전부이며, 미역씨받이가 잘 붙어 미역풍년이 들기를 비는 행위였다.

입동(立冬)에 이르러서 다시 한 번 바위를 닦고 살펴보는 짬매기를 하는 데, 이렇게 바위를 닦는 것을 일컬어 ‘기세닦기’라고 한다. 가을에 뿌려진 씨미역은 겨우내 자라며 따뜻한 해수와 적당한 조류의 이동으로 영양분을 흡수하면서 성장하게 된다. 이때 영등일의 바람이 미역에 미치는 영향은 지대하여 바다에서는 영등신(靈登神)을 섬기는 일이 당연시되었다.

이렇게 하여 수확된 미역은 마을공동의 재산으로 7할을 적립(積立)하는 데, 미역을 채취하는 해녀들의 몫은 3할이었다. 그런 후 작업이 끝나면 분할한 7할 중의 일부는 공동기금으로 사용하고, 나머지는 마을 주민들에게 다시 공평한 방법으로 나누어 주었다.

이렇게 완성된 미역은 ‘바지게’라 불리는 다리가 없는 짧은 지게를 진 상인들에 의해 전국에 팔려나갔다. 바지게는 비탈길을 오르내릴 때 편리하며, 조금이라도 무게를 줄이려는 의도에서 제작되었던 특수 운반도구다. 특히 운반 도중 힘이 들어 쉴 때에도 지게를 진 채 그냥 앉아서 쉬는 것으로, 공사장에서 사용하는 질통과 비슷하다.

근래에는 짬고사를 지내지는 않지만 미역의 착상 및 성장을 돕는 바위닦기가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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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전국의 해당 행사 사진 500여 장을 첨부하여 '선조들의 삶, 세시풍속이야기'라는 책으로 출판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