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것들/1년 24절기와 세시풍속

11. 정월(正月) 12지일(十二支日)

꿈꾸는 세상살이 2013. 12. 2. 13:24

11. 정월(正月) 12지일(十二支日)

음력으로 정월은 한 해가 시작되는 달로 아주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12지일은 설날부터 12일 동안의 각 일진(日辰)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고 이를 기리는 것이다. 따라서 정월 초하루뿐 아니라 처음 맞는 12지를 택하여 그에 적합한 행사를 하고 기념하였던 것이다.

이날은 그에 해당하는 동물의 몸에 털이 있으면 유모일(有毛日), 몸에 털이 없으면 무모일(無毛日)로 나눈다. 따라서 12지(支) 중에 쥐, 소, 호랑이, 토끼, 말, 양, 원숭이, 닭, 개, 돼지 날은 털이 있는 날이며, 용날과 뱀날은 털이 없는 날이 된다. 이때 설날이 유모일이면 그해는 오곡이 잘 익어 풍년이 든다고 하였는데, 결국은 12년 중에 10년은 풍년이 든다는 말이니 들어서 기분 좋은 말이다. 또 상점(商店)이 첫 문을 열 때에도 무모일에는 열지 않을 정도로 가렸으며, 첫 개점일이 인일(寅日)이면 호랑이의 털만큼이나 장사가 잘된다는 의미로 반겼다.

그러면, 왜 열두 가지 동물을 택하여 특별히 12지라는 이름을 붙였을까. 12지라는 이름은 음양오행을 푸는 방법의 한 요소이며, 열두 가지 동물은 그의 대표성을 띠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여기서 왜 하필 12동물이어야 하는가도 역시 따질 필요가 없다. 그냥 주변에서 쉽게 대할 수 있고, 생활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동물 열둘을 골라 정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 용처럼 상상의 동물이 선택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우리에게 친근한 물의 제왕 용왕(龍王)과 하늘의 운사(雲事)를 지배하는 용이 수렵과 농업에 의존하던 사회의 부족민들에게 무시할 수 없는 존재였음을 상기시켜주는 정도의 의미일 뿐이다.

이런 예는 서양에서도 나타난다. 고대 바빌로니아에서도 고양이, 뱀, 개, 사마귀, 나귀, 사자, 숫양, 소, 원숭이, 매, 홍학, 악어 등이 12년 동안에 번갈아 나오며 한 해의 상징으로 등장하였었다.

11.1 설날〔正初〕

설날은 정월 초하루를 말하며 이날은 한 해의 첫날로써 여러 가지 행사를 하는 데, 각종 음식은 물론 흥을 돋우는 놀이도 추가되었다. 한편 설날을 맞이하는 사람 역시 경건한 마음을 가지며 행동도 소박하고 정결하게 하였다.

11.2 인일(人日)

인일은 음력으로 정월 초이레를 말하며, 이를 사람의 날로 정해서 인일(人日)이 되었다. 12지로 보면 초이레는 해마다 바뀌어 찾아오는 다른 동물의 날이지만 인위적으로 사람의 날로 정한 것이다. 따라서 1월 7일은 인일이면서 특정 12지일의 풍속과 겹치는 것이다. 이날은 일곱 가지의 채소로 국을 끓인다.

조선 시대에 임금이 친히 제학(諸學)들을 불러 과거(科擧)를 보라는 칙령을 내렸는데,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이 과거 시험이 인일제(人日製)다. 이 시과(試科)는 태학(太學) 식당(食堂)에 30일 이상 참석한 사람 즉 기숙하면서 열심히 노력한 사람 중에서도 원점(圓點) 즉 낙점(落點)을 얻은 사람으로 한정하였다. 그래서 인일이 되면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포부를 펼치고, 새로운 각오를 다지는 그런 날로 삼게 된 것이다. 그 뒤에 삼월삼짇날과 칠월칠석, 그리고 구월 중양에 치르는 과거를 명절에 치른다 하여 절일제(節日製)라고 하는 것과 비교된다.

정초에는 남의 집에서 유숙(留宿)하지 않는 풍습이 있지만 특히 인일(人日)에는 각별히 지켰다. 이날 객(客)이 와서 묵고 가면 그해는 연중 내내 불운이 든다고 하였다. 그래서 부득이 객이 묵게 될 때에는 주인과 머리를 반대로 하여 자야 액운을 막을 수 있다고 믿었다.

11.3 동인승하사(銅人勝下賜)

정월 초이레인 인일(人日)이 되면 임금이 동인승(銅人勝)이라는 거울을 각료와 신하(閣臣)들에게 나누어 주던 것을 동인승하사(銅人勝下賜)라 하였다. 동인승이란 구리로 만든 작고 둥근 거울을 말하는 데, 손잡이 자루가 달려 있고 거울 뒤에는 신선이 새겨져 있다.

중국의 수(隨)나라 때 유진(劉臻)이라는 사람의 아내 진씨(陳氏)가 인일에 동인승(銅人勝)을 올렸는데, 비단실을 잘라 금박(金箔)을 새겨 장식하였다고 한다. 이후로 동인승을 치장하는 것이 이의 모방(模倣)에서 나왔다고 한다.

11.4 상자일(上子日)

정월 들어 처음 맞는 쥐의 날을 상자일(上子日)이라 하고, 이날은 특별히 쥐를 없애는 날이라 들에 나가 논과 밭의 두렁을 태우는 쥐불놀이를 하였다. 이때 ‘쥐불이다! 쥐불이다!’라고 외치며 옮겨다녔다. 충청도의 풍속에서 유래된 자일(子日)의 쥐불놀이가, 요즈음에는 대보름날의 쥐불놀이로 변하여 시행되고 있다. 이때 논밭을 둘러보며 농사의 풍년을 기원하는 것이다.

쥐는 몸집이 작은 대신 행동이 민첩하고 재물을 모아놓는 다산과 다복의 상징이다. 게다가 우리 주변에서 항상 만날 수 있어 우리와 밀접한 관계를 유지한다고 할 수 있다.

쥐는 자시(子時)를 의미하므로 밤 11시부터 오전 1시에 방아를 찧으면 쥐가 없어진다고 믿어 한밤중에 방아를 찧었다. 이때 마침 찧을 곡식이 없으면 빈 방아라도 찧어 요란한 소리로 쥐를 몰아내었다. 일부지방에서는 콩을 볶으면서 ‘쥐 주둥이 지진다! 쥐 주둥이 지진다!’는 주문(呪文)을 외웠다.

11.5 상축일(上丑日)

정월 들어 처음 맞이하는 소의 날을 상축일(上丑日)이라 하고 소달기날이라고도 한다. 이날은 소에게 일을 시키지 않고 쉬게 하였으며, 각종 나물과 콩을 삶아 먹여 위로하고 살을 찌웠다. 이때 여물을 먹는 소에게는 ‘우공(牛公)! 콩과 시래기, 쌀겨, 콩깍지를 넣었으니 맛있게 먹고, 올 농사를 잘 부탁하네!’하는 말을 하였다. 이날은 칼로 도마질을 하지 않았으며 쇠붙이로 된 연장을 다루지 않는 풍속이 있다. 도마질은 음식을 만들기 위해 쇠고기를 다지는 것에 비유되었고, 쇠붙이 연장은 논밭을 가는 쟁기에 비유되어 소에 대한 심리적 배려였던 것이다. 소달기는 소가 한가한 시기를 의미한다. 이는 농사가 한가한 시기 즉 농달기가 노달기로 변했다가 농한기로 바뀐 것과 같은 이치다.

소는 몸집이 크지만 그에 비하여 성질이 온순하고 은혜를 아는 동물이라 할 수 있다. 개와 함께 우리에게 친근한 동물로서, 행동은 느리지만 무거운 물건을 나르거나 힘든 일을 대신 해주는 아주 유용한 동물이다. 한편 죽어서도 뿔을 포함하여 가죽과 고기 등 모든 것을 내어 주는 가축에 속한다.

11.6 상인일(上寅日)

정월의 첫 번째 맞는 범의 날을 상인일(上寅日) 즉 호랑이날이라고 한다. 범날에는 혹시 있을지 모르는 호환(虎患)이 두려워서 서로 왕래를 삼가며 특히 아녀자들은 외출을 하지 않는다. 혹시 이날 남의 집에 가서 대소변을 보게 되면, 대소변을 눈 사람의 식구 중에서 누군가가 호환(虎患)을 당한다고 하였다. 그만큼 왕래를 금하였으며, 상서롭지 못하다고 생각되는 일을 삼가 근신하는 날에 속했다.

그와 더불어 혹시 호랑이 귀에 들어갈지 모르는 나쁜 얘기도 하지 않았다. 혹시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 하는 이야기도 이런 데서 연유하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호랑이는 밀림의 제왕으로 육상 동물 중 가장 사나운 동물에 속한다. 몸집도 크지만 힘이 세고 행동이 민첩하며 육식동물로서 사냥기술이 탁월하다. 물론 그 수가 부족하여 직접 대면하기는 힘들지만, 호랑이의 능력만큼이나 많은 희망을 주며 더불어 액운을 물리치는 영험함이 있다고 믿어왔다.

11.7 상묘일(上卯日)

정월의 첫 토끼의 날을 상묘일(上卯日)이라 한다. 토끼는 풍요와 다산을 의미한다. 따라서 토끼날에는 남자가 먼저 일어나서 대문을 열어야 일 년 동안 가정의 운(運)이 융성하다고 믿었다. 그리하여 주부들도 남자가 대문을 열고 밖에 나간 다음에야 방문을 열고 나와서 밥을 짓는 집도 있었다.

또 묘일에 실이나 베를 짜서 옷을 지으면 장수한다고 믿어, 부녀자들은 실을 짜고 옷을 짓는 데 열심이었다. 특별히 묘일에 뽑아낸 실을 묘사 혹은 토사(兎絲)라 하였으며, 이 실은 장수를 상징하는 명사(命絲)로 눈에 잘 보이는 곳에 걸어두었다. 이 실을 청색으로 물들여 팔에 건다든지 옷고름에 매달기도 하고, 또는 문의 돌죽에 걸어 두었는데 그렇게 하면 명이 길어진다고 믿었다. 고사를 지내거나 상량 등 축문을 한 곳에 실타래를 걸어 두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문돌죽은 문을 열고 닫을 수 있도록 경첩 대신 달았던 암수로 짝을 이룬 회전대로, ‘돌기로 된 자귀’의 변형이 아닌가 생각한다. 지역에 따라서는 돌자귀 혹은 돌작, 돌쩌귀라는 단어가 사용되고 있는 것과 연관이 있다.

이날 손님이 찾아오는 것과 나무 그릇이 들어오지 않도록 하였는데, 이는 명사(命絲)와 베를 짜는 일에 방해를 주지 않는다는 배려에서 비롯되었다.

토끼는 작은 초식동물이며 아주 순한 편이다. 집에서 쉽게 기를 수 있는 장점이 있고, 번식력이 강하여 그 수를 많이 늘릴 수 있다. 이는 다산과 다복을 상징하는 동물이지만, 물을 싫어하는 습성이 있어 주의하여야 한다. 그러나 그것은 메마른 시기에도 잘 견디는 생명력이 강하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따라서 농업과 어업 사회에서는 많은 노동력이 필요하였기에 다산하는 동물을 중히 여기게 되었던 것은 당연한 일에 속했다.

11.8 상진일(上辰日)

정월의 첫 용의 날을 상진일(上辰日)이라 하는 데, 주부들은 진일 이른 새벽 샘에 나가 물을 길었다. 설(說)에 의하면 용의 날 새벽에 하늘의 용이 우물 속에 들어가 알을 낳는다고 하였다. 그래서 용알이 든 우물물을 가장 먼저 길어다가 밥을 지으면 한 해의 운이 좋고 풍년이 든다고 믿었다. 그래서 물을 처음 떠간 사람이 지푸라기를 잘라 우물에 띄움으로써 자신의 행적을 알렸다. 그러면 다음 사람은 아직 아무도 떠가지 않은 다른 우물에 가서 물을 떠와야 했다. 보이지 않는 용알은 처음 물을 뜨면 같이 올라온다고 믿었던 때문이다. 이 물로 머리를 감으면 머리카락이 마치 용처럼 길게 자라난다고 믿었다. 예전에도 머리카락이 빠지는 것은 지금처럼 많은 고민이었던 같다. 이때 용은 마치 달만큼 커다란 알을 낳는다고 하였는데, 이는 신새벽 샘물에 비친 달을 비유한 것이다. 그만큼 부지런해야 올 한 해도 풍요롭다는 교훈에서 비롯된 것이다. 여자들은 물항아리를 머리에 이고 물을 길었지만, 남자들은 물지게를 지고 날랐다. 물지게는 물동이 두 개를 양쪽으로 놓고 각각 끈으로 매어 올린 등판만 있는 지게다. 이런 물지게 역시 지게와 마찬가지로 균형을 잡는 일이 아주 어려운 일에 속한다. 1960년대 이후 공동우물을 이용하는 대신 집 안에 개인 우물을 파서 사용하는 집이 늘어났다. 따라서 우물은 공동(共同)의 재산이면서 우물가는 마을의 사랑방 같은 역할도 하였다.

용왕은 물을 지배하는 신이라 할 정도로 물과 관련된 일의 대명사로 통한다. 따라서 비를 동반하거나 비구름, 혹은 바람을 상징하기도 한다. 이런 사항들은 수리시설이 발달하지 못했던 시절의 농사에 아주 절대적인 역할을 하였다. 따라서 풍농과 풍어를 기원하는 의미에서는 항상 용이 중심에 등장하였던 것이다.

11.9 상사일(上巳日)

정월의 첫 뱀날을 상사일(上巳日)이라 부르고, 이날만큼은 남녀 할 것 없이 머리를 빗거나 깎지도 또 감지도 않았다. 만일 그렇지 않으면 집 안에 뱀이 들어와 화를 입는다고 하였다. 머리카락이 음(陰)의 기운으로 좋지 않다는 것과 뱀이 좋지 못하다는 것의 현실 적용이다. 빨래와 바느질도 하지 않았으며, 땔감나무를 옮기지도 않았다. 혹시 땔감나무 속에서 동면을 하는 뱀이 휩쓸려 들어와 해를 주지 않을까 하는 지혜의 하나였다.

또 긴 나무 끝에 솜뭉치나 머리카락을 달아매고 불을 붙인 후 뱀구멍에 대었다. 그러면 불냄새를 싫어하는 뱀이 연기를 마시고 도망간다는 것에서 ‘뱀지지기’ 혹은 ‘뱀그슬르기’라 하였다.

12지 동물 중 가장 혐오스러운 것이 바로 뱀이다. 이런 뱀을 굳이 열두 동물에 넣을 필요가 있었는가는 별도의 문제로 생각해야 한다. 뱀은 독으로 사람을 해하기도 하며 아담과 이브 시절부터 사람을 죽이는 악마의 대명사이지만, 모세가 놋으로 만든 놋뱀을 바라보면서 살게 되었다는 말처럼 사람을 살리는 역할도 하는 영물(靈物)로 통한다. 지금도 의학계통을 상징하는 표식에 뱀을 그려 넣는 것이 일반적인 것과 같다. 한편 설화에 의하면 집을 지키는 터줏대감으로 뱀이 자주 등장하여 양면성을 띤다.

11.11 상오일(上午日)

정월의 첫 말날을 상오일(上午日)이라 하였다. 옛날부터 가장 편리한 교통수단인 말을 숭상하는 풍습에 따라, 이날은 좋은 먹이를 주고 위로하며 말에 대한 제사를 지냈다. 말날에 장을 담그면 장맛이 달고 빛깔이 좋다고 하였는데, 이것은 말이 콩을 좋아하기 때문이며, 말의 피부색이 장과 비슷한 때문으로 풀이된다.

일상 중에서 무거운 짐을 나르는 일을 소가 맡았었다면, 하루에 천 리를 간다는 천리마처럼 빨리 이동하는 수단으로는 말이 이용되었다고 할 수 있다. 초식동물이면서 큰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온순한 편으로, 잠을 잘 때도 서서 잘 정도로 조심스럽고 경계심이 많은 동물이다. 말가죽과 말고기 역시 사람에게 요긴하게 쓰였으며, 일상에서 빼놓을 수 없는 동물이라 할 수 있다.

말은 서양에서도 일찍부터 기마병이 있을 정도로 애용된 동물이지만, 일상생활에서는 몸집이 약간 작은 나귀를 더 많이 활용하였었다. 그래서 서양은 12지신에 말 대신 나귀를 포함하였던 것이다. 대표적인 내용으로는 예수가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말은 강한 양기를 가진 동물이므로 말띠 남자는 좋고 말띠 여자는 팔자가 세다고 한다. 특히 병오(丙午)년에 난 백말띠 여자는 혼처(婚處) 구하기가 어려워서 병오년에는 일반적으로 출산(出産)을 기피했다고 한다.

11.12 상미일(上未日)

정월의 첫 염소의 날을 상미일(上未日)이라 한다. 이날에 어촌사람들은 출어를 하지 않았고, 섬 지역에서는 약을 먹어도 효험이 없다고 하여 미불복약(未不服藥)이라 하였다. 염소는 털에 물이 묻는 것을 싫어하므로 풍어(豊漁)를 약속받지 못하는 날이라 여겼던 것이다. 또한 높은 곳을 좋아하는 습성을 비유하여, 여자들이 아침 일찍 방문하면 재수 없다고 꺼렸다.

양은 온순한 동물의 대명사로 통한다. 무리를 지어 사는 것은 인간의 생활양식과 비슷하며, 고기는 물론 가죽과 양젖, 양모 등 인간에게 주는 부분이 아주 많다. 옛 서양에서도 양의 숫자나 말의 숫자, 혹은 소의 숫자로 경제적인 기준을 삼았던 것도 이해가 되는 부분이다. 보통의 민가에서 양보다 염소가 흔하던 시절에는 양띠 대신 염소띠라는 말을 더 많이 사용하였다. 이때의 양의 날과 염소의 날은 같은 의미로 통한다.

11.13 상신일(上申日)

정월의 첫 원숭이날을 상신일(上申日)이라 하였다. 이날은 일손을 놓고 쉬는 날이라서 만약 칼질을 하면 손을 벤다는 속설이 있다. 따라서 칼이 있는 부엌에 귀신이 찾아오는 날이라고 하여, 새벽 일찍 담이 큰 남자가 부엌에 먼저 들어간 다음 여자가 들어가기도 한다.

인간과 가까운 종(種)에 침팬지, 고릴라, 유인원 등이 있지만 무엇보다도 가장 쉽게 만날 수 있는 것은 원숭이다. 원숭이는 잡식성으로 행동이 민첩하며 나무 위에서 사는 것을 기본으로 한다. 성질이 난폭하며 훼방꾼이면서 천방지축이지만 내부적으로는 서열이 뚜렷한 위계질서를 근본으로 무리를 지어 생활한다.

11.14 상유일(上酉日)

정월의 첫 닭날을 상유일(上酉日)이라고 한다. 이날은 부녀자가 바느질이나 길쌈을 하면 손이 닭발처럼 흉하게 변한다고 믿어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쉬는 날이다. 그것은 마치 닭이 모이를 찾아 주위를 파헤치듯이, 아녀자들이 자칫 상서로운 일을 흐트러트릴까 하는 걱정에서 시작된 말이다. 제주지방에서는 수탉이 만나기만 하면 시도 때도 없이 싸우는 것을 연상하여 사람들도 모임에 나가지 않도록 근신하였으며, 전라도에서는 닭날에 곡식을 널지 않았다고 하나 엄동설한에 곡식을 말릴 일도 없었을 것이니 어디까지나 상징적인 비유다.

닭은 매일 알을 낳는 등 다산의 대명사이며, 많은 부분을 남겨주는 아주 유용한 가축에 속한다. 그러나 주어진 먹이라도 정작 먹기 위해서는 다시 흩뿌리는 습성이 있어 주변을 어지럽히는 특성이 있다. 또한 조류의 특성상 방광이 없어 대변과 소변을 가리지 못하며, 정해진 장소와 정해진 시간에 해결할 수 없는 단점을 안고 있다. 그러나 뭐니뭐니 해도 닭의 대표성은 부지런함일 것이다. 새벽 어둠을 물리치고 귀신을 쫒아내는 것이 닭이며, 한시도 쉬지 않고 마당을 헤집고 다니는 것도 닭이다. 따라서 사람들이 닭처럼 부지런하면서 부유해지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겨 있다고 할 것이다.

11.15 상술일(上戌日)

정월의 첫 개날을 상술일(上戌日)이라 한다. 이날 일을 하면 개가 텃밭으로 나가서 구멍을 파는 등 피해를 준다고 전한다. 전라도에서는 이날만큼은 개밥을 물에 말지 말고 되게 주어야 잘 자란다고 믿었다. 또 이날은 풀을 쑤면 개가 먹은 것을 토한다고 하여 풀을 쑤지 않았다. 대신 이날 메주를 쑤거나 장을 담그면 맛이 좋다고 하였다. 들에서 자라는 풀과 종이를 바르는 풀을 연관시킨 것이다. 실제로 개는 속이 거북할 때에 구토(口吐)를 하기 위한 처방(處方)으로 스스로 풀(草)을 뜯어먹고 토해내는 습성이 있다.

개는 사람과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생활하는 동물에 속한다. 비록 사람이 개를 먹여살리기는 하지만, 때로는 개가 사람의 목숨을 구해주는 것도 심심치 않게 전한다. 이처럼 개는 영물이며 은혜를 알고, 주인에 대한 충성심과 자신을 낮추는 겸양지덕까지 갖춘 동물로 여긴다. 잘못했다고 주인한테 얻어맞았어도, 다음 날이면 다시 주인을 섬기는 것이 개의 특성이다. 이런 개는 주인이 남겼다가 던져주는 먹이만으로도 만족해하며, 반드시 고마움을 표시하는 예의바른 동물에 속한다. 오죽하면 은혜를 모르는 사람에게 개만도 못한 사람이라는 욕을 하는지 이해가 된다.

11.16 상해일(上亥日)

정월의 첫 돼지날을 상해일(上亥日)이라 하는 데, 이날은 팥가루에 향료를 섞어 만든 비누 즉 조두(澡豆)로 세수를 하였다. 특히 얼굴이 검은 사람은 왕겨나 콩깍지로 문지르는 세수를 하기도 하였는데, 이렇게 함으로 돼지가죽처럼 검던 피부를 희게 하고, 딱딱한 살결을 곱게 할 수 있는 것으로 믿었다. 전라도에서는 이날 바느질을 하면 손가락에 덧이 나서 생손이 아리며, 머리를 빗으면 두통(頭痛)이 생긴다고 전한다.

조선 시대 궁에서는 어리고 지위도 낮은 환관(宦官)들이 횃불을 땅에 끌면서 ‘돼지주둥이 지진다.’하고 외쳤는데, 이는 게으른 사람을 돼지에 빗대어 채근한 것이다.

마지막으로 등장하는 돼지는 탐욕의 대명사로 통한다. 그러나 실제로 돼지가 먹는 것을 보고 있노라면 항상 일정한 양을 먹을 뿐 욕심내서 과하게 먹거나, 먹어서는 안 될 것을 가리지 않고 먹는 일은 없다. 먹는 장소와 싸는 장소를 구별할 줄 아는 지혜를 가졌으며,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많은 젖꼭지를 가져 다산의 상징으로 통한다. 예전에는 소를 기르거나 말을 기르기는 어려웠어도 상대적으로 개나 돼지를 기르기는 쉬웠었다. 그것은 덩치가 작아서 새끼를 구하기가 적은 비용으로도 가능하였으며, 아무것이나 먹는 잡식성으로 사람이 먹고 남긴 음식물로도 사육이 가능한 것도 한몫하였다.

돼지는 크기에 비하여 몸집이 비대한 것이 특징이며, 목이 짧아 고개를 위로 쳐드는 것이 불가능한 동물에 속한다. 그래서 너무 높은 이상을 품거나 남을 존경하지 못하는 것처럼 버릇없는 경우에 비유하기도 한다. 돼지의 방향감각은 다른 동물과는 다른 면이 있는데, 일반적으로 앞에서 끌고 가는 동물에 비하여, 돼지는 뒤에서 몰고 가는 방식에 적합한 동물이다. 그래서 맨 앞에 있는 것보다 항상 뒤에서 어슬렁거린다는 표현이 더 잘 어울린다.

11.17 고마이날

정월 열엿새 날을 ‘귀신날’ 또는 ‘귀신 붙는 날’이라고 하여 바깥출입을 삼갔다. 이날은 모든 사람들이 종일토록 집 안에서만 지내고 쉬는 날이다. 만약 남자가 일을 하면 연중 우환(憂患)이 생기고, 여자가 일을 하면 과부(寡婦)가 된다고 하였다. 행여 이승에서 과부가 되지 않으면 저승에 가서라도 과부 신세를 못 면한다고 하였으니 얼마나 지독한 주문인지 모르겠다. 또 이날은 배를 띄우지 않는데, 만약 출어(出漁)를 하면 귀신이 풍랑을 일으켜 화(禍)를 당한다고 믿었다.『동국세시기』에 ‘이것도 경주의 풍속을 답습한 것이다.’라고 적었다.

이날 귀신이 집 안에 범접하지 못하도록 하는 방법으로 대문에 체를 걸어놓으면 귀신이 체의 구멍 수를 세다가 날이 밝으면 도망간다고 하였다. 또 대문 밖에서 목화씨나 고추씨를 태우면 그 냄새와 연기가 매워서 겁을 먹고 도망간다고 하였다. 그러나 어쩌다가 찾아온 귀신은 아무 신이나 신어보아 자기 발에 맞으면 그냥 신고 간다고 하여, 신발을 방안에 숨기거나 밖에 있는 신발은 엎어놓아 몰라보게 하였다. 혹시나 귀신이 신발을 신고 가게 되면 불길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정월 초하루부터 대보름까지 먹고 마시며 놀던 것을 이제 그만 그치고 새롭게 시작하라는 말에서 유래되었다. 그러나 길고 긴 명절연휴에 따른 풍속을 하루아침에 뚝 끊을 수가 없으니 이날까지만 일을 하지 말고 쉬라고 한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그만 놀고 일하자는 것에 반함으로 직설적으로 말을 하기가 어려운 부분이라서, 그만 귀신이 붙은 날이라고 둘러서 말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한편 이날 일을 하면 여름에 까치가 목화를 모두 쪼아버린다고 하여 까치날이라고도 부른다.

11.18 곡일(穀日)

정월 12지일 외에도 초파일 즉 초여드레가 되면 특별히 곡식(穀食)의 날이라 하였다. 이날에 춘경(春耕)할 준비를 하면 풍년이 든다고 믿었다. 그래서 닭장과 돼지우리, 소외양간 등의 우리를 치워 논이나 밭에 거름으로 내야 하는 날이다. 이는 여름에 비하여 겨울철 우리 청소를 하지 못했던 것에 대한 배려이면서 봄에 거름으로 사용하기 위한 조치였다고 보여진다. 논이나 밭을 갈기 전에 먼저 거름을 내고 갈면 거름이 흙과 뒤섞여 토양에 유용한 영양분 역할을 하는 것이다. 그러나 밭을 간 후에 퇴비를 내면, 흙에 잘 섞이지 않아 빗물에 씻겨나가거나 제대로 흡수가 되지 않는다.

또한 신년을 맞이하여 설날부터 상원 즉 대보름까지는 곡식을 대문 밖으로 내보내지 않으며, 타인에게 퍼주지 않았다. 혹시 곡식을 문 밖으로 보내면 당년에 산에 사는 짐승에 의해 작물이 피해를 본다고 믿었다. 또 재물을 잃거나 흉작이 된다고 하여 정초(正初)에 곡식을 사용하지 않는 ‘금곡용(禁穀用)’을 지켰다.

11.19 삼패일(三敗日)

삼패일은 매달 5일과 14일, 23일을 말한다. 물론 음력으로 계산된 날이며, 이날은 모든 일을 꺼리고 행동하지 않았다. 따라서 외출을 금하였는데, 이러한 풍속은 이 3개의 날이 임금이 염두에 두고 사용한다는 소용일(所用日)로서 백성들은 이용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특별히 나쁘다거나 무엇을 해서는 안 되는 그런 날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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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전국의 해당 행사 사진 500여 장을 첨부하여 '선조들의 삶, 세시풍속이야기'라는 책으로 출판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