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사람 권정생
이기영/ 단비/ 2014.05.20/ 313쪽
저자
이기영 : 1962년 서울태생. 어린이도서연구회에 들어 동화를 읽고 글을 쓰기 20년, 똘배어린이문학회에서 해마다 5월의 권정생추모제를 열고 있다.
권정생 책 이야기를 계간지『창비어린이』2007년 여름호에 썼고, 이어서 다른 책에 권정생의 연보를 실었으며, 권정생 연구에 많은 정열를 쏟고 있다. 똘배어린이문학회 회원들과 함께『내 삶에 들어온 권정생』이라는 책을 내기도 하였다.
줄거리 및 감상
1937년 9일 10일 일본에서 출생한 권정생은 2007년 5월 17일 안도에서 죽었다. 이기영은 이런 권정생에 대한 일대기를 적었다. 바로 이 책이 그것이다.
그는 강점기 식민시대에 태어났고 해방과 함께 다른 사람들처럼 고국을 찾는 부모의 손에 이끌려 귀국하였으나 곧 이은 한국전쟁으로 많은 고통을 겪었다. 몰론 당시 비슷한 또래의 아이들이 모두 겪었던 상황이었지만, 가정 형편이 안 좋았던 권정생은 일본에서나 고국에서나 삶이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젖먹이였던 강점기는 아무 것도 모르니 속이나 편했겠지만, 이제 나이가 들면서 모든 상황을 이해하고 그것과 부딪치며 혼자서 살아가는 상황에서는 커라단 장벽으로 다가왔다. 어린 아이 때부터 부산 등 객지에 나가 나무장수, 담배장수, 가게 점원 등 거친 삶을 살았으나, 생각하지 못한 폐결핵과 늑막염을 얻게 되었다. 이때 객지에서 사귄 사람들이 서로 의지하고 도우며 형제처럼 지냈는데, 어느 날 그들이 사회의 압력에 굴하여 자살을 하거나 스스로 타락하여 생의 방향을 바꾸는 현실에 아픔을 느꼈다.
정생은 아버지 고향으로 돌아왔으나 병든 자식을 돌봐야 하는 가정형편은 갈수록 더욱 악화되었다. 이와 함께 권정생의 병은 신장결핵, 방광결핵에까지 번지게 되었고, 감출 수 없는 슬픔과 함께 가족들을 위하여 자신이 떠나야겠다는 결심을 하고 집을 나서 본격적인 거지생활을 하게 되었다. 병들고 힘이 없으니 일을 할 수가 없어 어쩔 수 없이 거지가 된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병세가 좋아질 리가 없었고, 결국 다시 고향에 와서 작은 시골교회의 종지기로 살아간다. 말이 종지기지 당시 교회 형편으로는 권정생을 먹여 살릴 수가 없어 겨우 방 한 칸 내주는 정도에 그쳤다. 한편 먹기 살기 힘든 교역자들 역시 부정과 부패에 타협하는 일도 벌어지고 있었던 시절이라 더 무엇을 바랄 수도 없는 형편이었다. 하지만 교회의 종을 칠 때에는 추운 겨울에도 장갑을 끼지 않았다. 그에게 장갑은 사치품 중의 하나였지만, 장갑을 낀 손으로는 아름다운 종소리를 낼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교회에서의 생활은 경제적으로 큰 도움은 안 되었지만, 그래도 머리를 뉘고 잠을 청할 곳이 있다는 것은 권정생에게 큰 위안이었다.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생활이 시작되었다. 권정생은 평생을 소변주머니를 차고 살았다. 병원에 갈 형편이 못 되는 정생은 자신이 직접 소변주머니를 소독하고 교체하면서 힘든 병마와 싸웠다. 의사가 2년 밖에 살 수 없다고 말했지만, 그는 40년이나 살다 간 사람이다. 그 동안 숱한 고난과 어려움을 극복하였으며 죽을 때에도 단칸 방 흙집에서 살았는데, 그가 남겨 놓은 유서에는 어려운 사람들이 도움을 받았으면 좋겠다고 하면서 10억 원이 넘는 거액의 돈을 남겼다. 그간 받은 인세 등을 모은 것이었다. 신춘문예에 당선되었으나, 서울에 갈 차비가 없어 시상식장에 참석하지 못하였는가 하면, 어떤 때는 고무신을 신고 참석하는 등 자신은 평생을 힘든 환자로 살았지만 그래도 남들의 고통을 안아주지 못한 것을 안타까워하던 마음을 읽을 수 있다.
권정생은 객지에서의 친구들의 죽음, 병든 몸으로 거지생활을 하던 시절, 교회 문간방에서 병마와 싸우며 삶을 깨달아가는 과정에서 자유와 인권, 평등, 사랑, 자연, 그리고 절약 등을 생활화하게 되었다. 그리고 전쟁을 통하여 인간의 비극을 줄이기 위한 노력을 한다.
그의 대표작인『몽실 언니』는 전쟁으로 인한 고통을 서로 화해와 용서로 이끌어가는 소설이며,『강아지 똥』으로 대표되는 동화는 자연 그리고 가장 낮고 볼품없는 것이 바로 가장 소중한 것이라는 개념을 심어주고 있다. 이런 그의 작품세계는 위의 생활에서 겪었던 것의 반증이다.
권정생이 교회 문간방에서 기거하며 겨우 목숨을 부지하고 있을 당시, 권정생의 작품에 눈독을 들이고 있던 이오덕은 전우익과 함께 권정생의 좋은 친구이자 문학의 동반자가 되어 주었다. 그들은 좋은 글을 쓰면 출판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고, 무명의 권정생을 한 작가로 성장시켜 그의 사상을 펼쳐 보이기를 원했던 사람들이다. 이어서 이현주도 많은 도움을 준 사람이다.
유신시대를 거치는 동안에는 반공이라는 대명사를 앞세워 모든 것을 하나로 정렬시키던 시절이었다. 이때는 모든 작품의 방향이 반공으로 일관되었으나, 오직 권정생은 반공이라는 것은 사람의 마음을 갈라놓고 남과 북을 영원히 멀어지게 한다는 생각을 하였다. 그래서 그는 반반공정신을 문학의 주제로 삼았던 것이다. 그러면서도 작가끼리 서로 적당히 눈감아주고 나눠먹기식으로 해서는 좋은 작품을 쓸 수 없다고 일침을 가하였다. 이런 주의는 그의 일생동안 변함이 없었다. 물론 반반공적인 사상적 관념 뿐 아니라, 약한 자의 아픔과 소외당하는 자의 입장을 대변하는 것으로 명명할 수 있다. 그의 대표작들이 모두 그런 유형에 속한다. 오죽하면 ‘반반공작품 3총사’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이후 유신이 무너지고 6.29선언과 함께 사회에 변화의 바람이 불자 권정생의 작품은 마음 놓고 읽혀질 수 있었다. 다시 말하면 그제서야 비로소 그의 작품이 검열에 의한 삭제나 어떤 제재없이 원작 그대로 발표되었던 것이다. 그만큼 권정생은 약한 자의 편에 서 있었고, 자신의 병든 몸 하나 건사하는 것보다 더 많은 사람들을 위하여 아낌없이 대신하는 삶을 살았다고 말할 수 있다.
대표작으로는『몽실 언니』와『강아지 똥』이 있고,『한티재 마을』,『우리들의 하느님』,『깜둥바가지 아주머니』,『밥데기 죽데기』,『하느님의 눈물』,『점득이네』,『오물덩이처럼 뒹굴면서』 등이 있다.
권정생이 교회의 문간방에서 살 때는 노틀담의 꼽추가 생각났고, 약한 자의 대변인을 해야 한다고 말할 때는 농민회가 생각났고, 자연을 사랑하고 보존해야 한다는 생각을 할 때는 천주교의 환경보호단체가 생각났으며, 자신을 낮춰 낮은 데서 봉사해야 한다는 때에는 2014년 한국을 방문한 교황이 생각났다.
작품을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떤 작가를 아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한 작품이 나오기까지 어떤 일이 있었는지, 혹은 당시 사회 상황으로 보아 이런 작품은 어떤 교훈을 주는지 알고 보아야 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사회상과 작가의 처지를 바로 알지 못하고는 작품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할 수가 없는 것이다. 권정생이 있었다는 것은 우리 아동문학에 커다란 행운이었지만, 권정생이 이런 가슴 아픈 작품을 썼다는 것은 참으로 뼈아픈 비극이 아닐 수 없다.
2014.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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