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것들/1년 24절기와 세시풍속

12. 대보름 - 액막이 풍속, 먹을거리, 대보름과 현실

꿈꾸는 세상살이 2014. 9. 7. 05:26

12.5 액(厄)막이 풍속

 

대보름이 되면 한 해를 잘 지내게 해달라고 복을 빌며, 자신에게 닥칠 액운을 떨쳐버리기를 원한다. 이때 행하는 모든 것이 바로 액막이가 된다.

부럼깨기

보름날 아침이면 전날 준비해두었던 밤이나 호두 그리고 은행과 잣, 무, 땅콩 등을 깨물면서 ‘1년 내내 종기나 부스럼이 나지 않게 해주십시오.’하고 기원한다. 이는 건과류(乾果類)가 가진 영양적 효과도 훌륭하였으며, 치아를 단단하게 하는 것이 모든 건강의 시초(始初)라고 믿었던 때문이다.

따라서 부럼을 한꺼번에 톡소리가 나도록 힘차게 물어 깨야 좋다고 믿었다. 부럼은 원래 나이 수대로 깨야 한다고 하였지만, 점차 그 숫자가 줄어들어 밤 세 톨을 의미하기도 하였으나 이제는 그런 말만 전하고 있다. 지방에 따라서는 엿을 먹는 곳도 있었는데, 이것 역시 치아를 단단하게 하는 ‘이굳히엿’이라 불러 부럼과 같이 대하였다. 이때 깨뜨린 부럼은 먹지 않고 마당에 버림으로 자신의 액운을 뱉어낸다고 믿었다.

부럼에 사용되던 땅콩은 단백질과 지방이 풍부하며, 생리작용을 원활하게 해주는 성질이 있다. 구워서 먹거나 삶아서 먹어도 상관은 없지만, 볶은 후 오래두면 기름이 산화되어 변질되기 쉽다. 특히 땅콩에 피어나는 곰팡이는 독성이 아주 강한 균으로 알려져 있다. 호두는 살을 찌개 하고 몸을 튼튼하게 하며, 피부를 윤택하게 하는 효과가 있다. 또 머리를 검게 하는 작용을 하고, 기혈(氣穴)을 보호하여 하초명문(下焦命門)을 보한다고 알려져 있다. 불포화지방산, 단백질, 마그네슘, 망간, 철분, 칼슘, 비타민A, B, C, E 등이 풍부하여 강정식품으로도 인기가 좋다. 또 호두는 보온성이 좋아 감기와 천식을 예방하며, 뇌세포활성화 및 노화방지를 돕는다. 그런가 하면 불면증이나 탈모증의 치료에 효과가 있다. 그러나 지방도 많아 지성피부인 사람과 다이어트 중인 사람에게는 권장하지 않는 식품이다.

 

더위팔기(賣暑)

상원날 아침은 아직도 춥고 활동하기 어설픈 날이다. 그러나 아침 일찍 일어나 더위를 팔면 다가올 여름을 잘 지낼 수 있다고 믿었다. 이웃 친구를 찾아가 이름을 부른 뒤, 대답을 하면 ‘내 더위(다 사가라)’ 하며 팔았다. 그러나 부름을 받은 친구가 대답 대신 ‘내 더위 네 더위 먼저 더위’하면 오히려 더위를 팔려던 친구에게 내 더위까지 보태지는 놀이였다. 그래서 이날은 친구가 불러도 대답을 하지 않고 눈치를 보아 더위를 파는 일이 우선이었다. 그러나 이런 일도 해가 뜨고 나면 이미 더위를 맞았으니 아무 소용이 없다고 믿어 더 이상 더위팔기를 하지 않았다.『경도잡지(京都雜誌)』에도 “남녀들은 꼭두새벽에 갑자기 누가 부르면 대답하지 않고 ‘내 더위 사가게’라고 한다. 그리하여 온갖 계교로 불러도 여간해서는 대답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어느 지역에서는 해가 뜨기 전에 동쪽으로 뻗은 복숭아나무 가지를 꺾어 둥글게 만든 다음 개의 목에 걸어주었고, 소에게는 왼쪽으로 꼰 새끼를 목에 매어 주면서 ‘금년에는 더위를 먹지 말아라.’고 하였다. 또 중국 남송(南宋)의 시인 육방(陸放)의『세수서사시(歲首書事詩)』에서도 ‘입춘날 아침에 춘곤(春困)을 파는 아이들이 새벽같이 일어난다.’고 하였다.

액날리기

정월 초 추운 날씨에 특별한 놀이가 없던 아이들은 동네 고샅에 나와 연(鳶)을 띄웠다. 그 연에는 각자 집안 식구들의 이름과 생년월일을 쓰고 ‘신액소멸(身厄消滅)’이라는 글자를 썼다. 그리고 연을 띄우다가 해 질 무렵이 되면 연줄을 끊어 날려 보내고 집으로 돌아왔다. 이것은 연이 모든 액을 실어 멀리멀리 떠난다는 의미다. 이 놀이를 연날리기라고도 부른다.

다리밟기(踏橋)

『동국세시기』에 의하면 보름날 밤에 서울 장안의 많은 사람들은 종로 네거리인 열운가(閱雲街)에 모여 보신각(寶信閣) 종소리를 들었다. 그 뒤 흩어져 근처의 다리로 가서 거니는데, 이런 행렬은 밤이 새도록 끊이지 않았다. 따라서 사람이 많은 지역에서는 삼 일 밤낮 동안 북적댔다고 한다. 다리밟기는 고려 때부터 내려오는 행사로, 서울에서는 주로 대광통교(大廣通橋)와 소광통교(小廣通橋), 수표교(水標橋)에서 성황을 이뤘다. 이 다리는 사람들로 인산인해(人山人海)를 이루어 북을 치고 퉁소를 불며 매우 소란스러웠다. 이렇게 다리 위를 걸으면 모든 병을 물리치는 액막이가 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튼튼한 다리로 모든 일을 잘 하여 건강하게 지내는 밑거름이 될 것을 믿었다고 풀이된다. 이런 행사는 각 지역마다 처해진 형편에 따라 실시되었다.

다른 해석으로는 다리밟기를 하면 다리에 병이 나지 않고 건강하다고 믿었으며, 1년 12달 동안 건강해지기 위하여 열두 다리를 밟았다고도 한다. 이는 평소 외출이 적은 부녀자들에게 건강을 생각하여 즐겁게 놀면서 운동을 하라는 방편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이때의 다리밟기는 가족단위 놀이가 마땅치 않던 시절에 모두가 함께 나서는 좋은 놀이에 속했다. 지금도 별다른 준비물이 없어도 나설 수 있는 운동이며, 가족끼리 오순도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기회도 제공하는 놀이 중의 하나다. 송파다리밟기는 중요무형문화재 제3호로 지정되어 전한다.

아홉차례

대보름에는 밥을 아홉 그릇 먹고, 나무도 아홉 지게를 해야 한다는 말이 있다. 이와 더불어 대보름 전날의 세시풍속으로 ‘아홉차례’가 있었다. 다른 말로 ‘아홉차리’라고도 하는 데, 이것은 글자 그대로 아홉 번을 해야 한다는 것으로 글방에 다니는 아이는 천자문을 읽어도 아홉 차례 읽어야 하고, 농부가 새끼를 꼬아도 아홉 발을 꼬야야 하며, 아낙이 빨래를 해도 아홉 가지를 하여야 한다는 말이다. 심지어 물을 길어도 아홉 동이를 길어야 하며, 매를 맞아도 아홉 대를 맞아야 한다고 하였다. 이는 ‘9’라는 숫자가 길수(吉數)로 꽉 찬 숫자이며, 양의 수 ‘3’을 세 번이나 곱해서 얻어지는 수로 아주 좋게 여겼던 것이다.

이 말의 어원은 고을의 부잣집에서 이날만큼이라도 어려운 사람들에게 대접하려 하였던 것으로, 넉넉하지 못한 사람들은 재산이 많은 부잣집을 돌아다니며 얻어먹는 것을 부끄러워 할까 봐 9그릇을 먹어야 한다고 일부러 지어냈을 것으로 추측된다. 그러나 호사다마(好事多魔)라고 이런 아홉수를 행여 시기하는 악귀가 있을까 걱정하여, 아홉수에는 혼인(婚姻)을 하지 말라는 속설과, 19 혹은 29, 39처럼 나이 아홉수는 좋지 않다는 말이 생겨났다.

 

12.6 대보름의 먹을거리(上元節食)

대보름에 먹는 음식은 대보름 풍속에 속하는 것도 있는가 하면 별도의 특별한 음식에 해당하는 것도 있다. 이날은 각기 다른 성바지 집에서 얻어온 밥으로 아홉 번을 먹어야 하며, 그 대가로 땔감나무 아홉 지게를 해야 한다는 말도 하였다. 이것은 아무리 잔치라 하더라도 그냥 먹고 놀기만 해서는 안 된다는 가르침이라 할 것이다. 대보름에는 흰쌀밥만을 먹던 부잣집에서는 체면에 밥을 얻으러 다니지는 못하여, 남의 오곡밥을 서리해서 먹는 풍습도 있었다.

『농부월령가』에서도 ‘묵은 산채 삶아내니 육미(肉味)와 바꿀쏘냐, 귀 밝히는 약술이며 부스럼 삭는 생밤이라…’라고 적혀 있을 정도로 산채(山菜)는 중요한 음식이었다. 그런가 하면 대보름에 먹어서는 안 되는 경우도 있었다. 대보름의 금기로는 아침밥을 물에 말아먹지 않았으며, 아침상에 생파래를 올리지 않았다. 또 찬물이나 솥에 눌어붙은 밥을 먹지 않았고, 김치처럼 고춧가루가 들어간 음식을 먹지 않았다. 파래는 논에 난 잡초를 연상하여 풀이 무성하면 농사에 좋지 않다고 여겼으며, 고춧가루의 매운 맛은 벌레가 쏘아 아픈 것을 비유하였다. 찬물은 작물의 냉해(冷害)를 의미하며, 눌은밥은 정상적인 소출이 줄어드는 것에 비유하였다.

오곡밥먹기

상원날은 정월대보름을 말하며, 이날 아침밥은 다섯 가지 이상의 곡식을 섞어서 만든 밥을 지어서 먹으니 이것이 바로 오곡밥이다. 원래는 찹쌀과 팥, 콩, 기장, 조를 넣은 잡곡으로 지었으나, 보통은 찹쌀 대신 백미로 짓는 경향이 있다. 오곡밥은 탄수화물 위주의 편식하던 식습관에서 비타민이나 미네랄 그리고 식이섬유 등 여러 잡곡이 가진 영양소를 골고루 섭취함으로써 건강한 신체를 만들 수 있다고 믿었던 때문이다.

속을 따뜻하게 해주는 찹쌀과 비위의 열을 다스리는 차조를 비롯하여 콩과 팥은 쌀에 없는 비타민을 함유한 좋은 영양식이다. 수수는 소화가 잘 안 되지만 몸의 습(濕)을 없애주고 열을 내리며, 콩은 고단백으로 오장(五臟)을 보(保)하고 십이경락의 순환을 돕는다. 또 붉은 팥은 부종을 빼주고 이뇨작용(利尿作用)을 도우며, 화(火)와 열(熱)을 낮추는 작용을 한다. 따라서 차가운 성질을 가졌으니 체질에 따라 주의하여야 한다. 한편 오곡밥은 소화가 잘되지 않는 것도 알아두어야 한다.

오곡밥에 대한 정확한 유래는 알려지지 않으나, 예전에 씨앗으로 받아 놓았던 곡식을 골라 종자를 하고 남은 것을 섞어 지은 밥이라는 설(說)에 일리가 있다. 진채(陣菜) 역시 이제 곧 새로운 풋나물이 나올 터이니 묵은 나물을 모두 먹어 없애야 된다는 데서 비롯한 것이라는 설(說)도 그럴듯하다.

이날은 서로 다른 곡식을 넣어 만든 오곡밥으로 이웃끼리 나누어 먹는 여유도 가졌다. 이것은 나중에 제삿밥을 나누어 먹는 풍속으로 발전하였고, 여유가 있는 집에서는 헛제삿밥을 나누는 풍속까지도 만들어냈다. 제삿밥을 나누어 먹는 것은 제사를 지낸 다음 물린 음식을 나누는 미풍양속에 속한다. 이런 헛제삿밥은 경북 안동에서 성행하였는데 이웃사람들이 굶주린다든지 뭔가 다른 음식을 먹어야 하는 데 없어서 먹지 못하고 있을 때, 이를 가엽게 여겨 제사가 아니지만 제사(祭祀)를 지낸 척하며 거짓으로 꾸며 음식을 나누어 먹는 풍습이다.

백가반(百家飯) 먹기 대보름날에는 여러 집에서 얻어 온 오곡밥을 먹어야 좋다고 하였다. 이는 백(百) 집의 밥을 먹어야 좋다는 말로 해석되어, 일부러 다른 집을 찾아다니며 각기 다른 밥을 얻어오는 풍습이 있다. 이렇게 하면 여러 가지 재료로 만든 밥을 먹음으로써 영양을 골고루 섭취하는 수단으로 삼았었다.

또한 이렇게 걸식(乞食)을 하러 돌아다니면서, 겨우내 굳었던 몸을 풀어주는 효과도 있었으니 백가반을 먹지 않으면 발병(發病)하고 몸이 마른다는 말도 만들어냈다. 한편 걸식을 하여 얻은 밥에 걸맞게 아무데나 걸터앉아, 따라다니는 개에게도 동등하게 나누어 주면서 같이 먹어야 무병(無病)하다고 하였다.

그러나 개에게 보름날 아침밥을 주면 1년 내내 파리가 들끓고 질병이 번진다는 속설도 있다. 따라서 어떤 지방에서는 개를 온 종일 굶기는 경우도 있으며 어떤 지방에서는 오후에만 먹이는 곳도 있다. 이것을 ‘개보름’이라 하며, 명절에도 먹을 것이 부족한 사람을 일러 ‘개보름 쇠듯 한다.’고 하였다.

약밥(藥飯)먹기

약밥은 대보름 음식 중에 가장 대표적인 음식으로, 찹쌀을 찌고 대추, 밤, 기름, 꿀, 간장, 잣 등을 넣어 함께 버무린다. 여유가 있는 집에서는 그 외에도 호두, 팥, 밀, 조 등 10여 가지 이상을 넣어 만들기도 하였다. 그런데 이 약밥은 작은보름에 만들어서 하룻밤을 식힌 다음 대보름에 먹는 것이 특징하다. 뜨겁게 김이 나는 밥보다는 김을 빼고 식혀 먹는 오곡밥이 밥맛도 더 좋은 것과 무관하지 않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신라 소지왕(炤智王) 10년 정월 보름날에 왕이 천천정(天泉亭)에 행차하였을 때 갑자기 까마귀가 날아들었다. 이 까마귀가 지금 내전(內殿)에서 승(僧)과 궁주(宮主)가 잠통(潛通)한다는 사실을 왕에게 알려주었다는 고사(故事)에서 비롯되었다. 따라서 정월대보름을 오기일(烏忌日)이라 하고, 그 뒤로 보름날에는 까마귀 제사상에 까마귀와 같이 검은 약밥을 만들어 놓아 그 은혜에 보답하는 것이다.

약식(藥食)은 좋은 찹쌀을 물에 충분히 불린 후 고두밥을 찌고, 대추살과 황률(黃栗) 불린 것과 꿀, 참기름, 전래 간장(眞醬), 흑설탕을 넣어 버무린다. 이것을 시루나 질그릇 밥통에 넣고 약한 불에서 오래도록 쪄낸 다음, 잣으로 고명을 얹는다. 이 약밥 혹은 약식은 죽은 사람의 제사상에는 물론이며 각종 잔칫상에도 빠지지 않는 전통 음식이 되었다.

 

진채(陣菜)먹기

보름날 아침 밥상에는 오곡밥과 작년 가을에 준비해두었던 묵은 나물 즉 진채(陣菜)를 먹었는데 호박고지, 곰취, 박나물, 표고버섯, 시래기, 박고지, 무고지, 외고지, 가지나물, 석이버섯, 표고버섯, 호박나물, 시금치나물, 고사리, 도라지, 숙주나물, 토란줄기, 나물빈대떡, 나물비빔국수 등 여름에 말려 두었던 온갖 나물을 삶아 먹었다. 이때 9가지 이상의 나물을 볶아야 진채먹기가 된다.

무는 한자로 나복(蘿蔔)이라고 하며 청근채(菁根菜)라고도 한다. 시래기나물 역시 청경채(菁莖寀)라는 별도의 이름을 붙여준 것을 보아도 우리 몸에 아주 좋은 채소임을 알 수 있다. 여름에 나는 채소를 겨울에 먹는 방법으로 말리기도 하였지만, 이는 태양에 말리면 없던 영양소가 생겨나고 우리 몸에 더 좋게 변한다는 것을 십분 활용한 셈이다. 이렇게 여름에 말린 나물을 먹음으로써 부족한 영양분의 보충을 꾀했던 것이다.

마른 나물은 젖은 나물에 비해 훨씬 많은 식이섬유를 가지고 있어서 변비나 대장암 예방에 효과적이다. 현재는 이런 음식들을 보완하여 쇠고기산적푸성귀냉채, 버섯나물옥수수볶음밥, 복어포찹쌀구이, 삼색나물잡채달걀말이, 쇠고기콩나물매콤찌개, 찐조기매콤양념조림, 물김치, 나박김치 등을 만들어먹기도 한다.

이런 내용은 『형초세시기(荊楚歲時記)』에서 인일(人日)에 일곱 가지 나물로 국을 끓여 먹는다고 하였으나, 언제부터인지 알 수 없으나 정월대보름까지 옮겨와 전하고 있다.

 

귀밝이술(耳明酒)

상원날 이른 아침에 술을 마시면 귀가 밝아진다고 믿어 모두 술 한 잔씩을 마시는데 이를 ‘귀밝이술’이라고 한다. 귀밝이술은 따뜻하게 데우지 않고 찬 술을 그냥 마시며, 일설에는 귀가 밝아지는 것은 물론 일 년 동안 좋은 소식만을 듣는다고도 믿었다. 그러기에 귀밝이술은 부녀자와 아이를 가리지 않고 남녀노소가 마셨는데, 예전의 술은 다른 약품을 넣지 않고 집에서 만든 전통주로 유산균을 비롯하여 각종 효소가 들어 있어서 과음만 하지 않는다면 몸에 좋았던 것이다.

섭정규(葉廷珪)가 지은『해록쇄사(海錄碎事)』에는 춘사일(春社日) 아침에 귀밝이술을 마신다고 하였는데 일반적으로 보름날에 마신다. 여기에 나오는 사일(社日)은 춘분 및 추분에서 가장 가까운 앞뒤의 무일(戊日)을 말한다. 풀어보면 입춘(立春)이나 입추(立秋)가 지난 뒤, 각각 다섯 번째로 맞는 무일(戊日)을 말하며 춘분 때는 춘사(春社)라 하고 추분 때는 추사(秋社)라 한다.

복쌈먹기

대보름날 아침밥을 먹을 때 첫술은 꼭 쌈을 싸서 먹는데 이를 ‘복(福)쌈’이라고 한다. 복을 받아 오래 살라는 의미에서 ‘명(命)쌈’이라고도 한다. 이렇게 하면 들어왔던 모든 복이 나갈 수가 없어 집안이 1년 내내 좋을 뿐 아니라 여름에 더위를 타지 않는다고 한다. 잎이 넓은 채소에 여러 가지 복을 담은 후 나가지 못하도록 꼭꼭 싸서 먹는 것이다. 요즘의 쌈밥은 넓은 잎채소가 아니더라도 모든 엽채류를 사용하니 직접 비교하기는 그렇지만, 묵은김치 배춧잎에 돼지고기와 홍어 삭힌 것을 싸서 먹는 삼합에 비유하면 더 어울릴 듯하다.

이때 쌈의 재료로는 아주까리 잎이나 취나물, 배춧잎, 토란잎 등을 사용하였고 미처 준비가 되지 않은 집에서는 김을 대용하기도 하였다. 사실 현재도 김은 대보름날의 음식 중에서 필수로 꼽히며, 모든 잔치나 기념일에 등장하여 무병장수를 기원하며 쌈을 싸먹는 음식으로 남아 있다.

청어 구워먹기

대보름에 아침밥을 먹을 때 청어(靑魚)를 통째로 구워서 먹었다. 만약 생선을 자르게 되면 논두렁에 구멍이 나서 물이 새며 쥐가 드나든다고 하여 좋지 않게 여긴 때문이다. 또 날것으로 먹으면 몸에 비루가 생긴다고 하여 반드시 구워먹도록 하였다. 요즘은 청어가 귀하여 다른 생선으로 대체되기도 한다. 비루란 개나 말 따위에 번지는 피부병의 일종으로, 고대소설『박씨전』에 나오는 비루먹은 말이 유명하다.

12.7 대보름과 현실

대보름이 되면 밥을 아홉 그릇을 먹어야 한다는 말이 있다. 말이 그렇지 하루에 아홉 그릇의 밥을 먹으려면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불가능한 일이다. 이런 말은 춥다고 하여 온 종일 방안에서 놀지만 말고 밖에 나가서 땔감을 아홉 지게를 해 와야 한다는 말을 만들었다.

달리 해석하면 서로 다른 아홉 집의 음식을 얻어다 골고루 나누어 먹는다는 의미도 있다. 물론 이때도 자기네와 비슷하지 않고 조금은 색다를 것 같은 아홉 집을 돌아다니면서 음식을 얻어 오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것 역시 정적(靜的)인 것보다 동적(動的)인 활동을 강조하였던 것으로 생각된다. 뿐만 아니라 미처 설날에 세배를 드리지 못한 어른들이 있다면 이 기회를 빌려 세배를 다니는 것도 겸했을 법하다.

저녁 무렵이면 동네 아이들이 모여 불놀이를 즐겼다. 대체로 골목에 모이지만 어떤 때는 넓은 들판에 나가는 경우도 있는데 어른들은 따라 나서지 않았다. 그래서 간혹 쥐불놀이를 하다가 초가집에 화재(火災)가 발생하기도 하였다. 마른 짚은 불에 취약하기 때문에 각별한 주의가 필요한 놀이였다. 추운 겨울날 불을 끄기 위해 부은 물이 얼어붙어 고드름을 만들면, 동네 사람들은 아쉬운 마음을 어쩌지 못하고 걱정하기도 하였었다. 지금이야 불에 잘 타지 않는 재료로 집을 짓고 있어 다행히라는 생각이 들지만, 예전의 쥐불놀이에 안전한 방법을 동원했더라면 좀 더 오랫동안 전(傳)할 수 있는 풍습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본다.

대보름을 포함하여 추운 겨울날에도 아이들은 동네 고샅에 모여 연날리기는 물론 널뛰기와 팽이치기, 얼음썰매타기, 제기차기, 팔방놀이, 땅따먹기, 숨바꼭질, 동서남북, 말뚝박기, 자치기, 굴렁쇠굴리기, 고누, 투호, 고리던지기, 구슬치기, 벽치기 등을 즐겼다. 예전의 아이들은 당시 놀이기구가 많지 않아 놀기에 재미가 없었을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위의 놀이를 생각하면 요즘 아이들에 비해 결코 종류가 적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어떻게 생각하면 몸과 마음을 동시에 활용하는 놀이로 심신을 단련할 수 있는 더 좋은 기회였다고 할 것이다. 고샅은 동네의 입구 혹은 동네에 막 들어선 곳을 가리지 않고 사람이 많이 다니는 골목 등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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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전국의 해당 행사 사진 500여 장을 첨부하여 '선조들의 삶, 세시풍속이야기'라는 책으로 출판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