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것들/1년 24절기와 세시풍속

16. 초파일(初八日)

꿈꾸는 세상살이 2014. 9. 7. 05:51

16. 초파일(初八日)

기본적으로 초파일이라 함은 음력 8일을 말한다. 이는 매월 초에 있는 8일에 해당하는 날로, 모든 달의 8일에 공통으로 적용된다. 그런데 불교에서 말하는 석가탄신일(釋伽誕辰日)이 마침 4월 8일이어서 초파일행사가 겹치는 바람에 더욱 중요한 날로 여겼다가, 이제는 4월 초파일이 그냥 불교행사의 초파일로 굳어진 것이다. 한편 원래의 초팔일(初八日)은 국어의 음운법칙(音韻法則)에 따라 초파일(初八日)로 부르게 되었다. 초파일에 행하는 행사로는 욕불행사(浴佛行事), 연등행사(燃燈行事), 제등행렬(提燈行列), 방생(放生)을 들 수 있다.

16.1 초파일의 유래

불교에서는 부처님 오신 날이 음력으로 4월 8일이라 하여 이날에 행사를 하였다. 이날이 석가모니의 탄생일이니만큼 특별히 기리고 축원하여 왔기에 계속하여 기념하고 있는 것이다. 가장 두드러진 행사로는 연등행사를 꼽을 수 있고, 대표 사상인 살생금지(殺生禁止)에 따라 방생(放生)하는 일이다.

초파일은 석탄일 혹은 불탄일 등 많은 이름으로 불리다가, 현재는 부처님오신날로 통용되며 국가의 공휴일로 지정되어 있다. 동남아국가에서는 음력 4월 15일을 석가탄신일로 치며, 일본은 양력 4월 8일, 1956년 11월 세계불교도대회에서는 양력 5월 15일로 정하였고, 유엔(UN)에서는 1998년 스리랑카의 세계불교도대회 결의안을 인용하여 양력 5월 중 보름달이 뜨는 날로 정한 바 있다.

16.2 연등행사

초파일이 되면 절에서는 등을 밝히고 축원을 하는 데 이것을 연등행사라 한다. 원래는 등에 불을 밝히는 것이 연등(燃燈)인데 이것이 연꽃의 연(蓮)과 발음이 같기도 하지만, 불교의 상징이 연꽃을 표방하기도 하여 많은 사람들은 연꽃 모양의 등을 설치하는 행사로 받아들이고 있다. 이 행사는 다음 날인 초아흐레까지 이어졌다. 특별히 이날은 야간통행의 제한이 풀리는 날이었다.

연등(燃燈)의 유래

초파일의 연등(燃燈) 행사는 신라 때부터 전해오는데, 농사(農事) 기도(祈禱)와 국가발전을 기원하던 종합예술제 즉 연등회(燃燈會)에서 비롯되었다고 보는 설이 많다. 그런가 하면 고려 시대에는 궁중의 팔관회(八關會)와 함께 민간의 연등회(燃燈會)가 거행되었다고 한다. 이는 호국불교를 주창하던 국가적 차원의 성대한 불교의식(佛敎儀式) 행사로 발전하게 되었다.

한편,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 따르면 중국의 연등행사가 정월대보름에 열리는 것과 같이 우리나라도 정월대보름에 열려왔으나, 여말선초(麗末鮮初)의 문신(文臣) 최이(崔迤)가 4월 8일로 옮겼다고 한다.

연등의 종류

등(燈)의 종류로는 수박등, 마늘등, 연꽃등과 같이 채과류(菜果類) 모양을 한 등이 있는가 하면, 종등, 북등, 누각등, 화분등, 가마등, 병등, 항아리등과 같이 기물(器物)의 모양을 한 등도 있다. 또 용등, 봉황등, 학등, 잉어등, 거북등, 자라등과 같이 동물(動物)의 모양을 한 등도 있고, 칠성등, 오행등, 일월등과 같이 천문(天文)의 모양을 한 등(燈)도 있으며, 수복등(壽福燈), 태평등(太平燈), 만세등(萬歲燈), 남산등(南山燈)과 같이 상징적인 문자나 의미를 부여한 등(燈)처럼 아주 다양한 등들이 설치되었다.  

연등

불교에서는 이날을 욕불일(浴佛日)로 삼아 부처의 몸을 목욕시키고 있다. 이것은 완벽하다고 믿는 부처를 더 깨끗해지라고 목욕시킨다기보다는 부처처럼 자신도 깨끗해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행하는 대리행위라고 볼 수 있다.

이날은 누구든지 절에 찾아가서 축원하면서 식구들 수만큼 연등을 한다. 이때 등은 형형색색을 띠며, 모양도 그냥 단순한 것부터 꽃 모양이나 물고기 모양 혹은 동물 모양과 같이 다양하다. 쓰이는 재료로는 종이와 비단을 사용하였으며, 각종 글씨와 그림을 그려 화려하게 만들었다. 그림의 소재로는 고사(故事)에 나오는 인물상이나 동물 등으로 천태만상(千態萬象)을 표현하였다. 그러나 요즘에는 바쁜 일상으로 인하여 연꽃을 형상화한 등(燈)이나 그냥 둥근 기둥 모양을 한 연등(燃燈)을 공장에서 대량생산하며, 색도 단순하게 칠하여 사용하는 정도다.

연등행사를 실시하던 시기를 봐도 신라 때에는 정월대보름에 행해지다가 고려 때에는 정월 14일 즉 소회일과 15일인 보름 즉 대회일에 실시하였으며, 근래로는 석가모니의 탄생일에 불을 밝히는 데서 유래하였다. 이날은 과일과 술(果酒), 그리고 노래와 춤(歌舞)을 통하여 제불(諸佛)과 천지신명(天地神明)께 기원하던 제전이다.

이런 연등회(燃燈會)가 고려 태조에는 1월 15일, 현종 때는 2월 15일, 고려 공민왕 때는 4월 8일에 행해졌다. 조선 시대에 와서는 억불숭유정책(抑佛崇儒政策)에 따라 왕실의 자체 연등회에 그쳤다가 그것마저 사라지게 된다. 하지만 사찰과 조선의 백성들은 꾸준히 지켜와 현재의 민간행사로 굳어졌다.

이렇게 일정한 날에 실시하던 연등행사가 고려 고종 때에 4월 초파일로 옮겨온 것은 불교국가답게 석가탄신일을 중요시한 데서 연유한다. 『고려사(高麗史)』에 의하면 최충헌의 아들 최이(崔怡)가 주도하였다는 것도 그런 맥락이다.

그러나 연등행사는 초파일에 그것도 절에서만 하는 것은 아니다. 바닷가에서는 1년 동안의 무사를 빌며 풍어를 기원하는 연등도 성행하였다. 또한 섣달 그믐날에 연등을 하여 정월까지 걸어두었다. 일부에서는 정초(正初) 연등행사를 하면서 음식을 얻고, 이것으로 간단한 제사를 지낸 후 형편이 곤란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면서 끝내는 곳도 있다.

연등놀이

초파일이 되면 절에 등을 다는데, 단 하루만 달기로 하면 아주 싱거운 일이 되고 말 것이다. 그래서 고려 풍속에는 초파일이 되기 수십 일 전부터 초파일 당일을 재촉하는 행사를 벌이고 있었음이 보인다. 아이들은 종이를 잘라 등불을 달 장대 즉 등간(燈竿)에 매달아 깃발을 만든 후, 등간을 들고 거리를 돌아다니면서 돈이나 쌀을 얻는 걸립(乞粒)을 하였다. 이런 행위를 통틀어 호기(呼旗)라 하는 데, 보통은 4월 초아흐레 즉 초파일 다음 날에 그쳤다. 등간을 만들 때는 집에 있는 자녀 수만큼 만들고, 등간의 꼭대기에는 꿩의 깃을 세워 장식도 하였다. 이런 등(燈)을 바라보는 것이 관등(觀燈)이며, 이런 때를 관등절(觀燈節)이라 한다.

연등놀이를 하는 초파일 저녁을 특별히 등석(燈夕)이라 부르는데, 이날은 모든 사람들이 산에 올라가 달아 놓은 등(燈)을 구경하였다. 흥이 오른 사람들은 등을 들고 거리를 쏘다니거나 악기를 연주하였는데 이를 제등행렬(提燈行列)이라고 한다. 이런 제등행렬은 밤새도록 이어지기도 하였다.

한편에서는 낙화희(落火戱)라고 해서 일종의 불꽃놀이를 즐겼다. 등간(燈竿)의 등이 달린 줄에 불주머니를 매달고 불을 붙여 터뜨리는 놀이다. 이 불주머니 속에는 오래 탈 수 있는 숯과 함께 깨뜨린 사금파리 조각을 넣어두었는데, 이는 발갛게 달궈진 사기조각이 땅에 떨어지면서 화려하게 퍼지는 것을 감상하는 것이다.

16.3 초파일의 풍속

초파일의 풍속은 불교의 풍속에 속한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따라서 대표적 행사인 연등행사와 종교적인 세부 사항은 생략하고, 일반적으로 전하는 몇 가지만 살펴본다.

물장구 놀이(水鼓戱)

아이들은 물이 담긴 물동이를 등(燈) 아래에 갖다놓고, 바가지를 엎어 놓은 다음 바가지를 두드리는 놀이다. 이때 물 위에 바가지가 뜨면서 공간이 생기고, 그곳에 공기가 들어가서 두드리면 둔탁한 소리를 내게 되는 것이다. 이는 물속에서 북을 치는 것과 같아 수고희(水鼓戱)라 하며, 우리말로 물장구놀이라 부르게 되었다.

봉숭아물들이기

초파일은 양력으로 5월에 해당한다. 이때 소녀들은 들과 길가에 피어 있는 봉숭아꽃을 따다가 손톱에 봉숭아물을 들였다. 붉은 꽃을 따다가 찧으면 진액이 나오는데 여기에 백반을 섞으면 색도 더 진하게 되고 물도 잘 든다. 요즘에도 이 풍속은 계속 전해오고 있다.

봉숭아물을 들인 손톱도 자라나면 계속하여 잘라주는데, 첫눈이 올 때까지 흔적이 남아 있으면 첫사랑이 이루어진다는 속설도 전한다. 그러나 봉숭아물을 들인 후 첫눈이 오기까지는 대체로 5개월이 걸리며, 대체로 혈기가 왕성한 사람은 손톱이 빨리 자라서 그간에 다 없어지는 시점이 된다. 그렇다면 봉숭아물을 늦게 들인 사람이라든지 손톱이 천천히 자란 사람들만이 첫사랑을 이룰 수 있게 된다는 결론인데, 이는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는 말을 둘러붙인 선조들의 해학(諧謔)이 돋보인다.

탑돌이

이날에는 절에 있는 탑을 돌면서 자신의 소원성취를 빌었다. 그런데 하나의 탑을 반복하여 돌면 지루하기도 하여 쉽게 그만두고 만다. 따라서 계속하여 탑을 돌게 하는 방편으로 3개 이상의 절에 있는 탑을 돌면 더 많은 소원을 성취한다고 하였다. 그러나 사실 여러 개의 절을 돌아다니면서 열심을 내면 그만큼 더 정성을 드리게 되는 것이므로, 자신이 수양됨은 물론이며 남들도 그렇게 보아줄 것이기에 소원이 이루어질 확률이 더 높아지는 것은 당연하였을 것이다. 특별히 윤달에 세 곳의 절을 찾아 기도를 드리면 액운을 물리칠 수 있다고 하여 3사순례(三寺巡禮)가 성행하였다.

사찰 불공

윤달이 되면 부녀자들은 전국의 큰 사찰(寺刹)에 찾아가서 부처를 모셔 놓은 제단 즉 불탑(佛榻)에 돈을 놓고 불공(佛供)을 드려왔다. 이는 치성(致誠)을 드리면 죽은 후에 극락(極樂)에 간다고 믿었기에 지금도 윤달이 시작되자마자 정성껏 불공을 드리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윤달은 덤으로 있는 달이니 귀신들도 달력으로 계산을 하지 못하는 달이다. 따라서 윤달에 수의를 해놓거나 집을 고치는 등 궂은일을 하였다. 사찰에서 윤달에 행하는 특별한 일을 꼽는다면 불탑을 돌고 불공을 드리는 일이라 할 것이다, 이것은 평상시에 해도 되는 일이지만 특히 윤달에 하면 아주 좋은 효험을 본다고 믿었던 때문이다.

방생(放生)

불교에서는 해마다 다른 사람들이 잡아 온 들짐승이나 물고기를 자연으로 살려 보내는 행사를 하는 데 이를 방생회(放生會)라 한다. 주로 초파일과 8월 보름에 실시한다.

초파일에 불교와 관련이 없어 보이는 풍습으로는 충남 천안에서 행하던 촛불태우기가 있다. 초파일에 초를 태워 잘 타지 않으면서 검은 연기와 그을음이 많이 나면 그해에 좋지 않다는 것을 의미하는 점괘다. 촛불태우기는 전북 진안에서도 행해지던 풍습이다. 또 이날 비가 오면 물이 풍부하여 농사가 잘된다고 믿었다. 또 정월대보름부터 시작된 석전(石戰)도 초파일과 단오를 포함하여 봄에 행해지던 풍속이다.

16.4 초파일의 시절 음식(時節飮食)

봄이 지나가고 여름이 시작되는 음력 4월은 실제로 입하(立夏)에 즈음한다. 이때는 계절의 미각(味覺)을 자랑하는 각종 나물과 다양한 음식들이 즐비하다. 그러나 초파일의 시절 음식이라 함은 날짜 자체에 관련된 음식이 아니라 종교적인 초파일에 관련된 음식이므로 지극히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이날 절에서는 절을 찾은 모든 사람들에게 소반(素飯)으로 점심을 대접하는 풍속이 있다.

소반(素飯)

불가(佛家)에서는 살생(殺生)을 금하기 때문에 동물의 고기가 들어간 음식은 먹지 않는다. 또한 향이 진하거나 맛이 강한 식재료도 사용하지 않는다. 이에 준하여 초파일에는 느릅떡(楡葉餠)이나 볶은 콩 그리고 삶은 미나리 등 식물재료로 상을 차리고 손님을 맞아 음식을 대접하였다. 이는 본래의 기본만 갖춘 소박한 밥상이라는 뜻으로 소반(素飯)이라 부른다.

증편(蒸餠)

찹쌀가루를 반죽하여 조각조각 떼어 술을 넣고 찌면 부풀어 오르는데 이것을 동그란 방울 모양으로 만든다. 콩을 삶아 소(巢)를 만들고 꿀과 함께 동그란 떡 속에 넣는다. 그 위에 대추의 살을 발라 쪄내면 먹음직스런 증편(蒸餠)이 된다. 증편은 당귀잎 가루를 섞어서 푸른 빛깔을 내기도 하는 데, 한식날의 시절 음식인 밀가루 증편에서 유래되었다고 보여진다.

화전(花煎)

4월에도 삼월 삼짇날에 즐겼던 화전을 먹는다. 이때는 두견화 대신 장미꽃을 찹쌀가루에 섞어 반죽한 후 기름에 지져 먹었는데, 기름에 지지기 때문에 유전(油煎)이라 부르기도 한다. 모든 꽃을 사용하여 밀가루에 무쳐 지져 먹으면 화전(花煎)이 되고, 모든 재료를 기름에 지져 먹으면 유전(油煎)이 되는 것이다.

이 밖에도 연한 느티나무 잎을 쌀가루에 섞어 만든 느티설기떡과 상추와 멥쌀을 섞어 만든 상추떡, 대추떡, 볶은 콩, 녹두편, 비빔국수, 어만두, 미나리나물 등을 들 수 있다.

위어(葦魚)

『열양세시기(洌陽歲時記)』에 의하면 4월 초에 바다의 조수를 타고 한양으로 거슬러 오는 물고기가 있는데, 행주지방에서 가장 많이 나고 맛도 가장 좋다고 하였다. 따라서 3월과 5월 사이 이 물고기를 배불리 먹지 않은 사람이 없을 정도라고 하였다. 덩치가 크지 않은 생선인데다 이 시기를 지나면 뼈마저 억세어져서 먹기가 곤란해진다. 또한 산란 등 생육을 위하여 고유의 독성이 발생하여 먹기가 쉽지 않다. 이 물고기가 위어로 일부 부여나 개성에서도 나온다고 하였으며 다른 말로 제어(鱭魚)라고도 하는 데 지방에 따라 우어라고도 한다. 우어의 표준말은 웅어다. 요즘은 강 하구를 막아 둑을 쌓은 관계로 해수유통이 잘 되지 않는 곳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물고기가 되었다. 간혹 잡힌다고 하여도 예전의 위어와 달라 민물에서만 자라는 변종(變種)으로 보아야 한다.

16.5 사찰의 일반사항

기독교인들이 교회에 가는 것과 비교하여, 불교도가 아닌 사람들도 사찰에 간다는 것이 특이하다. 물론 교회도 일반인들에게 주차장을 개방하고는 있지만, 그에 비해 사찰이 가지는 넓은 정원과 자연환경 그리고 사찰마다 다른 뭔가가 있는 것도 하나의 차이점이라 할 것이다. 오랜 역사를 거치면서 차별화를 시킨 경우도 있겠으며, 오래 보존하다 보니 희귀성에 기인한 독창성 등이 존재하는 것도 포함된다. 반면 우리나라에 들어 온 기독교는 불교에 비해 그다지 오래지 않는 역사의 세월로 인해 차별화되지 못했으며, 일상사와 보편 일반화된 것을 비교할 수 있다.

우선 사찰에 가는 길은 꼬불꼬불한 산길이 연상되며, 조용하고 아늑한 산세(山勢)를 떠올리게 한다. 정말 그런 곳에서 수양을 하면 더욱 정진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도 해본다. 삼국시대나 고려 시대처럼 호국불교이던 시절에는 사찰이 도심에 있었지만, 조선의 유교정책에 의해 점차 민가에서 먼 곳으로 이격되어 만들어졌다. 그런 사찰에 들어가 처음 맞는 것은 뭐니뭐니해도 일주문이다.

일주문은 기둥이 하나라는 문이다. 문(門)의 기둥이 하나라면 어떻게 서 있을까. 물론 진짜 하나라는 뜻은 아니며, 횡(橫)으로는 일련의 나열된 기둥을 가지고 있으며, 종(縱)으로는 하나의 문이다. 그래도 외발로 서서 태풍도 맞고 눈도 견뎌내는 것을 보면 참으로 신기하기만 하다. 일주문은 속세와 성스러운 세계를 이어주는 문이기도 하며, 때로는 둘을 구분하는 문이기도 하다.

다음에 만나는 것은 천왕문(天王門)이다. 천왕문은 불법(佛法)을 수호하는 외호신(外護神)인 사천왕(四天王)이 동서남북에 있는 곳이다. 외호신은 불국정토(佛國淨土)의 외곽 둘레를 맡은 신(神)을 말한다. 다음은 당간(幢竿)으로 사찰에 따라 고유의 학풍(學風)이나 사찰 특유의 규율(規律) 등을 알리는 표식을 의미한다. 이는 높이 메달아 놓아 멀리서 보아도 한눈에 알고 조심하라는 뜻도 된다. 대개는 한 사찰에 하나의 당간이 있는데, 전북 익산의 미륵사지나 경북 경주의 황룡사와 같이 두 개의 당간이 있는 경우도 있다. 이런 때는 사찰 중의 으뜸이 되거나 국가사찰에서만 그랬을 것이라는 해석이 뒤따른다.

사찰에서 당간(幢竿)처럼 높게 세워 놓은 것은 바로 탑이다. 탑에는 목탑(木塔)과 석탑(石塔)이 있는데, 일부에서는 벽돌로 쌓은 전탑 혹은 돌을 벽돌처럼 깎아서 만든 전탑도 발견할 수 있다. 시대별로 다루기 쉬운 목탑에서 정교한 기술로 다루어야 하는 석탑으로 변이되어왔음도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전탑(塼塔)은 일본이나 중국에서 성행하였던 것으로 우리의 고유 양식과는 약간 다른 맛이 있다.

하나의 사찰을 대표하는 탑은 하나가 보통이나 역시 미륵사지에서는 세 개의 탑이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두 개의 석탑은 동서(東西)에 있고 그 중앙에 목탑이 있어서 아주 큰 규모였다는 것은 물론, 사찰의 구조면에서도 특이했던 것을 짐작할 수 있다. 경주 불국사에서 두 개의 석탑이 발견된 것도 예삿일은 아니다.

탑은 부처의 사리를 보존하는 곳이다. 따라서 탑은 불교의 상징이며, 종교행위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부도는 부처가 아닌 구도자 즉 보살의 유물을 보관하는 곳이지만, 현재는 부처의 탑이 아닌 스님의 탑을 승탑이라 명명하여 부르기도 한다. 이러한 승탑(僧塔)과 부도(浮屠), 탑비(塔碑)를 모아 놓은 곳이 부도전(浮屠壂)이다. 그러나 현재는 부도 역시 신앙의 대상으로 삼는 경향이 있다.

다음으로 불상(佛像)을 모시고 진리를 탐구하는 본당(本堂)을 만날 수 있다. 본당은 대체로 대웅전(大雄殿)이라 부르기도 하며, 사찰에서 모신 부처나 보살의 종류에 따라 미륵전이나 대적광전, 극락전, 원통전, 명부전, 삼성각처럼 다른 이름을 붙여 사용하기도 한다. 보통은 1부처에 2보살을 협시불로 하여 양쪽에 봉안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대웅전도 하나의 사찰에 하나씩 대응하는 1원1가람이 보통이나, 미륵사지에서는 세 개의 대웅전을 하여 세 개의 탑이 있는 것은 물론 두 개의 당간이 함께 존재하는 1원3가람배치로 다른 곳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구조를 하고 있다.

대웅전과 불탑 사이의 중간에 석등이 있는 것이 일반적이다. 석등(石燈)은 불을 밝히는 등을 놓은 곳이다. 비바람에 견뎌야 하는 이유로 돌로 만들었던 석등들이 지금까지 전하는 원인이 된다. 석탑에 비해 목탑이 있었다는 기록은 있어도, 석등 대신 목등이 있었다는 기록은 아직 발견하지 못하였다. 다음에 연상할 수 있는 것이 회랑이다. 회랑(回廊)은 글자 그대로 둘러싸여 있는 복도를 말한다. 이는 대웅전을 둘러 있는 선원(禪院) 혹은 강원(講院)과 요사채 즉 승방(僧房) 등의 건물을 돌아다닐 수 있도록 복도로 연결한 것을 말한다.

16.6 사찰에서의 행동

절에서는 떠들거나 경거망동하는 행동을 하면 안 된다. 하긴 이것은 절뿐만 아니라 교회나 다른 어떤 신앙의 공간에서도 지켜져야 할 덕목(德目)이라 할 것이다.

절에는 모든 생명을 존중하는 마음이 담겨져 있는데, 이는 기독교에서 다른 동물들은 사람의 생존을 위하여 다루어도 되는 것과는 다른 면이다. 또한 절이 위치한 곳의 주변 경개가 좋으니 이를 보는 어떤 한 사람의 목적만을 위하여 훼손하여서도 안 된다. 여러 사람들이 같이 즐기고 같이 감상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여야 하기 때문이다.

절에서의 복장은 너무 화려해서도 안 된다. 그것은 사찰의 스님들이 속세를 잊고 수행하는 과정이기 때문에, 이들을 자극하는 것은 도리(道理)에 어긋나는 행동이며 진리탐구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법당(法堂)에 들어설 때에도 일반 신도들은 건물의 좌우에 난 문을 이용하여야 한다. 전면(前面)의 중앙에 있는 문은 부처 즉 주지승이나 가르치는 사람들이 드나드는 문이다. 그리고 좌우에 난 문을 통해 들어섰다고 해도 불상을 바라보면서 중앙에 앉는 것도 피해야 한다. 이곳 역시 일반수행자의 자리가 아닌 때문이다. 이런 내용들은 아직도 엄격히 지켜오고 있는 부분이다.

사찰에 가서 향불을 피울 때에도 기다란 막대 모양을 한 향을 불사를 경우가 있다. 이때는 기존에 붙여져 있는 촛불을 이용하거나 새로 성냥을 그어 불을 붙이면 된다. 그리고 불은 입으로 훅하고 불어서 끄면 안 되며, 그냥 좌우로 흔들어서 끈 후 향을 꽂아야 된다.

예불은 정확하지는 않지만 새벽 3, 4시경의 아침과, 점심, 오후 6, 7시경의 저녁예불로 세 번에 나누어 드린다. 이때는 더욱 조심하여 소란스럽게 해서도 안 되며, 특히 북을 친다든지 뛰어다닌다든지 하는 행동은 삼가야 한다.

16.7 초파일과 현실

불교도가 아닌 사람들에게도 초파일은 특별한 날이다. 우선 전 국민이 하루 휴일로 맞아 기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은 연등행사를 하였거나 제등행렬에 참가해본 적이 없다. 일부러 절에 찾아가서 격식을 갖추는 것은 더더욱 그렇다. 이것은 초파일의 행사가 너무도 불교적인 면에 치우쳐 있기 때문이라 말할 수 있다. 풀어보면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종교를 가지고 있으며, 그중 대다수는 기독교 계통에 적을 두고 있기 때문에 초파일은 관심사(關心事) 밖에 있다는 것이다.

이런 이유에서인지 몰라도 초파일에 대한 새로운 문화가 생겨나고 있다. 각 지자체마다 초파일에 커다란 행사를 개최하고 있는데, 따지고 보면 특이할 것도 없이 각설이타령이나 난장을 마련하여 그냥 하루를 즐기고 지내는 수준에 그친다. 다시 말하면 하나의 풍속을 지키거나 하나의 다른 풍속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그냥 우선 행하고 보는 일과성이라는 말이다. 이것은 새로운 풍속으로 이어서 후세에게 전해줄 만한지를 따지지 않고 있다는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초파일의 행사가 많이 열리는 것은 옛 풍속의 보존이라는 측면에서는 바람직하다고 할 수 있다. 여러 사람들이 알고 같이 느끼는 것이 바로 진정한 풍속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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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전국의 행사 사진 500여장을 첨부하여 책으로 출판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