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것들/1년 24절기와 세시풍속

18. 유두(流頭) - 유래, 풍속, 농사일, 두레, 먹을거리, 유두와 현실

꿈꾸는 세상살이 2014. 9. 7. 05:59

18. 유두(流頭)

음력으로 6월 15일을 유두 또는 유두일(流頭日)이라 하는 데, 유두라는 말은 원래 ‘동류두목욕(東流頭沐浴)’에서 비롯된 말이다. 다시 말하면 유두일에 맑은 개울에 찾아가서 목욕을 하거나 머리를 감으며, 푸른빛이 돌아 참신한 데서 하루 동안 즐겼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청유(淸遊)로, 이렇게 하면 소서와 대서가 들어 있는 음력 6월 즉 한여름에 더위를 먹지 않는다고 믿었다.

18.1 유두의 유래

유두의 풍속은 신라 때에도 있었으며, 동쪽에서 흘러오는 냇가에 가서 머리를 감는 이유로는 동쪽은 맑은 청(淸)이요 양기(陽氣)가 왕성한 곳이기 때문에 동류(東流)를 택했다고 한다. 이는 상서(祥瑞)롭지 못한 기운을 제거하여 부정타지 않음으로써 신(神)의 노여움을 사지 않는다고 믿었던 때문이다.

이런 내용들은 고려 명종(明宗) 때 김극기(金克己)가 지은 『김거사집(金居士集)』에서 ‘신라 동도(東都) 지방에 전해 내려오는 풍속’으로 기록하고 있다. 여기서 동도는 현재의 경주를 의미하는 데, 문사(文士)들은 술과 안주를 장만하여 계곡이나 정자를 찾아가서 풍월을 읊고 하루를 즐기는 유두연(流頭宴)을 행했다.

우리 조상들은 매월 초하루와 15일이 되면 각종 행사를 하여 신에게 의지하고 자연과 동화되려는 노력을 많이 하였다. 기존의 24절기와 상관없이 지금도 매월 15일이 되면 유두나 백중처럼 여러 명칭을 가진 시절풍속이 있음이 그것을 증명하는 것들이다. 특히 유두에 대해서는 인근 국가인 일본이나 중국에서도 행하지 않는 우리 고유의 풍속이다.

18.2 유두풍속

유두는 농사로 말하면 농한기에 속한다. 따라서 잘 성장하여 많은 열매를 맺도록 제사를 지내기도 하였는데, 통틀어 농신제라 부른다. 그러나 언제 어디에 제사를 지내는가에 따라 유두고사, 칠석고사, 복제, 용왕제, 논고사, 밭고사, 참외제, 원두제 등으로 부르기도 한다. 강원도에서는 복제와 밭고사, 전북에서는 논고사, 전남에서는 용신제 등이 대표적 예다.

이날 제사에 사용된 음식은 물이 새어 나가지 말라고 논의 물꼬에 찰떡을 떼어 놓기도 하였다. 호박전은 전을 붙일 때 사용된 기름 냄새로 인하여 해충이 달아나도록 하는 기원이기도 하다.

유두일에는 유두천신(流頭薦新)을 하였는데 이는 새로 나온 햇과일을 준비하고 떡을 만들어 사당(祠堂)에 제사를 올리는 것이다. 지역에 따라서는 이를 유두차사(流頭茶祀)라 하는 데 간단한 제사(祭祀)라는 의미를 가진 차사(茶祀)에서 인용한 것이다. 이때 올려진 음식으로는 유월에 수확하는 밀과 옥수수, 감자 등이 있었고, 과일로는 자두와 참외, 수박이 있다. 특히 감자탕은 무를 넣지 않고 고기를 곁들여 맛을 내었다. 이런 행사는 내가 노력하여 수확한 것을 조상께 먼저 드림으로써 효성을 드러내고 선조의 음덕에 감사하는 마음을 표현하는 것이었다.

천신이 끝나면 유두연(流頭宴)을 열었고, 동쪽으로 흐르는 물에 머리를 감아 불길함을 씻어냈다. 또 폭포수 아래 들어 물을 맞는 물맞이를 하였다. 물맞이는 몸을 시원하게 하는 것은 물론 부스럼을 낫게 하여 건강한 피부를 가진다고 믿었다. 이러한 풍속은 경주와 상주에 전해오고 있다. 이런 6월이 오면 문학을 하는 사람들은 산에서 술을 마시며 피서를 즐기기도 하였다. 서울에서는 삼청동의 탕춘대, 천연동의 천연정, 정릉의 수석에서 성행하였다.

유두날에 천둥치면 유두할매뱅이가 운다고 하여 떡을 해서 논두렁에 뿌리기도 하는 데, 이는 떡을 먹고 노여움을 풀어 많은 수확을 하게 해달라는 기원의 의미다. 이런 일련의 행사를 전답제(田畓祭)라고 한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유두할매뱅이가 일찍 울면 이른 곡식에 풍년이 들고, 늦게 울면 늦은 곡식에 풍년이 든다고 믿었으니 지역에 따라 믿는 속설이 달랐던 것을 알 수 있다. 대체로 유두에 비가 오면 천수답에도 마지막 모내기를 할 수 있어 풍년이 든다고 믿었던 곳이 많았다. 그리고 유두날에 팥죽을 쑤어 먹으면 풍년이 온다는 말도 전한다. 한편, 호남지방에서는 유두할머니 대신 유두할아버지가 온다고 믿었다.

궁중에서는 건단(乾團)에 가루를 입힌 후 황금쟁반에 놓고 활쏘기를 하던 풍습도 있었다. 이는 비오는 날에 고온다습하여 훈련하기에 딱히 마땅하지 않은 때에도 유비무환의 한 끈을 놓지 않으려는 지혜라고 할 것이다. 군대는 항상 긴장하고 무장함으로써 일단 유사시에 즉각 활용하는 것에 그 목적이 있어 임무에 충실하였음을 알 수 있다.

궁궐(宮闕)에서는 종묘(宗廟)에 피, 기장, 조, 벼 등을 올려 제사(祭祀)를 지내고, 각 관청에는 여름철의 특별 하사품(下賜品)으로 얼음을 나누어주었다.

18.3 유두의 농사일

음력 6월이면 한창 논매기를 하는 때이다. 모를 심고 처음 김매기를 하면 이것을 초벌매기 혹은 애벌매기라 하였다. 여기서 말하는 애벌매기는 여러 번 매는 중에 처음 맨다는 뜻이다. 이 말은 다른 애벌빨래, 애벌구이, 애벌찧기 등에서도 쓰이는 말이다. 다른 말로 아시매기라고도 하지만 잘 사용하지 않는 단어이며, 애나 아시나 모두 일찍 혹은 처음이라는 뜻으로 같은 말이다.

다음은 두벌매기를 하고 마지막으로 세벌매기를 하는 데 이를 만물이라 불렀다. 한편, 초벌매기와 두벌매기는 호미를 사용하지만 세벌매기는 손으로 대충 훔쳐서 마무리한다. 이때는 잡초가 성장을 멈춰 더 이상 자라지 않기 때문에 그 수도 적어 일하기가 편하다는 증거다. 어떤 농가는 네 번 매기를 하는 데 이때를 만두리라 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것은 형편에 따른 것이지 원칙적으로 다른 것은 아니다. 이때의 만두리는 만물과 같은 의미이다.

밭에서도 풀매기가 한창이며, 잘 익은 고추를 초벌따기 혹은 두벌따기 하는 시기다. 논에서 사용하는 호미는 밭에서 사용한 호미보다 훨씬 크다. 그 이유로는 논에는 물기가 많아 잘 파지는 원인도 있지만, 논에 난 풀은 남자들이 손으로 매던 관습도 그 한 원인이다.

18.4 두레

예전 농촌에서는 모내기철과 논매기철에 두레날을 잡았다. 두레는 마을 단위의 공동 작업으로, 힘든 일을 혼자 하기 어려운 때에 서로 돕는 풍속을 만들어 냈던 것이다. 물론 공동작업이라 하여 무상으로 하는 것은 아니어서 그 일에 해당하는 사람은 적정한 금품을 내어 공동기금으로 적립하였다. 이는 협동과 상호부조 및 공동휴식의 의미를 지녔으며,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이라고 쓴 농기(農旗)을 앞세우고 농악(農樂)을 치며 마을 전체의 행사로 이끌었다.

공동작업인 두레에 참석한 사람들은 좌상(座上)의 구령에 따라 일사분란하게 움직였으며, 일할 때는 작업풍장, 행사나 특별한 날을 기릴 때는 의식풍장을 쳐서 사람들을 규합하였다. 지금도 풍장친다는 말이 있는데, 이는 농악을 앞세우고 어떤 목적을 이루기 위해 벌이는 공동의식을 말한다.

마침 김매기를 하는 동안 농악이 펼쳐지면 힘든 일을 수월하게 끝낼 수 있는 것은 물론이며, 마을의 협동심도 이끌어낼 수 있다. 이를 지역에 따라 김매기춤이라 부르기도 한다.

이때 빠지지 않는 것이 농요다. 우리의 농요는 각종 농사일을 하면서 힘들고 지쳤을 때 혹은 보다 많은 성과를 내기 위하여 피로를 더는 목적으로 불려졌다. 농요는 국가지정 중요무형문화재 제8호인데, 8-1호에 고성농요 그리고 8-2호에 예천 창명농요가 있다. 또 일부에서는 지방무형문화재로 여러 군데에서 지정하고 있다.

이런 농요는 모찌기, 모내기, 김매기 등 힘든 일을 하면서 부르던 농사용 노래를 말한다. 우리나라 민속 중 등짐을 져 나르는 농요와 몸짓이 함께 어우러진 것을 찾자면 유일하게 익산목발노래에서 만날 수 있다. 익산목발노래는 전라북도무형문화재 제1호로 지정되었는데, 초동(樵童)이 나무를 하거나 농부가 수확한 곡식을 나를 때 지게의 목발을 두드리면서 부르던 노동요에 속한다. 참고로 익산목발노래보존회는 2012년부터 ‘전국 농촌사랑농요부르기대회’를 개최하여 2013년에 제2회를 실시하였다.

18.5 유두의 먹을거리

음력 6월은 액달이다. 이것은 한여름의 더위와 습도로 인하여 음식이 빨리 상하여 자칫 액운을 몰고 온다는 말이다. 그러니 모든 음식은 신선하게 보관하는가 하면 만들어서 바로 먹을 수 있도록 하였다.

유두날 먹는 음식으로는 유두면, 수단, 건단, 밀전병, 밀쌈, 상추쌈, 규아상, 구절판, 연병 등이 있다. 유두면은 햇밀가루로 만든 국수를 닭국물에 말아먹는 것이다. 지금의 기다란 국수와 달라, 마치 염주 모양으로 만들며 오색물감을 들인 후 3개씩 꿰어 차고 다니거나 문지방에 매달아놓기도 한다. 이것은 3과 5라는 숫자가 양의 숫자로서 축귀(逐鬼) 효과를 얻는 다고 믿었던 것이다. 이 유두면을 먹으면 장수하며, 다가오는 여름에 더위를 먹지 않는다고 해서 즐겨 먹었다. 원래 유두면은 참밀가루로 구슬 모양으로 만든 누룩을 사용하여 빚은 것을 일컫는데, 조선 시대 음식에 사용된 가루는 대체로 메밀가루를 사용하였던 것이 특징이다.

그러나 자연에서 얻어지는 제철과일이 가장 중요한 먹을거리일 것이다. 참외, 수박, 오이, 토마토 등 풍부한 햇과일은 별도의 수고를 하지 않아도 입을 즐겁게 한다. 그런데 오이와 참외, 수박은 여름철의 대표적인 음(陰)의 음식이니 너무 많이 먹지 않도록 하여야 한다. 옥수수, 수수 등과 함께 한여름에 자라는 과일로 여름의 양기에 맞서 품고 있던 음기를 내뿜는 식물이라 할 것이다.

수단과 건단

유두에는 수단이나 건단을 즐겨 먹었다. 찹쌀이나 멥쌀가루를 빻아 잘 반죽한 후 구슬 모양으로 새알을 만든 후 떡을 빚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 떡을 꿀물에 담그고 얼음에 재워 두었다가 먹기 때문에 수단(水團) 또는 백단(白團)이라 부르고, 유두천신(流頭薦新)하는 제단에도 사용하였다. 한편 꿀물에 넣지 않은 것을 건단(乾團)이라 하여 마른 채로 그냥 먹기도 하였다. 보리수단에 시원한 과즙이나 오미자즙을 넣으면 훌륭한 음료가 된다.

또『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와 『세시잡기(歲時雜記)』에서 수단보다 작게 하여 물방울처럼 정교하게 만들어 먹는 것도 있다고 하면서, 이를 적분단(適粉團)이라 하였다. 그러나 수단은 단오와 유두를 가리지 않고 먹었던 음식으로 전한다. 물론 일자별로도 5월 5일인 단오와 6월 15일인 유두는 그리 멀지 않은 날짜로 이어진다.

각서(角黍)와 종(粽)

각서와 종은 각기 웃기떡의 하나로 찹쌀가루에 대추를 이겨 섞은 뒤 꿀에 반죽하고 송편 모양으로 만든 떡이다. 안에 들어가는 소는 팥이나 깨를 넣었으며, 기름에 지져내는 것으로 모양은 송편과 같으나 조리하는 과정이 다를 뿐이다. 또 각서와 종은 내용상으로 같으나 모양이나 위치 등 외형적인 면만 다르다. 이때 대추를 넣으면 대추주악, 밤을 넣으면 밤주악이 된다.

웃기떡은 합이나 접시에 떡을 담거나 괴고, 그 위에 모양을 내기 위하여 얹는 떡을 말한다. 요즘으로 말하면 냉면 위에 얹는 고명과 같으며, 세부적으로는 주악, 색절편, 산병 등이 있다. 주로 참기름을 발라 긴 꼬챙이에 꿰었으며, 혼례나 회갑처럼 큰상차림의 장식용으로 많이 쓰인다.

상화병과 연병

콩이나 깨에 꿀을 섞어 만든 소를 넣고 밀가루를 반죽으로 싸서 찐 것을 상화병이라고 한다. 또 연병은 밀가루를 기름에 지지고 나물로 만든 소를 싸서 각기 다른 모양으로 오므려 만든 음식이다. 입 모양은 만두와 같이 주름을 잡아 오므려 붙이고 찜통에 쪄내면 맛있는 연병이 된다.

수교의

수교의는 만두의 일종으로 밀을 갈아 고운채로 쳐서 밀기울은 버리고 가루를 사용한다. 물에 섞어 반죽을 하고 조금씩 떼어 방망이로 밀어 손바닥만 하게 만든다. 만두소의 재료로는 다진 쇠고기와 느타리버섯, 석이버섯, 고추, 계란지단을 채썰어 양념하여 볶아 만든다. 미리 밀어 놓은 밀가루에 소를 넣고 싸서 양쪽을 오므려 빚으면 만두와 같은 모양이 되고, 이것을 깔아 놓은 감잎에 놓고 찐 다음 참기름을 묻혀 낸다.

구절판

구절판은 아홉 칸으로 나누어진 그릇이라는 뜻으로 붙여진 이름에서 시작하여 거기에 담은 음식을 가리키는 이름이 되었다. 예부터 밀전병, 칼국수, 수제비, 밀쌈 등 밀가루 음식은 햇밀이 나오는 초여름에 많이 먹는 시절 음식인데 유두의 구절판도 밀쌈의 일종에 속한다.

구절판을 이루는 음식의 재료에는 쇠고기와 전복, 불린 해삼, 오이, 당근, 표고버섯, 달걀, 숙주나물, 밀전병 등이 들어간다.

구탕(狗湯)

예전에도 그랬지만 현재도 삼복에는 구탕(狗湯)을 먹어 기운을 보강해주는 것을 연례행사로 알고 있다. 육질이 부드럽고 소화가 잘되어 흡수가 빠른 구탕 즉 보신탕(補身湯)은 여름철 보양 음식의 대표라고 할 만하다. 오죽하면 하고많은 음식 중에 개고기를 분리하여 보신탕이라는 별명까지 붙여주었을까. 이런 보신탕은 된장을 많이 넣었다고 해서 개장국이라고도 부르는데 먹는 방식은 산초가루를 치고 흰밥을 말아 먹는 등 지역마다 차이가 있다.

그러나 구탕(狗湯)과 같은 경우는 너무 많이 먹어 영양분 과다흡수로 인한 부작용에도 신경 써야 한다. 요즘 일부 국가에서는 우리의 고유 음식인 보신탕을 놓고 서양문화의 해석에 따라 혐오식품(嫌惡食品)으로 치부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본다. 우리는 그들의 애완견 정책이 나오기 전부터 전통적으로 개를 소나 닭처럼 길러서 음식으로 먹던 문화를 가진 민족이기 때문이다. 애완돼지를 키우면서 돼지고기를 먹는 것은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삼계탕

더위가 한창인 삼복에는 삼계탕(蔘鷄湯)도 빼놓을 수 없는 시절 음식이다. 닭에다 인삼을 비롯하여 마늘과 밤 그리고 대추 등을 넣은 삼계탕은 냄새나는 개고기를 먹지 못하는 사람들도 즐겨먹던 보양식이다. 이때 삼계탕에는 아직 해를 넘기지 않아 충분히 자라지 않아 조금은 작은 닭을 사용하였으니 이를 ‘약병아리’라고 부른다. 그러나 요즘은 다 자란 어미 닭이라 할지라도 크기는 약병아리와 같지만 맛이 쫄깃쫄깃하고 야무진 종이 개량되어 각광을 받고 있다. 약병아리는 크기가 적당하여 혼자 먹기에 부담이 적은 편이며, 살이 부드러워 먹기도 쉽다. 또한 봄에 부화한 병아리를 길러 쉽게 사용할 수 있는 장점도 따른다.

기타

밀가루를 반죽해서 판 위에 놓고 방망이로 밀어 넓게 만든 후 기름에 튀기거나 콩을 묻혀 꿀에 발라 만든 연병(連餠)도 먹었다. 그런가 하면 밀가루를 반죽하여 콩이나 참깨로 소를 만들어 넣고 찐 상화병(霜花餠)도 있다. 밀가루로 전을 부쳐 볶은 채소나 깨소금을 넣은 밀전병이 있는가 하면, 밀전병에 오이나 당근, 계란지단채를 넣고 돌돌 말아서 쌈을 싸먹는 밀쌈도 계절 음식에 속한다.

규아상은 궁중에서 먹었던 만두로, 쇠고기와 표고버섯, 오이, 풋고추 등이 들어가서 삼복더위를 이겨내는 체력보강에 좋은 음식이다. 또 얼음을 동동 띄워 만든 오이냉국은 여름더위를 몰아내는 아주 훌륭한 음식이라 할 수 있다. 국수를 아욱과에 속하는 어저귀국(白麻子湯)에 말아 먹거나 미역국에 익혀 먹기도 하고, 호박전을 부쳐 먹거나 호박과 돼지고기에다 흰떡을 썰어 넣어 볶아서도 먹었다. 또 유두의 대표 과일로는 참외와 수박이 있는 데, 이들은 수분이 많아 더위를 쫓는데 효과적인 과일이다. 햇볕에 화상을 입었을 경우 오이마사지를 하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참외와 오이, 수박은 차가운 성질을 가지고 있다.

18.6 유두와 현실

유두(流頭)가 되면 삼복이 따라온다. 삼복은 초복(初伏)과 중복(中伏) 그리고 말복(末伏)을 합쳐 부르는 이름이며, 초복은 하지가 지난 후 세 번째 맞는 경일(庚日)을 의미한다. 따라서 초복은 늦으면 하지 후 30일이거나 빠르면 20일이 지난 날이다. 중복은 초복 다음의 경일(庚日)로 10일 후에 오지만, 말복은 입추(立秋)가 지난 후 첫 번째 경일(庚日)을 지칭한다. 따라서 초복과 중복 사이는 10일로 정해져 있어도 중복과 말복 사이의 간격은 일정하지 않고 들쭉날쭉하게 된다. 이 초복과 말복 사이를 삼복(三伏)이라 하고 1년 중 가장 덥다고 여기는 기간이다.

삼복(三伏) 더위가 오면 더위를 피하여 계곡으로 들어가서 개고기를 먹는 사람들도 많다. 이것은 예전의 청류(淸遊)에 해당하며, 동류두목욕(東流頭沐浴)의 답습(踏襲)이다. 개고기를 먹으면서 술과 여흥이 없을 수 없으니 이것 또한 유두연(流頭宴)이 된다. 또 복날에 붉은 팥으로 팥죽을 쑤어 먹으면 재앙을 물리칠 수 있다고 믿어 무더위를 넘기는 방편으로 삼기도 하였다. 보통은 찹쌀가루로 만든 경단(瓊團) 즉 새알심을 넣어 끓였다. 지금도 복날에 개를 잡아 먹는 풍습이 전하며, 더운 여름날에도 팥죽을 사철 음식으로 먹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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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전국의 행사 사진 500여장을 첨부하여 '선조들의 삶, 세시풍속이야기'라는 책으로 출판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