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것들/1년 24절기와 세시풍속

20. 삼복 - 삼복의 환경, 유래, 이해, 풍습, 궁에서의 삼복, 시절음식, 현실

꿈꾸는 세상살이 2014. 9. 7. 15:12

20. 삼복

삼복(三伏)은 1년 중에서 가장 무더운 혹서(酷暑)기로, 세 번의 더위가 있다는 말이다. 여기에서 말하는 삼복은 태양의 열을 받아 더워진 것이므로 양력으로 계산하는 데, 하지(夏至)로부터 세 번째 돌아오는 경일(庚日)을 초복(初伏)이라 하고, 네 번째 경일(庚日)은 중복(中伏), 입추(立秋)로부터 첫 번째 맞는 경일(庚日)을 말복(末伏)이라고 한다. 흔히들 삼복을 그냥 숫자상으로 계산하다 보면 이들의 날짜를 알아내는데 어려움을 느끼는 이유가 바로 이때문이다.

2013년의 초복은 양력으로 7월 13일, 중복은 7월 23일, 말복은 8월 12일에 들었다. 삼복 중에서 중복(中伏)이 지난 다음, 시간상으로 20일 동안이 넘은 후에 말복(末伏)이 오는 경우는 생각보다 조금 늦게 온다는 뜻으로 월복(越伏)이라고 한다. 월복은 이제 계산상으로 복(伏)을 넘겼다는 뜻이며, 더위가 한풀 꺾였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20.1 삼복의 환경

삼복(三伏)은 7월 중순부터 8월 중순까지 이어진다. 이때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무더운 날씨로 자칫 잘못하면 몸을 상하게 되는 시기다. 사람들은 더위를 피해 그늘에 들기도 하며, 차가운 음식을 먹어 몸의 열기를 낮추기도 한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이열치열(以熱治熱)이라 하여 뜨거운 음식을 먹음으로써 주변의 더위를 잊는 방식을 택하기도 한다.

날씨가 덥다고 하여 차가운 음식만 찾는다면 오히려 몸을 해칠 수도 있다. 이는 체외온도가 체온보다 높아지면 땀을 배출함으로써 내부의 열을 발산시키는데, 이런 절차를 무시하고 차가운 음식만 들게 된다면 내장(內臟)의 온도가 내려가서 소화장애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이때는 미리 받아 놓은 물도 태양볕에 데워져서 뜨겁게 변하며, 풀밭에 메어 놓은 소의 머리가 벗어진다는 말이 생겨날 정도로 따가움을 느낀다. 녹음이 무르익어 절정에 달하고, 온갖 화초와 곡식들은 저마다 종족 번식을 위한 열매 맺기에 들어간다. 하지만 동물들은 모두 더위를 피해 숨는 계절이기도 하다. 축 늘어진 호박잎에 앉은 잠자리도 발바닥이 뜨거운지 이리저리 옮겨 다니고, 나뭇가지에 앉은 매미도 너무 덥다는 듯 날카로운 하소연을 해댄다.

그러나 이런 때에 논에서는 벼가 잘 자란다. 오죽하면 벼는 복날마다 한 살씩 나이를 먹는다고 하였을까. 초복이 되면 꽃대가 올라오기 시작하고, 중복에는 이제 이삭의 모습을 갖추고, 말복이 되면 꽃을 피울 단계가 된다. 따라서 말복이 되면 마지막 피사리를 끝내야 한다.

20.2 삼복의 유래

삼복(三伏)은 중국 진(秦)나라에서 시작되었다고 하는 데, 그 유래는 오행설(五行說)에 기초를 두고 있다. 10개의 천간(天干)은 ‘갑을병정무기경신임계’인데, 이들을 다섯 뭉치로 나누면 목화토금수가 된다. 이때 갑과 을은 목(木)으로 봄에 해당하며, 병과 정은 화(火)로 여름에 해당하고, 무와 기는 토(土)로 각 4계절의 끝자락 18일씩을 말하며, 경과 신은 금(金)으로 가을에 해당하고, 임과 계는 수(水)로 겨울에 해당하는 오행(五行)으로 풀이된다.

삼복은 여름철 무더운 불(火)의 기운이 가을철 서늘한 기운(金)을 누르고 있다는 해석이다. 『지봉유설(芝峯類說)』에서도 ‘복날은 양기(陽氣)에 눌려 음기(陰氣)가 엎드려 있는 날’이라고 하였다. 이때 사람도 더위에 밀려 굴복하기 쉬운 계절임으로 이를 막는 방법으로 원기(元氣)를 보충하여 주는 풍습이 전하고 있다.

여기에 등장하는 토(土)는 춘하추동의 각 계절에 진입하기 직전이며, 이 기간을 토왕지절(土旺之節)이라 부른다. 그리고 이 토왕지절이 시작하는 첫날은 토왕용사(土旺用事)라 하였고, 이를 줄여서 토용이라고도 한다. 토용은 태양의 황경이 각각 27˚, 117˚, 207˚, 297˚에 이른 때를 일컫는다.

이 중에서 황경 117˚의 여름 토왕은 혹서기(酷暑基)에 속하여 삼복에 가깝고, 황경 297˚의 겨울 토왕은 삼동(三冬) 중에서도 혹한기(酷寒基)에 해당하여 맹추위을 과시한다. 토왕에는 집을 고치거나 하는 등의 흙일을 하지 않는 풍속도 있다. 이는 딱 당해서 급하게 서두르지 말고 아주 춥거나 덥거나 하는 날이 오기 전에 미리 집을 고쳐놓으라는 교훈으로 풀이되는 것이다.

20.3 삼복의 이해

삼복(三伏)은 중국의 진(秦)나라에서 시작되었는데, 갑(甲) 을(乙) 병(丙) 정(丁) 무(戊) 기(己) 경(庚) 신(申) 임(壬) 계(癸) 10개의 천간(天干)에 오행설(五行說)을 대입하여 배분한 것이다. 예를 들어 세기의 속성을 보면 갑은 강(强), 을은 약(弱), 병은 강, 정은 약, 무는 강, 기는 약, 경은 강, 신은 약, 임은 강, 계는 약으로 하나씩 번갈아가며 나타난다.

또한 오행을 살펴보면 갑과 을은 목(木), 병과 정은 화(火), 무와 기는 토(土), 경과 신은 금(金), 임과 계는 수(水)를 의미한다. 그리고 이를 4계절에 비교해보면 갑(甲)과 을(乙)은 봄, 병(丙)과 정(丁)은 여름, 경(庚)과 신(申)은 가을, 임(壬)과 계(癸)는 겨울을 의미한다. 마지막으로 무(戊)과 기(己)는 각 계절의 끝에 해당하는 18일씩을 뜻한다.

위와 같은 내용을 보면 병(丙)과 정(丁)은 여름 즉 화(火)에 속하여 불의 기운이 센 계절이다. 또 가을인 금(金)의 기운이 아직도 여름인 화(火)에 눌려 꼼짝하지 못하고 굴복(屈伏)한다는 뜻으로 복(伏)자를 사용하게 되었다. 그리고 여름의 더운 날을 세 개로 나누어 초복과 중복, 그리고 말복으로 구분하였던 것이다.

구분

갑(甲)

을(乙)

병(丙)

정(丁)

무(戊)

기(己)

경(庚)

신(申)

임(壬)

계(癸)

강약

강(强)

약(弱)

방위

동(東)

남(南)

중앙

서(西)

북(北)

오행

목(木)

화(火)

토(土)

금(金)

수(水)

계절

여름

사계절

가을

겨울

성질

온화함

무더움

혼재

서늘함

추움

삼복은 여름 절기가 들어가 있지만 특별히 복날에 골라 먹었던 음식도 있다. 예를 들면 삼계탕, 개장국, 닭죽, 제물닭칼국수, 복죽, 육개장, 임자수탕 즉 깨탕, 민어국, 잉어구이, 팥죽, 증편, 주악, 열무김치, 오이소박이, 호박지짐, 수박화채 등이 그것이다. 삼복(三伏)에 팥죽을 끓여먹는 풍습도 있는데, 이는 동지와 마찬가지로 마귀를 쫓아내고 열병을 예방하는 의미다. 붉은 팥으로 죽을 끓이면 적소두죽(赤小豆粥)이라 하는 데, 마치 피와 같은 색은 젊고 활기찬 건강을 의미하여 병(病)을 이길 것으로 믿었다.

『동국세시기』에 의하면 도성 4대문 안에서 개를 잡아 충재(蟲災)를 예방했다고 하였다. 이는 당시 환경으로 보아 털이 있는 동물에 기생하는 곤충이 많았던 때문이었으나, 현재는 무엇보다도 개장국을 끓이는 목적이 우선한다.

이 외에도 삼복에 즐겨 찾는 음식으로는 염소탕, 장어백숙, 용봉탕, 도랑탕, 미역초무침, 메밀수제비, 죽순무침, 부추전 등도 있다. 이때 오래된 장어는 비타민A가 쇠고기에 비해 무려 100배 이상 많이 들어 있다는 사실은 놀랄만 한 내용이다. 여기서 용봉탕(龍鳳湯)은 현실적으로 용 대신 잉어를 사용하며, 봉황 대신 닭을 사용하면서도 음식에는 최고의 동물들을 넣었다는 느낌이 나도록 부르는 이름이다. 또 지역에 따라서는 잉어 대신 자라를 사용하는 곳도 있다.

20.4 삼복의 풍습

삼복에는 한낮의 더위를 피하며 몸을 추스르는 것이 보통이었다. 무더위가 계속되면 탁족(濯足)을 비롯하여 등목을 하거나 마을 어귀의 모정을 찾았다. 또 술과 음식을 장만하여 계곡(溪谷)이나 산정(山亭)을 찾아가서 쉬기도 한다. 혹시 피부병이 있거나 삭신이 아프면 모래찜을 하기도 한다. 이때는 절기상으로 대서(大暑)와 겹치게 되는데, 이 역시 무더운 날씨를 의미하는 것이다. 따라서 자칫 잘못하여 몸을 상하는 일이 없도록 하고, 소화가 잘되며 흡수가 빠른 음식으로 원기를 보충시켜 주었다.

삼복에 ‘비가 마치 퍼붓듯이 내리면 보은 처자 눈물도 비오 듯한다.’는 말이 있는데, 이는 충청도 청산과 보은에 대추농장이 많이 있어 먹고 살기는 물론 처자들 시집보내는 비용도 충당하기 때문에, 비가 오면 대추 농사가 패농(敗農)할까 걱정되어 눈물이 쏟아진다는 비유다. 청산은 조선 시대의 청주목에 속했던 고을로 현재는 옥천군 청산면을 말한다. 요즘도 보은에서는 대추축제를 열고 있다. 모기가 한창 기승을 부리는 때로 각 가정에서는 모깃불을 놓는다. 모깃불은 주로 약쑥을 사용하였으나, 미처 준비하지 못한 경우는 짚이나 왕겨 또는 푸른 대나무, 마당을 쓸어 모아진 검불 등 편리한 것을 활용하였다. 이때 거리로 나가 ‘우리 모기 다 가져가라.’고 외치면 모기가 물러간다고 하였다.

20.5 궁에서의 삼복

삼복은 궁(宮)에서도 덥기는 마찬가지였다. 따라서 겨울에 마련하였던 얼음을 각 관청(官廳)에 하사(下賜)하는가 하면, 종묘(宗廟)에 기장, 피, 조, 벼 등을 올리고 제사하는 풍습이 있었다. 여기서 말하는 피는 들에 자생하는 야생피를 개량하여 구황작물로 변환시킨 식용(食用) 피로 논에서 나는 피와 비슷하다.

궁중에서는 한강 하류 두모포(豆毛浦)에 석빙고를 두었는데, 현재의 동빙고동에 동빙고(凍氷庫)를 두었으며 서빙고동에 서빙고를 두었다. 또 궁에서만 사용하는 얼음은 내빙고라 하여 별도의 창고를 두었다. 경주에 있는 석빙고(石氷庫)는 원래 목조였던 것을 조선 시대에 와서 석재로 고쳐 지었다는 기록이 있으며, 창녕의 창녕석빙고 역시 조선 시대에 다시 고쳐 지었다는 기록이 있으나 그 전(前)의 내용은 전하지 않고 있다. 또 안동의 석빙고는 인근에서 옮겨 지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냉동장치가 없던 옛날에는 1급수 즉 상수도수원지 보호구역처럼 깨끗한 곳에서 단단하게 결빙된 얼음을 떼어다가 보관하는 방식을 택했다. 물론 이때도 강에서의 작업에 따른 안전 기원과 좋은 얼음에 대한 감사의 제를 올린 다음에 작업을 하였다. 이는 얼음을 저장한다고 하여 장빙이며 이 제사를 장빙제(藏氷祭)라 한다. 저장했던 얼음을 꺼내어 처음 사용하는 춘분에도 장빙제를 드렸다. 최근 안동에서는 축제 형식을 빌려 장빙제를 재연하고 있다. 이 밖에도 달성의 현풍석빙고와 창녕의 영산석빙고가 있으며, 모두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20.6 삼복에 먹는 시절 음식

삼복에는 피로해진 몸의 원기(元氣)를 회복시켜주는 음식이 좋다. 가정에서는 삼계탕(蔘鷄湯)을 즐겨 먹는데, 보통은 봄에 부화하여 기른 햇병아리를 잡고 인삼(人蔘)과 대추(棗), 황기(黃芪), 찹쌀 등을 넣어 끓이는 게 일반적이다. 또 개장(狗醬) 혹은 보신탕(補身湯)이라고도 부르는 구탕(狗湯)은 개를 잡아 삶을 때 나는 특유의 냄새를 없애기 위해 파를 넣기도 하는 데, 보리밥과 함께 먹으면 음식궁합이 맞는다. 복날의 복(伏) 자가 사람과 개의 조합으로 이루어진 것처럼, 개는 사람을 위해 복날의 대표적 음식 재료가 되기도 하였다. 이런 음식 먹는 것을 복달임이라 한다.

예전에 개와 같은 가축에서 많은 곤충이 발생하므로 이들의 충재를 방지하기 위하여 외딴 곳에 나가 개를 잡던 풍속이 있다. 이는 혹시나 사람에게 옮겨올까 두려워하는 예방 차원이었다. 물론 가축을 잡는 일은 백정의 일로 여겨, 일반인에게 보여주지 않고자 하는 관례도 포함되어 있었다.

요즘 들어 애완용으로 기르는 개가 늘어나면서, 개고기를 먹는 음식문화를 좋지 않게 보는 편견도 있다. 그러나 애완견보다 우리의 음식문화가 먼저 생겨난 것으로, 소를 잡고 개를 잡는 것은 시절에 따른 먹을거리의 하나로 전통문화에 속하는 것이니 동물 애호론자들이 펼치는 것과는 서로 다른 차원이라고 생각한다. 아무리 서양의 문물이 세상을 지배하는 입장이라 하여도, 우리의 전통 음식문화까지 거론하는 것은 지나친 간섭이라 할 것이다.

또 동지에 먹었던 팥죽이 여름에도 같은 효험(效驗)을 가지는데, 팥의 붉은 기운이 악귀(惡鬼)를 몰아낸다고 믿었다. 따라서 여름의 덥고 사악한 기운을 몰아내는 데 유용한 음식이 되었다. 이를 적소두죽(赤小豆粥)이라 하고, 새알심 즉 경단(瓊團)은 새의 알(卵)이 더운 기운에 죽지 않고 태어나는 것처럼 다시 부활하는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이것은 곧 새로운 힘과 새(鳥)의 힘을 얻는 상징이 되기도 한다.

이 밖에도 육개장, 잉어구이, 오이소박이, 증편, 구장, 복죽, 제물닭칼국수, 호박지짐, 화채, 복숭아, 참외, 수박, 냉면, 비빔국수, 미역국, 어저귀국 즉 아욱국, 각종 냉국 등이 있다.

20.7 삼복과 현실

예전부터 삼복은 개고기를 먹는 날이었다. 그러나 개를 잡기가 어중간하면 개고기를 사다 먹는 것도 좋은 방법에 속했다. 식구가 많지 않은 집에서는 초복과 중복, 그리고 말복을 합쳐도 개 한 마리를 다 먹지 못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한편, 개를 잡는 것이 부담스러운 집에서는 닭을 이용한 삼계탕을 먹기도 하였다. 삼계탕은 닭과 삼이 들어 있는 음식이라는 말로, 닭의 내장을 긁어내고 찹쌀과 대추, 인삼, 황기, 밤, 마늘 등 갖은 영양보충재를 넣고 삶아내면 되는 것이다. 정말로 보신탕이나 삼계탕을 한 그릇 먹고 나면 한여름 더위를 이겨낼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드는 좋은 음식이었다.

개고기를 삶는 것은 그을린 냄새를 없애는 기술이 필요하다. 대체로 개고기는 장(醬)을 푸는 것이 제격인데, 이 장은 발효가 끝난 식품으로 소화가 잘되는 장점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장국이라는 이름이 붙게 되었다. 지금도 복날이면 개고기나 삼계탕을 먹는 것이 시절 음식으로 남아 있다. 물론 직접 잡지 않아도 완성된 요리로 만들어 공급하는 음식으로 발전하였기 때문에 더욱 편리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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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전국의 행사 사진 500여장을 첨부하여 '선조들의 삶, 세시풍속이야기'라는 책으로 출판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