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것들/1년 24절기와 세시풍속

19. 칠석(七夕) - 칠석의 유래, 견우와 직녀, 칠성신앙의 역할, 세시풍속, 시절음식, 현실

꿈꾸는 세상살이 2014. 9. 7. 15:10

19. 칠석(七夕)

칠석은 음력 7월 7일을 말하며, 삼월 삼짇날과 오월 단오 그리고 구월 양구일과 함께 양의 기운이 넘치는 날이라 하여 주요 명절로 삼아왔다. 이때는 여름 더위가 최고조에 달한 때로, 이 고비만 넘기면 대체로 여름을 나는 시기다.

여름 밤하늘의 양쪽에서 서로를 그리워하던 견우와 직녀가 만나는 날로, 해마다 칠석날에는 비가 온다. 만약 그렇지 못하면 그냥 몇 방울이라도 들어 그들의 애틋한 사랑을 잊지 않도록 일깨우는 날이라고 한다.

19.1 칠석의 유래

최남선의『조선상식(朝鮮常識)』에 의하면 칠석(七夕)은 중국에서 지내던 풍속에서 우리나라에 전래되었으며, 고려 공민왕 때 내정에서 견우성과 직녀성에 제사를 지내고 백관들에게 녹(祿)을 주었다고 한다. 또 조선 시대에 와서는 궁중에서 잔치를 베풀고 성균관 유생들에게 과거를 행하였을 정도로 오래된 풍습이며 의미 있는 날이다.

그러나 좀 더 거슬러 올라가면 5세기 초 광개토대왕의 묘(墓)로 평안남도 대안시 덕흥리에 있는 덕흥리고분의 안쪽 벽화에 견우와 직녀가 등장하고 있어 삼국시대에도 이미 전해졌던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한국과 중국 그리고 일본의 전설에 따라 견우와 직녀가 만나는 날이며, 일본에서는 양력 7월 7일을 칠석으로 부른다. 일본의 음력 칠석은 타나바따마쯔리라 하며 은하수의 양쪽에서 견우와 직녀가 만난다는 것은 동일한 내용이다. 일본에 다신교도들이 많은 것처럼 이날 역시 일본 고유의 신앙과 연결된 형태를 취한다.

한편 칠석이라는 단어가 『시경(詩經)』에 등장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아마도 춘추전국 시대 이전부터 존재했던 것임도 짐작할 수 있다.

 

 

19.2 견우와 직녀

전설에 의하면 하늘나라의 목동(牧童)인 견우(牽牛)와 옥황상제의 손녀인 직녀(織女)가 결혼을 했다. 그러나 두 사람은 항상 놀고 먹으며 게으름을 피우니 이를 본 옥황상제가 노하여 둘을 떨어뜨려 놓았다. 그래서 견우는 은하수의 동쪽에 있고 직녀는 서쪽에 있음으로 넓고 깊은 은하수를 건널 수 없게 되었다. 그러나 둘은 여전히 근심과 그리움으로 나날을 보내니 흐르는 것은 눈물뿐이었다. 이 눈물이 어찌나 많았는지 세상에는 커다란 고통이었다. 보다 못한 까마귀와 까치가 은하수에 다리를 놓고 1년에 한 번은 만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이날이 7월 7일이라 칠석날이며 다른 말로 칠성날이라 부르기도 한다. 이때 놓은 다리를 까마귀와 까치가 놓았다 하여 오작교(烏鵲橋) 또는 칠성교(七星橋)라 부른다. 성춘향과 이몽룡이 만난 곳도 광한루 오작교였으니, 견우와 직녀처럼 간절한 사랑을 그리는 연인에게 오작교는 우연한 일이 아닌 것이다.

다리를 만든 까마귀와 까치는 뒤에 있는 동료의 머리를 움켜쥐고, 자기 머리는 다시 앞에 있는 동료가 감아쥘 수 있도록 하였다. 그리하여 은하수를 건널 수 있는 아주 커다란 다리를 만들었던 것이다. 그래서 칠석날이 지난 직후에는 머리가 벗어져서 털이 해성하다고 한다.

한편 칠석날 당일에는 까마귀와 까치를 찾아볼 수가 없는데, 혹시 세상에 날아다니는 것이 있다면 이는 필시 몸이 아파 하늘나라까지 올라갈 수 없는 병든 새라고 한다. 또 칠석날에 내리는 비는 까마귀와 까치가 목숨을 걸고 만든 다리에서 상봉하는 견우와 직녀의 마음을 표현하는 눈물이라고 한다.

그러나 비는 칠석날에만 오는 것이 아니니 그 전에 내리는 부슬비를 세차우(洗車雨)라 부른다. 이 비는 견우와 직녀가 타고 가기 위하여 1년 동안 묵혔던 마차를 깨끗이 닦아주는 비라고 한다. 또 칠석날 저녁에 내리는 비는 견우와 직녀가 상봉하여 흘리는 기쁨의 눈물인 상봉우(相逢雨)이며, 이튿날 새벽에 내리는 비는 이별의 슬픔을 담은 이별우(離別雨)이다. 이들을 통틀어 견우와 직녀의 눈물이 비가 되어 내린다고 하여 쇄루우(灑淚雨)라고 한다.

자세히 보면 칠석날 저녁의 견우성과 직녀성은 마치 다리를 건너기 위한 준비인 양 머리 위로 높게 떠올라 마주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런데 이러한 현상은 계절에 따른 자연적인 결과임도 알아야 한다.

견우성(牽牛星)은 천문학적으로 독수리자리(鷲星座)의 알타이어(Altair)별이며, 직녀성(織女星)은 거문고자리(琴星座)의 베가(Wega)별을 가리키는 것이다. 이 둘은 원래 은하수의 동쪽과 서쪽에 위치하고 있는데, 태양의 황도상(黃道上)을 운행한다. 따라서 가을하늘 초저녁에는 서쪽에서 보이며, 겨울하늘에서는 태양과 함께 낮에 떠 있고, 봄하늘 초저녁에는 동쪽에 나타난다. 그리고 칠석 때가 되면 정중앙 천장 부근에서 볼 수 있어 마치 1년에 한 번씩 만나는 것처럼 여겨진다.

19.3 칠성신앙의 역할

위에서 언급한 칠성교(七星橋)는 칠석교(七夕橋)와 발음이 비슷하기도 하지만 칠성신앙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 여기서 말하는 칠성(七星)이란 북두칠성을 이루는 7개의 별을 뜻하는 데, 이 별은 인간의 복덕(福德)과 수명(壽命)을 관장하는 별자리로 여겨져 숭앙되었다. 또 다른 의미의 칠성은 태양, 달, 화성, 수성, 금성, 목성, 토성을 말하기도 한다.

그러면 어찌하여 칠성이 칠석과 연계가 되는가 하는 문제다. 이 부분에 대하여 명확한 해석은 없으나, 바쁜 농사일을 끝내고 잠깐 쉬면서 어쩔 수 없는 인간의 한계를 느낀 때문이라 할 수 있다. 애써 지은 농사의 풍성한 수확을 기대하는 데 신의 도움을 빌리지 않을 수 없는 나약한 존재였으며, 다른 측면에서는 인간의 생사화복을 7월성군(七月聖君)이 주관하고 있다고 믿었다. 한편 인체에도 7개의 구멍이 있으며 얼굴에도 7개의 구멍이 있는 등 7이 지니는 의미는 생명의 기본이었던 것이다. 따라서 우주 만물을 이루는 완벽한 수가 7이었으니 그중에서도 7월 7일은 아주 완벽한 칠성(七星)의 날이었던 것이다.

칠성은 북쪽하늘의 작은곰자리인 북두칠성을 의미하는 데, 그중에서도 특별히 북극성은 그 자체가 바로 신앙의 대상이었다. 여인이 목욕재계하고 칠성제를 올리는 것은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관하는 별에 대한 경외이며, 당대의 안녕과 화평을 비는 것은 물론 세세토록 대(代)를 이어 나갈 아들을 얻는 것 등과 연관이 있다.

19.4 칠석날의 세시풍속

칠석이 되면 지방에 따라서는 칠석제 또는 칠성제(七星祭)를 지낸다. 칠성제는 도교와 불교의 영향을 받아 생긴 것으로 집에서 조용히 지내는 가신제(家神祭)의 일종이다. 칠성제는 북두칠성을 제신(祭神)으로 하며, 칠석날이면 땅에 내려온다고 믿었다. 그리하여 칠성단(七星壇)을 만들고 제물을 차린 뒤 자손들의 무병장수와 복을 빌었다.

일부에서는 이때 가묘제(家廟祭)를 지내기도 하였다. 경사대부(卿士大夫) 집에서는 칠석에 올벼가 익으면 사당에 먼저 올리고 알리는 천신(薦新)을 하였으며, 상(喪)을 당한 집에서 매달 초하룻날과 보름날 아침에 제사를 지내던 것처럼 삭망전(朔望奠)에 행하였다. 지금도 새로 수확한 곡식으로 국수나 전(煎)을 만들고 햇과일을 차려 조상에게 천신하는 풍습이 남아 있기도 하다.

용신제

전북 익산과 군산지방에서는 샘제 또는 정주제(井主祭)를 지내며, 경남의 영산(靈山)지방과 부산의 가덕도(加德島)에서는 굿을 하거나 기복제(祈福祭)를 지내는 용알먹이기 일명 용신제(龍神祭)를 지낸다. 용신제는 주부가 새벽에 목욕재계하고 새 옷으로 갈아입은 뒤, 바닷가나 냇가 혹은 우물가처럼 물이 있는 곳에 제물을 차려 놓고 절을 하며 가내평안과 소원성취를 비는 것이다. 이때 소지(燒紙)하여 기원(祈願)하는 종이를 태워 날려 보내고 제물(祭物)은 물속에 던진다. 용신제는 정초와 5월 혹은 7월에 지냈으며, 이날은 특별히 용의 날을 고르기도 하였다.

고창, 정읍, 봉화, 예천, 안동 지방에서는 칠석날 새벽에 수박이나 참외 또는 오이처럼 1년생 초과류(草菓類)를 차려놓고 조상에게 제사를 지냈으며, 여타 지방에서도 약식으로나마 풍속 일부가 행해지기도 하였다.

농신제

이북지방에서는 이날 크게 고사를 지내거나 밭에 나가 풍작을 기원하는 밭제(田祭)를 지냈고, 중부지방에서는 단골무당에게 부탁하여 자녀의 무사성장(無事成長)을 기원하는 '칠석맞이'를 하였다. 또 칠석다례(七夕茶禮)라 하여 음식을 사당에 천신하는가 하면, 칠석제(七夕祭)라 하여 부인들이 밤에 단을 모아 놓고 집안의 부귀와 복을 빌었다. 그리고 어떤 집에서는 떡을 빚어 논에 가지고 가서 농신제(農神祭)를 지내기도 했다.

이런 것들은 이날 신이 직접 땅에 내려와 둘러본다고 믿었기 때문이며, 특히 이른 아침에는 지금까지 가꾸어 놓은 상태를 점검하고 농사의 수확량을 점지해 준다고 믿었다. 그러기에 이날은 일하러 가지 않았으니 근신(謹身)하는 날이기도 하였다. 그러고 보면 칠석날은 머슴이 허락받고 마음 편히 쉴 수 있는 공인(公認)된 머슴의 날이었던 것이다. 반면에 전주, 광주, 의왕에서는 농부들이 가만히 있을 수 없어 수확량을 점지해주는 농신에 대한 예의로 들에 나가기도 하였으나, 여자들은 오후 늦게 나가는 풍습이 있었다. 칠석 외에 공인된 머슴날로는 음력 2월 1일인 영등날도 있다.

걸교

견우성과 직녀성을 바라보며 바느질 솜씨가 늘기를 비는 풍습이 있었다. 어떤 처녀들은 장독대 위에 정화수(淨化水)를 떠 놓은 다음, 그 위에 고운 재를 평평하게 담은 쟁반을 올려놓고 빌기도 하였다. 다음 날 아침 초과류를 놓은 상(床)에 거미줄이 쳐 있거나 쟁반에 놓인 재 위로 무언가 지나간 흔적이 있으면 자신의 기도에 영험이 있다고 믿었다. 이를 두고 재주가 좋게 잘 되도록 해 달라고 빈다는 뜻으로 걸교(乞巧)라 한다.

우물청소

호남에서는 특히 ‘술멕이날’이라 하여 마음 놓고 피로를 푸는 날이기도 하였다. 이때는 ‘어정어정 칠월, 건들건들 팔월’이라 하였듯이 7월은 한가한 시기이다. 그러나 부지런한 농부들이 마냥 놀기만 하는 것은 아니어서 마을의 우물을 청소하고 깨끗한 물이 잘 나오도록 장마에 막힌 물길을 손질하는 날이기도 했다. 아울러 우물가의 도랑을 쳐서 건수(乾水)가 들어가지 않도록 하는 일도 병행하였다. 이때의 건수는 땅속에서 자연 정화가 되지 못한 물로, 땅 위에서 바로 우물에 들어간 흐린 물을 말한다.

대전 중구 부사동에서는 설화를 바탕으로 부사칠석놀이를 재현 중에 있다. 백제의 부용과 사득의 사랑 이야기를 칠석날 견우와 직녀의 내용에 비유하고, 정제(井祭)에 관한 내용을 포함하는 것으로 모두 7마당으로 구성되어 있다. 주민 약 120여 명이 참석하는 부사칠석놀이는 1993년 대전시 민속예술경연대회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하였고 1994년도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서 대통령상을 수상한 바 있다. 이 놀이를 국가적인 풍속이라고 말하기는 아직 미흡하지만 칠석날의 의미는 포함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아직 문화재 지정에는 이르지 못하였다.

쇄서폭의

칠석부터 날이 무더워지고 볕이 이글거리는 계절이 된다. 따라서 장마철에 습기가 차고 좀이 슬던 옷과 책을 꺼내 말리는 쇄서폭의(曬書曝衣)를 하였다. 선비는 책을 말리는 사폭서(士曝書), 농부는 곡식을 말리는 농폭맥(農曝麥), 부녀자는 옷을 말리는 여폭의(女曝衣)를 하였다. 또한 귀중한 약초를 캐어 말리는 작업도 이때 행해졌다. 이런 일들은 바람을 쐰다하여 거풍(擧風) 또는 햇볕에 말린다 하여 포쇄(曝曬)라고 불렀다.

한편 농가에서는 호미를 사용할 필요가 없어져 호미를 씻어 말리는 호미씻기 즉 세서연(洗鋤宴)을 하였으며, 일부 지방에서는 써레를 씻어 두는 써레씻이도 하였다.

19.5 칠석에 먹는 음식

그런데 따지고 보면 이날은 농사 절기상으로는 세벌 김매기가 끝나고 휴식기에 든 때이다. 사람들은 이때 휴식을 취하며 술과 안주를 준비하여 풍물과 함께 즐겼다. 이때 등장하는 음식들이 밀전과 밀개떡을 비롯하여 수수나 감자로 만든 떡 등이다. 일부에서는 부침개를 해 먹기도 하는 데 이때는 호박이 제철이므로 호박부침이 별미로 통한다. 제철에 나는 과일로 시원한 화채를 만들어 먹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대표 음식이다. 이때는 단오에 장만한 부채가 한몫하는 계절이 된다.

칠월칠석은 절기로 보아 입추와 처서의 중간에 있다. 이때는 입추의 기간에 해당하며 먹는 음식도 같이 보면 된다. 대표 음식을 보면 새로 수확한 햇밀로 국수를 만들고 밀전병을 하였다. 또 증떡(蒸餠) 또는 기주떡이라 불리는 증편(蒸片)과, 계피가루를 넣어 만든 계피떡(桂皮餠)도 하였다. 밀국수와 팥시루떡도 칠석에 먹는 음식이다.

생선은 잉어구이와 잉어회가 제철이며, 채소로는 오이김치와 열무김치 그리고 과일로는 복숭아와 수박으로 만든 화채가 계절별미에 속한다. 산나물로는 고비나물과 취나물을 꼽고, 수랏상에 올렸던 규아상도 대표 음식에 든다. 특별 음식으로는 꿀을 넣어 만든 백설기 즉 밀설기(蜜雪糕)와 찹쌀가루에 대추를 이겨 섞고 꿀에 반죽하여 송편처럼 만든 주악(角黍)을 먹었고, 막바지 더위를 몰아내는 방법으로 어린 닭을 찐 영계찜도 좋은 보양식으로 먹었다.

19.6 칠석과 현실

칠석이 되면 힘든 농사일을 하면서 잠시 짬을 내어 유용하게 보내던 우리 조상들을 만나는 듯하다. 터를 고르고 파종(播種)하며 가꾸는 일은 농부의 몫이지만, 팔월이 되어 건들바람이 불면서 곡식이 여물고 거두기까지는 사람의 힘으로 어쩌지 못하는 영역(領域)이었다. 그런 시기에 의지할 곳은 역시 대자연을 다스리는 신(神)뿐이었고, 당시의 신은 하늘에 있는 별이 제격이었을 것이다.

평상에 누워 하늘을 보면서 촘촘히 박힌 미리내〔銀河水〕가 그냥 말없이 흘러가도록 게으름을 피우면서 가만 놓아두지는 않았을 조상들이다. 말없이 하늘을 바라다보면 귀여운 옥토끼가 방아 찧던 달과 넓고 긴 강을 건너는 견우직녀가 그려진다. 그런가 하면 칠석날 우물을 푸고 나무 그늘에 앉아 수박과 복숭아로 더위를 쫓는 것이 제격이다. 물론 지방에 따라 조금씩 다르기는 하겠지만 조금은 한가로우면서도 지역별로 작은 행사를 하는 것이 칠석이다.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견우별은 천문학적인 의미에서의 견우별은 아니다. 잘못 알고 있는 이 별이 원래의 견우별이든 견우별이 아니든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별을 보면서 그런 생각을 하고 평상시에도 그런 마음가짐으로 지낸다는 것이 중요하다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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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전국의 행사 사진 500여장을 첨부하여 '선조들의 삶, 세시풍속이야기'라는 책으로 출판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