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것들/1년 24절기와 세시풍속

21. 백중(百中) - 불교에서의 백중, 민속놀이, 시절음식, 백중사리, 현실

꿈꾸는 세상살이 2014. 9. 7. 15:16

21. 백중(百中)

음력 7월 15일을 백중(百中)이라 부르는데, 백중은 1년의 24절기에 포함되지 않으면서도 농경사회에서 가장 중심 절기로 전해왔다. 다른 말로 백종(白踵), 백종(百種), 중원(中元), 망혼일(亡魂日)이라고도 한다. ‘백종(百種)’의 다른 유래는 이때쯤 과일과 채소가 많이 나와 100가지의 씨앗을 갖추어 놓은 데서 비롯한다. 중원(中元)은 도교에서 지키는 음력 7월 15일로 중요 행사가 있는 날이며, 1월 15일의 상원과 10월 15일의 하원이 있다. 백종(白踵)은 농사일로 바쁘게 지내면서 제대로 씻지도 못했던 발을 이날 비로소 종아리를 깨끗하게 씻어 하얗게 되었다는 말이다.

21.1 불교에서의 백중

『조선불교통사(朝鮮佛敎通史)』에 따르면 절에서는 백중에 위패를 모시고 재(齋)를 올려 공양(供養)을 드린 다음 위패(位牌)를 불살랐다. 이런 의식은 망혼(亡魂)을 극락으로 인도하는 행사인데, 민가에서의 제(祭)와도 비슷하다. 민간에서는 100가지의 과실을 차려 제사를 지내고, 모두 모여 노래와 춤으로 백중잔치를 즐겼다. 불교에서는 백중을 우란분절(盂蘭盆節)이라 부르며 석가탄신일, 출가재일, 성도재일, 열반재일과 함께 불교 5대 명절로 여기는 중요한 날이다.

우란분절(盂蘭盆節)은 석가모니의 10대 제자 가운데 하나이며 신통(神通)에 있어서는 제일(第一)로 알려져 있던 목련존자(目連尊者)의 재(齋)에서 비롯되었다. 목련존자가 생전의 탐욕과 죄업으로 아귀(餓鬼)에 떨어져 고통을 받고 있는 모친을 보면서, 백중 때 스님들이 모두 모여 참회하는 자자(自恣) 행사에서 오미백과(五味百果)로 공양을 한 공덕으로 아귀도(餓鬼道)에서 구원했는데 이를 우란분재(盂蘭盆齋)라 한다. 백중불공이라는 단어도 이때 생겨났다. 『형초세시기(荊楚歲時記)』에 중원일에는 승니(僧尼)와 도사(道士), 속인(俗人)들이 모두 분(盆) 즉 공양을 바친다고 하였다.

알다시피 불교의 발상지인 인도에서는 여름철이 고온다습한 우기로서 탁발과 가르침이 불편하니 조용히 칩거하라는 여름안거 즉 하안거(夏安居)에 들며, 이는 음력 4월 15일부터 시작하여 백중 때에 드디어 끝이 나는 것이다. 따라서 스님은 그동안 많은 수양을 하지 못한 것을 스스로 반성하는 뜻에서 백중을 맞아 자자(自恣)를 행한다.

우란분경은 이러한 내용이 불경에 나온다고 하는 사찰용어다. 우란분절(盂蘭盆節)은 우란분공(盂蘭盆供) 또는 우란분회(盂蘭盆會)와 같은 말이다. 우란은 도현(倒懸)으로 번역되는데 산스크리트어의 울람바나(ullambana)와 유사한 발음으로 거꾸로 매달리는 고통이며, 분(盆)은 이를 구제한다는 뜻으로 번역된다. 그리고 절(節)은 그런 기간이라는 뜻이다.

그러니 불교의 의미에서 보듯이 백중을 맞아, 고통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한 사람이나 영혼 모두에게 해방과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것은 유교의 동방예의지국에서도 행해져야 할 귀중한 덕목에 해당한다 할 것이다. 그래서인지 백중일(百中日) 즉 망혼일(亡魂日) 밤에 과일, 채소, 술, 밥 등을 차려 놓고 돌아가신 부모의 혼을 불러들여 제사를 지내는 풍습이 있다.

일본에서도 백중을 지킨다. 이날은 음력 7월 15일로 오본이라 하여 여러 가지 음식을 차리고 조상의 영전에서 명복을 비는 불교 형식을 따른다. 일본의 오본(お盆)은 설날과 함께 아주 중요한 명절로 치는데, 1873년 양력이 도입된 후 8월 15일로 변경되어 행해지고 있다. 또한 우란분절의 의미와 우리의 추석이 합쳐진 행사로 치러진다.

21.2 백중 민속놀이

고을에서는 백중을 전후로 장이 서는데 이를 백중장(百中場)이라 했다. 머슴이 있는 집에서는 이날 하루는 쉬게 하고 휴가와 돈을 주어 즐기도록 했다. 백중장이 성시(成市)를 이루면 씨름판이 열리고, 공치기 또는 타구놀이, 장채놀이라고도 불리는 장치기(擊毬) 등이 펼쳐진다.『동국여지승람』에는 충청도 사람들이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저자에 나가 먹고 마시며 즐긴다고 하였다. 여기서의 저자는 연속극에서 보아온 저잣거리를 의미하며, 규모가 작고 판매물품도 한정적이어서 현대와는 비교할 수가 없다.

또 농사를 잘 지은 집의 머슴은 소나 가마에 태워 마을을 돌면서 사기(士氣)를 북돋아준다. 백중 때가 되면 농사일이 거의 끝나서 농부들은 호미를 씻어두는데 이를 '호미씻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백중날에 풍성한 해산물이 많이 잡히기 때문에 제주도에서는 해산물 따기에 분주한 때이기도 하다.

지역에 따라 이날 농신제(農神祭)와 더불어 집단놀이가 행해지는데 이를 ‘백중놀이’라고 한다. 전하는 것으로는 밀양백중놀이가 유명하다. 이 놀이는 힘겨운 세벌 논매기가 끝난 후 음력 7월 15일을 전후한 용날(辰日)에 행하던 호미씻이와, 머슴들이 농신(農神)에게 풍년을 비는 고사를 지낸 다음 ‘꼼배기참놀이’의 여흥으로 여러 가지 놀이판을 벌여온 데서 비롯되었다. 호미씻이는 지방에 따라서 초연(草宴), 풋굿, 머슴날, 장원례(壯元禮) 등 다양한 명칭으로 불린다. 이때 머슴이 노총각이거나 홀아비인 경우 마땅한 처녀나 과부를 골라 장가를 들여 주고 살림도 장만해 주었는데, 옛말에 ‘백중날 머슴 장가간다.’는 말이 여기에서 비롯되었다.

『삼국사기(三國史記)』신라 유리왕조편에 신라에서는 부녀자들이 삼을 삼는 풍속이 있었다고 한다. 왕이 6부를 정한 후, 이를 두 패로 나누어서 두 왕녀에게 각각 한 패씩 거느리게 하였으며 7월 기망(旣望) 즉 백중 다음 날인 7월 16일부터 8월 15일까지 길쌈을 시켰다. 그리고 공(功)의 다소를 보아 진 편이 이긴 편에 음식을 대접하고, 이어서 가무백희를 하니 이것을 가배(嘉俳)라 하였다는 데서 연유한다.

이러한 삼삼기 풍속은 근래 경남 일부지역에서 친한 부녀자들끼리 품앗이로 삼을 삼는 ‘두레삼’으로 전승되고 있다. 이때 주인집에서는 음식 대접을 하기도 하고, 혹은 편을 나누어 진 편이 이긴 편에게 음식대접을 하기도 한다. 제주도에서는 백중 때 마을 단위의 놀이(洞祭)로 마불림제를 한다. 이때의 ‘마불림’이란 ‘장마를 바람에 날려 보낸다.’는 의미이다.

옛날 경사대부(卿士大夫)의 집에서는 음력 7월에 올벼로 사당에 천신(薦新)을 하였는데, 이는 집 안에서 조상에게 지내는 제사로 보통은 초하룻날과 보름날 아침에 제사를 지내는 삭망전(朔朢奠)에 행하였다. 지금도 칠석과 백중 때면 밭에서 거둔 햇곡으로 국수나 전(煎)을 만들고 햇과일을 차려 조상에게 천신한다. 하지만 햅쌀은 아직 수확을 하지 못하여 재상과 양반들은 7월 초하루와 보름에 올벼로 제사를 지냈다. 이때는 여름 과채류인 고추, 오이, 호박, 수박, 참외를 비롯하여 옥수수와 콩 등 먹을거리가 풍부하여 잔치를 준비하는 데도 부족함이 없다.

백중에서 추석이 되기 전까지 조상의 묘를 찾아가서 풀을 베는 것을 벌초라 한다. 벌초하는 날은 따로 정해진 것은 아니어서, 적당한 날에 실시하면 되었다. 음력 2월 한식날에 묘를 손질한 다음, 팔월에 벌초를 함으로써 조상의 묘에 잡초가 우거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행하는 것이다. 이는 조상을 섬기는 자손의 도리가 부족하면 수치스러운 일로 여겨, 풀을 베면서 묘소를 살피는 효(孝)를 행하였다.

밀양백중놀이

밀양백중놀이는 경상남도 밀양에 전승되어 오는 민속(民俗)으로 농신제, 작두말타기, 춤판, 뒷놀이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는 1980년 중요무형문화재 제68호로 지정되어 우리나라 백중놀이의 전통을 가장 잘 계승하고 있다.

백중이 되면 한낮의 뜨거운 햇볕을 피하는 밀양의 강변 솔밭은 쩌렁쩌렁한 농악소리로 뒤덮인다. 먼저 사내들이 힘겨루기를 하여 선발된 장사를 무등에 태워 놀이마당을 여는 것으로 시작되며, 뛰어다니다시피 하는 역동적인 춤과 빠른 가락이 보는 이를 들뜨게 한다. 다음에 밀양백중놀이의 백미인 병신춤과 양반춤이 이어지는데, 양반춤은 머슴이 양반 복장을 하고 자신의 주인인 상전(上典)의 흉내를 내며 맺혔던 원망을 풍자와 익살로 희롱하여 흥을 돋운다. 병신춤은 각종 병신들을 가장하여 웃음을 자아낸다.

이 외에도 범부춤과 북춤이 등장하고, 일반적인 악기는 물론 물허벅에 바가지를 엎어놓고 두드리던 물장구와 독 뚜껑을 나무틀에 매달아놓고 두드리는 사장구도 포함되었다. 이렇게 울분을 토해내고 즐김으로써 한때나마 지친 일상을 위로하는 자리로 변하는 것이다.

이 행사에서 불리던 노래는 역시 농요인 모심기노래와 논매기노래가 주를 이루었고, 중간중간에 들리는 ‘밀양아리랑’ 가락은 매우 명랑하며 빠른 것이 특징인데 이것을 지게목발 장단으로 풀어내는 것도 일품이다. 그러나 종국(終局)에는 풍년 농사를 기원하는 농신제였으니, 농부의 염원은 항상 지난 것에 대한 감사와 앞으로의 무사(無事) 풍년(豐年)에 있었던 것이다.

현재의 밀양백중놀이가 유명한 또 다른 이유로는 밀양지방의 단독행사가 아니라 영호남의 화합한마당을 꾸미는 것이라든지, 각 지역의 대표적인 풍속을 초청하여 함께 어울린다는 점이다. 그런가 하면 충남의 연산백중놀이, 충북의 목도백중놀이, 충북의 청주백중놀이 등에서도 일부나마 재현되고 있다. 밀양백중놀이는 중요무형문화재로, 연산백중놀이는 지방무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21.3 백중에 먹는 시절 음식

7월 보름의 백중에 먹는 음식으로는 각종 부각과 지짐, 게장, 멸치젓, 새우젓, 늙은 오이로 만든 노각나물, 애호박나물, 가지나물, 연한 박나물, 산고추잎나물, 시금치나물, 원추리잎나물, 쑥갓나물, 도라지나물, 마른 고구마순나물, 고구마순나물, 연자(蓮子)밥 등이 있다. 이런 음식들은 대체로 사찰 음식에 해당하며, 백중이 사찰에서 중히 여기는 날임을 암시한다. 한편 사당에 올리는 밥반찬으로서의 음식은 밀가루에 박잎이나 깻잎 등을 넣어 지졌고, 밀가루에 햇감자로 부친 전(煎)도 제향(祭享)하였다.

경상도 지방에서는 백중날에 가지(茄子)의 껍질을 벗겨서 희게 만든 백가지(白茄子)를 만들어 먹었다. 이는 백중(百中)이라서 100가지의 나물을 준비해야 하는 데 이를 장만할 수가 없기에, 나물 백종류(百種類)와 발음이 같은 흰 가지 즉 백가지를 활용한 편법이라 하겠다. 전라도 어촌에서는 백중날에 소라와 다슬기를 잡아 시절 음식으로 먹었으며, 제주도에서는 빅근다리라고도 불리는 ‘빅개’의 회 즉 빅개회를 먹는다.

이 밖에도 증편이나 밀전병, 육개장, 게, 전유화, 깻국탕, 냉면, 어채, 김칫국, 오이김치, 열무김치, 과일 등을 먹었다. 또 봄부터 먹어왔던 쑥버무리도 있고, 옥수수를 삶아 먹어도 제맛을 느끼는 계절이다.

백중이 되면 복숭아가 제일 맛있을 철이다. 음력 7월 15일은 양력으로 8월 1일부터 8월 말 사이에 든다. 요즘 달력으로도 복숭아가 제맛을 내는 시기다. 물론 8월 전후를 따져보면 다른 과일도 있기는 하지만, 수박은 조금 빠른 시기에 나오며 포도는 조금 늦은 시기에 나오니 복숭아를 따라올 과일이 없다. 따라서 백중에 복숭아를 먹으면 여성은 살결이 부드러워지고, 남성은 건강해져서 만사가 형통한다고 하였다. 이것 역시 제철 과일의 중요성을 말한 것인데, 두고두고 아껴 먹는다고 하여 냉장고처럼 차가운 곳에 보관하면 맛이 반감하는 것이 복숭아의 특징이다.

그런데 이렇게 좋은 복숭아를 왜 조상님 제사에 올리지 않았을까. 그 답은 복숭아 혹은 복숭아나무가 귀신을 쫓는 다고 믿었던 데서 유래한다. 도연명의‘도화원기(桃花源記)’에 의하면 복숭아는‘백 살까지 살게 하는 선약(仙藥)’이라 하였다. 그래서 천도(天桃)와 선도(仙桃)라는 말이 생겨났는데, 백 살이 아니라 천(千) 살 혹은 옥황상제와 같이 영원히 죽지 않는 다는 전설도 있다. 그러니 옥황상제는 휘하인 일개 귀신이 자기와 동급이 되는 것은 원치 않는 일이기에 귀신을 쫓는 구도로 만들었다고 한다. 아울러 천도를 따 먹다 들키면 비록 선녀(仙女)라 하더라도 바로 지상으로 쫒겨 나는 천벌(天罰)을 받았던 것이다.

또 다른 얘기로는 세상의 모든 귀신들이 점고(點考)를 받는 동굴이 있는데, 그 동굴 입구의 문지기 귀신은 세상을 돌아다니다 새벽에 들어온 귀신의 공과(功課)를 따져 출입을 통제하였다. 이때 형벌을 받아야 할 귀신을 복숭아나무에 매달아 놓았다가 낮에 호랑이 밥으로 주었다. 이때부터 호랑이와 복숭아나무는 귀신들의 기피 대상이 되었다고 한다.

좀 더 현실적인 얘기로 복숭아씨를 도인(桃仁)이라 하는 데, 도인(道人)과 같은 발음인 것처럼 복숭아나무의 어짐을 뜻한다. 따라서 귀신이 어질고 착한 복숭아나무를 무서워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였을 것이다. 또 잘 익어 불그스레한 복숭아는 남녀칠세부동석을 연상하는 여자의 엉덩이나 젖가슴에 비유된다. 따라서 조상을 모시는 신성(神聖)한 상(床)에 부정(不淨)한 복숭아를 올리게 되면 귀신이 왔다가 그냥 돌아서서 간다고 하였다. 이런 것은 도교(道敎)와 유교(儒敎)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추측된다.

21.4 백중사리

우리들이 생각할 때 백중에는 백중사리가 가장 친숙한 단어다. 백중사리는 백중날에 있는 사리를 말하며, 음력 1일과 15일에 바닷물의 수면이 높아지는 것에서 비롯되었다. 다시 말하면 썰물이 적고 밀물이 많은 것을 나타내는데, 연중 바다 수면이 가장 높은 때가 백중사리다. 이때는 달과 태양과 지구의 위치가 일직선상에 있으면서 달과 지구가 가장 가까운 거리로 백중 전후로 3~4일간이다.

백중사리 때는 바닷물의 높이가 높아지면서 가끔 제방이 유실(流失)되거나 바닷물이 제방위로 넘쳐흘러 논과 밭에 피해를 주는 경우가 발생하기도 한다. 만약 이 시기에 비라도 내리게 되면 침수지역이 많아지고 피해는 더욱 커지고 마는 것이다.

21.5 백중과 현실

백중은 불교에서 큰 행사일로 여기지만 일반인들에게는 그리 중요한 날이 아니다. 게다가 여름 농사철이 조금은 한가하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편히 쉴 정도는 아니라서 별도로 신경을 써야 하는 날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나 바닷가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관심을 가져야 하는 날이었다. 우리나라는 지형학적으로 여름 태풍이 많이 불어오는데 백중과 태풍이 겹치면 저지대에서는 많은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백중이라는 시기에 달의 인력(引力)이 가장 강하여 1년 중 최고의 만조(滿潮)가 되며, 많은 비로 갯물이 증가하기 때문이다.

바닷물은 하루에 두 번 들어오고 나간다. 즉 6시간의 터울을 두고 물이 나갔다가 들어오기를 반복한다. 이때 음력 1일과 15일을 기준으로 물이 적게 나가고 많이 들어오는 것을 사리라고 한다. 우리가 라면이나 국수 혹은 냉면을 먹을 때, 한 덩이 더 얹어 먹는 것을 사리라고 하는 것과 비슷한 이치다. 반면에 매달 음력 7~8일과 22~23일로 조수(潮水)가 가장 낮은 때를 조금이라고 한다.

그러니 바닷물이 많이 들어오는 시기에 맞춰, 육지에서도 비가 와서 빗물이 많이 흘러내리면 강의 하구(河口)는 그야말로 물바다가 되는 것이다. 미처 나가지 못한 물과 이제 막 들어온 물이 아직 빠져나갈 시간이 안 되었으니 서로 뒤엉켜 저지대에서는 침수가 될 수밖에 없다. 그중에서도 1년 중 음력 7월 15일에 가장 수위가 높은 사리가 되어 이를 특별히 백중사리라고 부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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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전국 행사 사진 500여장을 첨부하여 '선조들의 삶, 세시풍속이야기'라는 책으로 출판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