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장과 소금 간
올해 입동은 11월 7일이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계절로는 11월 초순이니 아직은 가을에 해당한다. 그래서 겨울은 아니고 이제 겨울에 들어선다는 입동이라는 말이 맞는 말인 것 같기도 하다.
이런 계절이 오면 추수동장이라는 말이 생각난다. 가을에 수확하여 겨울에 먹을 식량을 저장한다는 말이다. 추수동동장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잘 익은 벼의 수확이며, 튼실하게 자란 배추와 무를 수확하는 것이다.
올 여름에는 우려할 만한 태풍도 없었고, 가을 벼가 익을 무렵에 한바탕 소란을 피우기는 하였지만 별다른 피해 없이 지나갔다. 따라서 벼를 비롯한 과일, 채소 등이 모두 풍작을 이루었다고 한다. 여름 과일이 잦은 비로 인해 녹아버렸던 것에 비하면 아주 잘된 일이라 할 것이다. 이렇게 풍성한 수확을 한다고 하더라도, 겨울잠을 자는 동물처럼 한꺼번에 많이 먹어둠으로써 내년 봄까지 먹지 않아도 되는 것은 아니니 이의 저장이 중요한 숙제로 남는다.
따라서 사람들은 벼를 쌓아둘 곡간을 짓고, 배추와 무는 절여서 김치를 담근다. 그런가 하면 어떤 곡식들은 잘 말렸다가 필요한 때에 물에 불려 조리하기도 한다. 풍부할 때에 저장하였다가 부족한 때에 꺼내 사용하는 지혜를 엿볼 수 있다.
이런 준비 중에 김장김치는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추운 겨울을 나는 땔감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우선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김장을 하는 날이면 겨울의 초입에서 가장 큰 행사에 속했다. 대가족제도에 의해 식구들이 많았던 탓도 있었겠지만, 그만큼 먹을거리가 부족하였던 시절인 만큼 다른 대안이 없었던 부분도 있다.
김장을 하려면 우선 적당한 날을 고른다. 혼자서 하기에는 일손이 벅차니 이웃들과 힘을 합쳐야 하는 것으로 서로 겹치지 않는 날로 정해야 한다. 그리고 배추나 무와 버무릴 양념을 미리미리 준비하여야 한다. 고춧가루 그리고 파와 마늘은 물론 배와 사과, 심지어 생선이나 돼지고기와 같은 재료를 섞어 지역별로 색다른 김치를 만들기 때문에 형편에 맞게 여러 가지 재료를 준비한다.
그리고 김장을 담그는 당일에는 마을 아낙들이 모여 이런 저런 얘기를 주고받으며 힘을 보탠다. 머리를 단정하게 빗고 수건을 쓰며, 새하얀 앞치마를 두르고 소매를 걷어붙인 모습이 바로 김장날의 풍경이다. 양념을 버무리기 전부터 재료의 간을 보며, 하나를 버무리고 나서 다시 맛을 본다. 이때 원재료의 맛이 싱겁고 양념은 짜다, 혹은 배추는 짠데 양념이 너무 약하다 하는 말들이 오고간다. 그러면서 잘 버무린 배춧잎 하나를 쭉 찢어 이 사람 저 사람 입에 넣어주고 자기도 한 입 씹어본다. 그리고는 마치 맛 품평회라도 하는 듯 이런 저런 말들이 많다.
김장은 이렇게 여러 사람이 모여 왁자지껄한 것이 그 중 하나의 재미에 속한다. 그러나 한 가지 명심해야 할 것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재료와 양념의 간은 그 집 주인이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누가 뭐라고 해도 먹을 사람의 입맛에 맞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때 목소리가 큰 어느 누구의 말을 들었다가 겨우내 입맛에 맞지 않는 김치를 먹는 수가 생기기도 한다.
위에서 언급하지 않은 것이 하나 있으니 바로 배추를 소금에 절이는 과정이다. 김장을 담글 재료는 누런 잎이나 벌레 먹은 곳을 떼어내고 잘 다듬은 다음, 적당한 농도의 소금물에 담가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싱싱하던 재료가 힘을 잃고 시들해지면서 부드러워 지는 것이다. 이때 필요한 양념을 얹고 버무리면 맛있는 김치로 재탄생하게 된다.
소금물에 배추를 절이는 것은 너무 짜거나 싱거워서는 안 된다. 김치는 재료 자체가 가진 본래의 맛과 양념의 맛이 좌우를 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바로 소금의 맛이라 할 수 있다. 언뜻 생각하면 소금이 무슨 맛이 있느냐고 할지도 모르지만, 소금이란 짠 맛 외에도 여러 가지 무기화합물을 포함한 음식 재료이다. 요즘 질이 좋지 않은 수입산 소금을 사용하여 김장김치를 버렸다는 사람들이 많은 것을 보아도 알 수 있는 부분이다.
세상에는 많고 많은 소금이 있다. 생산 방식에 의해서 보더라도 바위에서 캐내는 암염을 비롯하여 바닷물을 증발시켜 만든 천일염도 있다. 그런가 하면 바닷물을 증발시키는 방식이라 하더라도 불을 때서 인위적으로 조절하는 방식과 더운 여름날 태양 볕에 의해 만들어내는 것들도 있다. 거기다가 바닥을 흙으로 다져 만든 것 혹은 사기나 옹기를 깔아 만든 것, 심지어 비닐 장판을 깔아 만든 것 등 여러 방식이 있다.
그런데 이런 방식도 중요하지만, 그 원재료인 바닷물이 좋아야 하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우리나라는 천일염 중에서도 신안소금을 제일로 친다. 우선 갯벌이 주는 복합영양분을 함유한 바닷물이면서 대기 중의 오염이 적은 것이 그 장점이다. 따라서 우리나라의 천일염은 갯벌이 있는 서해안에서 생산되는 것이 상식이다.
예전에는 신안뿐 아니라 고창, 곰소, 안면도, 강화 등 서해안의 주요 갯지역에서 생산되던 소금이었다. 그러나 요즘의 천일염은 신안의 대명사로 변해가고 있다. 그것은 소금을 만드는 과정이 힘들고 여러 번의 손길이 필요한 때문에 점차 사양산업으로 접어들고 있다는 말도 된다.
오래전 곰소 소금역시 신안에 버금할 정도로 아주 유명하였었다. 그것은 섬이 아니라 육지에서 바로 수송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작용하였던 원인도 한 몫 하였다. 그런데 지금은 그런 장점도 살리지 못하고 있으며, 수질 오염마저 이를 부채질하는 실정이다. 상전벽해, 이 말을 증명이라도 하는 듯이 고창컨트리클럽은 버려진 염전위에 세워졌다. 이렇게 사라지고 있는 것이 우리 전라북도의 염전이다.
효용성이 떨어진 것은 새로운 경제논리에 맞춰 거듭나야 하는 것이 살아있는 것들의 생리라 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어떤 방법으로 어떻게 개발할 것인가는 우리들이 더 고민해보아야 한다. 가까운 미래가 중요하다면 먼 미래도 중요하기는 마찬가지다. 어느 쪽이 더 가치 있는 일인지는 생각하는 사람마다 다를 수 있어도, 훗날 그렇게 하는 것이 옳았다는 말은 단 한 가지밖에 없는 것이다.
목소리가 큰 사람의 입맛에 맞추다보면 자칫 주인은 입에 맞지 않는 김치를 먹어야 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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