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쓴 책이 팔리지 않는 이유
산소는 우리 몸에 꼭 필요한 원동력이면서 단 1분만 마시지 않아도 곧 사망에 이를 정도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러한 산소를 원소기호로 따져보면 O₂이다. 이때의 O₂를 다시 숫자로 번역하면 52가 된다. 따라서 산소독서는 52독서로 풀이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그냥 만들어낸 합성어이다.
지난 12월 9일, 나는 오투독서를 주장하는 사람과 만난 적이 있다. 이 말은 1년 365일, 매일 책을 읽자는 취지이며, 풀어보면 1주 에 한 권씩은 읽어보자는 의미이다. 이때 말을 해 준 사람은 벌써 40여 권을 읽은 상태였으며, 연말에 바빠질 것을 대비하여 서둘러야겠다는 말도 덧붙였다. 게다가 책은 마음의 양식이라 하였으니, 책을 통하여 산소처럼 중요한 역할을 얻으라는 말도 포함되어있는 것이다.
이 말을 들은 나는 과연 몇 권이나 읽었을까 반성해보았다. 매달 받아 보는 사외보가 5권이 있으며, 지인으로부터 받는 작품집이 5권 정도가 되니 최소한 1년에 65권의 책은 읽는 셈이다. 물론 이 책들의 처음부터 끝장까지 모두 정성을 들여 읽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줄거리는 훑어볼 정도이니 읽었다고 해도 좋을 정도는 된다. 이때의 사외보가 좀 편중되고 빈약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래도 예전의 선데이서울 수준은 아니다. 그럼에도 다른 사람들이 볼 때에 책으로 쳐줄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그래도 나는 내가 필요할 때에는 엄연한 책이라고 우겨서 위안을 삼기는 한다. 가정에서 보는 요리책이나 요즘 열풍인 효소관련 책, 주부생활 혹은 전원생활 등의 잡지도 책이긴 마찬가지이니 말이다.
그날 저녁 비록 헌 책이기는 하지만 승용차 트렁크에 한 가득 책을 얻어왔다. 곁에 두고 많이 읽어보자는 취지였다. 물론 옆에 쌓아놓았다고 저절로 책이 읽어지는 것은 아니나, 그래도 내가 마음만 먹으면 더 많이 읽을 수 있으리라는 기대도 포함되어 있었다. 내가 이 책을 얻는 데에 약 15만원의 비용이 소요되었다. 그러고 나니 비로소 내 책이 되었다는 생각이 들면서 소중하다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그리고 다음날 예전부터 마음에 두고 있었던 4권의 책을 읽었다. 물론 부담이 적은 소설책이기는 하였지만 그래도 마음은 뿌듯하였다. 올해 들어 읽은 책을 살펴보면 정가가 매겨져서 판매용이 겨우 10여 권에 지나지 않았다가 마지막 달 그것도 하루에 4권의 추가라니 뭔가 어울리지 않는 듯하였다. 그러나 누구든 처음에는 다 그렇게 시작하는 것 아닐까?
내가 굳이 책에 대하여 글을 쓰는 이유는 또 하나 있다. 나는 글을 쓰는 사람이고, 그 글을 책으로 내어 국민들에게 선 보이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는 유명 작가가 아니라서, 아직 내 이름만 가지고는 내 책을 팔 수가 없는 정도로 미미한 존재이다. 그렇다고 대대적인 광고를 통한 홍보를 할 형편도 아니며, 그럴 만한 아이템도 찾지 못한 상태이다.
그럼에도 나는 몇 권의 책을 내어 판매를 하였지만, 아직도 알려지지 않은 무명작가 상태이다. 그럴 때마다 나는 아직 덜 익은 과일에 지나지 않으며, 크고 탐스런 과일이 되면 많은 사람들이 눈독을 들일 것이라는 기대는 져버리지 않고 있다.
그런데 현실의 조건은 이와 다른 것 같다. 정부가 발표한 바에 따르면 지난 5년간 성인 10명중에 3명은 책을 한권도 읽지 않은 것으로 나타난 것이다. 혹시 읽은 사람이라 하더라도 직장에서 강제로 읽어야할 책, 학교에서 가르치느라 읽어야할 책 등을 제외하면 나에게 눈 돌릴 여유가 없었음을 실감하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나 외의 여러 사람들은 각자의 능력에 따라 많은 책을 판매하고 있으니, 이것 또한 변명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내 책을 많이 읽어보라는 취지에서, 내가 펴낸 책을 무상으로 나누어주는 실정이다. 이른바 자비출판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부분이 어떻게 보면 매점매석이 아닐까 혹은 사재기가 아닐까 생각도 해본다. 내가 내 책을 사재기하였다가 다 팔린 것으로 보이면 하나씩 나누어주니 말이다.
말하자면 나는 위의 책 읽는 사람 3명이 선택할 만한 책을 아직 쓰지 못했으며, 책을 읽지 않은 사람 나머지 7명이 읽으려고 찾을만한 가치가 있는 책을 쓰지 못한 것이다. 그래서 현재까지 써 낸 책은 의도대로 팔리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따지고 보니 30% 그리고 70%가 내 책을 선택하지 않은 것은 모두가 내 탓이다. 내가 능력이 없어 좋은 책을 쓰지 못한 책임, 돈이 없어 홍보를 하지 못한 책임, 그리고 독자가 선택할 만한 가치가 있는 책을 쓰지 못한 책임이 바로 나에게 있다는 말이다.
이런 말을 쓰는 순간에도 나는 작가라는 이름이 무색하고 독자와 눈이 마주칠까봐 고개가 숙여진다. 이른바 무명작가의 비애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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