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군부사관학교 다시 보기
난 1월 9일 익산에 있는 육군부사관학교에 다녀왔다. 이날은 며칠간 봄날 같던 날씨가 마치 수능한파라도 몰고 온 듯이 매서운 바람을 불어 댄 날이었다. 하긴 예로부터 대한 추위가 소한 집에 놀러 왔다가 얼어 죽는다는 전설이 있었으니 1월 초순의 기온이 차가울 것은 당연하였겠지만, 하필 그런 날에 입교하는 아들을 두고 오려니 마음 한 쪽이 짠했었다.
장성한 아들을 군에 보내려면 논산에 있는 육군훈련소를 먼저 떠올린다. 그런가 하면 장교로 가는 후보생들은 육군사관학교나 육군삼사관학교를 생각하며, 일부는 학훈장교 혹은 학사장교를 떠 올린다. 물론 이들이 각자의 주특기에 따라 후반기 교육을 어디서 받느냐는 별개로 치고 말이다. 그러나 군은 부사관이라는 직책을 두어 가교 역할을 하면서 한편으로는 전문성을 담보로 하고 있다. 이러한 부사관을 양성하는 기관이 바로 육군부사관학교이며, 우리나라에 단 하나 뿐인 그곳이 우리 익산에 있다는 것 또한 아는 사람도 별로 많지 않다.
예전에는 제1 부사교와 제2 부사교로 나누었다가 익산으로 통합하여 운영한지도 벌써 오래 전의 일이다. 통합의 이유를 들자면 수요가 예전보다 못해서 일 수도 있지만 교육의 효율성이나 전문성을 높이기 위한 수단일 수도 있다. 아무튼 현재는 육군의 부사관이 되기 위해서 반드시 이곳에서 교육을 받고 임관하여야 하는 것은 불변의 진리다.
군에 가지 않은 사람이 절반이 넘는 우리나라에서, 그리고 다녀 온 사람이라 하더라도 부사관이 아닌 직급으로 다녀온 사람들은 잘 모르는 이곳이 뭐 그리 중요할까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한 축을 길러내는 요람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 그리 만만하게 대할 곳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방부에서 모든 것을 책임지니 관심 밖의 일이며, 군의 특성상 밖으로 알려지는 것이 능사가 아니기에 가깝고도 먼 이웃이 되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전국에서 모여 교육을 받는 동안 이곳에 머물다 간 많은 젊은이들이 익산을 대하는 태도와 전북을 생각하는 마음을 어떻게 가질지 돌아본다면 결코 쉽게 넘어갈 일은 아니다.
최근 익산에서는 국제마음수련원 건립 문제로 고역을 치른 경험이 있다. 수련원을 지으면 전국에서 수련자가 모일 것이며, 자연스레 익산이 홍보되고 지역 경제에도 파급 효과가 있을 것이라는 분석이었다. 그러나 국민의 세금을 특정 종교단체가 주관하는 시설에 지원하는 것은 비합리적이라는 지적도 있었다.
그런데 만약에, 마음수련원을 건립하려 하였던 재원을 익산의 부사관학교에 변경 투자하였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생각해본다. 이정표를 단장하고 입구의 좁은 목 2차선 도로도 확장하며, 길가의 가로수나 주변 상가도 손질하고, 익산역과 터미널에서 임시 버스 운송노선을 설치하는 등 피교육생과 그들 가족을 위한 배려도 확충하면 어땠을까. 물론 지금 말하는 수련원 계획은 어차피 무산되었기에 마음 놓고 말하기는 하지만, 이와 같은 내용으로 지금 운영되고 있는 부사관학교에도 좀 더 많은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다는 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무슨 일이든 투자에는 효과가 따른다. 그것이 보이는 것이든 보이지 않는 것이든, 혹은 물리적인 것이든 문화적인 것이든, 그리고 크든 작든 효과가 생기기 마련이다. 어떤 때는 전혀 바라지 않는 방향으로 역효과를 낼 수도 있다. 하지만, 일반적인 경우 우리는 투자에 따른 예측 효과를 유추하기가 어렵지는 않다. 다만 그것이 정성적이냐 아니면 정량적이냐 하는 문제는 있을 수 있다.
익산의 부사교에서 좋은 인상을 받은 부사관들이 전국의 각 부대에 배치 된 후, 소속 부대원들에게 미치는 익산의 파급효과는 그들이 받은 대로 홍보해 줄 것이다. 외형적인 인상이 아무리 좋았다 하더라도 피교육생 시절에 받은 고통이 심하였다면 도매금으로 좋지 않은 인상을 가졌겠지만, 모든 것을 부정적으로만 볼 것은 아니다. 그보다는 긍정적인 면이 더 클 것이기 때문이다.
익산에 그리고 전북에 오지 않으려는 손님을 끌어들이기 위해 특별히 전북 방문의 해를 만들면서 많은 돈을 들여 홍보하는 것은 아주 중요하고 필요한 일이라 생각한다. 어떤 측면에서는 우리 전북이 살아남기 위한 최후의 수단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가만히 두어도 저절로 찾아오는 손님은 홀대하면서, 오지 않는 손님을 일부러 찾아 나선다면 그것 또한 우스운 일에 틀림없을 것이다.
2014년 1월 9일 목요일. 그날은 매서운 바람이 불었다. 익산에 사는 나는 30분이면 집에 도착하니 아무리 춥다한들 뭐가 불편한지 뭐가 필요한지 잘 알지 못한다. 따라서 서울 혹은 강릉까지 가야 하는 가족 아니면 부산까지 가야 하는 가족들은 어떤 것이 필요했었는지 잘 모르겠다. 배가 고픈데 어디서 무엇을 먹어야 할지, 가다가 중간에서 자고 갈지 온 김에 관광이라도 하고 갈지.
내가 본 부사관학교 입구에는 눈물로 이별하면서 따뜻한 차 한 잔 건네줄 공간도 없었다. 어디 서서 바람을 피할 곳도 없었다. 실제로 자식을 바라보기보다는 찬바람을 피해 자신이 타고 온 승용차 안으로 몸을 숨기기에 급급하였던 장면이 떠오른다. 그렇다면 그 흔한 귀마개는 고사하고 엄동설한 찬바람을 막아줄 담벼락 하나 없는 곳에서 떨다가 입교하는 자식을 두고 돌아서는 부모의 심정은 오죽했을까. 이들이 훌륭한 부사관이 되어 각자의 부대에 배치되어 근무하면서 그리고 방문했던 부모들이 과연 익산을 좋게 이야기 할 수 있을까? 아니 전북을 좋게 이야기 할 수 있을까 의문이 든다.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자원을 충분히 활용하는 것은 아주 중요한 일이다. 같은 맥락에서 평소 가까이 있기에 잘 느끼지 못했던 부사관학교에도 좀 더 많은 관심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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