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심과 배려
지난달 육군부사관학교에 대하여 어깨너머로 보고 느낀 글을 실었던 적이 있다. 학교 관계자나 피교육자 혹은 행정 당사자가 아닌 제3자의 입장에서, 그러나 익산 시민의 입장에서 짧은 순간에 받았던 감정을 적은 내용이었다. 그러기에 특별할 것도 없는 것은 물론이며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한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이 글을 본 학교 관계자는 호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내가 쓴 글로 인하여 어떤 성과가 나는 것도 아니며 조금이라도 발전적인 모습을 보이는 것이 아닌 것을 알면서도, 전반적으로 긍정적인 반응을 보인 것이다. 그것을 한 마디로 표현하면 관심을 가져 주어서 고맙다는 말이었다.
이런 이유에서 학교 측은 나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려고 몇 차례 전화 접촉을 시도하였었단다. 그러나 이때마다 공교롭게도 전화를 받지 못했다. 점심시간에 밥 먹는 동안 전화기를 놓고 간 때였거나 회의 중에 전화기를 진동으로 놓는 등의 이유로 연결이 안 되었던 것이다. 부재중에 전화가 왔었다는 것을 나중에 확인은 하였지만 요즘처럼 스팸전화가 극성인 시절에 내가 먼저 전화를 걸어 확인하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 며칠 후, 어떤 행사에 참석하기 위하여 위 학교를 방문할 일이 생겼다. 그날 행사장에 약 1,0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이제 막 식이 시작되기 직전, 사회자가 방송으로 나를 찾았다. 내가 행사에 참석하였는지 모르는 상태였으며, 왔다고 하더라도 어디에 있는지 모르기 때문에 취한 행동이었을 것이다. 그때 나는 사회자의 바로 뒷자리에 앉아있었는데, 만약 사전 교감이 있었더라면 그런 지척의 나를 두고 방송으로 불러대며 찾지는 않았을 것이다. 전화를 받지 못한 것은 당신의 책임이니 관심을 가져주어서 고맙다는 말을 늦게라도 일부러 찾아서까지 할 필요는 없었다는 것이다.
나는 이 일을 두고 배려라는 단어를 떠 올렸다. 배려를 굳이 따진다면 조금이라도 형편이 나은 사람이 나보다 곤란한 지경에 있는 사람에게 베푸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는데, 나는 그날 일반적인 배려 외에 또 다른 배려를 느꼈다. 남이 나에게 베푸는 배려를 알아주는 것 또한 하나의 배려라는 생각을 하였던 것이다.
최근에 나는 〈뜨거운 관심〉이라는 책을 읽었다. 실적이 저조하여 해체되는 팀원들은 퇴사를 하지만 팀장만은 개인적인 실력을 인정받아 살아남는 내용이다. 그러나 팀장은 팀원들이 없으면 자신도 그만두겠다고 하여 다시 한 번의 기회를 얻은 후 재기에 성공한다는 내용이다. 이때 적용된 툴이 팀원들에 대한 배려와 관심이었다. 다시 말하자면 리더십의 일종에 속한다고 말할 수도 있다.
내가 이 번 육군부사관학교의 처사에 대하여 논하고자 하는 것은, 작지만 관심을 가져준 데에 따른 진심을 파악한 후 긍정적으로 받아들인 후 이에 대하여 감사의 관심을 표명한 일이다. 사람들은 대체로 자신에게 관심을 가지면 감사의 마음을 가진다. 그러나 그에 대하여 다시 관심을 표현하는 경우는 그리 흔하지 않은 일이다.
현재 학교의 최고 책임자는 부산출신이며, 나는 익산출신이라 일면식도 없는 사람이다. 어쩌다 보니 내가 부산에서 학교에 다닌 적은 있지만 살던 지역이 멀리 있고 나이 차이도 있어 만나 보기는커녕 생각조차 해본 적도 없는 사람이다. 따라서 전에 언급한 바와 같이 부산출신이 익산에 대한 좋은 감정을 가지게 하는 것 중에는 거창한 것도 필요하겠지만, 작지만 관심을 가진다는 것 또한 중요한 일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결론을 놓고 보면 학교 측이 나에게 배려를 한 것은 확실하지만, 그 전에 내가 먼저 학교 측에 배려를 한 것은 아닌지 생각도 해본다. 이처럼 작은 일이지만 내가 먼저 관심을 가진다는 것이 바로 배려라고 생각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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