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선유도의 숭산행궁 발견
옛 왕조정치에서 왕이 살았던 장소를 왕궁이라고 한다. 이를 줄여서 궁이라고도 하며, 특별한 건물마다 고유의 이름을 붙인 고유명사로 부르는 경우도 있다. 우리 전라북도에는 옛 왕도정치의 수도였던 곳이 여럿 있는데, 그 중에서 익산의 백제 무왕시대의 왕궁으로 지금의 지명과 같은 발음인 왕궁을 들 수 있고, 그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보면 고조선에서 남하한 준왕이 살았던 익산 금마가 있고, 그 보다 더 오래된 내용으로는 마한의 작은 나라들이 있었다.
이들 나라들은 각기 백성을 통치하는 목적 외에도 외세의 침략을 방어하거나 혹은 자신의 권위를 내세우기 위하여 거대한 궁을 지어 과시하였다. 이때 지어진 것이 궁궐이며, 왕이 잠시 출타 중에 머무는 중에도 임시로 거처를 정하면 거기에 작은 궁궐을 짓기도 한다. 이것이 바로 행차 중의 머무를 궁이라는 뜻에서 행궁이라 부르며, 지금까지 알려진 것으로는 조선 정조 때의 수원행궁 즉 당시 이름으로 화성행궁이 있었다.
물론 이런 행궁에서 몇 시간 혹은 잠시 땀을 식히는 휴식을 취한 다음 떠난다면 굳이 행궁을 짓지 않을 것이나, 혹 며칠 동안을 머문다면 으레 작은 임시 궁궐을 지었다고 보아야 한다. 화성행궁은 조선조의 정조가 어머니 혜경궁 홍씨 즉 대비마마의 회갑을 맞아, 아버지 사도세자의 묘가 있는 수원까지 내려가서 머물다 오는 8일 간의 행차용으로 지어진 궁궐이며, 그때 그려진 그림이 그 유명한 능행반차도이다. 능을 향해 가는 행차를 차례대로 빠뜨리지 않고 그린 그림이라는 뜻이다. 아직까지 다른 행궁에 대한 발굴이 이루어지지 않아 세인의 사람을 듬뿍 독차지 하고 있었던 화성이다.
그런데 이번에 새로운 행궁이 하나 발견되었다. 이른바 숭산행궁으로, 전라북도 선유도에 있는 것이다. 숭산행궁은 농부가 밭을 갈다가 발견된 사금파리 조각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으나, 땅을 파도 파도 계속하여 나오자 이를 인근의 군산대학교에 신고하면서 알려졌다. 이에 따라 군산대학교박물관은 2013년 12월부터 2014년 1월까지 약 3개월에 걸친 선유도 망주봉 남쪽 기슭에 대한 시굴조사를 하였다.
숭산행궁(崧山行宮)에 대한 기록은 1123년 송나라 사신 서긍(徐兢)이 고려를 방문한 후 기록한『선화봉사고려도경(宣和奉使高麗圖經)』에 처음 나타나고 있다. 이 책에 의하면『삼국사기』를 편찬한 김부식의 주관으로 군산도 즉 지금의 선유도에서 국가차원의 대규모 영접행사가 열렸다고 전한다. 또 행궁을 비롯하여 군산정, 자복사, 오룡묘, 객관 등 국가 중요시설이 들어서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 영접행사가 이때만 있었는지 아니면 그 전에도 여러 번 치러진 행사였는지는 알 수가 없다. 아무튼 이를 근거로 해석해보면 당시 군산도의 지리적 역할이 매우 중요하였었음을 짐작할 수는 있다.
실제로 중국에서 많은 물자를 실은 화물선이 높은 풍랑을 피해 우리나라 서해안 연안을 따라 운항하였을 것이며, 마침 군산도는 중간 기착지로서 휴식과 교역의 역할을 하였다는 주장도 있다.
현재까지 조사한 바에 의하면 고려시대 건물터의 흔적이 남아있으며, 최고급 청자편과 기와편 등이 산재되어 있는 것이 확인되었다. 그리하여 숭산행궁이라고 추정되는 곳에 대한 시굴조사를 실시한 바, 건물의 기단석과 적심시설, 담장시설 등이 일부 확인되었고, 청자양각도철문원형향로(靑磁陽刻饕餮文圓形香爐) 조각과 청자상감국화문합(靑磁象嵌菊花紋盒) 조각 등 고려시대 최고의 기술력으로 제작된 유물편들이 출토되었다.
그러면 이 숭산행궁은 어느 왕 때 어느 용도로 지어진 것일까. 혹시 해상무역의 중심지로서 각국의 중간 무역상들이 모이던 곳은 아니었을까, 아니면 선유도라는 이름답게 왕이 여름 피서 단골지로 택하였던 곳은 아니었을까, 그도 아니면 그곳에 정박하던 각국의 사신들과 거부 무역상들을 점검하면서 세금을 받던 곳은 아니었을까. 그러나 아직 그 해답은 얻지 못하고 있다.
이른바 새만금이 세계인의 주목을 받으면서 다목적 용지로 거듭나려는 이 때, 선유도의 행궁발견 소식은 우연의 일치가 아닐 것이다. 이 기회에 옛 명성을 되찾고 세계인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아름다운 휴양지로, 활발한 해상무역항으로 거듭나기를 기대해본다.
한호철 2014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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