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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시대의 선거와 문화

꿈꾸는 세상살이 2014. 9. 15. 21:53

지방시대의 선거와 문화

오늘은 전국에서 동시에 실시하는 지방선거의 날이다. 각 지방자치단체의 장을 뽑거나 의회의 의원을 뽑는 날이며, 동시에 교육계의 지도자를 뽑는 날이기도 하다. 각자는 자신들을 대표하는 인물을 뽑기도 하지만, 자신의 의견을 반영하여 목적하는 바 즉 정책이 바로 펴질 수 있을 만한 인물을 선택하게 된다. 이것이 여러 사람이 원하는 가장 필요한 욕구를 찾아내는 일이며, 따라서 선거를 민주주의의 최대 장점이며 꽃이라고 부르는 이유가 성립되는 것이다.

그러나 반대로 생각해보면 선거는 민주주의의 가장 잘못 된 방법일 수도 있다. 의식 있는 많은 사람들조차 다수가 따른다고 하여 반드시 옳은 것이 아닌 줄 알면서도 그것을 마치 정론인양 따라야 하기 때문이다. 마치 악법도 법인 것처럼. 그렇다면 선거에 대한 다른 방안은 있는가? 이에 대한 답은 전문 학자나 법률가 혹은 철학자들에게 맡기고, 오늘은 풀뿌리에 대하여 생각해보고자 한다.

풀뿌리는 풀을 지탱하는 기둥 역할을 하면서, 풀에게 필요한 영양분을 흡수해서 올려주는 곳이기도 하다. 물론 영양분이라는 것이 반드시 풀뿌리를 통해서만 전달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토양의 영양분은 뿌리를 통해서 흡수되기 때문에 일반적인 설명으로는 정답이라 말할 수 있다. 따라서 뿌리가 튼튼해서 어떤 습해나 목마름에도 잘 견딜 수 있어야 하며, 해로운 영양소가 오면 이를 잘 선별하여 필요한 영양소만 골라 낼 줄 아는 기능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따라서 보통 사람들이 말하는 풀뿌리민주주의를 가장 작은 단위의 기초단체에 대한 민주주의 방식을 논하기도 하지만, 나는 그런 것보다는 가장 작은 단위의 객체 즉 각자 한 사람 한 사람의 시민을 말하고 싶다. 이런 풀뿌리가 제자리에 잘 버티고 있을 때에 비로소 풀이 제대로 자랄 수 있으며, 어떤 환경의 변화에도 잘 견딜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보통의 사람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각자의 임무를 망각한 채, 많은 영양소 중에서 자신이 잘못 거둬들인 영양분을 준 사실을 잊고 풀이 제대로 자라지 못한다는 것만을 타박한다. 이것은 진정한 풀뿌리의 의미를 모르는 말이다. 그리고 만약에 정말로 만약에 올바른 지도자감이 없다면 그냥 공석으로 두어도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현재 하는 일보다 더 나을 것 같은 인물이 없다면 차라리 차선책을 찾으라는 것이 현재까지의 민주주의 원칙이지만, 그 차선책이라는 것이 반드시 차선의 인물이어야 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그 차선의 인물이 우리에게 도움이 되지 않을 사람이라면 말이다.

오늘 당장 이 순간이 아니더라도, 잠시 후에 더 고르고 골라서 얻는 지도자가 우리에게 필요한 사람이라면 조금 늦추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것이다. 더 나은 사람이 없다면 그 공백 기간마저도 우리에게 손해날 일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재의 선거 방법은 이런 방법을 허용하지 않고 있다. 이것이 바로 한 번 정했으면, 여러 사람이 그렇게 하기로 하였으면 그냥 그렇게 해야 한다는 것이 바로 민주주의의 가장 큰 오류인 셈이다.

나는 풀뿌리 정치에 덧붙여 풀뿌리 문화를 강조하고 싶다. 문화란 어떤 집단이나 자치단체가 주도해나가는 것이 아니다. 그냥 가장 단위의 한 사람이 행하고 옆에 있는 사람이 동조하면서 자연발생적으로 생겨나는 것이다. 마치 이 시대의 촛불문화처럼. 이렇게 여러 사람이 공감하는 가운데 생긴 것이 문화이므로, 이 문화 역시 선거와 마찬가지로 절대 옳고 그름의 차이는 없다. 다만 그 시대 그 상황에서의 문화적 차이만 있을 뿐이다.

따라서 문화에 대한 시각 역시 풀뿌리인 개인의 문화적 행위에 대한 인식부터 새롭게 하였으면 하는 바람이다. 예로부터 예술을 하면 배가 고프고 문화를 하면 정상적인 생활을 못한다는 말처럼, 문화에는 많은 금전적 시간적인 비용이 들어가면서도 성과는 바로 나타나지도 않는다. 그러나 언어를 잃어버리거나 문화를 잊어버리면 그 민족 그 국가는 존속할 수 없다는 말을 생각하면서, 문화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기대해본다.

선거 역시 민주주의 방식 중 하나의 문화이며 그 선거로 인해 일정 기간 동안 역사가 만들어진다면, 그 속에 존재하는 문화 역시 선출된 지도자들의 몫도 일정부분 차지할 것이다. 문화를 아는 지도자, 훗날 좋은 문화를 만들었다는 역사적 평가를 받는 지도자가 필요하다는 말이다. 그리고 그 작은 뿌리의 한 세포 역시 좋은 문화를 연구하고 만들어내는 각자의 의무를 다해야 할 것이다.

2014.06.04 새전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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