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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길

꿈꾸는 세상살이 2014. 12. 4. 21:05

고향길

어머니의 고향은 죽산이다. 그런데 황등에서 오랫동안 사셨으니 어쩌면 황등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으로 많은 날들이 지나갔다. 쇠털같이 많은 시간 속에 나도 한 조각 묻어있는 곳이다. 아버지나 어머니는 60년을 황등에서 살다 가셨다. 60년 세월! 이 기간이 얼마나 긴지 짧은 지는 중요하지 않다. 이승에서 성실히 그리고 힘들게 일하시다가 병들고 찌든 채로 가셨다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그토록 가보고 싶어 하시던 고향집조차 마음대로 가시지 못한 채로 떠나셨기 때문이다.

어머니께서 돌아가시던 그 해, 희망찬 새해가 밝아옴과 동시에 병원에 입원하셨다. 혼자 사시던 어머니는 방에서 일어나시다가 그만 휘청하는 바람에 넘어지신 것이다. 누가 뭐라 한 사람도 없었고 누가 말리는 사람도 없었다. 그냥 혼자서 그렇게 벌어진 일이었다. 물론 내가 있었더라면... 하는 후회도 들었지만, 그렇다고 뭐가 달라질 것도 없었을 것이니 결과는 매 한 가지라는 변명을 해본다.

어머니께서 떠나신 뒤에 찾은 고향집은 쓸쓸하고 적막한 데, 그런 마음을 위로하려는지 2월 하순의 하늘에서 진눈깨비가 내렸다. 촉촉이 젖은 마당가 화단을 보니 처량하기가 더할 데 없었다. 시든 국화가 보이고 말라버린 배추도 보인다. 매화도 아직 꽃을 피우지 않았는데, 파란 색을 띤 상사화 잎이 엄동 속 눈보라를 뚫고 꿋꿋하다. 상사화! 무엇이 그토록 사무치게 그리워 꽃이 되었을까.

어머니께서 묵으셨던 방은 냉기가 얼음골이니 두꺼운 솜이불은 있으나 마나였을 것이다. 그 아래 꼭꼭 숨은 전기매트 따위가 무슨 역할을 하였을까 속이 아려왔다. 모퉁이를 돌아보니 석유보일러에 기름이 가득하였다. 지난 추석날 틀었던 게 마지막이었던 것 같다. 어두운 천장 속으로 촉촉해진 눈가를 감춰보았다.

그날 어머니는 한사코 집으로 가자고 하셨다. 적막한 집이 뭐가 그리 좋은지, 차가운 방바닥이 뭐가 그리 못미더운지 무던히도 애원을 하셨다.

“한철아~ 집으로 가자. 집에 데려다 줘~”

“안돼요! 집은 너무 추우니 여기 계세요. 또 집에 가면 치료도 못하잖아요.”

그러나 어머니의 목소리는 처절하다 못해 응석을 부리는 어린 아이의 모습처럼 느껴졌다. 그런 밤이 다 새고 한 낮이 되었을 때, 어머니는 숨을 거두셨다. 임종도 못하였다. 마지막 소원도 못 들어드린 채 그렇게 보내드린 것이다. 또 다시 후회가 앞을 막았다.

고향은 어머니에게 무엇이었단 말인가. 태어난 곳일까 아니면 자라난 곳일까. 자식을 낳은 곳일까. 그것도 아니면 부대끼며 살아온 곳일까. 혹시 남편이 떠나간 곳이었을까? 그도 저도 아니면 이승을 하직하기 전 마지막으로 한 번은 더 보아야 하는 숙명적인 곳이었을까. 어리석은 자식은 영원히 어머니의 마음을 헤아릴 수 없을 것이다. 내가 아버지가 된 지금도 그런 속내를 다 알지 못하기는 마찬가지다.

어머니께서 그토록 가보고 싶어 하셨던 고향집의 방 가운데에 한 땀 한 땀 여민 두터운 누비이불이 있어 동지섣달 긴긴 밤에 의지가 되는 친구였을 것이다. 그 곁에는 커다란 덩치에 빛바랜 장롱이 자리를 차지하고, 한 쪽 벽에는 사진을 담은 액자가 걸려있다. 눈만 뜨면, 고개만 들면 언제든지 볼 수 있는 곳에 세월을 담은 사진들이 놓여있었다. 액자의 유리 건너편 세상에는 유난히 잔병치레가 많았던 막내아들이 들어있고, 장남이라는 큰 아들도 들어있다. 그런가 하면 전쟁 중에 예방주사를 맞지 못해 흉터를 남긴 가슴 아픈 딸이 들어있고, 모두들 객지에 나가 조금은 여유로워질 즈음에 곱게 자란 막내딸도 있다. 그러나 누가 뭐라고 해도, 동방 남방이 아무리 좋다 해도 서방만은 못하다는 아버지도 계셨다.

어머니는 이 중에서 누구를 보고 싶어 집에 가자고 하셨을까. 누구를 만나 마지막 유언을 하고 싶으셨을까. 어머니는 그 밤이 마지막이라는 것을 알고 계셨을 텐데... 어리석은 자식은 그 소원마저 들어드리지 못했는데, 어머니 같았으면 어찌 하셨을까... 아마도 업고이고 길을 나섰을 것이다. 돌이켜 생각하면 내가 느끼는 것은 후회가 아니라 불효라고 해야 맞을 것이다.

올 여름에도 연분홍 상사화가 피었다. 그해 겨울의 잎은 간데없는데, 여리고 소박한 꽃이 목을 길게 빼고 무언가를 찾고 있었다. 그 꽃 옆에 내가 서있었지만 아는 사람이 아니라는 듯 두리번거렸다. 상사화로 찾아오신 어머니는 자식이 불효자였다는 것을 차마 밝힐 수 없어 딴청을 피우고 있었던 것이다.

겨울이 되면 그날 푸르던 그 잎이 다시 솟아나기를 염원하였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혹시 내가 모르는 새로운 잎이 솟아나 어머니의 기억을 지우지나 않을지 두려운 마음도 들었다. 마당에 핀 상사화는 그날 그때처럼 무언가 애원하는 듯이 아련해 보였다. 오늘처럼 겨울비가 내리는 날이면 그때의 고향집이 생각나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멀지도 않은 이십 리 길이,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고향길이라는 것이 서글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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