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훈도 바뀌어야 한다.
작년 가을 내가 졸업한 어느 학교의 교훈을 바꾸는 행사가 있었다. 이 학교의 교훈은 학교가 생긴 이래 아주 좋은 이미지로써 학교가 성장하는 근본이 되어왔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약 50년 전에 정해 놓았던 교훈을 지금의 새로운 요구에 맞게 고치는 것도 좋은 듯싶었다.
따라서 학교 측에는 교훈의 시대적 변화를 요구하는 공문을 정식으로 전달하기로 하고, 총동창회에도 이 사실을 통보하였다. 한 학교의 교훈을 바꾸는 작업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님을 잘 알고 있었기에 여러 각도에서 협의가 필요한 상황이었다.
본디 교훈이라는 것은 학교를 대신하는 말이기도 하며, 내부적으로는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육 목표를 단적으로 표현하는 단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다보니 학교 선생님들의 의견도 들어야하며, 학교의 주인인 학생들의 의견도 들어야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선생님들도 어느 일정기간동안 학교에서 가르치다보면 다른 학교로 전근을 가야하는 제도가 있고, 학생들은 기한이 지나면 졸업을 하고 떠나야 하는 것이다.
이런 마당에 학교를 졸업한 선배들이 많은 역할을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볼 수 있다. 그리하여 졸업생들의 전체를 대상으로 할 수는 없었지만, 각 졸업기수별로 동창회 임원들을 중심으로 의견을 물어보는 작업에 들어가게 되었다. 그리고 그 중에서 선정한 내용을 토대로 회의를 하여 새로운 교훈을 정한 것이었다.
내용적으로는 크게 달라진 게 없다고 하더라도 모든 사람들이 일사분란하게 움직여 주고, 적극적인 참여를 해준 결과라고 생각한다. 이 교훈 밑에는 영어로 번역된 교훈이 자리하고 있다. 이것 또한 새로운 발상의 전환이라고 생각한다. 지금까지의 전통은 한자로 써서 권위를 나타내는 듯 무거운 맛을 주는 것이 일반적이었지만, 우리는 큼지막하게 한글로 쓰고 그 밑에 작은 글씨로 영어로 토를 단 것 같은 모양을 갖췄다. 이 또한 많은 의견이 있었지만 우리들은 이렇게 결정을 했던 것이다.
내가 학교를 떠난 지 30년이 지나면서, 우리 동창회에서 학교에 교훈석을 세워 기증하기로 하였다. 소요 비용은 약 1,500만원으로 하고, 본격적인 준비 작업에 들어갔다. 비용조달 방법이며, 세워질 돌의 모양과 크기, 그리고 돌의 재질까지도 모두 힘든 과정 속에서 마침내 결정하기에 이르렀다.
그런데 마지막으로 교훈의 내용이 문제로 떠올랐던 것이다. 평상시 교훈에 대한 시대적 사명감이나, 필요성에 의해 변경을 희망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교훈석을 세운 뒤 새로운 교훈으로 바꾸게 되면 자연히 교훈석도 바꿔야 하기 때문에 최후의 문제에서 어려움을 만난 것이었다. 한번 세워진 교훈석을 쉽게 바꾼다는 것은, 학교를 이리저리 생각나는 대로 들고 다니는 것과 같기에 신중하여야 할 내용이었다. 때마침 여러 사람들이 공감대를 표현하여 어렵지 않게 동의를 구할 수 있었고, 변경내용 또한 여러 사람들이 직접적인 참여로 결정해 주었다.
요즘 시대가 변하고, 문화와 풍습이 변하며, 사회의 요구가 바뀌고 있는 상황에서, 그 사회에 적응하기 위한 인재를 길러내는 학교가 그 교훈을 제대로 실행하는 학교라고 생각된다. 물론 진리는 변하지 않는 것이므로 도덕적이거나, 교육적인 내용이 변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전인적인 교육을 최후 목표로 삼는 학교의 교훈은 예나 지금이나 크게 변할 것도 없고, 변해서도 안 된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그러나 어떤 일을 함에 있어 사후약방문보다는 사전예방약이 더 좋듯이 변할 것은 변해야 한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한 예로 여학교의 경우는 정숙한 여성이 되자보다는 행복한 사회를 만드는 생활인이 되자라는 것이 더 좋겠다는 뜻이다.
우리가 바꾼 교훈은 성실, 창의, 협동이 되었다. 전에 비하여 크게 달라진 게 없지만, 역시 교훈은 경쟁과 투쟁보다는 진리와 이상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2004.12 전민일보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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