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하얀 눈이 내렸으면
오늘도 눈은 내리지 않았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내다보는 창밖은 어두워서 사위가 보이지 않았다. 이는 필시 눈이 오지 않은 탓이려니 하였다. 생각 같아서는 함박눈이 펑펑 내려서 온 세상을 하얗게 덮어주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그러면 미처 해가 뜨기 전 미명이라 하여도 밝은 기운이 퍼져 나리라 기대했었다.
올해 크리스마스가 이제 일주일도 남지 않았다. 그러나 여태껏 눈다운 눈이 오지 않아서 첫눈이 내리지 않은 상태다. 많은 사람들이 첫눈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시기다. 어제의 대통령 선거가 있은 후 야밤이 되기도 전에 당선자가 확정되었다. 지지표에 의해 후보간에 많은 표 차이가 나므로 일찍 당락을 결정짓게 되었다.
그간의 선거 운동기간은 온통 비리정국이다, 특검정국이다 하여 유달리 도덕성이 거론되었었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후보의 도덕성이 문제냐 지금의 이 경제적 어려움을 해결하는 것이 우선이다 하는 이도 많았었다. 하지만 가난은 나라님도 어쩌지 못한다는 말이 있듯이, 어느 누구가 어떻게 하자고 해서 쉽게 해결될 문제는 아니다. 물론 내부적으로 잘해야 하겠지만 국외적인 여건이 중요한 변수가 되는 것이 글로벌 시대 경제의 현주소이다. 그래도 우선은 물에 빠진 사람이 지푸라기라도 잡는 다는 심정으로, 경제를 바로 세우겠다고 하는 사람을 우선시하는 그런 분위기로 몰고 갔었다. 결과도 그렇게 나타났다.
결과적으로 나타난 것이야 누가 어쩌겠는가. 다만 그것 때문에 묻혀 진 다른 중요한 문제들이 간과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을 이야기 하고 싶다. 내가 바라는 오늘은 눈이 소북이 쌓인 그런 아침이었다. 간밤까지 얼룩졌던 그 많은 사연들이 하나로 봉합되는 아침이기를 바랐었다. 그것은 어느 인간이 처리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오로지 자연만이, 아니면 신만이 할 수 있는 그런 일이었다.
크리스마스에 눈이 내리면 그 많던 흉허물이 죄 사함을 받고 깨끗해졌다는 심리적 안정감을 얻는다. 밤새 내린 눈이 추악한 인간세상을 덮고, 순결하고 흠이 없는 순백으로 변하기를 기대하던 나다. 온 세상이 새하얀 색으로 하나가 되어 하늘나라에까지 연결되는 그런 날이기를 기대하고 있었다. 이처럼 성탄절에 내리는 눈의 의미를 되새겨 보며, 나는 그런 눈을 바라고 있었던 것이다. 만약에 신이 우리를 용서하신다면, 도덕성과 경제부흥을 같이 회복케 하시고, 그 과정에 얽힌 과오를 씻어 정결케 하실 것을 기대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눈은 내리지 않았다. 일기예보에는 적지 않은 눈이 내릴 것이라는 안내가 있었지만 고대하던 눈은 내리지 않았다. 이것도 정녕 하늘의 뜻이라면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눈앞에 보이는 교회의 지붕에는 크리스마스 장식이 걸려있다. 크리스마스 장식은 낮에도 오고가는 사람들을 기쁘게 하지만, 어둠이 내리고 사방이 고요해지는 밤이 되면 더없는 가치를 발한다. 바라만 보고 있어도 마음이 즐거워지고 기분이 흥겨워진다. 그것은 마치 지금 당장 하늘나라로 올라가고 있는 듯한 느낌이 늘 정도이다.
신이시여! 이 세상에 십자가를 주시고 그를 바라보는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셨고, 크리스마스에 하얀 눈을 보내신 것처럼 일그러진 이 땅에도 새하얀 눈을 주시옵소서. 인간으로서 인간이 행한 어제의 잘못을 말하는 사람들을, 권력으로 눌러 책임지라는 말을 하는 사람들을 덮어 주시옵소서. 어느 누군들 창녀에게 돌팔매를 할 사람이 있었습니까. 모든 것을 덮어주는 하얀 눈을 내려주시옵소서. 상처를 동여매고 치유하는 눈을 내려주시옵소서. 믿음과 소망, 그리고 사랑으로 하나가 되는 그런 눈을 내려주시옵소서. 새하얀 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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