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실수투성이 하루
16일, 화요일 저녁에 식사모임을 갖기로 하였다. 연초에다가 평일이니 별 어려움이 없을 것 같아 보였다. 이번 모임은 종교적인 만남이라 웬만한 잘못도 이해하고 넘어가는 정도다.
회장님은 열심히 연락을 취한다. 벌써 두 번째다. 거기다가 당일 회비부담도 없다. 장소는 회원 모씨가 운영하는 음식점이며, 부부동반으로 모처럼 점수를 딸 기회까지 제공한다니 이 얼마나 반가운가. 어서 그 날이 오기만을 기다리고 기다릴 뿐이다.
모임 당일 정오쯤에 마지막인 듯한 연락이 왔다. 빠짐없이 참석해 달라는 부탁의 도를 넘어 애원조의 연락이었다. 이런 과분한 연락을 받고 보니 회장노릇하기가 쉽지 않겠다는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오후 3시 30분을 지날 무렵 총무님이 회장님과 마지막 조율을 하기 위하여 통화를 시도하였지만 연락이 안 되었다. 모든 조치는 회장님이 취했다는 확답 중에도 총무님이 장소 확인 작업에 들어갔다.
그런데 이런 낭패가 있을까. 정작 식당이 전화를 받지 않으니 불안한 생각이 들기 시작한다. 혹시 틀린 번호인지 114 안내에 물어보고 전화를 해도 받지 않는다. 급하게 은행이라도 갔는지 아니면 시장이라도 갔는지 궁금하기만 하다. 혹시나 생각되어 잠시 쉬었다가 다시 걸어도 마찬가지다. 이제 곧 저녁 손님들이 모여들 시간인데 기본 반찬도 준비하고 주재료도 다듬으려면 무척이나 일이 많을텐데...
이제는 할 수없이 휴대전화로 걸어본다. 왜 전화를 받지 않느냐고, 도대체 장사를 하는 거냐고 마는 거냐고 따져볼 참이다. 계속해서 걸어 보아도 휴대전화마저 받을 기미가 없어 보인다. 아니 도대체 무슨 사고라도 난 것일까. 식당의 전화로도, 개인 휴대전화로도 받지 않으니 호통을 치려고 벼르던 울화통이 갑자기 걱정으로 변한다.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던 총무는 직접 식당으로 달려가 확인하기로 하였다. 한참 분주하여야 할 식당은 홀에 불이 꺼져있다. 아! 정말 그랬었구나. 정말로 장사를 안 하고 있었구나. 이제 곧 손님들이 들이 닥칠 시간인데 어떡한다? 아직까지 주인은 나타나지도 않고, 전화도 받지 않으니 모든 정황이 확연하여졌다.
그렇다면 오늘 저녁 회원들 모임에 다른 선택은 없어졌다. 가까운 곳에서 비슷한 음식을 하는 식당을 찾는 것이 최선이었다. 많고 많은 모임에 참석하다보면 갑자기 장소가 변경되는 일이 어디 한두 번 이었던가.
오후 5시에 새로운 전달이 왔다. 모임 장소를 변경한다는 내용이었다. 이번에는 총무가 보낸 월권성 긴급 전달이었다. 그리고 총무는 식당 문 앞에 차를 대고 기다렸다. 혹시 전달을 받지 못한 회원들이 찾아올까 걱정된 탓이다.
얼마를 기다렸을까. 청소하러 나오던 주인과 총무가 마주쳤고, 자초지종을 들어보니 가던 날이 장날이었다. 마침 식당 전화는 고장이 나서 수리를 의뢰해 놓은 상태였고, 일반 손님들은 아직 올 시간이 아니라서 전등 몇 개만 켜 놓고 있었단다. 아직 영업할 시간도 아닌데 그 말도 틀린 말이 아니니 뭐라 할 말이 없어졌다. 그렇다면 밖에서 보아도 장사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려 주어야 하지 않느냐고 엄포를 놓아본다. 그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어찌하여 휴대폰은 받지 않았느냐고 다그치니 전화번호가 바뀌었단다. 세상에! 애타는 사람의 질문에 대한 대답치고는 너무 당당하다. 모든 것을 체념하고, 오늘 회식준비는 왜 하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대답이 걸작이다. 그런 연락은 애초에 받지 못했다고 한다.
아니, 이게 어인 일인가. 오늘은 어느 것 하나 제대로 된 것이 없었다. 한 올의 실도, 바늘 한 땀도 재대로 꿰어지지 않았다. 오늘의 신년회가 작년 송년모임을 대신한 것이었던 만큼 이것으로 깨끗이 정리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정말 오늘은 실수투성이의 연속인 하루였다. 항상 잘하고 있고 완벽하다고 생각하는 우리는, 이런 실수 속에서 살아가고 있었다. 이것이 바로 인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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