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것들/산문, 수필, 칼럼

열린음악회

꿈꾸는 세상살이 2014. 12. 4. 21:48

열린음악회

열린음악회 녹화 공연을 방청하였다. 아주 오래 된 열린음악회는 제법 인기가 있는 프로다. 예전에는 추억을 되살리는 흘러간 노래를 위주로 하였다고 기억되는데, 얼마가 지나자 새로운 곡도 자주 등장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은 이런 열린음악회에 참석하고 싶어 한다. 그 마음은 나도 예외는 아니다. 자신이 좋아하는 가수가 나오면 더 좋고, 비록 노래를 부르는 사람은 다르더라도 내가 좋아하는 노래가 나오면 그것으로도 대만족이다.

그런데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열린음악회에 참석하고 싶어 하는 이유는 또 있다. 그것은 쉽게 접하지 못하는 문화행사에 동경과 다수가 동시에 참석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방청료 즉 입장료를 받지 않는 것은 아주 중요한 요소이기도 하다. 특히 내가 사는 지역처럼 작은 농촌도시에서는 행운이 아니면 참여하기 힘들 정도다. 얼마 전에는 다른 지역에서 실시하는 열린음악회 초대권을 얻어오기도 하였지만, 막상 당일이 되면 오고 가는데 많은 시간을 요하는 이유로 참석하지 못하는 일도 많았었다.

그런데 이번에 우리 익산에서 열린음악회 녹화를 하였으니 이 얼마나 반가운 일인가. 젊은이는 젊은이대로 신곡에 혹은 신세대 가수에 열광을 하며, 나이가 지긋하신 분들은 흘러간 노래 혹은 감정을 끌어올리는 노래를 들을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이다.

나는 저녁밥을 일찍 먹고 차비를 하였다. 오후 7시까지 입장을 하라고 하였으니 6시 30분쯤 도착하면 좋을듯 싶었다. 그러나 6시 30분도 되기 전에 도착한 현장에는 이미 끝도 없이 이어진 줄이 긴장감을 주었다. 이러다가는 제 시간에 입장이나 할 수 있을지 걱정이 되었으며, 혹시 1시간 이상을 서서 들어야 하는지 겁이 나기도 하였다. 그러나 내가 선 주변의 사람들은 아무런 고민이나 걱정도 없이 그저 즐거워 어쩔 줄을 몰랐다. 그런 그들을 보니 내가 겁이 많은 것인지, 없는 걱정을 만들어서 하는 것인지 비교가 되었다. 내가 아무리 걱정을 한다 하더라도 이 문제를 해결할 방법이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걱정하는 것은 기우라는 말이 생각났다.

하긴, 나처럼 일찍 온 사람들이 입장을 하지 못한 상태에서 공연이 시작될 리가 없으며 공연보다 사람이 우선이라고 생각하면 아무 문제가 없을 것도 같았다.

그러는 동안 다른 사람들은 어느 누구도 불평 한 마디 하지 않았다. 즐거워서 그랬는지 밥을 안 먹어서 배가 고파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최근에 발생한 공연장 안전사고로 인하여 모두가 조심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운동장을 한 바퀴 돌아들어가는 길고 긴 줄에서 나 역시 안전을 위해서라면 이렇게 처음부터 예방하는 것이 확실하다는 생각을 하였다. 정말 모두가 한 마음으로 서 있는 줄에서는 끼어들기를 하는 사람이 없었다. 어차피 다 들어가야 시작할 공연이고, 어차피 안전을 위한다는데 서둘러 욕먹으면서까지 끼어들기를 할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오히려 느긋하게 군것질에 응원도구를 사는 여유마저 부리고 있었다.

텔레비전에서 보는 열린음악회는 아주 근엄하고 멋있는 무대가 일품이었다. 마치 잘 꾸며진 실내공연장에 동원된 청중이 자리를 꽉 메운 듯한 인상이었다. 그런데 우리 익산공설운동장에 모인 인파를 보니 그게 그것이 아니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앞뒤로 혹은 좌우로 줄을 잘 맞춘 관객이 하나가 되어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것은 잘 훈련된 매스게임과도 같았다. 아마도 오랜만에 참여하는 열린음악회였으며, 내가 보고 싶어 하는 가수가 나오며, 내가 듣고 싶었던 노래가 있고, 하늘하늘 잠자리 날개옷을 입고 나긋나긋 말하는 아나운서가 나오기 때문에 기분이 고조되어 그랬을 것이다.

정말 그랬다. 지방에서 보기 힘든 이런 광경은 열성팬들이 감동받기에 충분하였다. 정동하, 홍진영, 틴탑, 베스티, 레드벨벳, 김종환, 김수희, 소프라노 김수연, 윤수일밴드가 출연하였으니 그 열기 또한 짐작할 만하였다. 특히 신세대 가수인 틴탑이 나왔을 때에는 어디서 모여들었는지 여학생들이 괴성에 가까운 소리를 지르며 응원하였고, 여가수 홍진영이 나왔을 때에는 청소년들이, 애모와 같은 누구나 다 아는 노래가 나올 때에는 입으로는 웅얼웅얼하면서도 우렁찬 박수가 메아리쳤다. 당장의 즐거움이 미래의 행복보다 우선하는 것 같아 씁쓸하였지만 서울과 익산은 이제 68분 거리로 좁혀졌다는 시장의 축사보다 더 환호했던 것만은 사실이었다.

사회자가 공연을 알리는 멘트를 하기 전에 미리 부탁한 것은, 자신이 좋아하는 가수의 공연이 끝났다고 하여 다른 가수가 공연하는 중에 자리를 털고 돌아가지 마라는 것이었다. 노련한 사회자는 다른 공연장에서 보아왔던 것이 떠올랐을 것이다. 그래서 젊은 팬클럽이 많은 가수들을 후반에 배치하여 놓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우려했던 일이 또 벌어지고 말았다. 이런 기우를 하지 않으려면 아예 젊은 가수들을 마지막에 넣든지 아니면 처음부터 출연교섭을 하지 말았어야 했을 것이다. 그러나 빠르고 요란한 춤을 동반하는 노래가 맨 마지막에 나온다면 그것은 늦은 저녁 귀갓길의 안전과도 이어질 것이다. 좁은 문을 통과하는 많은 인파가 몰려다녀 위험한 순간을 초래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런 저런 이유에서 맨 마지막에는 차분하면서도 감성을 자극하는 윤수일의 노래가 나왔는데, 문제는 이런 곡이 젊은이들에게 먹히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공연도중 자리를 털고 일어서는 사람들로 인하여 출연자가 잘 보이지 않는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나가면서 서로 위치를 확인하고 부르는 소리는 분위기를 흐리기에 충분하였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눈살이 찌푸려지고 귀가 쫑긋거렸다. 정말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가. 아이들을 어떻게 교육시켜야 할 것인가. 도대체 저들을 누가 막을 것인가. 많은 생각들이 교차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대개가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었고, 어깨에는 무거운 책가방이 메어져 있었다. 학교가 끝난 후 아직 집에도 가지 못한 상태였던 것이다. 그런 아이들이 저녁밥을 먹었을 리가 없으며, 교복 치마 대신 따뜻한 바지로 갈아입었을 리도 없었다. 아직 첫눈이 내리지는 않았지만 무서리도 내렸고, 날짜는 10월 29일이었다. 게다가 시간은 벌써 저녁 9시를 넘어 밤으로 건너가고 있었다.

그들은 틴탑의 노래가 끝나서 그런 것이 아니며 홍진영이 노래를 다 불러서 그런 것이 아니었다. 배도 고프고 추워서 더 이상 자리에 앉아 있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어른들이야 든든히 배도 채웠겠다, 무릎에 덮을 담요도 준비하였으니 무엇이 문제이겠는가. 나도 겨울 내복에 모자 달린 두툼한 겨울 잠바까지 입지 않았던가. 구멍이 숭숭 뚫린 플라스틱 의자는 방한복도 없이 스커트 하나만 입은 어린 학생들을 보호해주지 못했다. 안전사고는 이렇게 불완전한 상황에서 벌어지는 것이 아니겠는가. 열린음악회는 내일 학교에 가지고 가야 할 숙제를 대신 해주지 않았다. 옆에 앉은 아저씨는 학원에 가서 배울 것을 대신 가르쳐주지 않았다. 그래서 학생들은 더 이상 앉아 있기가 힘들었던 것이다.

학생들과 어른들은 처한 환경과 생각하는 것이 다른데 어찌 같은 행동을 요구할 수 있을까 돌아보았다. 우리 때는 최소한 열린음악회가 없었으니 그런 것은 잘 모르겠다고 변명할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 때는 볼 것이라고는 오로지 극장 내 유료 리사이틀이라서 가고 싶어도 돈이 없어 못 갔으니 그럴 기회조차 없었다고 변명할 수도 있을 것이다.

요즘 읽는 책 중에『다른 게 나쁜 건 아니잖아요』라는 책이 있다. 열린음악회에 참석한 학생들과 나의 생각은 다른 것이지 틀린 것도 나쁜 것도 아니었다. 굳이 따진다면 공연이 모두 끝나기 전에 나가는 것은 공중도덕에 어긋나며, 좋은 행동이 아닌 것은 확실하다. 그러나 그들이 일찍 나가야 되는 상황을 이해하였는가는 나의 몫이다. 내가 내린 결론은 공연 초대장에 분명히 있어야 할 문구가 빠졌었다는 것이다.‘공연은 저녁 늦게까지 계속되니 복장에 유의하시기 바랍니다.’하는 문구는 있어야 했다고 본다. 행사장 격을 떨어뜨리는 그런 문구를 어떻게 넣느냐는 둥, 자기 일은 자기가 알아서 준비해야 한다는 둥, 그냥 떠 넘겨서는 안 된다. 이런 마음이 바로 안전사고를 부르는 단초가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 공연 초대장에 그런 문구가 있었느냐고 물을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내가 그렇게 하면 그런 것이지 왜 남이 했었는지를 따질 필요가 있을까. 어느 누구도 다른 누가 하지 않았기에 하지 않는 다면 이런 문구는 지구가 멸망할 때까지 한 번도 사용되지 못할 것이다.

내가 만약 그런 공연의 기획자가 된다면 그런 문구를 반드시 넣도록 하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좋은 일을 하자는 데는 남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는 것이며, 내가 먼저 시도하면 나의 자랑도 되지 않겠는가. 우리는 닫힌 틀을 깨야 할 경우가 있다. 오늘이 그날인가 아니면 내일이 그날인가는 모르겠지만, 항상 깨어 있어야 정형화된 틀을 깰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 것들 > 산문, 수필, 칼럼'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인간 견적서  (0) 2014.12.04
익산지방 최초의 교회  (0) 2014.12.04
어떤 실수투성이 하루  (0) 2014.12.04
어떤 대접을 할까 고민하기 보다는  (0) 2014.12.04
아빠 힘내세요.   (0) 2014.12.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