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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견적서

꿈꾸는 세상살이 2014. 12. 4. 21:51

인간 견적서

난생 처음 견적서를 작성하였다. 그것도 지인을 통하여 어떤 공사가 있으니 견적을 제출해보라는 권유를 받고서였다. 하마터면 그런 일이 있었는지도 모르고 지나갈 뻔한 일이었다. 하긴 내가 발 벗고 나서서 발주를 알아보고 다니지 않았으니 누구를 탓할 수 있겠는가.

그런데 견적을 내보라는 말은 들었지만 어떤 내용인지 규모는 얼마나 되는지 알지 못하여, 예전 실행가를 토대로 작성하여 제출하였다. 벌써 2년 전의 단가이니 요즘의 정확한 단가를 짐작하기는 어렵겠지만, 그래도 물가상승률이라는 것이 있고 사회의 최저임금 상승률이라는 것이 있으니 유추하면 될 것도 같아 한결 부담이 적었다. 어쩌면 예전의 실행가를 알고 있는 사람도 드물 것이라는 위로가 넘쳐났다.

그러나 막상 견적을 접수시키고 생각해보니 2년 전에는 분명한 실행가라 하더라도 견적을 받는 시점에서는 금액을 조정을 하자고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런 것이 사회의 일반 절차요 통례였기 때문이다. 물론 최저가 입찰이라든지 적격 낙찰이라는 방식이 아니라 사기업에서 견적을 놓고 비교 검토하는 방식이기에 말이다. 뭔가 불안한 마음이 들어 처음단가에 15~20%씩을 더하여 수정견적을 넣었다. 그러면서 처음 제출한 단가로 계약이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며, 가격 조정을 하자고 한다면 미리 그 만큼의 여유가 있어야 한다며 변명하였다. 그렇게 해서 한 공사에 두 번의 견적을 제출한 셈이다.

그런데 이제는 결정만 남은 줄 알았던 업체에서 다시 연락이 왔다. 견적을 그렇게 산출하지 말고, 물량을 감안하여 신규로 산출한 금액을 제출하라는 것이었다. 하긴 어느 업체든 물량과 기한을 두고 견적을 받는 것인데 처음부터 물량을 공개하지 않았던 것에 의구심이 들기는 들었었다.

우여곡절 끝에 세 번째의 견적을 제출하였다. 한 공사를 놓고 세 번씩이나 견적서를 제출하다니 참으로 인연은 인연인가 생각되었다. 정말, 얼마나 좋은 인연으로 맺어지려고 그러는지 기대가 된다.

이참에 내가 찾아서 견적을 내 본 적이 없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생각해보았다. 내가 견적을 내지 못한 것은 여태까지는 견적을 작성하여 수주를 하는 직업을 가지지 않았던 이유가 첫째였다. 처음 직장에서 장기간을 근무하다 나왔는데, 퇴직하면서 작은 일자리를 만들어가지고 나왔으니 그럴 기회가 없었던 것이다. 그런 후 지금은 어떤가. 이제는 홀로서기를 하고 내 스스로 개척해나가야 할 시점이 되었다는 판단이 든다. 그래서 작년 말에 새로운 사업자도 냈다. 그리고 이번이 그 첫 견적서이다. 반평생 접수된 견적서를 검토하면서 결정하던 내가, 그깟 견적서를 작성하는 것이 무에 그리 대단하랴 싶었다. 그러나 하나의 견적을 작성하기 위하여 사전에 갖추어야 할 조건들 즉 주어진 정보가 얼마나 정확해야 하는지 새삼 확인하였다.

한 장의 견적서가 모든 정보를 조건으로 만들어진다면… 종이 한 장이 모든 정보를 함축하여 만들어진 결정체라면… 나는 내 자신을 얼마에 견적을 낼 수 있을까? 나를 이루고 있는 모든 정보를 나열해보면 얼마의 가치가 있을까.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인간은 화학적으로 2,400원의 가치가 있다고도 한다. 그러나 이것은 그냥 해보는 수치의 장난일 뿐이며, 인간의 가치는 돈으로 환산할 수 없다는 데에 이견이 없다. 인간은 만물의 영장으로서 다른 동식물에 대한 지배력을 가지는 동시에, 영혼에 대한 존엄성도 가지기 때문이다. 나도 이런 이론에 따라 나의 가치도 무궁하다고 말하고 싶다.

그런데 만약에 정말로 만약에 나에게 견적을 낸다면 어떻게 내야 할까. 몸이 건강하여 몸무게 수치를 기준할 것인가, 말을 빨리 하여 1분에 말하는 단어 수로 기준할 것인가, 키를 기준으로 할 것인가, 아니면 돈을 얼마나 버느냐에 따라 결정할 것인가.

하긴 요즘은 돈이 만능의 열쇠인 세상이 되어버렸으니 수입이 얼마나 되느냐에 따라 견적을 내는 것이 그 중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얻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사실은 그 이론이 맞고 틀리고를 떠나서 말이다.

나는 한 달에 얼마를 버는 작가일까. 나는 지금까지 내가 출간한 책을 판매하여 벌어들인 돈이 모두 300만원 남짓 된다. 책을 다섯 권 내서 300만원이라… 많은 것인지 적은 것인지 도무지 짐작도 할 수 없는 금액이다. 그 동안 들인 수고는 얼마며 세월은 얼마이던가. 이런 일에 익숙해진 나는 혼자 있을 때는 항상 밑지는 장사를 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누군가를 만나면 그래도 세상은 살아볼만한 가치가 있다고 말한다.

왜 나는 이런 이중의 가치를 지니고 있을까. 역시 인간은 존엄하기 때문일 것이다. 사람의 가치를 돈으로 환산할 수도 없고 어떤 계산 방식에 의해 판단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내가 담고 있는 영혼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고, 내가 행하는 행동은 어떤 가치를 제공하고 있는가에 따라 나의 가치가 결정된다고 본다. 그렇다면 나는 10년에 300만원을 버는 작가라 하더라도 존경받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내가 쓴 책이 사회적으로 인간적으로 귀중한 자산이 된다는 조건하에서 말이다.

또 돈을 기준으로 한다고 하더라도 나의 가격은 10년에 300만 원짜리가 아니라 작가인 내가 쓴 책을 통하여 얻어진 가치를 환산하는 것이 합리적일 것이다. 그렇다면 나의 가치는 어떻게 계산하더라도 무한하며 존경받을 만하다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그래서 아직까지 돈이 되지 않는 글을 붙잡고 있는 지도 모른다. 많은 사람들에 마음의 양식을 채워주기 위하여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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