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남이 더불어
추석열차표 예매를 위한 줄이 길게 늘어서있다. 그런데 그 줄에 어떤 사람이 끼어들었다. 아침 일찍부터 집을 나서고 줄을 서서 한참을 기다린 당신은 어떻게 할 것인가.
사람들은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하여 방해를 받으면 기분이 상한다. 많은 사람들이 화를 내기도 하며 심하면 다투기도 한다. 자기는 잘 하고 있는데 다른 사람이 잘 못하고 있기 때문에 화가 나는 것이다. 이런 일은 어떻게 생각하면 사회 정의와 질서를 위하여 반드시 필요한 일일 수도 있다. 누구든지 정해진 규칙을 잘 따라야 하고, 남이 어떻게 할 것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상식이 통하는 준비를 할 수 있는 사회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길게 늘어선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서는 사람에게 화를 내고 나무라는 것은 당연하며 반드시 필요한 일인 것이다. 그런데, 아무런 말도 없이 끼어든 사람에게 화를 내기 전에 왜 그랬는지 꼭 그래야만 할 이유가 있었는지를 물어보는 것도 사회를 이끌어가는 중요한 일에 속한다. 어떤 피치 못할 사정이 있었다면 오히려 그 사람을 두둔하고 도와주어야 할 형편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만약 그 사람이 강도에게 쫓기면서 어디 숨을 곳을 찾던 사람이었다면 어떻게 대하여야 할까. 만약 그 사람이 장님인데 줄에 끼어들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냥 가로질러 가기 위한 행동이었다면 어떻게 대해야 할까.
군에서 유격을 받아본 사람들은 모두가 그 때를 상상하기조차 싫을 것이다. 나도 몇 차례의 유격을 받았다. 그때는 모든 장병들이 계급장을 떼고 그냥 피교육생의 위치에 서 있었다. 물론 장교와 부사관 그리고 병사들이 받는 교육은 각기 달랐지만 그래도 피교육생이라는 신분은 피해가지 못했다.
오전 교육을 마치고 점심시간이 되었을 때, 식당 입구에 길게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때는 누가 시키지 않아도 장교는 장교끼리 부사관은 부사관끼리 그리고 병사들은 병사들끼리 모여서 식사를 하는 것이 불문율이다. 그러나 이들 모두는 계급장이 없이 그냥 다 같은 복장이니 알아보기가 힘든 상태인 것은 확실하다.
그때 길게 늘어선 병사들 줄에서 가장 줄이 짧은 장교들의 줄에 끼어드는 사람이 있었다. 누가 시키든 시키지 않았든 그것은 보나마나 영웅심에 그리고 아무 생각 없이 그냥 짧은 줄에 서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장교들 줄의 맨 뒤에 서 있는 다면 그것은 별 문제가 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런데 그 사병이 장교들 사이를 비집고 끼어들기를 한 것이 문제가 되었다. 이때 당신이 장교였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혹은 사병이었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군대는 계급에 따라 확연한 신분의 차이가 있는 사회다. 의도적이든 의도되지 않았든 결과에 따른 조치가 달라지는 곳이다.
이때 장교들은 그 사병에게 아무런 제재도 가하지 않았다. 고된 훈련을 받다보니 배가 고픈데 빨리 밥을 먹자는 것이 죄가 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 사병은 계급장을 뗀 다른 부대의 장교들을 알아볼 수 없는 상황이었기에 몰라보는 것은 당연할 수도 있었던 것이다.
계급장을 뗀 장교들은 계급장을 뗀 상병이 시키는 유격교육을 받는 상황에서, 계급장을 뗀 사병이 계급장을 뗀 장교를 몰라보고 그들 사이에 서 있다는 것까지 죄가 될 수는 없었던 것이다.
우리는 내 생각을 하면서도 남을 돌아보는 여유를 가져야 한다. 내 권리를 지키기 위하여 남의 권리를 해쳐서는 안 되는 것이다. 결론을 내기 전에 혹시 그럴만한 사정이 있었는지를 알아본 다음에 조치를 해도 늦지 않을 것이다. 인생은 하루를 살다 가는 것이 아니라, 눈과 비를 맞으며 때로는 힘들게 때로는 기쁘게 먼 길을 가는 여정(旅程)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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