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것들/산문, 수필, 칼럼

인터넷 없는 세상

꿈꾸는 세상살이 2014. 12. 20. 20:43

인터넷 없는 세상

어느 날부터인가 인터넷이 되지 않았다. 며칠 전부터 눈에 띄게 느려지기 시작한 것으로 보아 바이러스에 감염된 것이라 짐작되었다. 또한 많은 자료들을 지우면서 최적화를 하였으니 필시 용량부족 때문이 아닌 것은 확실하였다.  

여러 가지 백신을 사용하여 바이러스를 제거하였다. 탁월한 실력은 아니지만 그래도 소통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였으나, 소라껍데기 속에 숨은 주꾸미마냥 도무지 말을 듣지 않았다. 뚜껑을 열고 들여다 볼 수도 없는 답답함은 이루 비할 데가 없었다. 초기화면 설정을 바꾸는 등 며칠을 씨름하다가 담당자에게 물으니 모든 사용자의 인터넷 주소가 한꺼번에 바뀌었다고 했다. 주소 하나만 가지고 찾아가는 인터넷에 옛 주소지로 찾아갔으니 만날 수 없는 것이 당연한 일 아니겠는가. 내가 얼마 동안 자리를 비운 사이 세상은 이렇게 변해가고 있었다.

그 뒤에도 인터넷은 불통이었다. 이제는 해결되었다는 기대치에 비하여 답답함은 더 커졌다. 안 된다고 재차 물으니 인터넷 선을 정리하면서 내 컴퓨터에는 아직 연결하지 않았다고 했다. 정말 세상은 모든 것이 내 뜻대로 돌아가지 않았다. 황당한 마음에 인터넷 종량제를 도입했느냐고 물으니 그것은 아니란다. 업무 특성상 인터넷이 없으면 하루 일에 차질이 생기는데 참으로 야속한 일이었다.

 

예전부터 외국계 기업에서는 개인적인 인터넷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외부와 차단하였다는 말은 들은 적이 있다. 심지어 담배 태우는 시간을 환산하여 추가 근무를 한 후에 퇴근하도록 하였다는 말도 들었다. 모든 것이 업무의 효율을 높이기 위함이며, 업무상 보안을 위하여 취하는 것이라면 이해가 되었다. 끝없이 쏟아지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어떻게 살란 말인가 두려움이 앞섰다. 반대로 집에 돌아와서는 찾지 못한 정보에 대한 보상을 받으려는 듯 컴퓨터에 열심을 내었다.

생각해보면 예전의 나는 황소의 코뚜레처럼 내 자신이 문명의 편리함에 코가 꿰여 있었다. 그러나 어느 날부터인가 컴퓨터가 없으면 하루도 못살 것 같은 마음과 인터넷이 없으면 업무를 볼 수 없을 것 같던 두려움에서 조금씩 벗어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에는 컴퓨터 정보가 없이도 잘 살 수 있는 세상이었지만, 현대는 그것이 불가능하다고 변명을 하면서도 실제로는 한 달 넘게 잘 버텨내고 있었다.

누구나 닥치면 환경에 적응한다는데… 그런 환경이 되면 어쩔 수 없어 변해간다는데… 나 역시 나에게 닥친 환경에 적응해 가고 있었다. 아니 어쩌면 새로운 환경을 나 스스로 만들어갔는지도 모른다.

무더운 여름 날 먹구름이 끼면 태양을 가려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 주기도 한다. 그런데 그 두꺼운 구름을 걷어내면 따가운 햇볕을 따라 맑은 하늘과 뭉게구름도 함께 나온다. 세상일에는 음과 양이 있어 일방적으로 잃기만 하는 경우는 없다. 다만 그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어둡고 긴 굴이나 좁고 높은 우물을 벗어나면, 같은 세상이면서도 또 다른 아름다운 환경이 펼쳐지고 있음은 우리가 인정하는 바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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