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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산아리랑

꿈꾸는 세상살이 2015. 5. 1. 05:46

익산아리랑

아리랑은 애국가보다도 더 한국적인 이미지를 담고 있다. 그러나 아리랑은 언제부터 어떤 곡조로 불리기 시작하였는지 알려지지 않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국적으로 많은 아리랑이 있고, 아름다운 선율과 함께 감동적인 노랫말로 이어져 오고 있는 우리의 혼이다.

우리는 아리랑이라고 하면 으레 경기아리랑, 진도아리랑, 밀양아리랑, 정선아리랑 등을 떠올리지만, 실제로는 30여 개의 아리랑이 지역을 대신하여 불리지고 있다.

그런데 이렇게 많은 아리랑 중에서도 곡이 같은 아리랑은 하나도 없으며, 가사 또한 제각기 달라 그 지역의 유래나 애환을 담아 구전되었다.

노랫말에 자주 등장하는 아리랑(阿里娘)은 물가에 사는 여인이라는 뜻으로 남녀상열지사(男女相悅之詞)를 내포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이는 자유롭고 개방적이며 방임에 가까운 시대를 생각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사회가 안정되면서 평안한 생활을 하는 가운데 불려진 노래이며, 확대하여 충신불사이군(忠臣不事二君)을 떠올리면서 현상을 유지하고 싶은 욕구가 내포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한편, 곡조와 가사의 애잔함만을 고려하면 즐거운 상열지사가 아니라 이별의 통한과 설움의 한이 서린 처지를 풀어내는 넋두리라고 말할 수도 있다. 이는 변화하는 세상에서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자신에 대한 자책일 수도 있으며, 상대에 대한 간절한 바람을 구도하는 심정일 수도 있다.

예를 들면 고려 말 태평성대의 시절이 가면서 새로운 나라 조선이 등장하여 발생하는 회한일 수도 있다. 실제로 1392년 7월 28일 고려가 멸망하기 직전에 고려를 곧추세우기 위한 노력이 있었고, 그들이 불렀던 노래가 바로 아리랑이라는 주장도 있다. 이어서 1394년 11월 17일 노랫말을 풀어본 조선은 아리랑에 대한 금지령을 내렸다.

따지고 보면 기쁠 때나 슬플 때나, 혼자 있을 때나 여럿이 있을 때나 가리지 않고 불렀던 노래가 바로 아리랑이다. 우리 민족 어느 누구에게나 귀에 익고 입에 익은 노래라는 뜻이다. 따라서 아리랑은 우리 민족의 애환을 모두 간직한 혼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익산아리랑은 전해오지 않고 있다. 그래서 이참에 익산아리랑을 만들어 불러보자는 움직임이 일면서 아리랑 붐을 일으키고 있다. 한 마디로 좋은 현상이다. 민족의 혼을 의미하는 노래가 없다는 것은 민족혼이 없다는 말로 표현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만들어진 몇몇 익산아리랑을 보면 곡조나 노랫말에 있어 익산을 대표하기에 부족한 감을 느낀다. 물론 자꾸 불리다 보면 나도 모르게 익숙해지겠지만, 구전되어 온 익산아리랑이 아니기 때문에 좀 더 구체적이고 자연발생적인 곡조와 노랫말이 필요한 시점이다. 따라서 비록 늦게 만들어졌지만, 익산의 역사와 함께 오랜 선조들의 삶이 자연스럽게 묻어나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역적으로 각기 달리 불리는 아리랑은 그 지역의 특성을 잘 나타내면서도 원형 아리랑의 근본인 민족의 애환이 깃들어있어야 한다는 생각도 든다.

그것은 우리나라에서 익산이 대표할 수 있는 주제가 있어야 하며, 그 과정이나 결과에 따라 어떤 애환이 있었는지를 설명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면 다음에 적어 본 익산아리랑은 어떤 느낌을 줄까.

익산아리랑

한호철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부귀영화 마다하고 임을 찾아 천 리 길

명예권세 뒤로하고 낭군 찾아 만 리 길

둥지 떠난 이 몸 벌써 산천너머 경계로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아리 아리랑

내 님은 어데 있소 낭군은 어데 있소

꿈에 그린 지아비 품안의 온기 런가

아리랑 아리랑

얼싸안고 눈을 뜨니 임금님의 용안 일세

국태민안 따로 있나 안빈낙도 따로 있나

천하만민 화평한 태평성세를 이루자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아리랑 아리 아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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