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것들/산문, 수필, 칼럼

문화는 생존이다

꿈꾸는 세상살이 2015. 5. 1. 05:47

문화는 생존이다

어느 한 단체에서 임원을 맡고 있는 사람들의 소개 내용을 보니 다음과 같았다. 그들의 프로필은 한국폴리텍 00캠퍼스 겸임교수, 00기획 대표, 월남참전자회 00자문위원, 민주평통 00시 협의회장, 동 부회장, 00시 오케스트라 상임지휘자, 00시 삼일운동기념사업회장, 00 주민자치협의회장, 전 000 도지부 사무처장, 전 00로터리클럽 회장, 광산김씨 00이사, 광주이시 00이사, 평양조씨 00이사, 00식품 대표이사, 00농협조합장, 00건설 대표이사, 00조경 대표이사, 노무법인 00대표, 전 00예총회장, 전 00도의원, 00현대자동차서비스 대표 등이며 이 중에서 맨 먼저 거론된 한 사람은 시조시인임을 겸하여 소개하기도 하였다. 한 눈에 보아도 모두가 한 가락씩 내로라하는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런 사람들이 임원으로 있으면 아마도 일이 잘 진행되리라 믿어진다.

사람은 누구나 한 가지 일만 하는 것은 아니다. 어떤 때는 취미로 하기도 하지만 어떤 때는 두 가지 직업을 가지고 일하기도 한다. 예를 들면 식품회사를 운영하면서 대학교수로 근무하기도 하며, 거기서 미술을 전공하여 그림을 그리는 경우도 있다. 또 어떤 사람은 조합장을 맡고 있지만 전국노래자랑에서 입선할 정도로 음악에 일가견이 있는 경우도 있다.

학교에 가면 배우려는 사람과 가르치려는 사람이 모이는 곳이다. 이들이 서로 잘 융화될 때 교육의 좋은 결실을 맺을 수 있다. 이때 배우고자 하는 사람은 어떤 일을 하든 어떤 직업을 가졌든 상관이 없다. 또 식당에 가면 음식을 먹으려는 사람과 그들에게 음식을 제공하려는 사람이 모여야 하며, 둘의 수요와 공급이 잘 조화를 이룰 때 본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 이때 음식을 먹는 사람은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이든 어떤 직업을 가졌든 상관이 없다. 그러나 학교에서의 교사나 식당에서의 음식 제공자는 그 일에 많은 관심이 있어야 함은 물론이며 담 다른 식견과 재능을 가지고 있어야 함도 알 수 있다.

그런데 식당을 운영하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모두가 한결 같이 음식에만 관심이 있는 것은 아니다. 이들도 낚시 혹은 바둑에 취미가 있을 수 있고 노래를 잘 부르거나 그림을 잘 그릴 수도 있다. 이처럼 한 사람이 여러 방면에 걸쳐 다양한 재능을 보일 수도 있다는 말이다. 그러나 문제는 식당업을 하는 사람이 식당 업주끼리 모여 앞으로의 음식 문화를 거론하는 모임에서 자신은 바둑에 취미가 있다는 것을 얘기하면 어울리지 않을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예의 인물들이 문화관련 단체의 임원이었다면 어떤 생각이 들까. 위에서 예를 든 모든 사람은 각자가 하는 직업적인 일과 상관없이 예능에 관하여 즉 문화에 관하여 일가견이 있는 사람이었을 것을 인정한다. 그러나 문화관련 단체에 소개하는 프로필인데도 문화관련 내용을 올리지 않은 것은 좀 생각해볼 일이다. 이들이 문화 혹은 예술에 관련한 일을 하면 돈이 되지 않는 다고 하여 조금은 소홀히 했다는 것까지도 인정을 해두자. 그러나 자신을 소개한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약속이나 한듯이 소홀히 했다는 것은 곱씹어 볼만한 일일 것이다.

이를 역으로 생각해보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 실제로 문화를 사랑하고 관심이 많은 사람은 단체를 운영하는데 적극적이지 못해서 임원이 되지 못한 경우도 생각해볼 수 있으며, 또는 단체를 운영하는 비용을 지원할 수 없어서 임원이 되기를 거부한 경우도 있을 수 있다. 이렇게 생각한다면 문화라 하더라도 단체를 운영하는 데 소요되는 비용을 간과할 수 없다는 결론이 선다.

그렇다면 예의 임원들은 단체를 꾸려나가는데 소요되는 비용을 충당하는 수단으로 모셔온 사람들일까. 아마도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그 단체의 운영비용은 정부 혹은 지방자치단체에서 지급하는 비용으로 운영되는 것이 관례인 단체이기 때문이다.

나는 오늘 이 단체의 임원 명단을 보면서 많은 생각을 하였다. 문화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좀 더 적극적으로 단체를 위한 노력이 필요하겠다는 것과, 어차피 단체의 운영에 관계한 사람이라면 차제에 단체의 외형적인 운영뿐 아니라 실질적인 내용면에서도 관심을 가지고 동참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억지로 맡았다 하더라도 기왕 맡을 바에야 열심히 해보자는 것이다.

문화는 일반 단체의 장이라고 해서 잘하고 일반 시민이라고 해서 못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장르에서 혹은 어떤 분야의 일을 잘하는 사람인가에 따라 성패가 달라진다. 그러므로 문화는 누가 하라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며, 하고 싶어도 여건이 맞지 않으면 하기 힘든 것 중의 하나다.

그러나 어떤 이유에서든지 문화가 무너지면 그 민족이나 국가 역시 무너지고 마는 것이 현실이다. 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 이 진리를 되새겨 우리 문화를 지키고 발전시키는 일에 동참하여야 할 것이다. 이것이 바로 국가 간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이다.

2014.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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