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것들/산문, 수필, 칼럼

교외 가는 길

꿈꾸는 세상살이 2015. 5. 1. 05:48

교외 가는 길

이순 할머니는 오늘도 마을 입구의 한적한 곳에 차를 세웠습니다. 아직도 교회까지는 한참이나 남았습니다. 그러나 전동휠체어를 운전하면서 이곳저곳 바라보는 할머니는 그다지 어려울 것도 없습니다. 교회에 갈 때마다 매번 느끼는 것이지만 요즘은 시골까지도 포장이 잘 되어 있어 여간 고마운 일이 아닙니다.

더구나 요즘 같은 가을이면 누렇게 익어가는 벼를 보면 마음은 벌서 새하얀 쌀밥을 떠올리게 됩니다. 여물어 터진 밤송이를 보면 허연 속살을 내놓은 제사상의 밤이 생각나는 풍요의 상징입니다.

오늘은 누구와 말을 붙이고 그 사람은 어떤 성격일까 생각하는 이순 할머니는 벌써 가슴이 벅찹니다. 지난주에는 갑순 할머니를 만났고, 그로부터 마을 이야기를 들은 후 매우 흥미롭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마을이 생겨난 것이야 너무 오래 된 일이니 알 수 없었지만, 해방 이 후 겪어야 했던 애환과 젊은 사람들이 대처로 떠나지 않으면 안 되었던 사연들은 이순 할머니를 슬프게 하였습니다.

오늘은 자신처럼 다리가 불편한 할머니를 만나 볼 생각입니다. 지난주 보았던 지팡이를 짚지 않고는 걸을 수조차 없는 그런 사람도 있었다는 것이 기억났기 때문입니다. 그 할머니라면 이순 할머니와 비슷한 처지니 다른 사람보다 훨씬 더 쉽게 접근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늘은 그 사람에게 자식이 있는지, 있다면 전동휠체어를 사 줄 정도의 경제적인 도움은 받을 수 있는지를 알아보려 합니다. 도시 같으면 장애인 보호단체에서 제공하는 무료 이동서비스를 받을 수도 있겠지만, 조용한 시골이라서 그런 손길이 있을 것 같지는 않았습니다. 누군가 의지할 사람도 없이 혼자서 오는 것으로 보아 할아버지는 이미 돌아가신 듯합니다. 자식들도 다른 지방에서 사는지 아니면 아들이 없이 시집 간 딸만 있는지도 알 수 없습니다. 새로 온 교회의 일들은 이순 할머니에게 모든 것이 궁금하고 신기할 뿐입니다.

그러나 시골 사람들 더구나 이제 겨우 두 번 만난 사이에서 그런 말을 함부로 할 사람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이순 할머니도 그런 마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 누구라도 자식에 대한 애틋함은 다 같을 것이며, 자신보다 자식을 욕되게 하는 일은 어떠한 경우에도 참지 못하고 더구나 본인 스스로 그런 말을 한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순 할머니는 벌써 나이가 일흔을 넘어섰습니다. 이제는 살아갈 날이 그리 많지 않다는 것도 알고 있으므로, 비슷한 연배라면 서로 오해하지 않고 잘 지낼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가 서운할 것 같으면 남도 서운할 것이고, 내가 흡족할 것 같으면 남도 흡족할 것이라는 진리를 터득한 상태입니다.

얼마 전 도시 교회에 나갔을 때에 웃음치료 강사가 와서 했던 나이 예순이 넘으면 배운 사람이나 못 배운 사람이나 똑같아지고, 일흔이 넘으면 돈 있는 사람이나 없는 사람이나 똑같아진다던 말도 생각납니다. 생각해보면 생각할수록 짧게 느껴지는 인생을 그리 아웅다웅 할 것 없이 살아가는 게 좋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예배가 시작되기 전에는 모두가 기도를 하느라 정신이 없습니다. 일찍 도착한 이순 할머니는 벌써 묵상 기도를 끝내고 주위를 살펴보지만 누구에게 말을 붙일 수도 없습니다. 보이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눈을 감고 고개를 숙인 채로 입만 중얼거릴 뿐입니다. 믿음이 약한 이순 할머니는 아직 방언도 할 줄 모릅니다. 게다가 교회에 발을 들여놓은 지도 얼마 되지 않아 기도가 무엇인지도 잘 모릅니다. 그냥 자신의 마음을 터놓고 빌면 되는 것인 줄로만 압니다.

기도가 절대 권력자인 하나님과 교감하는 통로라는 것을 알면 아마도 더 매달릴지도 모릅니다. 자신이 바라는 모든 것을 죽기 전에 이룰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기도할지도 모릅니다. 자신이 불편한 만큼 어떻게 좀 편하게 지낼 수 있기를 바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지금은 많은 사람들이 그러하듯이 건강하게 해달라고 빌고 자식들 돈을 잘 벌게 해달라고 비는 수준입니다.

그런데 이순 할머니는 자식들이 없으니 돈 잘 벌게 해달라고 빌 일도 없고, 자식들 건강하게 해달라고 빌 일도 없습니다. 사고로 가족을 모두 잃고 오래 전에 잘려진 다리를 이제 와서 다시 붙일 수도 없을뿐더러, 불편하기는 하지만 전동휠체어를 타고 다니니 그냥 살아 갈만은 합니다. 그래서 이순 할머니의 기도는 항상 빨리 끝납니다. 빙빙 돌려 말하거나 어려운 단어도 사용하지 않습니다. 오늘도 더 아프지 않고 이렇게 편히 숨을 쉬며 살아갈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하다는 것뿐입니다. 그 외에 더 할 말도 없습니다.

그런데 이순 할머니에게는 이상한 버릇이 있습니다. 어느 교회를 가더라도 오랫동안 다니지 않고 쉽게 싫증을 느낀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가장 오래 다닌 교회라고 해도 겨우 1년 이내이고, 빠르면 한 달을 넘기지 못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니 교회에는 애착이 없는 듯 보이기도 합니다. 더군다나 교회에 특별한 헌금을 한다거나 십일조를 내는 경우도 없습니다. 그냥 많지 않은 돈으로 매주 주일 헌금만 하는 정도입니다. 젊은 사람들처럼 교회에 이름을 올리고 남들 앞에 나서기를 바라는 일도 없습니다. 성경을 줄줄 외운다거나 어떤 찬송이 나와도 막히지 않고 따라 부를 수 있는 형편도 아닌 아주 초심자 수준에 지나지 않습니다. 더 높은 직분을 받고 싶다거나 목사님으로부터 칭찬을 받으려 하지도 않습니다. 남에게 우쭐대거나 난 체도 하지 않습니다. 그냥 옆에 앉은 사람과 이야기하며 서로를 알아가는 재미뿐입니다. 어떻게 보면 인생을 지루하지 않고 남은여생 외롭지 않게 살아보자고 나가는 교회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사람 사귀는 일이 즐거운 이순 할머니입니다.

요즘의 시골 교회들은 점심밥을 먹고 나면 저녁 예배를 보는 경우가 많습니다. 낮 예배를 드린 후 저녁 예배를 별도로 드리자면 하루 해가 다 지나는데, 야간에 가로등도 없이 좁은 길에서 시골 노인들의 발걸음이 걱정되기 때문입니다. 젊은 사람이라 하더라도 낮부터 저녁 늦게까지 모든 시간을 소비하는 것이 미안하기도 하여, 교회에 머무는 시간을 조금이라도 줄여보자는 의도에서 점심을 먹고 나면 바로 저녁예배를 보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큰 문제는 낮 예배를 마치고 집에 돌아가면, 대부분 바쁜 일과 때문에 저녁 예배에 다시 참석하기가 어렵다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믿음에도 효율이 적용되어 나타난 현상입니다.

그러면 많은 교인들은 점심을 먹고 저녁 예배가 시작되기 전까지의 시간은 서로가 서로를 알아가는 좋은 시간이 됩니다. 누구네 집에 숟가락이 몇 개인지도 알 수 있는 처지지만, 우연한 기회에 가정의 애로사항도 들어가면서 서로를 위로하기도 합니다. 교회가 남을 이해하고 돕는 곳이라면 정말로 성경 말씀에 합당한 곳이라는 증명을 하는 듯도 합니다.

그런데, 어떤 교회에서는 점심 때 밥을 할 젊은이들이 없어 점심을 교회에서 먹지 않고 집으로 돌아가는 곳도 있습니다. 그들은 집에서 점심을 먹은 후 다시 교회에 모입니다. 그리고 해가 중천에 떠 있을 때에 저녁 예배를 봅니다. 말하자면 노령화 사회로 인하여 교회에서 일할 젊은이들이 없는 노년층 위주의 교회로 변해가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은 이순 할머니와 성례 할머니 그리고 지난주에 얘기를 나눴던 갑순 할머니 모두가 교회에서 점심을 먹었습니다. 사실 한 솥 밥을 먹으니 더 가까워지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됩니다. 이번이 두 번째 만남이지만 벌써 몇 달 전에 만난 사람처럼 친근감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성례 할머니 역시 자식이 없습니다. 애초부터 자식을 두지 못했었는데, 큰 집의 아들을 입적하여 길렀던 적도 있었지만 지금은 장성하여 둥지를 떠난 상태입니다. 굳이 친아들이 아니네 양아들이네 하는 말도 없었지만, 자신이 큰 아버지네 아들이었다는 것을 알고부터는 발걸음도 뜸해졌습니다. 그보다는 먼 도시에서 제 몸으로 벌어먹고 살기 바빠서 그럴 것이라고 생각은 하지만, 성례 할머니는 그래도 서운하기는 하다고 했습니다. 아무리 힘들어도 마음만 먹으면 전동 휠체어 하나 쯤은 사 보낼 수도 있겠지만 아직까지는 소식이 없다고도 하였습니다. 지금까지 그랬다면 아마도 앞으로도 신경을 쓰지 않을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듭니다. 이런 슬픈 사연을 들은 이순 할머니는 마음이 아픕니다. 차라리 내용을 알지 못했을 때보다도 더 안쓰러운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성례 할머니는 글자를 모릅니다. 어려서부터 시골에서 나고 자란 탓에 경쟁을 모르고 살아왔습니다. 글자를 몰라도 밥을 먹고 살아왔습니다. 그의 부모 역시 전형적인 시골 출신으로 공부를 해 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니 어려운 형편에 딸을 가르칠 엄두가 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성례 할머니는 느지막이 시골 야학에 공부하러 간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얌전히 시키는 일이나 하지 공부는 무슨 공부냐고 혼쭐이 난 후로는 그것마저 나가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한글도 다 떼지 못한 것입니다. 낮에 일하고 밤에 공부하러 가겠다는 것도 말렸던 시절이었습니다. 피곤한 몸을 쉬지 않으면 다음날 일에 지장이 있다고 하여 공부를 말리던 부모였습니다.

그러나 성례 할머니는 찬송가도 잘 부르며 성경구절도 잘 외웁니다. 제 때에 기본적인 교육만 받았더라면 어떤 할머니보다 더 똑똑한 사람이 되었을법한 사람입니다. 무슨 말을 들으면 절대로 잊어버리지 않고 기억하는 사람입니다. 처음 듣는 단어는 반드시 되물어서 이해를 하고 넘어가는 그야말로 빈틈이 없는 사람입니다. 보통 사람 같으면 벌써 나이 탓을 해가면서 건망증이 왔다고 핑계를 대겠지만, 성례 할머니는 전혀 그런 기색도 없이 초롱초롱합니다. 도시에서 배울 만큼 배웠다는 이순 할머니가 부러워할 정도입니다.

이순 할머니는 성례 할머니에게 물어보았습니다. 이제는 아들이 보고 싶지 않느냐고 말입니다. 그러자 성례 할머니의 눈가에 이슬이 맺힙니다. 어느 자식인들 보고 싶지 않겠습니까. 배 아파 낳지 않았어도 가슴 아파 기른 자식이니 자식은 매 한 가지 아닌가 생각됩니다. 다만, 자식이 그것을 그렇게 알아주느냐는 것은 별개의 문제이겠지만 말입니다.

이순 할머니는 재빨리 말머리를 돌렸습니다. 성례 할머니도 나처럼 전동 휠체어 하나 있으면 편하고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성례 할머니도 마침 기다렸다는 듯이 말꼬리를 따라 왔습니다. 자동으로 움직이는 휠체어가 하나 있었으면 말할 수 없이 편할 것이지만, 지팡이 하나만 있어도 걸어 다닐 수는 있으니 그것도 감사하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자기 형편에 그런 것을 사는 것은 사치라고 하였습니다. 그 말을 들은 이순 할머니는 또 가슴이 아파옵니다. 자기 몸 하나 편하게 해 줄 수 없는 노인들이 가슴을 아프게 하는데, 그것을 불만이나 불평이 아닌 숙명처럼 받아 넘기는 여유를 가졌다는 것이 더 슬프게 합니다.

이순 할머니는 점심을 먹었지만 저녁 예배에는 참석할 수가 없습니다. 멀리 있는 집에 돌아가려면 일찍 나서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순 할머니가 교회에서 예배를 보는 시간은 물론 점심을 먹거나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기사는 혼자서 시간을 보냅니다. 조용한 시골은 눈에 보이는 곳 어디에도 색다른 소일거리가 없습니다. 모두가 논이며 밭인 상태에서 들일을 하는 것 말고는 아무 것도 할 일이 없습니다. 그렇다고 운전기사가 정말로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며 기다리는 시간 동안 잠이나 자는 그런 사람은 아닙니다. 책도 읽고 동네를 돌아다니며 청소도 하는 아주 모범적인 청년이니까요.

교회에서 나온 이순 할머니는 여러 사람의 눈에 띄지 않을 정도의 먼 거리에서 차를 타고 갑니다. 누가 보아도 의심하지 않을 정도로 떨어진 곳에 차를 세워두는 버릇이 있습니다. 이것은 이순 할머니의 철칙입니다. 기사가 문을 열어주고 스위치를 작동시키면 발판이 나와서 전동 휠체어가 바로 진입할 수 있도록 개조한 차량입니다. 말하자면 집에서부터 외출을 하고 구경하는 것까지 모두 휠체어로 가능하게 만들었습니다. 이순 할머니는 자신을 도와주는 사람이 편해야 한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비용은 조금 많이 들어갔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휠체어에서 내리지 않고도 장거리 여행이 가능합니다.

이순 할머니는 차를 개조한 후 장애인 복지센터에 기증하였습니다. 그 대신 자신이 필요로 하는 날 즉 교회 가는 날에는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한다는 조건이 붙었습니다. 그렇지만 이렇게 허가 낸 하루라 하더라도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이용한다면 기사가 수고를 할 것이니 가능하면 일찍 돌아가려고 노력합니다.

집에서 교회까지 오고가는 길도 제법 멉니다. 창밖으로 펼쳐지는 풍경을 보노라면 시간 가는 줄 모르겠지만, 이순 할머니는 교회에서 있었던 일을 하나도 빠짐없이 이야기 해줍니다. 그것이 자신을 기다려준 기사에 대한 보답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성례 할머니의 몸 상태는 어떻고, 자식관계는 어떤가도 빼놓지 않고 말해줍니다. 교인들이 몇 명이나 모였는지, 오늘 설교는 어떤 내용이었는지도 마치 중계방송 하듯 설명해줍니다.

어떤 교회는 설교말씀보다는 세상 사는 이야기를 더 많이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등록 교인을 모두 합해도 겨우 50명 남짓이며, 게다가 나이가 연로하신 분들이니 어려운 성경풀이 설교보다는 실생활에 접목한 설교가 훨씬 더 현실적일 것입니다. 그런 때의 설교시간은 웃음바다가 됩니다. 그렇지 않아도 지난 한 주일동안에 누가 어떤 일을 하였는지, 누구하고 누가 싸웠는지 다 알고 있지만, 다른 사람을 통하여 다시 한 번 듣는 이야기는 마치 새로운 뉴스라도 되는 양 신경을 곤두세웁니다. 혹시 목사님을 통하여 자신이 잘못 했다는 말이 나올지 몰라 가슴이 두근거리기도 합니다.

오늘 갔던 교회에서도 그랬습니다. 갑순 할머니는 귀가 어두워 평소 문 밖 출입이 뜸했었는데 목사님을 통하여 보청기를 선물 받고는 외출이 잦아졌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다보니 예전에 없이 운동량이 많아져 다리에 가래톳이 섰다고 하였습니다. 다 늙은 마당에 무슨 운동을 얼마나 많이 하였기에 가래톳이 섰는지 웃지 않을 수 없습니다. 어쩌면 동네 야경꾼이라도 되는 듯이 쏘다녔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마치 처음 보는 마을 인양 이리저리 휘둘러 돌아다녔을 것입니다. 전에 없이 돌아다니는 사람을 보면 동네 개들도 짖었을 터인데 예전 같았으면 들리지도 않았을 그 시끄러움은 어떻게 참았는지도 모릅니다.

그러고 보니 들어서 좋은 일도 있지만 듣지 못해서 좋은 일도 있는 것이 세상살이인 듯합니다. 아마도 모든 것이 그런 가 봅니다. 돈도 많으면 좋겠지만 또 한편으로는 돈이 많아서 눈물을 흘리는 경우도 있다고 하니 말입니다. 갑순 할머니와 같이 다니시는 성례 할머니는 돈이 없어도 항상 긍정적이며 밝은 모습을 잃지 않고 살아가시는 분입니다.

운전기사는 이순 할머니의 말을 하나도 빼놓지 않고 들으려고 노력합니다. 때로는 맞장구도 쳐가며 대답을 하는데, 반드시 충분한 교감을 느낀 후에만 응답합니다. 이순 할머니는 그런 기사를 마음에 들어 합니다.

시골길을 벗어나기까지 한참 동안 말이 없던 운전기사가 라디오를 켰습니다. 포장도 안 된 길에서 이순 할머니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운전에 신경을 쓰느라 그랬을 것입니다. 마침 토막 뉴스 속보가 나오는데 통영함 건조과정에서 시가 2억 원에 해당하는 음파탐지기를 41억 원에 납품하였다고 합니다. 이 말을 듣자 이순 할머니의 머릿속이 복잡하게 돌아갑니다. 41억에서 2억을 뺀 39억 원은 자신이 타고 다니는 전동휠체어가 몇 개인지를 계산해보는 중입니다. 그러나 워낙 단위 차이가 커서 그러지 쉽게 계산이 되지 않습니다. 이순 할머니는 암산에서 동그라미를 몇 개나 지우고 계산해야 빠를지 그것조차 어림잡지 못하고 있습니다.

계산이 안 되는 이순 할머니는 라디오를 꺼달라고 부탁하였습니다. 복잡한 머리에 그나마 좋지 않은 소식이 방해를 하고 있지 않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입니다. 라디오를 꺼도 계산이 안 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이순 할머니는 창문을 열고 눈을 감았습니다. 시원한 바람이 들어오자 복잡하던 머리가 금새 개운해지는 것 같았습니다.

자원봉사센터에 돌아간 운전기사는 오늘 들은 이야기를 모두 전달할 것입니다. 그것이 원래의 업무는 아니지만 지금까지 이순 할머니의 차량을 운전한 날에는 들은 이야기를 하나도 빼놓지 않고 보고하였습니다. 어쩌면 그것이 이순 할머니가 자신을 자식처럼 여기며 들려준 것에 대한 보답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집에 도착한 이순 할머니는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목사님에게 전화를 합니다. 이 이야기는 조금 전에 운전기사에게 말했던 것과 조금도 다르지 않습니다. 이순 할머니는 똑 같은 이야기를 다시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목사님은 그런 내용을 하나도 빠짐없이 기록해놓습니다. 언제 어디서 누가 어떤 내용으로 연락이 올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세상에는 보이지 않는 천사가 많이 있습니다. 목사님이 적어 놓은 목록을 보면서 벌써 많은 일들이 이루어졌다는 것이 바로 그런 것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이루어지고 나면 이순 할머니에게 전화를 하여 어떤 일이 이루어졌다고 말해줍니다. 이순 할머니나 목사님은 세상은 아직 따뜻하여 살아갈만한 세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며칠 동안 기다려도 후원자가 왔었다는 연락이 없으면 이순 할머니는 자신의 통장을 들고 은행을 향합니다. 그리고는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자신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만큼의 돈을 인출하여 봉투에 넣습니다. 은행에 다녀온 날 밤에는 이순 할머니는 으레 잠을 이루지 못합니다. 밤이 깊고 어둑한 시간에 아무도 몰래 집을 나서려면 방심하여 눈을 붙일 수가 없습니다. 할머니 곁에 아무도 없어 깨워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거동이 불편하신 이순 할머니의 행동이 다른 사람의 눈에 띄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목사님은 아직까지 한 번도 이순 할머니에게 고맙다는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내 것들 > 산문, 수필, 칼럼' 카테고리의 다른 글

진실과 사실  (0) 2015.05.01
나의 죽음은 어떻게 해석될 것인가  (0) 2015.05.01
닭장 안에는 아직도 닭이 남아있다  (0) 2015.05.01
문화는 생존이다  (0) 2015.05.01
익산아리랑  (0) 2015.05.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