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이 오셨습니다.(사도행전 제1장 4절 ~ 8절)
우리는 흔히 말하기를 삼위일체라고 합니다. 이때의 삼위를 종교적인 풀이로 보면 성부와 성자 그리고 성신을 말합니다. 여기서 성신은 성령의 다른 말입니다. 그러나 요즘은 성신 대신에 성령을 많이 사용하고 있으며, 어떻게 해석하면 성령이 맞는 말이기도 합니다.
예수님이 부활 하신 후 50일 째에 성령님이 오셨습니다. 이 사건은 기독교에서 가장 중요한 일 중의 하나입니다. 물론 믿음이라는 것은 예외로 하더라도, 우선 예수님이 오셔서 우리에게 죽지 않고 영생할 복음을 주셨던 사건이 가장 큰 축복이었을 것입니다. 그 다음에 오신 성령님은 예수님의 일을 완성하시는 것이며, 우리가 하나님 곁으로 가서 천국을 완성할 수 있도록 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서 복음을 전파하시고 우리의 죄를 용서하셨지만, 성령님은 우리를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도록 해 주시는 것입니다. 성령님을 통하여 예수님이 부활하신 것을 믿을 수 있게 되었고, 교회도 거듭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성령님의 목적은 온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시는 것이며, 이 땅에서 참 그리스도인이 사는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성령님이 세우시는 하나님의 나라는 어떤 나라일까요. 우선 죄를 이기는 세상입니다. 요한일서 제5장 18절에 의하면 성령님이 함께 하심으로 세상을 이길 능력을 주셨습니다. 다음에는 세상을 이기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제16장 33절과 같이 성령님이 함께 하심으로 세상을 이길 능력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자기 자신을 이기게 합니다. 이는 자신의 의지를 조절할 수 있다는 말이며,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구분하여 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자기의 판단 대로 살아가는 것과 자신의 소견 대로 살아가는 것 등은 내 속에 하나님이 안 계시다는 증거입니다. 이런 때에 내 하고 싶은 것을 모두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는 일에 도움이 되는 일인지 아니면 죄 속에 빠지는 일인지를 구분하여 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따라서 성령님은 육신의 의지보다는 영에 의한 삶을 살도록 하십니다.
베드로는 예수 그리스도께 순종하고 충성스러운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성령님이 안 계신 동안 즉 예수님이 죽음을 맞이하실 때에, 베드로는 사람의 판단으로 살았기에 육신의 안위를 생각하여 거짓 증언하였으며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하였습니다. 이때는 베드로에게 성령님이 임하시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부활하셔서 베드로에게 나를 진정으로 사랑하느냐고 세 번 물으신 후에 성령님이 임하시자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하루에도 5천 명씩 회개하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이 모두는 베드로 자신의 판단에 의한 행동으로 인한 것이 아니라 그 안에 계시는 성령님이 역사하신 것입니다.
지금의 우리는 베드로가 받은 성령님이 오셔서 함께 하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있는 자격을 얻은 사람이기에 성부 하나님이 성령의 형태로 오셔서 함께 하시는 것입니다. 반면에 성령을 받지 못한 사람은 성부와 성자를 믿지 못하며, 하나님을 인정하지 못합니다. 그러니 성부 하나님이 성령의 형태로 임하시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사도 바울도 여러 곳에 서신을 보내면서 성령이 충만하기를 바랐습니다. 지금 이 시대의 교회와 성도들도 사도 바울이 권면했던 성령이 충만해야 합니다. 이것은 하나님과 가까워졌다는 증거이며, 내 안에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증거입니다. 오늘도 성부와 성자 그리고 성령님이 함께 하시는 축복이 있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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