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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부전 평설

꿈꾸는 세상살이 2015. 8. 22. 04:35

 

흥부전 평설

윤영근/ 남원예총/ 1996.11.31/ 224쪽

흥부전은 우리가 잘 아는 전래 동화다. 누구나가 읽어보았을 흥부전은 교과서에 나올 정도로 유명한 책이며 내용 또한 생각해야 할 것이 많은 책이다. 그러나 흥부전을 동화가 아닌 어른이 읽어야 할 고전 소설로 읽어본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너무나 친숙하고 잘 알고 있는 뻔한 내용이기에 등한시 하는 경향 때문일 것이다. 그것은 어쩌면 우리 것보다 남의 것을 더 중하게 여기는 잘못 된 인식에서 비롯된 것일지도 모른다.

나는 흥부가 놀부네 집에서 쫓겨나기 전에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알아보기 위하여 어른이 읽어야할 흥부전을 찾게 되었다. 말하자면 아버지가 살아계실 적에는 한 집에서 대가족제도 하에 살다가,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 어떤 사유로 인하여 분가하게 되었는지를 알고 싶었던 것이다. 사실 이런 점은 어릴 적에 읽었던 전래 동화에서는 언급되지 않고 있다. 말하자면 원래의 고전 소설이 어린이용 전래 동화로 변형되면서 각색된 것이라는 얘기다.

 

책에 의하면 흥부는 글만 읽던 선비였다. 대신 놀부는 책보다 농사를 짓고 대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던 사람이었다. 물론 놀부가 공부를 전혀 하지 않았다는 것은 아니지만, 지금 세태로 비교해서 말하자면 놀부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 경제를 담당하던 부모 같은 큰 형이었고 흥부는 아직도 공부만 하는 학생이었던 것이다. 부모님이 살아계실 때에는 아버지와 놀부가 힘을 합해 일을 하였기에 별 문제가 없었던 것처럼 보였고, 흥부 역시 놀부와 비교하여 아직 나이가 어렸던 이유로 넘어갔던 것이다. 책에 의하면 놀부와 흥부의 나이 차이는 명확히 말하고 있지 않으나 분위기로 보아 대략 열 살 정도의 차이가 나지 않았을까 짐작은 해본다. 그 이후에 놀부가 생각하기에 누구는 놀고먹고 누구는 일하고 먹는 것에 대하여 너무나 불공평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화가 난 놀부가 흥부를 쫓아내는 빌미가 되었다. 사실 이때까지 흥부는 일을 해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나는 여기서 흥부를 더 관찰해보기로 했다. 그가 당시 유학 즉 유교 사상으로 물들었던 고전을 읽고 있었다는 데 주목할 필요를 느낀 것이다. 흥부는 소학이나 동몽선습 등 기초 학문을 마치고 논어나 대학 등 어려운 학문에 들어가고 있었다. 반면, 놀부는 아버지와 함께 일을 해야 하였기에 조금 못 미치는 단계에서 머무르지 않았나 생각된다.

따라서 흥부는 이미 경제보다 인간적인 면을 더 강조하는 마음의 수련 단계에 들어서고 있었던 것이다. 최소한 놀부에 비하여는 그랬을 것이다. 그래서 엄동설한에 가진 것 없이 쫓겨나도 겸양지심으로 불평을 전혀 하지 않았으며, 다리를 다친 제비를 보고 측은지심이 발동하여 바로 치료를 해 주는 마음씨를 가지게 되었던 것이다. 훗날 흥부가 큰 부자가 된 것은 선에 대한 인과응보를 말하는 것이며, 놀부와 흥부의 전세가 역전된 것은 형제간의 우애가 없음에 대한 권선징악적 요소를 가미한 것이다. 또 가족을 포함하여 사회적 질서와 국가적 기강을 바로 세우기 위하여 행해야 할 제도와 절차를 무시하지 말고 따르라는 교육적 암시가 따른다. 이 모든 것들은 책이 전하는 제1차적 목적이기도 하다.

 

지금 생각해서 유학 즉 조선 시대 선비들의 좋은 점도 인정해줄 필요를 느낀다. 여기서 말하는 유학은 우리에게 전달되면서 한쪽에 치우친 유교와는 다른 측면이다. 공자가 말한 유학은 중용이며 학문 중심이며 그것의 생활 적용이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인간을 바탕에 둔 상태에서만 가능한 일이었다.

그들은 먹고 사는 것보다 학문을 좋아하였으며, 설사 사흘을 굶어도 손에서 책을 놓지 않았던 것이다. 책 속에는 길이 있고 인간이 사는 진리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학문을 많이 한 사람들이 권력의 정점에 서고 국가를 흔들더니 학문이 곧 출세의 길로 여기는 과오를 범했다. 이것은 유학의 본질을 잘못 사용하여 학문이 먹고 사는 문제 혹은 권력을 잡는 수단으로 전락한 결과로써, 우리 현 세대가 유교를 나쁘게 보는 편견을 만들어 내기도 하였다.

지금 고전을 다시 읽자는 운동이 벌어지고 있다. 정세가 불안정하며 사회가 혼란스럽고 질서가 어지러운 세상이 되면 항상 거론되는 것이 바로 고전이다. 흥부전이나 춘향전과 같은 국내 고전을 포함하여 마음을 다스리는 외국의 유명한 고전을 통하여 인간의 본질을 이해하자는 목적에서 일어나는 운동이다. 이것은 요즘 말로 인문학의 재기 운동인 것이다. 오랫동안 사랑을 받고 있는 고전은 바로 인문학의 표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