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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택의 어머니

꿈꾸는 세상살이 2015. 9. 3. 12:26

 

김용택의 어머니

김용택/ 문학동네/ 2012.05.17/ 253쪽

 

김용택 : 1948년 임실 태생으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오리를 키우다 실패하였다. 이 후 서울로 떠났다가 다시 고향에 와서 덕치초등학교의 교사가 된 후 섬진강에 대한 시를 썼다. 1982년 ‘창비 21인 신작 시집’ 『꺼지지 않는 횃불로』를 통하여 등단하였는데, 이때 내놓은 작품이「섬진강1」이었다. 이후 고향 섬진강에 관한 글을 써서 섬진강시인으로 통하게 되었고, 김수영문학상, 소월시문학상, 윤동주문학대상을 수상하였다.

시집에『섬진강』,『맑은 날』,『그 여자네 집』,나무』,『연애시집』,『그래서 당신』,『속눈썹』등과 산문집에『사람』,『오래된 마을』,『아이들이 뛰노는 땅에 엎드려 입 맞추다』가 있고 동시집으로『콩, 너는 죽었다』,『너 내가 그럴 줄 알았어』,『할머니의 힘』등이 있다.

 

저자는 섬진강에 대한 글을 많이 써서 잘 알려진 시인으로, 이번에는 어머님에 대한 그리움을 에세이로 엮어냈다. 이 내용으로는 어머님이 작고하셨는지 살아 계신지는 알 수 없으나, 시집을 온 후로 여러 가지 고난을 겪고 풍상을 견뎌 낸 아픔을 적고 있다. 그러면서 어머니에 대한 사랑과 존경이 묻어난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듯이 예전의 어머니들은 모두가 말 없는 소설가셨고 시인이셨다. 한 숨을 내 쉬면 시가 나오고, 말문을 열면 소설가가 되시는 것이다. 그만큼 하고 싶은 말이 많고 들려주고 싶은 말이 많은 것이다. 그런가 하면 하지 못한 말이 많음을 털어내는 것이리라. 예를 들면 귀가 어두워져 잘 들리지 않게 되면 늙어지면 세상소리 다 들을 필요가 없어 잘 안 들리게 된다는 해석이 바로 그런 것이다. 나이 불혹인가 싶더니 지천명을 넘어 이순이 된 까닭이다. 눈이 어두워지면 볼 것 안 볼 것 다 보면서 젊은 사람들과 싸우기 싫어 눈이 흐리다는 표현도 마찬가지다. 옛 말에 시집가면 벙어리 삼 년, 귀머거리 삼 년, 봉사 삼 년이라는 말이 있는데, 아마도 그 삼 년은 갓 시집 온 새댁에게 하는 말이 아니라 늙어진 후에 해당하는 말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다.

그러나 어머니들은 무학이면서도 그 많은 자식들 생일을 그것도 모두 음력으로 기억하고 있으며, 대추나무 연 걸리듯 한 제사도 기억하는 사람들이다. 언제 어떤 물건을 외상으로 들였으며 어떤 장수에게 얼마를 갚아야 할지 혹은 얼마를 받아야 할지 자신만의 셈법으로 알고 있는 분들이시다. 그래서 어머니는 위대한 것이다. 김용택의 어머니 역시 위대한 분이시다. 비록 글로 모든 것을 설명할 수는 없었겠지만 누가 뭐래도 훌륭하시고 아름다운 분이셨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런데 저자가 말하는‘어머니’는 여타 에세이에 등장하는‘어머니’와 조금 다르게 느껴진다. 김용택의 어머니는 때로는 어머니의 입장에서, 어떤 때는 아들의 입장에서 어머니를 이야기 하고 있다. 어머니를 회상하는 것과 어머니를 설명하는 것이 섞여 있기 때문이다. 그런가 하면 어찌 보면 김용택의 자서전이기도 하며 어머니의 자서전이기도 하다. 그러나 지루하지 않은 것은 사이사이에 사진이 있어서가 아니라 문체가 여리고 서정적인 냄새를 풍기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저자를 섬진강 시인이라고 부른다면 억지일까.

김용택 시인이의 시는 섬진강이라는 단어를 길게 늘어뜨려 조금씩 풀어놓은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서정시인지 산문인지 모를 정도다. 이런 문체는 에세이인 이 책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조용히 읽어보면 운문인지 산문이지 분간하기 어려운 대목들이 나타난다. 마지막 부분에서 작가가 요즘 신춘 시 몇 편을 읽다보니 너무 가볍다는 인상을 받았다고 한 대목에서도 느낄 수 있다. 현실과의 팽팽한 긴장감이 적다는 뜻이다. 현장과 현실을 찾아가는 노력이 없고 그냥 시들하여 깊은 맛이 없다고 하였다. 자신이 섬진강에 온 열정을 쏟았던 것처럼 모든 일에 쉽게 생각하지 말고 새기듯 하자고 말한다.

이런 부분은 자신이 섬진강 하나에 모든 것을 걸었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어떻게 해석하면 나는 섬진강 외에 표현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말과도 같다. 그에서 섬진강은 하나의 사실이며 저자 자신에 대한 투영인 것이다. 여기서도 섬진강 줄기에 깃든 고향 마을을 드러내고 있다. 한편 나는 그런 멋있는 고향이 없다는 생각에 서글프다. 오로지 고향 하나 섬진강바라기가 이 세상에 나온 듯하다. 나도 고향바라기가 되면 그렇게 될 수 있을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