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용사의 충성(사무엘하 제23장 13절~17절)
사람은 사회생활을 하면서 누구를 믿고 따르기도 합니다. 이것은 상호 신뢰에 의한 결과이기도 합니다. 나라를 위한 장수의 삶이 그렇고 부모를 위한 자식의 도리가 그런 경우입니다. 하지만 이런 것이라 하더라도 모두 항상 누구에게나 나타나는 그런 일은 아닙니다. 많은 사람 중에서 일부만이 그런 행동을 하는 것이 세상의 일입니다. 여기 본문에 나오는 세 용사도 그런 사람 중의 지극히 적은 일부 내용입니다.
다윗이 적군과 대치하고 있었을 때, 오래 전에 다윗이 마셨던 우물이 바로 그들 적군의 지역에 위치하고 있었습니다. 다윗은 답답한 심경을 달래고 있었는데 그때 마침 그 우물물이 마시고 싶어졌습니다. 그도 모를 향수에 젖어 그 우물물을 마시고 싶다고 말하고 만 것입니다. 그러나 누구에게도 그 우물물을 떠 오라고 지시하지는 않았습니다. 이때 세 장수가 이 말을 듣고 있다고 자기의 상관인 다윗을 위하여 우물물을 퍼오기로 결정하였습니다.
그 우물은 적군의 진영을 뚫고 지나서 한참을 가야 하는 곳이며, 물을 떠온다 하더라도 역시 적진을 뚫고 돌아와야 하는 곳입니다. 그러나 세 용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힘을 합하여 그 물을 떠 오기로 마음먹고 길을 나섰습니다. 그리고 어려운 고비를 넘기며 무사히 물을 떠왔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그러한 사실을 알고는 그 물을 마시지 않았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그 물을 누구도 마시지 못하도록 부어버렸습니다. 다윗은 자신의 말 한마디를 듣고 목숨을 걸고 떠온 물을 마실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 사람들의 성의를 생각하면 반드시 마셔야 하는 물이었지만 그렇게 목숨의 대가로 떠온 물을 그냥 자신의 한 모금 목을 축이기 위하여 마실 수는 없었던 것입니다.
다윗은 신하의 충성을 알고 부하는 다윗에 대한 충성심이 목숨을 걸만큼 강했던 것입니다.
우리고 하나님을 만나게 되면 목숨을 걸고 충성할 수 있는 믿음이 생기게 됩니다.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생기면 그 어떤 어려움이나 힘든 일도 모두 즐거이 받아들일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진실로 진실로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고 계시면, 내가 하나님께 충성을 다하면 나에게 큰 복을 주실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피조물인 사람이 어찌 하나님께 충성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그러면 사람이 하나님께 드리는 충성은 어떤 것을 말할까요. 우선 첫 째는 함께 하는 것입니다. 위에서 보았듯이 세 용사는 다윗과 함께 하였습니다. 우리도 하나님과 함께 하는 것이 첫 번째 충성입니다. 관심을 가지고 묵상하며 행동하는 것입니다. 예전의 나를 부인하고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 함께 하는 삶을 사는 것이 그 첫 번째입니다.
다음은 마음을 시원하게 해드리는 것입니다. 세 용사가 답답한 다윗의 마음을 시원하게 해드리기 위하여 물을 떠 온 것처럼 하나님의 마음을 시원하게 해드리는 것이 바로 충성입니다. 내가 하는 행동 하나하나를 보시고 답답해하실 하나님의 마음을 생각하여 미리 시원하게 해드릴 방법을 찾고 행동하는 것이 충성입니다.
그리고 세 번째는 하신 말씀을 흘려듣지 않고 귀담아 듣는 것입니다. 세 용사는 누구에게 시킨 것도 아닌 다윗의 말을 우연히 들었지만 그냥 넘기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충성을 하였던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언제 어떤 경우에 들었다하더라도 흘려듣지 않고 내 목숨과 같이 귀하게 행동하는 것입니다.
다음은 작은 일에도 소중히 행하는 것입니다. 전쟁터에서 적군을 상대로 싸워 이겨야 하는 상황이지만 지금 목말라 죽어가는 것도 아닌 다윗이 그냥 우물물을 그것도 고향 우물물을 마시고 싶다는 그 한 마디에 목숨을 걸만큼 충성을 하였습니다, 이처럼 해도 되고 안 해도 될 만큼의 작은 일에도 그냥 지나치지 않고 행동하는 것이 충성입니다.
여섯 번째로 그분을 위해서는 그 어떤 일도 마다하지 않는 것입니다. 다윗이 고향의 우물물을 마시고 싶다고 하였을 때에 그냥 옆에 있는 물을 퍼다가 주면서 이 물이 바로 그 고향 우물물이라고 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아마도 다윗은 그 물이 어떤 물인지 잘 알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세 용사는 그러지 않았습니다. 이처럼 어떤 일이라 하더라도 따지지 않고 따르는 것이 바로 충성입니다. 이 세 용사 중에서 어느 한 사람이라도 나는 그 동안에 적군과 싸워 전쟁의 영웅이 되겠다고 자신의 생각으로 행동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오로지 주어진 일에 충성을 다 하였습니다.
일곱 번째는 어떤 난관이 닥쳐도 멈추지 않는 것이 충성입니다. 적군을 뚫고 우물물을 떠오는 것은 아주 어려운 일입니다. 차라리 적고 싸우는 편이 더 쉬울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어려움 속에서도 하던 일을 멈추지 않고 끝까지 완수하였습니다. 만약 세 용사가 가다가 적군을 만나듣지 혹은 적군의 경계가 삼엄한 것을 보고 그냥 돌아와서 그 우물물을 뜨러 갔었는데 적의 경비가 강하여 그냥 돌아왔다고 하더라도 다윗은 뭐라 할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어려움을 만나도 그만두지 않고 나아가는 것이 바로 충성이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여덟 번째는 가장 소중한 것을 드리는 것입니다. 세 용사가 각기 자신의 목숨을 걸고 떠온 물은 아주 소중한 것입니다. 남이 볼 때는 시원찮고 작지만 그들에게는 아주 소중한 것입니다. 그런 물을 세 용사는 아무런 대가없이 그냥 드렸습니다. 어려운 길을 갔다왔다고 자랑하지도 않았습니다. 나중에 어떤 보상을 해달라고 부탁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냥 자신이 가지고 있는 물을 아깝다는 생각 없이 거저 드렸습니다.
다윗에게는 충성스런 세 용사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세 용사는 다윗을 위하여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는 준비가 되어있고, 그대로 행동하였습니다. 자신의 목숨이 위태롭게 되었을 때에도 즐거이 그 일을 행했습니다. 지금 우리에게는 하나님을 위한 충성된 마음이 이 세 용사와 같은 상태에 있을까요. 만약 세 용사와 같은 마음이 없다는 그것은 충성된 마음의 신앙이 아니라 그냥 인간적으로 주고받을 보상을 대가로 거래하는 그런 관계일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께 대한 충성된 마음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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