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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비의 아내

꿈꾸는 세상살이 2016. 4. 23. 05:43

 

 

 

선비의 아내

 

류정월/ 역사의 아침/ 2015.12.21/ 285쪽

 

류정월 : 서강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대학원에서 문헌 소화의 구성과 의미 작용에 대한 기호학적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인천대학교 인문학연구소에 근무하고 있으며, 조선시대의 삶과 정서를 돌아보면서 역사, 문학, 철학을 아우르는 글을 쓰고 있다. 저서로『오래된 웃음의 숲을 노닐다』,『오래된 운명의 숲을 지나다』,『고전적 재미의 재구성』등이 있다.

 

책이 말하는 선비의 아내는 우리나라 역사상 선비라는 명칭을 사용하던 사람들이 있었던 시대의 삶을 이야기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런 시대의 여성 그 중에서도 아내 되는 사람들이 어떻게 살았을까 하는 문제를 다루는 내용이다. 물론 학술적 토론을 위한 주제로 다룬 것은 아니며, 우리처럼 평범한 사람들이 알기 쉽도록 그냥 풀어놓았다. 말하자면 조선의 유교에 혹은 유학에 심취되어있던 사람들의 아내가 어떤 삶을 살았는가 하는 말이다.

여기서 말하는 선비는 그냥 글을 읽던 학자만을 이야기하는 것도 아니고, 벼슬을 했던 지식층을 이야기하는 것도 아니다. 바꿔 말하면 유학을 공부한 학식 있는 사람이면서 지식적으로도 빠지지 않고, 곧은 성미에 옳고 그름을 분간할 줄 아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 사람은 대체로 공과 사를 구분할 줄 알고, 국가와 민족을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또한 이웃을 돌아보면서 백성의 구차한 삶도 이해하는 사람이다.

 

그러나 선비는 정작 본인의 문제에 대해서는 조금 부족함을 느낀다. 그것은 유교라는 것 또는 유학이라는 학문이 자신의 처지를 가장 우선시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런 현상을 초래했다고 생각할 수 있다. 물론 수신제가치국평천하라고 하여 자신을 돌보고 가족을 먼저 생각하는 것은 맞지만, 그것이 자신의 치부나 가족의 권력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자신을 다스리는 것이 재산을 모아 배부르게 먹고 등 편히 쉬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요즘말로 바꾸면 돈 잘 벌고 가족들에게 용돈 펑펑 주는 것과는 다른 의미다.

그러니 선비는 혹은 선비의 가족은 대체로 크게 부자가 되지 못한다. 물론 처음부터 부자였다면 그 부자를 유지하거나 재산을 더 늘릴 수는 있겠지만, 가난한 처지였다면 그 환경을 벗어나기 힘들었으며 오히려 경제적으로 더 어렵게 되는 경우가 많았다. 이는 다시 말해서 선비는 사사로운 가정사에 얽매여 국가나 혹은 사회적으로 신경을 덜 쓰면 안 된다는 생각이었던 것이다. 이런 집안의 안주인인 선비의 아내들은 항상 경제와 육아 그리고 가문의 풍속을 이어가는 아주 어려운 삶을 살아야 했다.

 

책에 언급된 선비의 아내는 대체로 가난한 사람들이다. 그래야 선비 대신 어떤 삶을 살았는가 하는 것을 확연하게 설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남편이 벼슬을 하여 임지로 출타하고 없는 가정에서 경제적인 것을 해결하고, 육아를 전담하며, 가정교육에서도 빠지지 않고, 가문의 제사나 일가친척에 대한 예의, 그리고 남편을 찾아오는 손님을 접대하는 것까지 모든 것이 아내의 몫이었던 것이다. 당시 벼슬을 하면 그야말로 국가에 대한 책무가 막중하며, 그로 인하여 얻는 경제적 부는 상대적으로 미미하였던 시절이다. 그 후로 공무원에 대한 급료는 적다는 인식이 팽배하게 되었다. 따라서 청빈낙도한 선비는 자신이 벌어 자신의 생활에 충당하면 그만일 정도였고, 그 외에 따르른 모든 문제는 고스란히 아내가 떠맡지 않을 수 없었다. 이것이 선비의 아내이다.

 

가난한 선비의 집에 친구가 찾아왔는데, 선비가 그에 대한 대접으로 술상을 요구하였다. 아내는 없는 살림에 쌀독을 박박 긁어모아 술상을 차렸고, 손님을 맞는 남편의 기를 살려주었다. 아니 그것은 찾아온 손님에 대한 예우였다. 때로는 아내가 가진 유일한 패물인 비녀를 팔고 그것도 모자라면 머리를 깎아서라도 충당하는 것이 선비의 아내의 도리였다. 선비는 이것을 참 선비의 참 아내로 여길 정도였다. 물론 선비가 그런 어려움과 아픔을 인식하느냐 인식하지 못하느냐는 별개의 문제다. 선비의 아내는 그렇게 하는 것이 마땅한 것으로 여겼던 것이다.

거기에는 유교라는 전통 의식이 많이 작용하였다. 여자가 시집을 가면 시댁의 일원이 되면서, 때로는 시댁의 가문을 책임질 수퍼우먼으로 둔갑하기도 하는 것이다. 또 나이 어린 아녀자가 오랜 세월 풍파를 견뎌온 노복들을 다루는 것도 탁월한 기술이 필요한 부분이었다. 한 지붕 아래 사는 혹독한 시모와 심술 많은 시누이 그리고 어린 시동생까지 건사하기도 마찬가지다. 이런 것들을 슬기롭게 대처하는 것은 현명한 선비 아내의 필수 덕목이었다. 그래서 현모양처로 구분되는 조선시대의 여성상은 참으로 어려운 학문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요즘처럼 남편 승진 잘하도록 돕고, 돈 잘 벌어서 아이들 사교육 잘 시키는 것이 현모양처인 것과는 사뭇 다른 환경이다.

 

이에 짝하여 선비는 글 잘 읽고 많이 아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 물론 국가의 부름을 받아 봉사하는 기회를 가지는 것도 중요하지만, 등용되거나 출사를 하지 않더라도 원래 선비의 역할을 잘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은 부정할 수 없다. 당시 본처 외에 첩을 두는 제도가 있었지만, 조강지처를 멀리하고 첩을 자주 찾도록 유혹하는 혹은 그런 매력을 느끼는 첩은 과감히 버릴 줄 아는 사람이 곧은 선비인 것이다. 예를 들면, 자신이 무슨 일을 하든 미리 알아차리고 그것을 잘 하도록 예지한 사람도 유능한 사람이다. 날씨가 덥다고 말하기도 전에 시원한 물을 떠다 바치는 첩, 비가 오고 우중충하면 온돌을 데펴 몸을 녹일 수 있도록 하는 첩, 본가에 계신 노모의 생신을 기억하고 미리 준비하는 첩, 혼자 중얼거린 시구를 엿듣고 있다가 순간에 대구로 받아넘기는 첩, 이런 첩은 첩으로서의 신분을 넘긴 사람들이다. 이런 사람을 첩으로 그냥 둘 수 없다면 그는 이미 진정한 선비가 된 사람이다. 다시 말하면 본처를 멀리 하고 첩을 찾을 이유를 만들어주는 첩은 이미 첩의 기능을 넘어 본처 자리를 넘보는 것임에 틀림없다. 본인의 의도가 그렇지 않다고 하더라도 선비는 자칫 그런 분위기로 몰아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모든 면에서 만족스럽고 자신의 형편을 알아 잘 처리해주는 첩이라면 어느 누군들 마다하겠는가. 그렇다면 차라리 그런 첩을 멀리하는 것이 마땅할 것이다. 이것이 본처인 조강지처에 대한 예의이며 사내의 본분일 것이다. 이런 신념이 없는 사람은 진정한 선비라 할 수 없다. 그러니 그 선비에 그 아내라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김유신 장군이 술을 먹고 제 정신이 아닌 상태에서 집으로 향하던 중,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기생이 있는 곳으로 안내하던 말을 벤 것과 같은 이치다.

 

선비의 아내는 할 일이 많았다. 내용적으로도 아주 어려운 문제도 많았다. 지켜야 할 일과 해서는 안 될 일도 많았다. 챙겨야 할 일도 많았고 혼자 판단해야 할 일이 많았다. 선비의 아내는 그냥 다섯 글자의 이름일 뿐 아니라 한 가문의 부흥과 연속성을 실행하는 엄중한 책무였다. 선비가 인문학을 주장하는 시간에 선비의 아내는 인문학을 실천하는 사람이었다. 선비가 애국애족하는 시간에 선비의 아내는 긍휼과 자선의 실천가였다. 지금 그런 삶을 살자는 것보다는 그런 정신을 잊지 말자는 쪽으로 해석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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