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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 VS 학부모

꿈꾸는 세상살이 2016. 6. 27. 12:36

 

 

부모 VS 학부모

 

SBS스페셜 부모 VS 학부모 제작팀/ 예담/ 2014.09.30/ 358쪽

 

SBS스페셜 부모 VS 학부모 제작팀 : 과도한 입시 경쟁과 교육열로 인해 한국 사회와 가정이 겪는 어려움을 파헤쳤다. 이러한 교육 현실을 바꿀 수 있는 주체는 바로 부모라는 관점에서 자녀의 감시자가 아닌 가족 구성원의 하나로서 자녀의 행복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였다. 2014 학부모가 뽑은 교육브랜드 대상에서 2014 바른교육상을 수상하였고, 2014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1월 이달의 좋은 프로그램상을 수상하였고, 제18회 YWCA 좋은 TV프로그램 대상을 수상하였다. 여기에 박진흥 프로듀서가 참여하였고 신진주 작가가 동참하였다.

 

부모는 아이의 특히 자기 가족인 자녀의 모든 것을 책임지려하는 의무감이 작용한다.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동방 유교국 중에서도 유별나게 자식 사랑이 넘치는 나라로써, 요람에서 무덤까지 책임지는 그런 사회다. 자식이 태어나면 아니 그 전부터 태몽과 함께 혹은 태아 교육부터 시작하여 육아, 유아원, 유치원, 초등학교와 중학교 그리고 고등학교에 다니기까지 모든 것을 책임져준다. 뿐만 아니라 대학에 가는 것도 부모의 의지가 강하게 작용하고, 물론 그런 강요에 덤하여 필요한 학비와 용돈까지도 부담한다. 유별난 자식 사랑은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졸업하면 취업하기까지 뒷바라지를 해주며 심지어 군대에 가는 것과 배우자를 맞는 것까지 하나하나 점검하고 간섭한다. 그리고 그런 결정 속에서 자신의 의견을 반영시킨다.

이것이 우리네 부모의 특성이다. 그러면 다른 나라는 이렇게 하지 않는가? 이정도 하는 것은 부모로서 당연한 것 아닌가? 글쎄 그것은 잘 모르겠다. 하지만 다른 나라에서는 우리나라처럼 그렇게 많이 그리고 그렇게 오랫동안 간섭하거나 의견을 반영하는 경우는 드물다.


그러면 우리는 왜 이렇게 극성스러울만큼 간섭하고 있을까. 그것은 아마도 우리가 살아온 과서 생활에서 비롯되지 않았을까 생각해볼 수 있다. 우리는 영토가 좁고 인구는 많은 나라에서 자라왔다. 거기에는 경쟁과 살아남기 위한 전략이 필요한 구도만 있었다. 남이 어떻게 하는 것보다 내가 어떻게 할 것인가를 생각하는 사회 시스템이 작용하고 있었던 것이다. 오랜 세월에 걸쳐 우리가 반복해온 이런 사회 풍조는 이제 더 이상 진화할 수 없을 정도의 비약적인 경지에 이르고 말았다.


우리 영토를 벗어나 세계 각국에 가서도 이처럼 경쟁에서 이기는 방법을 그것도 단 시간에 아니 단 한 방에 훅 날려버리는 방법의 필요성을 연구하고 있는 것이다. 거기에는 먼 미래보다 당장 아니 지금 현재가 어떤가하는 문제만 있을 뿐이다. 지금 이 순간에 어떻게 하면 이길 수 있는지 우위를 점할 수 있는지가 문제라는 말이다.

이것이 한국의 교육열로 나타났고, 우리의 사회적 부모로서 책임감으로 나타난 것이다.

그러면 다른 나라에서 말하는 부모의 역할은 어떤가. 그것은 국가의 미래를 위해, 아이의 장래를 위해 구가할 문제는 무엇인가로 귀결된다. 보통 그런 나라들은 영토가 넓고 인구는 적으며, 경쟁에 의해 상호 비판하고 넘어서야 하는 경우가 드물다. 어쩌다 하나 발생한다 하더라도 그것은 특이한 경우의 한 예에 지나지 않는다. 그것은 그냥 지나친 광적 돌연변이에 의한 것일 뿐이다. 그러기에 정통 방법은 그게 아니라 모든 사람이 고루 잘 사는 방법 혹은 남과 함께 그러나 내가 더 행복한 방법이 무엇인지를 찾는 수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나라에서는 모두가 행복해지고 모두가 고루 인식하는 가치관을 갖는 것이 현실이다. 그렇다면 우리 교육 방법 혹은 우리 부모들이 가진 방법이 틀렸다는 것인가.

물론 우리 부모들의 방법이 틀렸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들과 우리 부모들은 다르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 부모들이 생각하는 것과 우리 학부모들이 생각하는 것 역시 차이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 부모 역시 아이의 장래 국가의 미래를 생각하지 않은 것이 아니지만, 유독 지금 현재의 우리 아이에 대하여 집착하는 것은 학부모로서 지금 당장 좋은 서열을 추구하는 마음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결국 이런 마음은 단기적인 결과를 얻기 위한 방법임을 부인할 수 없다. 요즘에는 기업 혹은 국가 기관에서도 단기성과에 집착하는 현상을 보이고 있다. 자신이 근무하던 시절에 자신이 경영하던 시기에 어떤 성과가 있었는지를 보고 국민들이 평가한다는 착각에 사로잡힌 결과다. 물론 그런 가시적인 성과도 중요하지만 멀리 보면 그런 것보다 오랫동안 유지할 오랫동안 사용해야 할 그 어떤 것을 찾아야 할 것이다. 이것이 사회 인프라이며 전반적인 지식수준의 향상이라고 볼 수 있다. 또한 문화 수준의 향상이며 가치관의 재정립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이 책의 핵심은 아이들이 공부를 잘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지. 그래서 어떤 결과를 얻었는지를 파헤치고 있다. 결국 아이들은 학교 정교육보다 선행학습이라는 명목아래 사교육에 매달리고 소위 말하는 일류 학교에 입학하기 위하여 공부를 한다. 그것은 입시 위주의 교육으로 암기 외에는 없다.

최근 들어 논술과 사회 봉사활동 및 인성을 반영한다고 하지만 아직 크게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있는 수준이다. 이렇게 교육 그것도 공부에만 매달리다 보면 아이들은 고루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잃어버리게 되며, 경쟁과 시기 질투만 배우게 된다. 나를 위해서는 남이 희생되어야 하며, 최소한 나의 행복을 위해 남의 불행은 기본이 되는 세상으로 만들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자란 아이들은 자신의 장점 혹은 타고난 재질을 파악하기도 전에 공부로 시작해서 공부로 끝나고 만다. 이것은 자신에게 큰 불행이면서 사회적으로 국가적으로 큰 손실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아이들은 자라면서 자신의 정체성을 파악하지 못하고, 순간순간 불행하다거나 만족을 느끼지 못하는 것을 실감한다. 그리고 지금 하는 일에 대하여 싫증을 느끼거나 거부감마저 갖게 된다. 심하면 병폐로 나타나는 것이다. 언제 어디서나 순위는 있게 마련이라서 반에서 1등 하는 학생 100명을 모아놓고 시험을 치렀는데, 어찌하여 너는 1등을 하지 못했느냐고 묻는 것과 같은 이치다. 거기에서도 100명의 순위는 형성되는 것이니, 모두가 다 1등을 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니겠는가. 이때 부모는 공부를 잘 하라고 말하지만 학부모는 왜 1등을 하지 못했느냐고 묻는 사람이다.


사람의 지능은 언어지능, 논리수학지능, 음악지능, 공간지능, 자연탐구지능, 대인관계지능, 신체운동지능, 자기이해지능 등이 존재한다. 이를 두고 다중지능이라고 말한다. 예전에 공부 잘하는 그것도 암기 잘하는 지능이었던 IQ와는 다른 해석이다. 이렇게 다양하게 이루어진 우리 아이들이 있기에 사회가 잘 버텨가고 유지되어 가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부모 주도로 아이들 학습을 시킬 것이 아니라 아이가 스스로 주도적으로 공부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 그것은 자신이 어느 재능이 있는지 파악하여 느끼고 그것을 이루기 위하여 노력하도록 만들어야 한다는 말이다. 이것이 부모의 역할이고 사회의 필요한 제도인 것이다.


2010년 통계에 의하면 매년 300명 정도의 청소년이 자살을 하는 나라다. 그 중에서 53.4%의 학생들이 학교 성적으로 인하여 자살을 하였다고 하는 것은 공부가 얼마나 심각한 폐해를 제공하고 있는지 단적으로 말하고 있다.

취업을 잘 하려면 소위 유명 대학을 나와야 하고, 유명 대학에 들어가려면 서울에 있는 특목고에 들어가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서울 특정 지역의 학원에 다녀야 한다는 공식이 성립한다.

그런데 최근 우리가 하늘같이 믿었던 유명 학원 족집게 강사가 학교의 교사로부터 시험문제를 유출하여 선행학습을 하였다는 기사가 나왔다. 우리 아이들이 시험은 잘 보는데 사회에 나가면 아니 직장에 취업만 해도 일을 잘 못하는 원인이 바로 여기에 있었던 것이다. 말하자면 족집게 강사는 미래를 예측하는 유명한 도사가 아니라 부정한 방법으로 자신의 입지를 높이기만 하였다는 것이다. 모두가 서열 위주로 공부하는 사회에서 만들어낸 결과다. 또한 그것에 편승한 학부모가 초래한 당연한 정답이다. 한 마디로 인문학의 부재다.


아이들이 현재 자신의 부모라면 즉 자식과 부모의 역할이 바뀌었다면 가장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일거냐는 질문에 이런 답변이 나왔다. 다양한 아이들은 부모에게 이렇게 요구한다.

학원을 끊어주고 친구들과 영화도 보고 맛있는 것도 사먹게 하겠다는 것이다. 또 100번을 잘 하다가 단 한 번의 실수로 화를 내면 그것은 아이들에게 큰 상처가 되니 그렇게 화를 내지 않겠다고 했다. 아버지는 아이들 앞에서 술 취한 모습을 보이지 않을 것이며, 아이들이 보는 앞에서 부부 싸움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이처럼 부모들도 다 알고 있는 사실을 그러나 아이의 장래를 위해 조금은 더 챙겨야 하는 일들을 아이들은 바라고 있지 않다는 것이었다.

물론 아이들의 생각이 옳다는 것은 아니다. 부모는 부모 나름대로 생각하고 심사숙고하여 내린 결론이니 더 옳을 확률은 높은 것이 확실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은 아이들 나름대로의 가치관이 있고 그들 대로의 인생관이 있다는 말이다. 따라서 너무나 어른들 입장에서 내린 결론으로 아이들을 다그쳐서는 안 된다는 말을 하고 있다.

 

부모의 사랑이 애착이 되고 그 도를 넘어서면 집착이 된다는 사실을 모르는 부모도 없다. 그러면서도 애착을 버리지 못하는 것이 한국의 부모들이다. 우리는 그들을 학부모라고 부른다. 먼 미래를 내다보지 않고 우선 경쟁에서 이겨내기를 바라는 마음을 일컫는 것이다. 그러면 부모가 옳은가 아니면 학부모가 옳은가. 그것은 그때 그때 상황에 따라 답이 달라질 것이다.

그러나 일반적으로는 부모가 더 옳은 것이 정석이다. 돈만 많이 벌었다고 성공한 인생이 아닌 것이며, 직급이 높아졌다고 성공한 인생이 아닌 것을 아는 사람들은 그렇게 말한다. 부모가 항상 옳다고. 그러나 우선 이기고 보아야 한다는 사람들은 학부모가 되어 경쟁에서 항상 이기도록 부추긴다. 그래야 사회에서 돈을 많이 벌고 직위가 높아져서 행복한 삶을 산다고 말이다. 그러나 부모 혹은 학부모의 모든 바람은 아이의 행복으로 귀결되지만 그 과정에서 다르게 적용되는 차이다. 부모가 죽고 난 후에 아이들이 혼자 살아갈 때를 생각하면 부모의 판단이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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