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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정말 알아야 할 모든 것은 유치원에서 배웠다

꿈꾸는 세상살이 2016. 9. 20. 18:07


내가 정말 알아야 할 모든 것은 유치원에서 배웠다

 

로버트 풀검/ 박종서 역/ 김영사/ 1989.02.25 1쇄, 10.25 22쇄/ 190쪽

 

로버트 풀검 : 본인 스스로 철학자라고 여기며 살고 있다. 목사이면서 바텐더, 미술교사, 직업적 화가, 포크송 가수, 목동, IBM의 세일즈맨 등을 겸하고 있다.

 

이 책은 벌써 15년도 넘게 보관하고 있던 책이다. 지인이 이 책을 좋은 책이라고 말한 이후에 계속하여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어쩌다 보니 오늘까지 읽지 못하다가 드디어 읽게 된 것이다. 참으로 게으르기 한이 없다.

이 책의 저자 역시 자신을 매우 게으른 사람이라고 부른다. 왜냐면 가을에 떨어진 낙엽을 치우지 않고 그냥 정원에 나뒹굴도록 내버려두기 때문이다. 낙엽은 그렇게 날리다가 내년 여름이 되면 거름이 되어 다시 자연으로 돌아갈 것이기 때문에 일부러 비로 쓸어 치워낼 필요가 없다는 식이다. 매사에 이런 식이니 자신은 게으른 사람이라는 말이다. 손에 쥐어줘도 읽지 못하는 나처럼 말이다.

책의 제목이 주는 위압감처럼, 우리가 알아야 할 모든 것들이 이미 유치원에서 배웠다는 말이다. 그러면 지금 잘 하지 못하는 것들은 유치원 때 한눈을 팔았다든지 기억력이 아주 나빠 알지 못하여 실천하지 못하는 것이라는 말도 된다. 그래서 내가 이 책을 열지 못하고 있었던 이유가 더 크다. 누구나 이미 배운 것, 누구라고 할 수 있는 것, 당연히 해야 할 일을 다 배웠는데도 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핀잔을 들을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게다가 내가 이 책을 읽었는데도 잘 살지 못하면 그 또한 인간으로서 참 힘든 삶을 살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염려도 들었다. 만약 그렇지 못하면 나는 인간으로서 자격도 없는 것은 아닌지 하는 우려 말이다. 몸이 아파도 혹시 큰 병이라서 곧 죽을 것이라는 진단이 두려워 병원에 가지 못하는 마음약한 환자들처럼 말이다.

 

그러나 막상 책을 펼쳐드니 그런 내용이 아니었다. 어쩌면 약간은 다행이라는 생각이 드는 대목이다. 한 마디로 말하면 이 책은 가볍게 읽는 에세이집이다. 물론 교훈적인 내용이 많지만 그렇다고 하지 못한 것을 훈계하고 가르치는 정도는 아니다. 그러니 너무나 부담을 가지고 읽지 않아도 되는 책이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무엇이든지 나누어 가져라, 정정당당하게 행동하라, 남을 때리지 마라, 물건은 항상 제자리에 놓아라, 네가 어지럽힌 것은 네가 깨끗이 치워라, 남의 물건에 손대지 마라, 남의 마음을 상하게 했을 때는 미안하다고 말하라, 밥 먹기 전에 손을 씻어라, 화장실을 쓴 다음에는 물을 꼭 내려라, 따뜻한 쿠키와 찬 우유가 몸에 좋다, 균형 잡힌 생활을 하라-공부도 하고 생각도 하고 매일 적당히 그림도 그리고 노래도 부르고 춤도 추고 놀기도 하고 일도 하라, 밖에 나가서는 차 조심 하고 손을 꼭 잡고 서로 의지하라, 경이로운 일에 눈 떠라-컵에 든 작은 씨앗을 기억하라 등이다.

 

마당에 낙엽이 가득 쌓여 있다. 그런 어느 날 한 소년이 찾아왔다. 마당의 낙엽을 쓸고 1달러를 받는 아르바이트 귀머거리 소년이었다. 저자는 낙엽을 놓고 보는 성격이었지만 소년을 돕기 위하여 낙엽 쓰는 일을 시킨다. 그리고 그 소년이 가면 낙엽을 다시 마당에 흩어놓을 생각이었다. 그런데 마당이 넓어 1달러에 일을 시키기에는 미안한 생각이 들었고, 2달러를 주겠다고 말하자 소년은 그럼 3달러는 줄 수 없느냐고 물었다. 둘은 말없이 웃었다. 그리고 소년은 열심히 낙엽을 쓸었지만 하루에 다 치우지 못했는데 벌써 해가 지고 말았다. 수고비는 선불로 주었는데 내일 다시 소년이 와서 낙엽을 치울 것인지도 걱정이 되었다. 어떻게 믿을 것인지, 혹은 돈을 내 놓고 가라고 할 것인지 망설여지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귀머거리 소년은 다음날 다시 와서 마저 일을 마쳤고, 로버트 풀검 즉 저자는 소년이 간 뒤에 낙엽을 다시 흩어놓지 않았다. 잘 모아진 낙엽은 이내 마당가의 퇴비장으로 옮겨졌다. 어차피 모아 놓은 낙엽이나 퇴비장의 낙엽이나 같은 낙엽의 역할은 변함이 없으니 굳이 그대로 두는 것을 고집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느끼는 순간이었다.

이처럼 모든 일은 자신이 옳다고 하는 것조차 다시 생각해보면 틀린 것도 느낄 수가 있는 것이다. 물론 틀린 것과 다른 것은 다르다는 개념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일반적인 대화에서 하는 말로 그렇다는 것이다. 이런 내용이 주를 이룬다. 마치 내가 한 일을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그냥 해야 할 일은 하고 싶다는, 조금은 다른 사람에게 웃음거리가 될 수 있어도 그것이 좋다면 그냥 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는 것이다. 물론 그런 것들은 모두 유치원에서 배울 정도로, 심각하게 혹은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아도 누구나 공평 타당한 생각으로 할 수 있는 것들로 말이다.

 

가볍지만 그래도 읽고 나니 즐거운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