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픽션/ 1. 강병식공원

꿈꾸는 세상살이 2017. 10. 1. 20:06

픽션

1. 강병식공원

 

강병식공원은 익산시 어양동에 있다. 바로 위에는 익산시 청소년수련관과 익산문화원이 있으며, 문화의 본산이라 할 수 있는익산문화의 전당도 지척에 있어 도심 속 휴게공간의 역할을 톡톡히 하는 곳이다.

강병식공원에는 음악분수가 있고 작지만 인공폭포가 있으며, 해마다 익산시의 대표 축제인 천만 송이 국화축제가 열리는 곳이기도 하다. 축구장을 가진 만큼 면적도 넓고 위치상으로 찾아가기 쉬운 곳이라는 장점도 있다. 그런데 강병식공원이 유명한 것은 물리적인 그것보다 더 인간적인 면이 작용한다. 그래서 강병식공원는 천만 송이의 축제와 더불어 익산의 위엄이 표본이 된다.

공원의 주인인 강병식은 1953817일 익산시 오산면에서 태어났으며 이리고등학교를 졸업하였고, 육군사관학교에 입학하여 제31기로 소위에 임관하였다. 이후 15사단 38연대의 승리부대 대대장으로 근무하던 198854일 순직하였다.

우리가 잘 알다시피 15사단은 제1군 지역으로 강원도 중에서도 최전방에 위치하고 있다. 따라서 항상 적을 방어하고 대치하는 훈련을 하고 있는 곳이다. 이날도 지리매설작전을 하던 중이었는데, 부하의 실수로 지뢰가 폭발하면서 많은 희생자가 날 상황에 처해있었다. 이를 지켜본 당시 대대장 강병식 중령과 소대장 이동진 중위는 자신의 몸으로 부하들을 구한 살신성인의 자세를 보였다. 그곳에 있었던 15명의 부하들과 자신의 생명을 바꾼 영웅이 바로 고 강병식대령이다. 고 이동진대위는 경남 창원출신이다.

 

우리는 이런 희생정신의 사례를 들 때 고 강재구소령을 우선 떠올린다. 그런데 그 다음 순위에는 아무도 없다. 오로지 강재구소령 뿐이다. 이것은 우리가 그렇게 교육을 받아온 결과의 하나에 속한다. 사람은 그렇게 교육을 받으면 그렇게 길들여지는 것이다. 그래서 익산에서는 정부 차원이 아닌 시민의 힘으로 고 강병식대령을 기리는 공원을 만들었다. 고 강재구소령은 동상은 물론 공원까지 마련되어 있으며 교과서에도 실리는 등 대대적으로 홍보하고 있으나, 고 강병식대령은 상대적으로 소외당하고 있다는 판단에 자발적인 움직임을 보여 강병식공원을 만들게 된 것이다.

사실 따지고 보면 당시 중대장이었던 강재구대위는 월남으로 파병을 앞두고 강원도 홍천에서 수류탄 투척 훈련을 하던 부하가 실수를 하였고, 그 결과로 많은 희생자가 날 것을 자신의 몸으로 덮어 부하를 구하였다는 내용이다. 그때 정부는 많은 국민들이 반대하던 월남파병에 대한 당위성을 홍보하고 있었던 때라 고 강재구소령을 크게 보도하였고, 100명의 부하를 구한 위대한 죽음이라고 추켜세우며 살신성인의 좋은 본보기로 만들었다. 그래서 동상을 세우고 대대적으로 홍보하였으며, 홍천군에서는 이를 기리는 공원을 만들기에 이른 것이다.

반면, 고 강병식대령은 평상시 적을 방어하는 실전 상황에서 사단사령부의 작전명령에 따라 방어 작전을 수행하던 중 부하의 실수가 일어난 비슷한 상황이었다. 강재구소령은 여러 부하들을 모아놓고 교육 중이었으므로 자칫 하면 많은 희생자가 날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강병식대령은 처음부터 소수의 정예요원만 투입되는 작전을 수행 중이었으며, 소대장이나 대대장은 삽으로 땅을 파고 지뢰를 매설하는 작전에는 직접 투입되지 않는 것이 원칙이었다. 지휘관은 뒤에서 전체적인 지휘를 하는 것이 그 사명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위의 두 사람은 지휘관 본분의 역할을 하면서 한편으로는 위험한 작전에 투입한 부하들을 격려하는 차원에서 현장에 나가 있었고, 마침 부하의 실수로 사고가 난 것이었다.

 

그런데 이 강병식공원에는 또 다른 인물들이 있다. 의사자로 지정된 고 이영준학생과 역시 의사자로 지정된 고 임창환군이 그 주인공이다.

고 이영준군은 2012816일 이리고등학교 2학년 재학 중에 친구 11명이 완주군 운주면 금당리 하천으로 단합대회를 갔다가, 인근에서 물놀이하던 초등학생 1명이 물에 빠지자 아들을 구하려던 그의 아버지도 같이 허우적대는 것을 발견하였다. 이군은 두 생명을 구하고 자신은 급류에 휘말려 미쳐 빠져 나오지 못해 숨진 의사자다.

또한 고 임창환군은 이리고등학교 재학 당시 사물놀이 동아리를 조직하여 전국 대회에서 2등을 한 우수팀으로 이끌었으며, 단국대학교 무역학과 2학년 학생으로 매주 고향에 내려와 후배들을 지도하는 열성을 보이기도 하였다. 1997721일에는 무주군 설천면 기곡리 수련원에서 가진 사물놀이 동아리 후배들의 여름 수련회에 지도 차 참석하였다. 그날 오후에 수구를 하던 중 골키퍼를 맡은 1학년 학생이 놓친 공을 잡으러 가다가 수영 미숙으로 허우적거리는 것을 보면서, 심판을 보던 고 임창환군이 뛰어 들어 후배를 구하였으나 자신은 미처 빠져 나오지 못하여 목숨을 잃은 사고였다.

이들은 공교롭게도 모두 이리고등학교 출신이거나 학생이었다. 특정 학교 출신이 라서 어떻다는 것보다, 익산에서 지정된 의사자 세 명이 모두 이리고등학교 출신이라는 것이 신기하다는 것이다.

의사자 두 명의 흉상은 강병식공원 내 북쪽에서 남쪽을 바라보는 양지바른 언덕에 있으며, 강병식동상은 남쪽에서 북쪽을 바라보며 서있다. 지금도 마치 최전방 전선을 지키고 있는 듯한 모습이다. 그냥 보기에는 조그만 흉상이며 간단한 동상 하나지만, 거기에는 목숨을 담보로 하는 숭고한 정신이 깃든 의로운 공원임에 틀림없다.

공원을 찾아 여가를 즐기는 시민들은 물론이며 익산을 방문하는 사람들 모두가 강병식공원에서 의로운 사람의 본을 받아 남을 배려하고 국가와 사회에 이바지 하는 정신을 이어갔으면 좋겠다.